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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 ◆GULJi96aoSzS 2013/10/15(火) 21:59:42.90 ID:v9ONI2kro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 먹자」
억지로 화제를 돌려 둘이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는데 먹어볼래?」
그렇게 말하며 도시락을 넘겼다.
「땡큐. 유키노가 만든 거라면 입에 맞지 않을 리가 없잖아」
도시락통을 열자 때깔도 좋은 게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단 한 점, 빨간 한 점의 존재를 과시하는 그게 없었다면……
「코마치한테 토마토를 싫어한다고 들어서, 신경 써서 토마토도 넣어뒀어.」
뭐야, 그거.
너, 어느새 코마치와 친분을 쌓은 거냐?
코마치한테 이런저런 걸 알아내서 날 조교할 생각이야?
「내가 만든 수제 도시락을 설마 남기지는 않겠지……」
웃는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몸과 마음이 얼어붙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 조교 무서워.
이렇게 토마토를 다 먹을 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보는 가운데 유키노의 수제 도시락을 비웠다.
886: ◆GULJi96aoSzS 2013/10/15(火) 23:24:19.50 ID:v9ONI2kro
× × × ×
「여어, 유키노」
「안녕……, 하치만」
방과 후 다시 부실에서 유키노와 얼굴을 마주했다.
유키노의 표정은 어두워져 있었다.
「……유이가하마라고 생각했던 거야?」
「응……. 오늘은 유이가하마가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유키노의 침울한 얼굴은 보기 싫다.
「오늘은 내가 홍차 탈게.」
「그럴 수는……. 괜찮아, 내가……」
하는 유키노를 무시하고 홍차를 타기 시작했다.
「나도 폼으로 매일 밤 홍차 타는 게 아니라고.」
887: ◆GULJi96aoSzS 2013/10/15(火) 23:25:36.75 ID:v9ONI2kro
유키노 앞에 컵을 놓았다.
「자, 안 마실 거야?」
유키노는 컵을 입 근처에 가져가더니 굳어졌다.
「이, 이건……」
「그래……. 평소 셋이서 마시던 그거야. 식기 전에 마셔둬.」
뜨거운 걸 잘 못 마시는 나는 참아가며 홍차를 한 입 마셨다.
마치 작정한 것과 같이 유키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문 : 意を決して続いた雪乃の目には涙があふれていた。)
「내일은 유이가하마도 올 거야……. 내 말이니까 틀림없어.」
그렇게 말하고 유키노를 껴안자,
「네가 하는 말은 의지가 안 되는 걸……」
가냘프게 이렇게 대답하면서 내게 매달려왔다.
그리고 유키노의 속이 풀릴 때까지 계속 껴안고 있었다.
888: ◆GULJi96aoSzS 2013/10/15(火) 23:28:38.06 ID:v9ONI2kro
× × × ×
이튿날──
유이가하마 유이가 등교했다.
유이가하마가 노골적으로 나를 피하는 기색이라 좀처럼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교실 밖으로 눈을 돌리자 쉬는 시간마다 나를 한번 보려고 온 갤러리가 어제보다도 늘어나 있었다.
동급생도 내 쪽을 힐끔힐끔 보며 무언가 수군거리고 있다.
이제야 나와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이 퍼진 듯하다.
가능하면 유이가하마와 한시라도 빨리 결착을 짓고 싶지만 좀처럼 호기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유키노가 준비해준 도시락을 먹으러 부실로 향했다.
복도로 나가자 갤러리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인가, 유키노시타 남자친구라는 게……」
「뭐어, 믿기지 않는데」
나도 믿기지 않는단다.
유키노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도, 유이가하마가 나를 좋아하고 있었단 사실도…….
889: ◆GULJi96aoSzS 2013/10/15(火) 23:30:42.34 ID:v9ONI2kro
「여어, 유키노……」
「기다렸어, 하치만」
유키노는 애써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다.
1교시 마치고 유이가하마가 등교했다는 사실을 문자로 알렸다는 이유는 아닌 듯하다.
유키노와의 관계가 퍼진 지금,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있을 지를 헤아리고 최대한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준 것이겠지.
남자라면 누구나 사모해도 이상하지 않을 절벽 위의 꽃과 사귀고 있는 나는 아직 괜찮다.
여자라면 누구나 경원시할 것 같은 나와 사귀고 있는 유키노시타는 그렇게는…….
「갑작스레 스스로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감상은 어때?」
유키노는 킥킥대며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 눈빛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고 대답했다.
「그래,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남들이 보는 건 꽤 부끄럽더군……」
「맞아, 하치만…….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좋았으니까……」
유키노는 내 눈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언제나 이렇게 일관적이었다.
그런 유키노를 나는 좋아하게 됐고, 유키노 또한 내 썩었지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주위가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서로의 이런 모습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비굴해질 이유는 없다.
그럼, 오늘이야말로 유이가하마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898: ◆GULJi96aoSzS 2013/10/16(水) 20:55:07.13 ID:CKc5dqgJo
방과 후가 됐다.
겨우 유이가하마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경계하는 유이가하마에게
「부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이렇게 한 마디만 전하고 교실을 뒤로 했다.
「여어, 유키노」
「안녕, 하치만」
부실에 들어서자 노트북을 펴놓고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는 유키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하고 있어?」
「히라츠카 선생님이 『고민 상담 메일』을 빨리 재개하라고 재촉하셨어.」
『치바현 횡단 고민 상담 메일』 - 제대로 된 고민 상담이 오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난, 어쩔 도리가 없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봉사부의 주요 활동인 것이다.
어차피 자이모쿠자나 자이모쿠자나 자이모쿠자나 하루노 누나 정도밖에 보낼 사람 없지만 재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업식 날에 「12월 21일~1월 5일은 동기휴업으로 쉽니다」라고 써놓은 메인 페이지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유키노는 시스템 재개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건 그렇고 아무리 다재다능한 유키노라지만 이런 일까지 할 줄 안다니 놀랍다.
그런 유키노에게 오늘은 샹파뉴 로제를 타주고 작업 과정을 지켜보았다.
유키노의 작업은 금방 끝났지만 유이가하마는 부실에 올 기색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