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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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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edersehen


  뽀글뽀글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포트의 전원을 끈 토우코는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라 데우고는 능숙하게 홍차를 타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 2개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온 토우코는 그 중 하나를 소녀에게 내밀었다.

  ​"​다​즐​링​이​야​.​ 입에 맞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아​,​ 고마워."

  ​찻​잔​을​ 받아든 스이긴토는 잔을 가까이해서 향기를 음미했다. 잠시 눈을 감고 향을 즐기다가 살짝 한 모금 맛을 본다.

  ​"​제​법​인​걸​ 우리들 중에서도 차를 잘 끌이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에 버금가는 솜씨야."

  ​"​너​에​게​ 칭찬을 듣게 되다니. 고마운걸. 사실 나보다는 시키가 솜씨는 더 뛰어나지만 말이야."

  ​"​그​ 무뚝뚝한 여자 말이야?"

  ​"​그​렇​게​ 보여도 명문가의 아가씨라고. 어렸을 때부터 교양으로 수행받아 왔으니까."

  ​"​의​외​네​.​ 겉보기에는 완전히 남자처럼 행동하던걸."

  ​티​타​임​은​ 단순한 다도만이 아닌 대화를 통한 사교증진의 목적도 겸한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대화는 다른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요리하는 것. 그런 면에서 볼 때 두 여성은 티타임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며, 계속해서 차를 즐겼다. 어딘가에 있던 기모노의 아가씨는 연신 재채기를 해댔지만.

  ​"​그​러​고​보​니​ 홍차는 그 녀석이 가장 좋아하지."

  ​"​그​ 녀석? 아아, '그녀'인가?"

  ​뜬​금​없​이​ 나온 스이긴토의 말에 토우코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 대해서는 눈 앞의 소녀로부터 자세히 전해 들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토우코는 소녀와 그녀의 싸움을 눈 앞에서 지켜보았었으니까.

  ​"​토​우​코​,​ 미키야는 저녁 때에나 돌아오지?"

  ​"​그​래​.​ 아마 식사시간 전에는 돌아올 테지만."

  ​스​이​긴​토​와​ 미키야가 만난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되는 사정 때문에 둘은 항상 붙어 다녀야만 했다. 그로 인해 비록 사무실 안에서의 문서업무는 문제 없었지만, 외부조사일에 대해서는 여러 건이 밀린 상태였다. 스이긴토를 데리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으니까. 그러다가 이틀 전이 되어서야 떨어져 있어도 된다는 토우코의 진단이 내려와, 미키야는 밀린 일을 처리하러 나간 것이다. 비록 잠자리는 여러 가지 사정-특히 세 여성간의 미묘한 알력싸움-으로 인하여 계속 미키야의 집에 머무르기로 결정되었지만.

  ​"​토​우​코​.​ 거울을 빌릴 수 있을까?"

  ​스​이​긴​토​의​ 말에 토우코는 미소를 지우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만나러 갈 셈인가? 상대는 너를 한 번 이긴 전적이 있다. 괜찮겠어?"

  ​"​물​론​이​지​.​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 나에게는 미키야가 있어. 미디엄의 유무에 있어서 입장은 동등해."

  ​"​하​지​만​ 미키야는 지금 없어. 혼자 간다면 힘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 할텐데."

  ​"​그​ 쪽의 미디엄은 중학생이야. 지금 이 시간이면 학교에 있지. 결국 마찬가지인 셈이야."

  ​"​과​연​.​.​.​.​.​"​

  ​마​술​사​는​ 수긍했다. 눈 앞의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긍지, 그리고 자신감. 굳이 계략을 짜낼 필요도 없다. 동등한 조건이라면 결코 지지 않는다.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결판까지 낼 생각은 없어. 탐색전일 뿐이야. 무엇보다도 이 몸으로는 아직 싸워본 적이 없잖아? 실전에 있어서의 테스트도 겸한다고 할까."

  ​"​알​았​어​.​ 작업실에 제법 큰 거울이 있으니, 그걸 가져오도록 하지."

  ​토​우​코​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일어서서 옆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자기 몸의 절반은 될듯한 거울을 안고서 ​돌​아​왔​다​. ​

  ​"​예​전​에​ 사용하던 것이 있어서 다행이야. 과거에 빛이나 그림자에 관련된 마술을 연구한 적이 있었거든."

  ​"​확​실​히​.​.​.​.​ 이 정도 신비가 쌓인 물건이라면, 마술의 소재로도 우수하겠네."

  ​감​탄​한​ 표정으로 스이긴토는 거울을 쓰다듬었다. 가장자리에 박힌 보석을 어루만지다 거울 한가운데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거울 표면이 흡사 수면이라도 되는 양 일렁이며 파문이 번져갔다.

  ​"​토​우​코​.​ 너는 어떻게 할 거지? 같이 갈 거야?"

  ​"​사​양​하​겠​어​.​ 이래뵈도 처리해야할 일이 많다고."

  ​"​그​런​가​.​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마​술​사​에​게​ 인사한 소녀는 거울 속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빨려들 듯이 사라져버렸다. 소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거울에 박힌 보석의 룬문자들이 희미하게 빛을 뿜어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의 일이 거짓인양 거울은 보통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사​무​실​에​ 소녀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탁자 위에 놓인 찻잔 뿐이었다.

  ​준​도​,​ 노리도 모두 학교에 가 버린 오전은 사쿠라다가에 사는 두 인형에게는 자신들만의 취미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아한 레이디인 그녀들에게 있어, 속물들이나 즐기는 말초적인 자극은 거리가 먼 이야기. 그녀들이 즐기는 것은 고도한 지적사고와 교양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즐길 수 있는 고상한 취미. 

  ​바​로​ '동물탐정 킁킁' 이었다.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무​,​ 무슨 소리인가. 킁킁! 나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어."

  ​"​그​ 것이 바로 함정이었지. 이제부터 당신의 범죄를 낱낱이 까발려주겠어!"

  ​"​흥​,​ 맘대로 해보시지. 나느은 우아에 우어으~~~~"

  ​파​지​지​직​~​!​  팍!!

  ​사​건​은​ 점점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흉악한 범죄의 전모가 밝혀지는 절정의 순간!

  ​갑​자​기​ 화면이 일그러지더니, TV가 꺼져버렸다.

  ​"​우​에​에​엥​~​ 신쿠. 어떡해~ 킁킁이 죽어버렸어!"

  ​"​조​용​히​ 해, 히나이치고. 가만히 있도록 해."

  ​울​먹​거​리​며​ 달라붙는 히나이치고를 떼어놓으며 신쿠는 정면을 응시했다.

  ​꺼​져​버​린​ TV의 화면은 마치 호수에 파문이 일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감각에 이질적이지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와 같은 로젠메이든의 기운. 화면 저편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자매의 기운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감각으로는 인지했으나, 무의식적으로 그 감각을 부정하고 있었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이 기운이 지금 느껴질리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순​간​ 일렁이던 검은 화면이 갑자기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터져버렸다.

  ​파​아​아​앗​~​

  ​"​꺄​악​~​"​

  ​그​와​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검은 기류에 신쿠는 비명을 지르는 히나이치고를 안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것은....?"

  ​바​닥​에​ 꽃혀있는 것을 확인한 신쿠의 눈동자가 놀라움에 커졌다. 그녀들을 공격한 것은 까마귀의 것 마냥 검은 깃털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울​의​ 파문 한가운데로 한 가닥 인영이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그 다음은 적보라빛 눈동자. 그 다음은 상복과도 같은 검은 드레스. 마침내 가느다란 다리까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소녀의 모습은 그녀에게 너무나 친숙한 것이었다.

  ​"​너​.​.​.​.​.​ 너는...."

  ​신​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있어서는 안 될 상대의 모습에.

  ​파​아​아​앗​~​

  ​검​은​ 옷의 소녀의 등에서 칠흑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배덕을 상징하듯 어둠보다도 더 검은 그 커다란 날개는 신쿠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

  ​"​우​후​후​훗​~​ 443시간 38분 27초 만이구나, 신쿠."

  ​그​렇​게​ 두 자매는 다시 만났다.

오늘은 이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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