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ie
나, 코쿠토 미키야가 살고 있는 곳은 시 외곽의 원룸이다. 가구라고 해봐야 침대와 장롱, 책상 정도가 전부인 작은 공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지내기에는 제법 넓은 아파트에 살았지만, 몇 달 전에 집세가 싼 이 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 이유가 시키와의 결혼을 준비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라는 것은 절대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 시키가 알게 되면 화를 내며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라고 말하겠지만, 최소한 결혼식 비용의 절반은 이쪽에서 부담하고 싶다. 비록 만만한 금액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집에 손을 벌리긴 싫으니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지만, 중요한 것은 이 원룸이 무척 좁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곳은 수용가능한 최대의 인원을 맞이하여 실제보다 훨씬 더 좁아진 느낌이다.
"나와 미키야는 연인 사이야. 그러므로 내가 미키야와 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죠.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가 같이 자다니요. 오라버니는 동생인 저와 같이 자는 것이 당연해요."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다 큰 아가씨가 남자와 동침하는 것은 보기 안 좋아."
"그건 시키도 마찬가지잖아요!"
"말했다시피 나와 미키야는 연인 사이니까 괜찮아."
"또 다시 그 말입니까아아아~~~~~!!!"
버럭 소리 지르는 아자카. 시키는 표정조차 바꾸지 않은 채 차분한 얼굴로 부끄러운 말을 하고 있다. 시키에게 연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기쁘긴 하지만....
'벌써 잘 시간은 한참 지났다고.... 도대체 몇 시간 째인거야.'
아까부터 둘은 같은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 주제는 누가 나와 함께 자느냐는 것.
"우후훗~ 양손의 꽃이라는 거네."
"스이긴토... 혹시 이 상황 즐기고 있는 거 아니니....?"
"무슨 소리야? 본래 우리들 로젠메이든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9시라고. 나도 곤란하단 말이야."
생긋~ 하고 해맑게 웃는 얼굴. 즐기고 있는 거야. 틀림없어....
"하아......"
어느 쪽 편을 들 수도 없다. 일단 양측의 주장은 모두 타당하니까. 게다가 한 쪽 편을 들었다가는 나머지 한 명은 토라질 게 뻔하니까. 시키도 아자카도 토라졌을 때는 도저히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 난감한 상황에 한숨만 나올 뿐.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그러니까 시작은 가람의 당에서였다.
"그럼 미키야, 앞으로 스이긴토를 잘 부탁해."
"네, 걱정마세요. 확실하게 책임질 테니까요."
미키야의 힘찬 대답에 토우코는 입가를 말아 올렸다. 마치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듯 장난기 어린 미소였다.
"그럼 스이긴토. 앞으로는 미키야의 집에서 자도록 해. 미키야가 출근할 때 같이 오면 될 거야."
"알았어. 그럼 이만 가도록 할까, 미키야."
".....에?"
스이긴토가 문으로 향했지만, 토우코의 말을 이해 못 한 미키야는 멍청히 서 있었다. 미키야뿐만이 아니다. 토우코와 스이긴토를 제외한 사무실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저기, 토우코씨. 방금 그건 무슨 뜻....."
"그냥 말 그대로의 의미야. 책임지겠다고 했잖아? 혈기 왕성한 젊은 남성과 한 집에서 지내다니. 좀 불안하긴 하지만, 미키야라면 설마 이상한 짓 하진 않겠지?"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삼키며 토우코는 말했다. 다음 전개는 그녀의 생각대로였다.
"잠깐, 토우코씨. 그게 무슨 소리죠?"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토우코."
미끼를 물은 물고기 두 마리가 마술사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토우코는 그저 유쾌한 웃음을 머금을 뿐. 스이긴토가 문 앞에 멈춰 선 채 그런 둘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하잖아? 미키야는 나의 미디엄. 미디엄은 로젠메이든에게 있어서 힘의 매개체야. 가까이 있을수록 힘은 공급받기 쉬워지지."
스이긴토의 말은 비단 마술 뿐만이 아닌 모든 술법에 있어서의 정론. 하지만 아자카는 강하게 반발했다.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최소한의 힘의 공급은 유지될텐데요. 당신과 오라버니 사이의 링크가 그 정도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불완전한 건 아니겠죠?"
"나와 미키야의 링크는 완전해. 그러니 물론 떨어져 있어도 상관은 없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의 일. 지금 나의 이 몸은 이제야 막 만들어진 거야. 나의 힘의 원천, 로자미스티카라 불리우는 나의 핵과 이 몸과의 융합은 아직 완전하지 않지.게다가 미키야와도 방금 전 계약했을 뿐. 당분간은 안정적인 힘의 공급이 필요해. 그 기간 동안은 서로 함께 있어야만 하지."
논리정연한 스이긴토의 대답에 아자카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 해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그 때 시키의 입에서 엄청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나도 함께 자겠어."
"에?"
마치 오늘도 날씨가 좋네-라는 듯 평이한 어조. 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사무실의 모두가 일순간 굳어버렸으니까. 토우코 역시 그런 말은 예상하지 못 한 듯 놀라서 물고 있던 담배가 바닥에 떨어진 것조차 의식하지 못 했다. 한참을 입을 뻐끔거리던 아자카가 소리를 질렀다.
"시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충분히 말이 되는 소리야. 스이긴토는 이미 한 번 미키야를 공격한 적이 있어. 다시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둘만 내버려둘 수는 없어."
"우후훗~ 나도 꽤나 신뢰받지 못 하나 보네. 걱정할 필요 없어. 아까는 계약하지도 않은 상대가 미디엄이 되어 있는 것에 분노했을 뿐. 이제와서 미키야를 없애서 스스로의 힘을 깍아먹는 행위는 하지 않아."
"그래도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으니까. 내 뜻은 변하지 않아."
서로의 눈을 노려보는 시키와 스이긴토. 어느 쪽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둘 사이에 파지직~하고 전류가 흐르는 느낌마저 들 정도. 그 사이를 아자카가 끼어들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나도 함께 하겠어요."
"아자카, 너까지...."
"시키는 옆에 있었으면서도 오라버니를 지키지 못 했어요. 혼자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당황한 미키야가 말리려 했지만 아자카의 의지는 단호했다.
"절대로.... 그 때와 같은 일을 다시 겪는 건 싫어요."
아자카의 눈이 미키야의 가려진 왼쪽 얼굴을 응시했다. 당시를 회상하듯 눈물마저 아른거리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고집이 담겨있었다. 그 모습에 미키야는 설득하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휴우, 어쩔 수 없네. 미리 말해두지만 4명이서 자기에는 불편할 거야."
"상관없어."
"괜찮아요, 오라버니."
결국 미키야는 세 아가씨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우후훗~ 너 평범한 외모인 주제에 인기 좋잖아?"
스이긴토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넸지마, 미키야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 했다.
집에 도착한 우리들은 곧바로 저녁준비에 들어갔다. 나와 아자카가 장을 봐오고 시키는 식사를 준비했다. 시키의 요리솜씨는 인정할 정도니까. 안은 무척 좁았지만 다행히 세 사람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되었다. 스이긴토에게도 식사를 권했지만 그녀는
"애초에 나는 인형이니까 음식을 섭취할 필요는 없어. 미키야로부터 힘을 공급받는 것으로 충분해. 게다가 지금 이 몸은 갓 태어난 아기와도 같아서 그런 음식을 받아들이기에는 소화기관이 무리야."
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모두들 식사하는데 그녀만 홀로 두는 것도 곤란한 일. 결국 스이긴토는 본래 간식용으로 준비한 요구르트를 마시며 식사하는 우리 셋을 구경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의외로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듯 조금씩 입을 적셔가며 마치 와인을 즐기듯 음미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소란은 예상 못 했었다. 그래, 문제는 식사 후 잠자리를 정할 때 일어났다.
"이 곳에 모두가 함께 자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침대 둘, 바닥에 둘로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꺼낸 말, 그것이 발단이었다. 확실히 타당한 말이긴 했다. 이곳은 네 사람을 수용한 것만으로도 이미 포화상태였으니까. 하물며 누워서 잔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은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누가 나와 같이 자느냐를 두고 시키와 아자카 간에 언쟁이 시작된 것이다. 양측 모두 타당한 주장. 어느 쪽을 선택할 수도 없어 두 사람의 설전은 몇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흐음.... 미키야. 차라리 나와 같이 자는 건 어때?"
"기각이야."
"기각이예요."
구경하기도 지쳤는지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이긴토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채 대답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반대에 부딛혔다.
"애초에 우리들이 이 곳에 온 이유는 너로부터 미키야를 보호하기 위한 것. 너와 미키야를 같이 자게 두는 같은 본말전도다."
"동감이예요."
서슬 퍼런 두 여자의 기세에 결국 나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다시 시작된 두 사람의 설전.
어느 덧 시계바늘은 12시에 가까워졌다. 그 때 스이긴토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미키야, 토우코가 준 가방은 어디에 있어?"
"응? 그거라면 장롱 속에 넣어놨는데."
가람의 당에서 나오기 전, 토우코씨가 선물이라면서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은색 장미문양이 한가운데 붙어있는 갈색 가방이었다. 내가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디자인이라서 한사코 거부했지만, 반강제적으로 떠맡게 되었다.
"그 가방, 가져와주겠어?"
"응. 잠시만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서서 한창 열기를 띠고 있는 두 사람을 애써 무시하며, 장롱을 뒤적여 가방을 꺼냈다.
"자, 여기.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려고?"
"후훗~ 대단한 건 아니야. 그럼 그 가방을 책상 위에 놓아주겠어?"
스이긴토의 말대로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가방을 열더니 그 속에 들어가 앉았다. 작은 몸이다 보니 그녀가 들어갔음에도 가방 안은 제법 넉넉했다.
"이 정도면 제법 아늑하겠는걸."
바닥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더니, 옷차림을 단정하게 정돈하고서
"그럼 잘 자~"
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안에서 가방을 닫아버렸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황하며 가방을 두들겼다. 그러자 안에서 스이긴토가 고개를 빼꼼 하고 내밀고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우후훗~ 애기 안 했었나? 이 가방은 아버님이 우리들과 함께 세트로 만드신 거야. 그리고 우리들 로젠메이든의 잠자리는 이 가방 안이지. 그럼 이만~"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집어넣었다. 탕~하고 가방을 닫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질 뿐. 황당함에 내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뒤에 있던 시키와 아자카도 말을 잊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린 뭘 한 거지."
허탈한 중얼거림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결국 그 날 잠자리는 미키야의 제안에 따라 시키와 아자카가 침대에, 미키야가 바닥에서 자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두 여성이 항의하려 했지만,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는 미키야에게 알 수 없는 위협을 느껴 말도 꺼내지 못 한 것은 정말로 사소한 이야기.
그렇게 한 남자와 세 아가씨의 첫날밤은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