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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 ◆GULJi96aoSzS 2013/09/30(月) 20:24:08.33 ID:NTKquP+co
이제까지의 셋의 관계는 이제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부터 새로운 시간이 새겨져 나가겠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유키노의 바로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아직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안다.
유키노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지.
-- 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나는 내 마음을 몇 번이고 그렇게 타이르는 것처럼 깨우쳐 주는 것처럼 말을 걸며 유키노의 손을 잡았다.
힘없이 뿌리치는 손을 꽉 잡고 모두에게 신학기에서의 재회를 약속한 뒤 자리를 떴다.
815: ◆GULJi96aoSzS 2013/10/05(土) 11:41:06.07 ID:Xf/M4Oxro
× × × ×
「유키노, 케이요 선까지 걸어갈래?」
「응……, 하치만.」
유키노는 유이가하마의 모습을 보고 쇼크를 받은 것 같았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친구인 유키노는 말할 것도 없겠지.
나는 이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유키노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알지 못했다.
틀려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안 된다.
유키노의 죄악감을 한층 자극하고 말뿐이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거리는 네온 사인이 자아내는 갖가지 색의 빛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흥겨운 분위기 속에 있는 게 어울리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유키노에게 재치 있는 한 마디조차 건네지 못한 채 손을 끌고 역까지 걸어갈 뿐이었다.
816: ◆GULJi96aoSzS 2013/10/05(土) 11:42:16.40 ID:Xf/M4Oxro
치바미나토 역에서 케이요 선까지 탔다.
둘이 나란히 앉았지만 유키노는 평소와 같이 어깨에 기대 애교를 부리지 않았다.
무릎 위에 손을 포개고 조용히 그 손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 손 위에 오른손을 포갰다.
하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다.
아무리 해도 유키노에게 건넬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나에게는 그냥 이렇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내릴 역에 도착했다.
전차를 내려서도 유키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유키노의 손을 잡아보지만 마주 잡아주지 않는다.
그저 내가 쥔 손을 두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개찰구를 지난 유키노는 갑자기 멈춰 섰다.
내 집은 북쪽, 유키노의 집은 남쪽 출구 방향이다.
유키노가 무엇을 생각한지는 모른다.
그런 유키노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처럼 손을 쥐었다.
내 의도를 이해한 것처럼 약하게 마주 쥐었다.손으로 체온이 전해져 왔다.
아까까지는 손을 잡아도, 손을 포개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다.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조금은 침착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지금은 쓸데없는 것 말고 유키노만 생각하자.
그렇게 자신을 타일러 유키노의 집으로 향했다.
820: ◆GULJi96aoSzS 2013/10/05(土) 17:55:15.48 ID:Xf/M4Oxro
× × × ×
「하치만, 들어.」
「땡큐, 유키노.」
유키노의 방에 들어선 나는 샹파뉴 로제의 향기를 힘껏 들어 마신 후 한 모금 마셨다.
홍차로 훈훈해진 전신에 피가 한 바퀴 도는 느낌이 들었다.
유키노는 내 맞은편에 걸터앉아 티컵을 조용히 기울였다.
「저기, 유키노…….」
「……뭔데? 하치만…….」
「나하고 유키노 사귀고 있는 거지?」
「응, 그래…….」
「그러면 좀 더 내 쪽으로 와주지 않을래, 유키노?」
「……. 응…….」
한 순간 간격을 두고 그렇게 대답한 후 꼼지락거리면서 내 옆에 앉았다.
그렇지만 거리가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내 쪽에서 무릎으로 다가갔다.
유키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키노와의 거리가 좁아졌지만 역시 대화는 없었다.
821: ◆GULJi96aoSzS 2013/10/05(土) 17:56:32.87 ID:Xf/M4Oxro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컵을 들어 올렸다 딸깍 접시에 되돌려 놓는 찰과음만이 울렸다.
「저기, 유키노…….」
「……뭔데? 하치만…….」
「유키노는 크리스마스 케익 같은 거 만들기도 해?」
「응……, 일단 만들어 뒀어.」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더니 어디선가 상자를 가지고 왔다.
「바로 접시 가지고 올게. 그리고 홍차 한 잔 더 줄까?」
「응, 부탁해. 유키노.」
유키노의 방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꼭 「유키노」하고 덧붙이고 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 한다면 옆에 있어 주는 것과 몇 번이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 정도이다.
재치 있는 말 한 마디 해주지 못한다.
그냥 「유키노」라고 불러줄 때마다 얼굴을 붉히는 것 같았다.
그냥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트레이에 티컵 두 개를 올려놓고 유키노가 있는 조리대 쪽으로 향했다.
822: ◆GULJi96aoSzS 2013/10/05(土) 17:58:01.76 ID:Xf/M4Oxro
「하치만, 편하게 쉬고 있어도 되는데…….」
유키노는 부엌 선반에서 막 식칼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옆접시하고 식칼은 내가 갖고 갈 테니까 유키노는 홍차를 타줘. 유키노가 내준 홍차가 아무래도 맛있으니까.」
「평소에 집에서도 공부 중간에 타먹지 않아?」
「응, 그래도 내가 타면 맛이 반감돼서 말이지. 역시 유키노가 타주지 않으면 맛이 안 나.」
「바보……」
유키노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야 겨우 유키노의 미소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