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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Original | ,

Alice


잔잔한 흔들림. 기분 좋은 편안함.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는 감각이다.

 아니.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사실은 계속해서 느껴왔던 감각이다.

 천천히 눈을 떠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은 색. 사실 엄밀히 말하면 ‘색(色)’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 그것은 그저 칠흑. 색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무언가.

 벌써 몇 번이나 보아온 광경이다.

 아아, 그렇다. 이곳은 바로...

 바른 것과 그른 것, 정(定)과 부정(不定), 깨끗함과 더러움, 완전과 불완전. 그 모든 개념이 섞여있는 곳. 그저 태어날 때만을 기다리는 곳. 양의(兩儀)로 갈라지기 이전,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거대한 젖의 바다.

 느긋하게 유영하고 있던 몸을 일으켜본다. 그리고 젖이 새어나오는 시발점. 이 소용돌이의 중심을 찾아본다.

 그것은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어둠보다 어두운 것. 죽음보다 깊은 것. 완전한 텅 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그리고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문득 품속에서 미약한 움직임을 느꼈다. 자신을 굽어본다. 진홍의 심장이 맥동하는 것이 보인다. 내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새.

 알 수 있다. 이 아이가 왜 이러는지를. 분명 저곳으로 날아가려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돕고 싶다.

 조심스럽게 그 아이를 들어올린다. 구속하고 있던 손을 펴고 놓아주었다.

 아아, 작은 새가 날아간다.

 검은 날개를 펄럭이면서.

 그리고 나는 깨어났다.







 “큿, 이건...”

 텐시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생겨난 어둠. 그것은 스이긴토를 감싸며 그녀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었다. 나름대로 본실력을 발휘한 그 공격을.

 그러나 그녀의 당황은 길지 않았다. 이내 어둠이 걷히고 다시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은을 녹여 만든 듯한 머리카락. 눈처럼 하얀 피부. 밤을 형상화한 듯 우아한 검은 드레스. 그리고 등에서 뻗어 나온 칠흑의 날개 ‘한 쌍’.

 스이긴토는 감고 있던 눈꺼풀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적보라빛 눈동자가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축 늘어져있는 자매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를 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옆,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하나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어느새 깨어난 미키야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채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도 그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잔잔한 시선이 스이긴토를 응시했다. 

 “그렇군. 이제 알겠어. 저 빨간 녀석이 너에게 로자미스티카를 넘겨준 거구나.”

 상황을 파악한 텐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엉망이었던 상태에서 갑자기 하나는 완전히 정지해버렸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회복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결론은 간단한 것이다.

 “좋아! 인정해주지. 너도 이제는 엄연한 참가자라는 것을. 그래보았자...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지만!”

 텐시의 날개가 펄럭이며 수백의 깃털이 날아갔다. 저 아래에 있는 검은 날개의 소녀를 향해서.

 그러나 스이긴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을 돌린 채로 무방비한 등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저 하염없이 미키야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기겁을 한 것은 오직 준 혼자뿐이었다. 소년은 다가올 참극에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예상한 어떤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다.

 텐시가 쏘아 보낸 깃털들은 그저 허공에서 정지해 있을 뿐이었다.

 “뭐, 뭐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텐시는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스이긴토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살짝 휘날린 머리카락이 살포시 어깨를 덮는다.

 그 순간 사라졌다. 수백의 깃털들이 모두. 마치 증발해버린 것처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이건 대체....”

 “그만 둬. 무의미한 싸움일 뿐이야.” 

 어리둥절해 있는 텐시에게 스이긴토는 나직이 말했다. 그 말에 텐시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뭐​라​고​.​.​.​.​.​?​”​

 “모든 것이 무의미한 행위였어. 앨리스게임도. 성배전쟁도. 처음부터, 근본적인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었던 거야.”

 스이긴토의 목소리에는 서글픈 감정이 배어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살짝 미소를 머금은 듯 했으나, 두 눈동자는 안타까움을 품고 일렁이고 있다. 웃는 듯 우는 듯 허무한 표정 그리고 어딘가에 초탈한 듯한 표정이다. 

 “하? 무슨 헛소리를... 기껏해야 로자미스티카 하나를 얻었다고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지? 본래 그 하나도 부여받지 못했던 쓰레기 주제에!”

 텐시는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그녀의 날개가 크게 부풀어 오르며 스이긴토를 덮쳤다. 순백의 하늘이 다시금 땅으로 내리 꽂혔다. 그러나 스이긴토는 전처럼 그 무게를 떠받치려 하지 않았다. 느릿한 동작으로 칼을 허공에 치켜들며 단 한 번 휘둘렀을 뿐.

 그리고 그것만으로 하늘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텐시는 경악의 비명을 토해냈다. 서둘러 남은 날개를 거두었다. 이정도 피해는 바로 재생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불신의 눈빛으로 텐시는 자신의 잘려나간 날개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직도 모르겠니?”

 순간 바로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 어느새 스이긴토는 그녀의 옆에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접근했는지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이동한다는 과정을 배제한 채, 옆에 존재한다는 결과만이 도출된 것처럼. 텐시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몸을 튕겼다. 거리를 벌린 후에야 그녀는 자신이 그 순간 느꼈던 싸늘한 감각을 인지했다.

  그녀가 처음 느껴보는 감각. 그것은 필멸자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자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미지에의 공포였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잇! 로자미스티카를 얻고 나니 잔재주만 늘어난 모양이지?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멀었어!”

 그녀의 한 손에 물뿌리개가 생겨났다. 다른 한 손에는 가위가 생겨났다. 거대한 줄기가 생겨나 스이긴토에게로 뻗어갔다. 그 뒤를 가위를 움켜쥔 텐시가 바짝 붙어 날아왔다.

 “겨우... 겨우 너 따위가!”

 줄기는 아까 전 깃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가위는 스이긴토의 칼에 튕겨나갔다. 텐시는 포기하지 않고 한 손을 치켜들었다. 딸기넝쿨들이 뻗어 나와 스이긴토의 사지를 구속했다. 묶인 그녀에게 다시금 텐시는 가위를 휘둘렀다.

 그 순간 불꽃이 스이긴토로부터 뻗어 나왔다. 심연보다도 더 짙은 칠흑의 불꽃이. 불길은 넝쿨을 태우고는 가위에 옮겨 붙었다. 텐시는 황급히 가위를 버렸다. 본능적인 위기감에서였다.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정원사의 가위라는 최상급의 보구가 흡사 지우개에 지워지듯 불꽃에 먹혀 사그라지는 광경을.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텐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소녀, 스이긴토에게는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로자미스티카를 얻었다고는 하나, 느껴지는 힘은 그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이 결과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텐시의 날개가 다시금 스이긴토를 노렸다. 그러나 무위로 돌아갔다. 줄기가 다시금 스이긴토를 노렸다. 그러나 무위로 돌아갔다.

 “어째서... 어째서!”

 상대의 로자미스티카는 겨우 한 개. 그녀가 가진 로자미스티카는 무려 여섯 개. 상대의 힘은 그야말로 미약. 그녀가 가진 강대한 힘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 그러나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아​아​아​아​앗​!​”​

 필사적인 몸부림 끝에 텐시의 칼이 스이긴토를 베었다. 분명 그녀의 손에는 상대가 썰리는 감촉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부들부들 떨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소녀 스이긴토에게는 상처 하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베였다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더 강한데.... 로자미스티카도 더 많은데... 대체 왜......”

 “그런 건 관계없어.”

 망연자실해 있는 텐시를 스이긴토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그녀는 고했다. 도달하지 못한 자들이 깨닫지 못한 진리를, 도달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섭리를.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혹은 수백년에 걸쳐 마력을 축적했다 해도... 결국 그 모든 힘은 세계에 속하는 힘. 설령 근원의 파편 수십개를 모았다 해도... 결국 그 주체는 세계에 속하는 존재. 그래. 결국 세계의 일부일 수밖에 없어.”

 그것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말. 그녀들을 창조한 마법사의 노력을. 그 때 이후로 계속 이어진 그녀들의 싸움을.

 “세계로부터 얻은 힘으로, 세계에 속하는 몸으로... 어떻게 세계를 능가하겠다는 걸까? 어떻게 억지력을 누를 수 있을까? 어떻게 세계를 속인다는 걸까? 그래... 불가능해. 그런 것으로는 「 」에 도달할 수 없어. 궁극의 소녀, 앨리스가 될 수 없어.”

 “너... 무슨 소리를....”

 “아직도 모르겠니? 처음부터 싸울 이유가 없었던 거야. 로자미스티카의 개수는 관계없어. 지닌 힘이 강하냐 약하냐는 관계없어. 그저 가능성이 있다면 충분해. 중요한 것은 억지력이야. 억지력이 작용하느냐 작용하지 않느냐. 그에 따라서 「 」에 도달하지 못 하냐 도달하느냐가 결정되는 거야.”

 후회할 수밖에 없다. 지금 스이긴토는 허탈할 뿐이었다. 모든 비극이 일어난 후에야, 너무 늦은 후에야 깨달은 것이다. 모든 아픔이 지나가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는 사실을.

 “그래... 앨리스가 되는 과정 같은 건 없었어. 앨리스냐 앨리스가 아니냐의 문제였을 뿐.”

 그리고 텐시는 깨달았다. 스이긴토가 한 말에 숨어있는 전제를 그리고 그제야 이해했다. 로자미스티카가 겨우 한 개에 불과한 그녀가, 자신에 비하면 형편없는 힘을 지닌 그녀가 그런 이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까닭을.

 “너... 설마....”

 “....그래.”

 스이긴토는 결코 행복한 얼굴이 아니었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씁쓸한 감정을 담아 그녀는 담담히 고백했다.

 “지금의 나는 억지력에서 벗어난 존재. 「 」에 도달한 존재.”

 스이긴토는 자신을 꼬옥 껴안았다. 허무함에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텐시의 의혹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가 바로... 앨리스야.”

 텐시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네가... 네가...”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네가 바로...”

 인정할 수 없다는 오기. 명백한 사실에 대한 질시.

 “네가 ​앨​리​스​라​고​.​.​.​.​.​?​”​

 그리고 눈앞에 있는 소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도달한 소녀. 그녀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증오가 텅 빈 그 안을 가득 채웠다.

 ​“​웃​기​지​마​아​아​아​아​앗​!​”​

 콰각 하는 소리와 함께 텐시의 날개가 스이긴토에게 작렬했다. 그러나 정작 공격받은 당사자는 멀쩡했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힘이라는 것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강대하다해도, 하위 중에서도 하위의 현상에 불과하다. 「 」에 도달한 존재, 앨리스라면 그것이 구현되는 법칙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모두 무위를 돌릴 수 있다. 혹은 그 힘 자체를 소거할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이긴토가 행한 이적의 정체.

 원한다면 세계를 바꿀 수도, 멸망시킬 수도, 혹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는 능력.

 “그만둬. 이제 알고 있잖아? 앨리스 게임 같은 것은 더 이상 할 필요가...”

 “닥쳐어어어엇!” !”

 이번에는 깃털들이 쏟아졌다. 다음에는 녹색의 줄기. 다음에는 딸기넝쿨. 다음에는 수정의 탄환.

 “인정할 수 없어! 쓰레기가 감히! 어떻게 너 따위가!”

 급기야는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공격. 이미 어떤 공격인지는 분간이 불가능했다.

 “실패작 주제에... 한낱 정크 따위가.... ”

 한참 후에야 힘이 다했는지 헐떡이는 텐시. 그러나 그 모두가 휩쓸고 있는 자리에서 스이긴토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아, 하아... 그래. 그렇단 말이지?”

 텐시는 날개를 접고는 땅에 내려섰다. 스이긴토 역시 그녀를 뒤따랐다.

 “후후훗~ 자아, 이건 어때?”

 텐시의 손이 자기 옆에 솟아있는 구조물에 닿았다. 그곳에는 죄악의 결정. 인간들이 행한 추악함의 결집체. 이 세상 모든 악이 한데 모인 기둥이 서 있었다.

 “이런 걸…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납득할 것 같아? 그럴 바에는 모두... 모두 썩게 만들어주지! 건방진 네년도! 이런 빌어먹을 세계도! 있을 수 없는 결말도! 모두 더러운 진흙 속에 파묻히게 해주겠어!”

 질투에 일그러진 얼굴로, 뒤틀린 감정을 담아 텐시는 외쳤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했다.

 “....어, 어째서!”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열 수 없었다. 텐시의 몸에는 더 이상 아무 힘도 없었다.

 “너의 힘을 봉했어. 그만둬.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너를 강제할 수밖에 없어.”

 앨리스에 도달한 스이긴토는 텐시의 존재 자체를 무(無)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다. 혹은 단지 그렇게 바라는 것만으로 텐시의 사고를 재구성하여,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이긴토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녀를 설득했다. 간단한 방법을 놓아두고 왜 굳이 그런 번거로운 행위를 하는지는 스이긴토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오히려 텐시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뿐이다.

 “크읏.... 닥쳐어어엇!”

 퍽 소리가 났다. 텐시의 주먹이 스이긴토의 얼굴을 가격했다. 하지만 아픈 것은 그녀의 주먹뿐이었다.

 ​“​닥​쳐​닥​쳐​닥​쳐​닥​쳐​어​엇​!​”​

 날개도 수정도 가위도 넝쿨도 줄기도. 아무것도 쓸 수 없건만 텐시는 계속 덤벼들었다. 오직 맨몸으로.

 “여섯 개야! 여섯 개라고! 하나만 더 모으며 됐는데...”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집착하는 광기. 이미 이성은 사라지고 감성만이 존재했다.

 “드디어 앨리스가... 완전한 소녀가 될 수 있었는데....”

 “뭐.....?”

 스이긴토는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텐시는 ‘될 수 있었는데’라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는 항상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칭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드디어 완전해질 수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 그녀가 내뱉은 말은 스스로가 불완전함을 전제로 하는 것. 그제야 스이긴토는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너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자신이 바로 앨리스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던 소녀.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너 따위가!”

 토해내는 절규. 그 모습을 스이긴토는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순은의 머리카락. 적보라빛 눈동자. 마치 거울을 보듯, 그녀와 똑같은 얼굴의 소녀. 등 뒤의 날개, 그 색만 제외하면 그녀와 똑같은 모습. 

 그리고 그 덕분에 스이긴토는 더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소녀가 누군가와 꼭 닮았다는 사실을.

 “어째서 네가 앨리스라는 거야!”

 그것은 바로 스이긴토. 과거 그녀 자신의 모습이었다.

 “내놔! ​로​자​미​스​티​카​를​.​.​.​ 로자 미스티카... 마지막 남은 하나....”

 자신의 불완전에 대한 자괴감에 애써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속였던 모습.

 그리고 잔혹하게 잔인하게 자매들을 해하고 상처 입히던 모습. 그녀들의 로자미스티카를 빼앗고 완전해지려 했던 모습.

 “하나만 더 모으면 나도... 나도 앨리스가....”

 텐시도 똑같았다.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불완전이라는 숙명을. 앨리스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상처를. 

 “내놔... 나의 로자미스티카... 내거야. 내거라고!”

 그리고 스이긴토는 깨달았다. 만약 미키야가 없었다면... 그 따스함을 느끼지 못 했다면....

 자신 역시 눈앞의 소녀처럼 뒤틀린 채 그대로였을 거란 사실을.

“그것만 있으면 나도… 마침내 ​앨​리​스​가​.​.​.​.​.​!​”​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텐시를 간단하게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어째서 망설이고 있었는지를. 과거 신쿠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쓰러뜨렸는지를.

 “그래.... 그랬던 거구나.”

 스이긴토의 몸에서 검은 불길이 타올랐다. 불은 화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텐시에게 옮겨 붙었다.

 ​“​으​.​.​.​아​아​아​아​악​!​”​

 텐시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뒹굴었다. 그러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타오르는 불꽃. 그 모습을 스이긴토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과거의 비극이 그녀의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잘자렴, 텐시.”

 티 하나 없는 순백이 타들어간다. 칠흑이 소녀의 몸을 무(無)로 되돌린다.

 “사랑하는 나의 쌍둥이 동생아.”

 그리고 하얀 날개의 소녀의 몸은 완전히 사라졌다.

 파아아앗.

 그와 동시에 나타난 여섯 개의 보석. 그것들은 저마다의 빛을 내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화려함을 뽐내던 빛들은 스이긴토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스이긴토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포갰다. 조용히 눈을 감고 서글픈 마음을 달랬다.
 
 그런 그녀에게 미키야가 다가왔다. 신쿠를 품에 안은 준도 뒤를 따랐다. 주변을 둘러보던 미키야는 담담히 물었다.

 ​“​끝​난​.​.​.​거​야​.​.​.​.​.​?​”​

 “....아니. 아직이야.”

 스이긴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조그만 입술이 벌어지며 마치 주문의 영창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곱 개의 로자미스티카가 모두 모였어. 본래 하나였던 일곱이 다시금 하나가 되었어.

 스이긴토는 몸을 돌려 미키야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적보라빛 눈동자가 그의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미키야. 너는 나 스이긴토의 미디엄. 그러니까 너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소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고했다.

 “나는 앨리스. 「 」에 닿은 소녀. 네가 바라는 것은 뭐든지 이루어 줄 수 있어. 너를 데리고 「 」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너를 전능한 초월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어.”

 소녀는 작은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한없이 투명하고 깊다. 아무도 없는 하얀 밤 속에서 만났던 또 다른 소녀의 눈처럼.

 그러나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안에 퍼지고 있는 잔잔한 물결을. 가늘게 떨고 있는 그 끝을.

 “미키야. 네가 바라는 것이 뭐지? 「 」에 도달하고 싶니? 더욱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니? 아무 거라도 좋아. 원하는 것을 말해줘. 그 어떤 것이라도.”

 글쎄, 라고 잠시 생각하며 그는 그녀의 시선에 응했다.

 무욕(無慾)인 것도 아니고, 신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뭐랄까... 예전에도 다른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했었는데... 나의 대답은 그때와 같아.”

 그리고 필요 없어, 라고 그는 말했다.

 뜻밖의 대답에 스이긴토의 눈이 동그래진다. 미키야는 빙그레 웃으며 설명을 보탰다.

 “지금도 즐거우니까.... 그걸로 충분해.”

 적보라빛 호수가 부풀어 오르며 일렁인다. 스이긴토의 얼굴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아쉬운 듯 그러나 안도한 듯.

 그리고 이내 볼을 타고 따스한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어찌된 일인지 스이긴토 자신도 스스로의 반응을 제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는 분명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살며시 무릎을 꿇은 미키야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한없이 부드러운 얼굴로 스이긴토를 바라보면서.

 “자아, 이제 돌아갈까?”

 “응!”

 와락 하고 스이긴토는 미키야에게 안겼다. 두 팔로 그의 몸을 감싸고 얼굴을 가슴에 파묻었다.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함께 행복한 얼굴로 즐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돌아가자. 우리들의 집으로.”







- The End-


이것으로 완결입니다.

예전에 썼던 것이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이 많아서 뜯어고칠려고 했지만, 결과물은 고작 이 정도.

왜 이렇게 묘사력이 딸리는지..... 글 안 쓴지도 오래되다보니 더 둔해진 모양입니다.

남은 것은 각 캐릭터별 에필로그가 세 편 있습니다. 이쪽도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이 많아서 한참 ​퇴​고​해​야​할​듯​하​네​요​.​

p.s. 현재 후일담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쿠일행 후일담과 토우코 후일담은 별 문제가 없는데, 미키야와 스이긴토 후일담을 못 쓰겠군요.

이유는..... 미키야와 시키의 사랑의 결실 때문입니다.

료우기 마나, 이 아가씨.... 알고보니 공의 경계 본편 시점에서 이미 ​임​신​중​이​라​는​군​요​?​!​

 제길! 이걸 어찌 처리해야하지? 이렇게 된 이상 더블임신엔딩이라도 갈 수 밖에 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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