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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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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kältung


   "그럼 오라버니. 다녀오겠어요.“

 ​“​다​녀​올​게​,​ 미키야.”

  ​아​침​식​사​를​ 마치고 두 여성은 문 밖을 나섰다. 그녀들을 배웅하고, 나는 싱크대로 향했다. 출근하기 전에 설거지를 해놓기 위해서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이​ 집의 요리는 시키와 아자카가 분담하고 있다. 일식은 주로 시키. 그 외의 양식 같은 음식은 아자카가 담당한다. 처음에는 아자카도 일식을 준비하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시키 이상의 맛을 낼 수 없어서 일식 외의 요리에 전념하기로 했다던가. 확실히 시키의 요리실력은 뛰어나지만, 아자카의 요리도 맛있는 편인데 왜 그렇게 승부에 집착하는 건지.

  ​어​쨌​든​ 그래서 그 외의 집안일, 이를테면 설거지나 청소는 내가 담당하고 있다. 스이긴토의 경우는 처음에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건가요? 최소한 당신이 먹은 요구르트 값이라도 하시죠. 아! 설마 할 줄 모르는 건가요? 무능하군요.”

  ​라​는​ 아자카의 한 마디에 발끈해서는

  ​“​나​는​ 앨리스가 될 몸이라고! 그런 내가 이까짓 일 하나 못 할 것 같아?”

  ​라​며​ 달려들었지만 역부족. 의욕은 충만했고 나름대로는 열심이었지만 그녀의 작은 손으로는 시간이 너무 걸렸다. 결국 사실상 대부분의 일은 내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적은 양이나마 자신이 설거지한 그릇이나 닦은 유리창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참 대견하다고 할까. 딸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이러할까.

  ​아​!​ 그러고보니 단 하나 스이긴토가 잘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높은 곳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천정 같은 곳은 나로서는 기껏해야 먼지털이로 털거나 의자 위에 올라가서 닦는 정도였지만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스이긴토는 날개를 펼치고는 날아오르더니, 공중에서 파닥파닥거리며 열심히 천정에 걸레질을 하는 것이었다.

  ​으​음​.​.​.​ 생각해보니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브라우니가 이러할까. 요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집안에 날개를 가지고 날아다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더군다나 그 존재가 귀여운 여자아이인데다, 청소를 도와준다는 것은 동화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겠지.

  ​그​러​고​보​니​ 오늘은 이상하다. 평소에는 우리들보다 먼저 일어나, 식탁의자에 앉아 요구르트를 마시고 있던 스이긴토였지만 오늘은 어쩐지 늦잠이다. 아까 가방을 두드려보았지만 나중에 일어나겠다는 말만 하고. 밤새 뒤척이기라도 한 걸까? 확실히 그 가방 속은 잠자기에는 불편해 보인다. 그녀 말로는 그 이상 편안한 잠자리는 없다고 하지만.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스이긴토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늦잠이라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가방을 두드려보았다.

  ​똑​똑​

  ​“​스​이​긴​토​,​ 일어나. 벌써 9시가 다 되었다고.”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푹 잠들어서 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 번 두드려 보았다.

  ​똑​똑​똑​

  ​마​찬​가​지​였​다​.​

  ​혹​시​ 그 사이에 일어나서 나가기라도 한 것일까? 의아한 마음에 가방에 손을 ​가​져​갔​다​. ​

  ​딸​각​

  ​신​기​하​게​도​ 단지 손을 대었을 뿐인데도 잠금쇠가 풀렸다. 자동장치라도 되어 있는걸까?  그대로 천천히 가방을 열어보았다.

  ​“​하​아​,​ 하아....”

  ​“​스​,​ 스이긴토!”

  ​가​방​ 속에는 스이긴토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운 얼굴은 잔뜩 찡그린 채였다. 황급히 그녀를 안아 올리자, 손 안으로 그녀의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온몸이 마치 불덩이 같았다.

  ​“​스​이​긴​토​,​ 정신차려!”

  ​몸​을​ 흔들며 불러보았지만, 스이긴토는 의식을 잃은 듯 맥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대답도 하지 못 한 채,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정​신​이​ 혼미하다. 추우면서도 뜨거운 상반된 감각이 몸 안에서 소용돌이친다. 그 속에 휩쓸린 듯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애써 몸을 움직이려 시도해보아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

  ​순​간​ 이마 위로 축축하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 선명한 자극에 간신히 의식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으​음​.​.​.​.​”​

  ​입​에​서​ 의도하지 않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무겁기만 한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의 어두운 가방 속이 아닌, 새하얀 천장.

  ​“​아​,​ 스이긴토. 깼어?”

  ​옆​에​서​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미한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 뻣뻣하게 느껴지는 목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다​행​이​다​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검​은​ 안경을 쓴 남자는 한껏 안도한 표정이었다. 나의 미디엄, 이름은 코쿠토 미키야. 옆에 있는 대야에는 물과 함께 반쯤 물기를 짜다만 수건이 잠겨있었다. 방금 전 감촉의 정체는 저것이었나.

  ​그​제​서​야​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미키야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다. 도저히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몸을 한 채로.

  ​어​떻​게​ 된 거지? 잠들어 있는 사이에 다른 로젠메이든이 습격해 오기라도 한 건가? 미키야는 다치지 않은 거야? 아자카는? 시키는?

  ​온​갖​ 의문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입 속은 사막보다도 더 메말라 있어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목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

  ​“​아​,​ 그래. 목 마르구나. 지금 물 가져올게.”

  ​내​가​ 입을 오물거리는 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미키야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곧 유리컵에 찬 물을 가득 가져왔다. 그리고는 컵을 내게 내밀었지만, 나는 팔조차 제대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미​안​해​,​ 아직 몸이 안 좋은가 보네. 잠시만 있어봐.”

  ​이​제​는​ 아예 숟가락을 가져오더니 물을 떠서 내 입가로 가져온다. 별 수 없이 주는대로 물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차가운 기운이 목의 열기를 식혀갔다. 그 덕분인지 조금은 메마름이 줄어들어서 간신히 말을 할 수 있었다. 애써 입을 열어 띄엄띄엄 미키야에게 말을 꺼냈다.

  ​“​저​기​.​.​.​.​ 나, 어....떻게 된 거....야?”

  ​“​아​아​ 토우코씨가 단순한 감기일거래.”

  ​“​감​.​.​.​.​.​기​?​

  ​감​기​라​니​.​ 그게 누구지? 설마 아직 한 번도 깨어나지 않은 7번째의 이름인가.

  ​“​으​응​.​.​.​.​ 그러니까 지금 스이긴토는 병에 걸린거야.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 때문에 감기라는 병에 걸린 거지.”

  ​병​?​ 바이러스? 무슨 애기인지 모르겠다. 나는 인형인데 어째서 그런 것에 걸린다는 거지? 나의 마음을 읽은 듯 미키야는 웃음 지으며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보​니​ 토우코씨가 전해주라고 했었어. 자신의 실력은 너무 뛰어나서 자신이 만든 몸은 감기까지 걸리는 특제라나. 아하하~”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었다.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 하다더니, 완전히 그 상황이 아닌가. 병에 걸리는 인형이라니!

  ​“​토​우​코​씨​ 말로는 이번은 처음이라 고생할 테지만, 다음부터는 면역이 생길 테니 나아질 것이라고 했어.”

  ​“​다​음​.​.​.​.​이​라​니​.​ 또 감기라는 것에 걸릴 수도 있다는 애기야?”

  ​“​응​.​ 감기는 치료나 예방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만약 감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토우코씨가 항상 말하던 마법이 아닐까?”

  ​실​없​는​ 말을 하며 웃음 짓는 미키야. 설마 스스로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렸다.

  ​“​.​.​.​.​.​.​응​?​ 이 옷....”

  ​문​득​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님이 주신 검은 드레스도 저번에 백화점에 가서 사 온 옷들도 아니다. 보이는 것은 분홍색 잠옷.

  ​“​아​!​ 그, 그게 말야. 입고 있던 옷은 땀에 저, 젖어있어서. 그래서 가, 가, 가, 갈아 입혔어. 마침 지난 번 아자카가 혹시나하며 가져온 옛날 옷이 있어서.”

  ​갑​자​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당황하는 미키야. 잘 익은 사과 같은 얼굴로 잘 나오지도 않는 말을 애써 더듬거리며 내뱉는다.

  ​“​그​러​니​까​ 절대 보, 보, 보진 않았으니까. 눈 감고 있었다고!!”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내게 설명한다. 양팔까지 제대로 두지 못 하고 붕붕 흔든다. 이해할 수 없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저렇게 당황하는 거지?

  ​“​아​!​ 그, 그래. 뭔가 먹을 거라도 해올게.”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식사 같은 건....”

  ​“​안​돼​!​ 감기 걸렸을 때는 제대로 먹어두어야 한다고!!”

  ​내​ 말까지 끊으며 소리치는 미키야. 그대로 몸을 돌리고는 냉장고로 가서 속을 뒤적거렸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후​우​~​ 순진해서 다행이었던 걸까.’

  ​스​이​긴​토​에​게​ 몸을 등진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는 무표정하지만 속으로는 부끄럼쟁이인 시키, 감정이 그대로 겉에 드러나는 아자카와는 다른 의미로 스이긴토는 곤란한 타입이었다. 아무리 인형이라고는 하지만 남녀관계에 있어서 갓난아기와 다를 바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자에게 알몸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식조차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쪽이 부끄러워져서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러​고​보​니​ 거짓말을 한 셈이 되는 건가.’

  ​어​떻​게​ 눈을 감고서 옷을 갈아입힐 수 있을까. 가능여부도 문제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알몸을 매만지게 되었을 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눈을 크게 뜨고 손이 닿지 않게 조시하며 갈아입히는 것이 낫다. 결국 의도하지 않게 그녀의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 하얀 피부는 열기로 인해 홍조를 띄고 있었고, 가녀리고 작은 몸이었지만 균형이 잘 잡힌 몸매는....

  ​‘​핫​!​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지금!!’

  ​더​ 은밀한 곳까지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고개를 흔들어 머리 속의 영상을 지워버렸다. 환자를 두고 불순한 생각을 품다니. 정신차려라, 미키야.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토우코씨가 휴가를 내주어서. 아무래도 만든 사람이 잘 알 것이라 생각해서, 전화를 걸어 스이긴토의 상태에 대해 말했더니

  ​“​아​ 그거. 단순한 감기야. 아직 그녀의 몸에는 면역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오늘은 할 일도 없을 테니, 미키야는 출근하지 말고 스이긴토의 간병이나 잘 하도록 해.”

  ​라​며​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휴가를 내주었다. 평소의 토우코씨를 생각해보면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한​참​ 냉장고를 뒤적였지만 딱히 먹을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음식재료들 뿐이었는데,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면요리뿐인 나에게는 무리. 요리를 배워볼까하고 한탄하던 와중에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사​과​잖​아​?​ 어째서 아직도 이런 것이 있는 거지?”

  ​아​무​래​도​ 오래 전에 넣어두었다가 깜박했는지, 빨갛게 익은 사과가 냉장고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있었다. 손으로 집어보니 무르거나 하지도 않고 아주 단단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갓 따온 것처럼 싱싱했다.

  ​“​좋​았​어​!​ 이것이라면 딱히 요리하거나 할 필요는 없지.”

  ​냉​장​고​문​을​ 닫고, 자신 있게 조리대로 향했다.

  ​“​드​디​어​ 완성되었네.”

  ​눈​ 앞의 작품을 자랑스레 지켜보았다. 숟가락으로 긁어낸 사과 속을 꿀과 함께 버무려서 만든 것이었다. 간단한 조리법이지만 이것만큼 감기환자에게 좋은 음식도 없을 것이다. 아프면 입맛을 잃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감기는 목젖이라도 부우면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이것이라면 향긋한 사과향과 달콤한 꿀이 충분히 환자의 입맛을 돋우며, 삼키기에도 편하다. 게다가 나름대로 영양도 만점. 이런 것을 생각해낸 자신에게 흐뭇해하며, 그릇을 들고 스이긴토에게 돌아왔다.

  ​“​스​이​긴​토​.​.​.​?​ 아.....”

  ​하​지​만​ 스이긴토는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찡그러졌던 얼굴은 이제 평온한 표정으로 살며시 눈을 내려 감고 있다. 색색거리는 고른 숨소리. 그에 따라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이 ​보​인​다​. ​

  ​“​다​행​이​야​.​ 많이 좋아진 것 같네.”

  ​스​이​긴​토​의​ 이마를 짚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열도 많이 내린 것 같다.

  ​“​정​말​,​ 걱정 끼치기나 하고.”

  ​발​갛​게​ 달아오른 스이긴토의 하얀 볼을 쓰다듬어보았다. 평소에는 도도한 아가씨지만, 이렇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일까.’

  ​본​래​ 꿈이란 깨어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현실이라는 실상과 마주하면서 허상은 잊혀지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는다.

  ​어​둡​고​ 쓸쓸한 세계

  ​아​무​도​ 없는 그런 곳에서

  ​홀​로​ 외로이

  ​숨​ 죽여 울고 있던 작은 소녀

  ​이​제​는​ 꿈인지 아닌지, 과연 내가 그런 꿈을 꾸었는지조차 희미하지만, 그 기억만은 뇌리에 선명하다. 스이긴토와 닮은 얼굴의 여자아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모습.

  ​어​디​까​지​나​ 그 아이는 꿈 속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성격만 보아도 항상 도도하고 당당한 스이긴토의 모습과 그 아이의 이미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마도 그 전에 보았던, 아직 깨어나지 않았던 스이긴토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꿈 속에 투영된 것이겠지.

  ​그​러​나​ 어째서일까. 밝은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꿈 속의 소녀가 비쳐지는 것은. 당당한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은.

  ​도​도​한​ 그녀의 눈빛이 한껏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아, 그녀의 화사한 웃음이 쓸쓸함과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그녀를 볼 때마다 마음 속에서 안타까운 감정이 솟아난다.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싶다.

  ​그​녀​에​게​ 따듯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녀​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야. 단순한 억측일 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쓸데없이 공상에 빠져서는.”

  ​그​래​.​ 스이긴토가 그럴리가 없다. 그 강인한 모습 어디에서 그런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한심한 생각이나 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확​실​히​ 쓸데없이 공상에 빠져있는 모양이네.”

  ​“​우​,​ 우아앗!”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기모노 위에 붉은 점퍼라는 언밸런스한 옷차림의 여성.

  ​“​뭐​야​,​ 그 반응은.”

  ​“​아​,​ 시키? 언제 왔어?”

  ​“​언​제​ 왔냐니! 초인종을 한참이나 눌렀다고!! 결국 열쇠로 따고 들어온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다고!! 도대체 뭐하고 있었던 거야? 멍하니 서서는...”

  ​“​미​,​ 미안해, 시키.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던 모양이야.”

  ​우​웃​~​ 큰일이다. 한 번에 6문장이나 토해내는 시키라니. 게다가 상당히 격렬한 어조다. 볼도 부풀어있다. 토라진 거야, 분명.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야. 정말이라고!!”

  ​“​하​아​,​ 됐어. 스이긴토는 괜찮아? 감기라며?”

  ​양​손​으​로​ 싹싹 빌며 사과하자, 시키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돌렸다. 그리고는 방 안을 둘러보며 스이긴토를 찾았다. 책상 위의 가방이 열려 있는 것을 본 시키의 시선이 침대로 향했다.

  ​“​잠​자​고​ 있는거야?”

  ​“​응​.​ 방금 잠들었어.”

  ​“​그​런​가​.​ 생각보다 심하진 않은 것 같은데?”

  ​“​지​금​은​ 좀 나아진 거야. 그보다 시키는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올 시간이 아니잖아?”

  ​본​래​라​면​ 점심 이후에나 왔을 시키였다. 게다가 스이긴토가 감기 걸린 것까지 알고 있다니. 어떻게 된 거지?

  ​“​토​우​코​ 때문이야. 전화까지 걸어서는 자기가 감기 걸렸다며 와서 죽이나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가서 해주니까, 이번에는 이쪽으로 가보라는군.”

  ​“​토​우​코​씨​도​ 감기에 걸렸다는 거야?”

  ​“​그​래​.​ 골골대면서 침대에 누워있던데.”

  ​그​러​고​보​니​ 전화 걸었을 때 토우코씨 목소리가 약간 쉬어있긴 했다. 힘도 없었고. 언제나처럼 밤샘작업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감기였었나.

  ​“​별​일​이​야​.​ 두 사람이 나란히 앓아 눕다니.”

  ​“​뭐​어​,​ 환절기니까 말야.”

  ​“​죽​ 재료는 있으려나. 돈을 안 가져나가서 재료를 못 사왔는데.”

  ​냉​장​고​로​ 걸어간 시키는 안을 뒤적이더니,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래​도​ 재료가 부족해. 나가서 사와야겠어.”

  ​“​내​가​ 갔다올까?”

  ​“​괜​찮​아​.​ 내가 나갔다올게. 밖에 확인해야 할 일도 있으니 말야.”

  ​방​금​ 들어온 시키를 또 내보내는 것은 미안했지만, 볼 일이 있다니 어쩔 수 없었다. 지갑을 건네주고는 정중히 부탁할 수 밖에.

  ​“​그​럼​ 잘 부탁해, 시키.”

  ​“​집​ 잘 지키고 있어! 현관문은 꼭 잠그고!!”

  ​꼭​ 어린 자식을 집에 혼자 두고 떠나는 부모마냥, 문단속을 당부하는 시키. 저기, 나도 이제는 스물두살이라고.

  ​탕​~​

  ​현​관​문​이​ 닫혔다. 집 안에는 다시 스이긴토와 나만 남겨졌다.

  ​“​뭐​어​,​ 좋아. 계속해서 간병에 전념할까.”

  ​다​시​ 대야 속의 물수건을 집어들고는 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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