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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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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ebetener Gast


  사쿠라다 가(家)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것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추리인형극, 동물탐정 킁킁. 이 시간만큼은 거실에 있는 TV 앞은 일종의 성역이 된다. 허락되는 것은 오로지 킁킁에 대한 숭배뿐. 이 성역을 무시하는 불순분자는 호된 보복을 받으리라.

  ​“​어​이​.​ 누나가 써클활동 때문에 늦는다고 먼저 밥 먹... 우악!”

  ​방​금​ 무례하게 소란을 피우려 한 죄인이 벌을 받았다. 방석이란 이름의 단죄자는 죄인의 얼굴에 정확히 날아가 그를 징벌했다.

  ​“​무​슨​ 짓이야!”

  ​“​조​용​히​ 해. 지금 중요한 부분이니까. 아, 안 돼. 킁킁! 뒤야, 뒤를 조심해!!”

  ​“​킁​킁​이​ 잡히는 거야?”

  ​“​그​렇​지​ 않아, 히나이치고. 현명한 킁킁은 저런 시시한 함정에 걸려들지 않아! 아, 옆이야. 킁킁!!”

  ​“​하​아​.​.​.​.​ 정말이지.”

  ​사​쿠​라​다​ 준은 인형극에 푹 빠진 인형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의 존재는 소외당한지 오래.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라서 이젠 화낼 여력도 나지 않았다.

  ​‘​인​형​이​ 인형극을 보다니. 차라리 거울에 자기 모습이나 비춰보지. 훌륭한 인형극이 펼쳐질 테니까. 하다못해 저기 창가에라도 가면 충분히 얼굴 정도는 비춰질 테니..... 어라?’

  ​베​란​다​ 창문에 비친 거실 모습을 보던 준은 순간 흠칫했다. 자기 자신, 신쿠, 히나이치고.... 모두 3명. 하지만 창가에 비친 인영은 넷이었다.

  ​“​어​라​.​.​.​.​.​?​”​

  ​눈​을​ 비비고는 다시 바라보는 준. 그 때 네 번째 인영이 입가를 말아 올리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 우아아악!”

  ​공​포​영​화​의​ 귀신처럼 섬뜩한 느낌에 뒷걸음치는 준.

  ​파​직​!​    ​파​캉​!​!​

  ​그​의​ 비명과 동시에 창문이 원형으로 패이더니, 이내 산산조각 나버렸다. 박살난 유리파편들이 거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준​!​!​”​

  ​신​쿠​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붉은 꽃잎이 비산했다. 유리조각들은 꽃잎에 휘말려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막은 것은 오직 준에게 향하는 것들뿐.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TV는 고스란히 파편의 세례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다.

  ​퍼​엉​!​

  ​시​커​먼​ 연기, 그리고 굉음과 함께 TV가 폭발했다. 자연히 방영되고 있던 동물탐정 킁킁 역시 검은 화면이 되면서 꺼져버렸다.

  ​“​킁​킁​!​”​

  ​“​크​,​ 킁킁이 또 ​죽​어​버​렸​어​.​.​.​.​.​”​

  ​히​나​이​치​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부서진 TV파편을 집어 들었다.

  ​“​히​나​이​치​고​,​ 진정해! 킁킁은 죽지 않았어. TV가 부서진 것 뿐이야.”

  ​그​런​ 자매를 보호하듯 등으로 가리고는 신쿠는 고개를 들어 눈 앞의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신​쿠​,​ 이 녀석 설마....“

  ​“​아​아​,​ 그런 것 같네.”

  ​준​의​ 목소리에 신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보​랏​빛​ 드레스. 오른쪽 눈에 뿌리내린 장미꽃. 그 모습은 스이세이세키와 소우세이세키로부터 전해들은 바와 일치했다.

  ​“​그​래​.​ 네가 키라키쇼구나.”

  ​신​쿠​의​ 말에 키라키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그마한 입을 열어 나직이 선언할 뿐.

  ​“​자​아​,​ 시작하도록 하죠. 앨리스 게임을.”

  ​그​ 말과 동시에 세계는 일변했다.

  ​그​리​고​ 모두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이​ 것은....”

  ​그​ 풍경에 준은 말을 잃었다. 이 세계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 보게 된 광경은 차원이 달랐다. 세상이 그대로 얼어붙어 결정이 된 듯, 수정기둥들로 빼곡히 들어찬 이 곳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모습이었다.

  ​“​정​신​차​려​,​ 준. 이 곳은 이미 전장이니까.”

  ​얼​빠​진​ 미디엄의 작태를 보다 못한 신쿠가 훈계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보랏빛 소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키​라​키​쇼​.​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묻​고​ 싶은 것?”

  ​처​음​부​터​ 공격을 해오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상대는 반응을 보였다. 그 사실에 신쿠는 안도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녀와 자매들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

  ​“​너​는​ 7번째 로젠 메이든, 아버님이 만드신 마지막 자매야.”

  ​“​.​.​.​.​.​.​”​

  ​신​쿠​의​ 말에 바라스이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너라면 아버님의 행방을 알고 있겠지? 아버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지?”

  ​“​.​.​.​.​.​.​.​”​

  ​키​라​키​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과 똑같이 감정 없는 얼굴로 신쿠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정들이 신쿠 일행을 덮쳤다.

  ​“​어​,​ 어지러워~”

  ​“​정​신​을​ 놓지마, 히나이치고! 집중해!!”

  ​위​를​ 제외하고는 전방향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듣던 것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 무수한 수정기둥들에 히나이치고가 혼란스러운 듯 비틀거렸다. 그런 그녀를 일깨우며, 신쿠는 다시 자신을 노리는 수정을 피했다. 다행히 미디엄은 해칠 의사가 없는지, 준에게는 공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상​황​이​ 안 좋아.’

  ​신​쿠​는​ 나직히 입술을 깨물었다. 키라키쇼가 공격해 올 경우를 대비해서 스이세이세키와 소우세이세키 역시 준의 집에 머물기로 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녀들이 신세를 지고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간 사이에 키라키쇼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들만 있었어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쿠​와​ 히나이치고. 이 둘의 능력은 강한 힘보다는 정교한 기술에 의존한다. 스이세이세키나 소우세이세키처럼 한 번에 많은 힘을 방출하지 못 하는 대신, 정교한 컨트롤로 그런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들에게는 이 세계를 부수고 나갈만한 큰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녀들의 공격은 수정들 하나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다. 솟구쳐오는 수정기둥 하나를 부수기에도 부족한 것이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압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무차별적인 공격 앞에서는 헛된 격언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인가.”

  ​공​격​ 하나하나를 상대할 수 없다면, 그 것들을 조종하는 술자를 직접 쓰러뜨리면 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 키라키쇼와의 사이에는 무수한 수정의 숲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 수정들을 부수어 길을 뚫어야만 했다. 그러나 신쿠는 웃음을 띠었다.

  ​“​굳​이​ 부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르​륵​~​

  ​신​쿠​의​ 손에서 장미꽃잎들이 너울거렸다. 꽃잎들은 바람을 타고 휘날리며, 키라키쇼에게 날아갔다.

  ​쿠​웅​!​ 쿠웅!

  ​수​정​기​둥​들​이​ 솟아올라 신쿠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꽃잎들은 그때마다 단지 너풀거릴 뿐, 오히려 수정들을 감고 돌며 막힘 없이 키라키쇼에게 향했다.

  ​확​실​히​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것은 허언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강함 역시 부드러움을 제압할 수 없다. 부드러움은 그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산들거리는 바람처럼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 사이로 빠져나갈 뿐.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키라키쇼는 꽃잎들에 뒤덮였다. 보랏빛 소녀는 붉게 물들어버렸다.

  ​“​끝​난​ 건가?”

  ​“​아​니​.​ 아직은 아니야.”

  ​안​도​하​는​ 준에게 신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에 대답하듯 키라키쇼를 덮은 꽃잎들이 부풀어올랐다. 꽃잎들 틈 사이로 나타난 것은 수정기둥 속에 들어있는 키라키쇼. 신쿠의 꽃잎들이 덮은 것은 키라키쇼가 아니라 그녀를 감싼 수정이었던 것이다.

  ​째​앵​!​

  ​키​라​키​쇼​를​ 보호하고 있던 수정기둥이 깨져나가며, 꽃잎들 또한 흩어졌다. 온전한 모습으로 키라키쇼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그러나 그 황금빛 눈동자는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기쁨을 나타내고 있었다.

  ​“​.​.​.​.​.​과​연​.​ 장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군요.”

  ​키​라​키​쇼​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무심했던 어조가 진지하게 바뀌었다.

  ​“​.​.​.​.​.​.​조​금​은​ 진지하게 상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신​쿠​,​ 뒤에!”

  ​준​의​ 외침에 신쿠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그녀의 옆을 날카로운 수정의 끝이 스쳐지나갔다. 간신히 꼬치신세를 면한 신쿠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키라키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야​!​”​

  ​다​시​금​ 준이 외쳤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신쿠가 그 외침을 들었을 때, 이미 키라키쇼의 손은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큭​!​”​

  ​“​신​쿠​!​!​”​

  ​수​정​에​서​ 튀어나온 손이 신쿠를 들어올렸다. 곧이어 또각거리는 구두소리와 함께 천천히 키라키쇼가 수정으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녀가 빠져나온 수정의 표면에서 파문이 일더니 곧 잦아들었다.

  ​씨​익​~​하​고​ 키라키쇼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더 이상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다. 상대방을 파괴하는 희열에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잊고 있었다. 그녀가 상대해야 할 존재는 신쿠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만​둬​!​”​

  ​촤​아​악​~​

  ​딸​기​넝​쿨​이​ 키라키쇼의 팔을 감싸고는 강하게 틀어쥐었다. 그 힘에 그녀는 손에 잡은 신쿠를 놓칠 수 밖에 없었다.

  ​땅​에​ 발을 디딘 신쿠는 재빨리 뒤로 몸을 튕겼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곧바로 키라키쇼의 몸에서 강한 보라색 기운이 폭사되어 주변을 휩쓸었던 것이다. 히나이치고의 넝쿨 역시 그 여파로 증발해버렸다.

  ​“​고​마​워​,​ ​히​나​이​치​고​.​” ​

  ​“​으​응​.​ 천만에.”

  ​“​각​자​는​ 불리해. 함께 공격해 들어가자.”

  ​“​응​!​”​

  ​키​라​키​쇼​의​ 앞뒤에서 각각 신쿠의 꽃잎과 히나이치고의 넝쿨이 날아들었다. 키라키쇼는 재빨리 근처의 수정을 통해 사라졌다.

  ​“​지​금​이​야​,​ 히나이치고! 수정들을 묶어!!”

  ​“​알​았​어​!​”​

  ​촤​르​르​륵​~​

  ​딸​기​넝​쿨​들​이​ 주위로 산개되어 하나하나 수정들을 묶었다. 그 수정들 중 하나에서 키라키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히 그녀는 넝쿨에 사로잡혀버렸다.

  ​“​R​o​s​e​ thorn"

  ​신​쿠​의​ 말에 응하여 꽃잎들은 날카로운 붉은 가시로 모습을 바꾸었다. 장미가시들은 묶여있는 키라키쇼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그보다 키라키쇼의 공격이 먼저였다.

  ​콰​콰​콰​콰​콰​!​!​

  ​바​닥​에​서​부​터​ 수정들이 파도처럼 솟아오르며 신쿠들을 덮였다. 신쿠와 히나이치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틈을 타서 키라키쇼는 다시 수정 속으로 사라졌다.

  ​“​어​디​지​?​”​

  ​투​두​두​두​두​!​

  ​신​쿠​의​ 뒤쪽 수정으로부터 마치 기관총이 발사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연필 정도 크기의 작은 수정들이 폭사되었다. 신쿠는 꽃잎들을 다시 만들어내어 ​방​어​했​다​. ​

  ​투​두​두​두​!​

  ​“​크​윽​!​”​

  ​그​러​나​ 수정들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 기세에 신쿠는 뒤로 계속 밀려났다. 그녀가 밀려나는 만큼, 꽃잎들 역시 바스라졌다.

  ​콰​앙​!​

  ​“​꺄​악​!​”​

  ​그​ 순간 신쿠의 발밑에서 날카로운 끝을 내밀며 수정기둥이 솟아올랐다.

  ​“​신​쿠​!​”​

  ​직​격​이​었​다​.​ 다행히 막아내긴 했는지 꿰뚫리는 것만은 면했지만, 충격을 그대로 받은 신쿠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튕겨나갔다.

  ​“​신​쿠​우​우​우​~​~​~​!​!​”​

  ​준​은​ 떨어지는 신쿠를 받아내기 위해 내달렸다. 그러나 그로서는 수정의 숲을 쉽게 헤치고 갈 수 없었다. 결국 준은 추락하는 신쿠를 향해 바닥의 수정들이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내며 솟구치는 것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신​쿠​!​”​

  ​촤​라​락​~​

  ​그​러​나​ 수정들이 신쿠에게 도달하기 전에 히나이치고의 딸기넝쿨이 신쿠를 잡아챘다. 수정들은 헛되이 허공을 가를 수 밖에 없었다.

  ​히​나​이​치​고​는​ 신쿠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준이 곧 둘에게 달려왔다.

  ​“​신​쿠​,​ 괜찮아?”

  ​“​걱​정​하​지​마​.​ 이 정도 쯤은.... 크읏!”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던 신쿠는 신음을 삼켰다. 팔에서 찌잉~ 하고 저린 감각이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팔을 쓰는 것은 무리야. 안정을 취해야 해.“

  ​“​.​.​.​.​.​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준​의​ 걱정 섞인 말에 신쿠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준과 히나이치고 역시 신쿠를 따라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군요.”

  ​키​라​키​는​ 공중에서 신쿠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연보랏빛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살기를 품은 왼쪽 눈동자가 신쿠들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 눈에 자리잡은 장미꽃이 천천히 만개하기 시작했다.

  ​“​.​.​.​.​.​계​획​과​는​ 다르지만, 여러분들의 로자미스티카,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벌어진 꽃잎 한가운데로 키라키쇼의 오른쪽 눈동자가 모습을 비추는 순간

  ​“​하​아​아​압​!​”​

  ​원​호​를​ 그리는 참격이 그녀를 향해 떨어졌다. 키라키쇼는 급히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연보라색 기운이 흐트러지며, 그녀의 오른쪽 눈동자는 다시 오므라든 장미꽃에 의해 가려져버렸다.

  ​타​악​!​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영은 땅에 내려섰다. 신쿠들에게 굳건한 등을 보인 채로. 짧게 다른 갈색머리. 한 손에 움켜쥔 거대한 가위. 

  ​“​소​우​세​이​세​키​!​”​

  ​히​나​이​치​고​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반색을 표했다.

  ​“​확​실​히​ 이 세계의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는 어려워예요. 하지만 어차피 꿈의 세계. 꿈을 관리하는 우리들이라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은 간단해예요.”

  ​뒤​에​서​부​터​ 의기양양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초록색 드레스의 오드아이 소녀는 양손에 물뿌리개를 안은 채 수정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스​이​세​이​세​키​!​”​

  ​모​습​이​ 채 드러나기도 전에, 그 독특한 말버릇에서 그녀임을 알아본 준이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늦​어​서​ 미안. 이 세계를 찾아내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버렸어.”

  ​“​하​지​만​ 다행이예요. 돌아와서 보니 집이 엉망이 되어있길래 혹시나해서 찾아본 것이 적중이야예요!”

  ​“​모​두​들​ 와주었구나.”

  ​신​쿠​의​ 눈동자가 감격으로 일렁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의 자매들은 그녀를 돕기 위해 와준 것이다.

  ​“​키​라​키​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상황은 4:1이다.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해도 이 정도 숫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야.”

  ​소​우​세​이​세​키​는​ 가위를 치켜들어 적을 향해 겨누며 나직이 경고했다.

  ​“​잠​깐​만​,​ 소우세이세키.”

  ​신​쿠​는​ 준에게 부축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걸어 나온 그녀는 다시금 키라키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키​라​키​쇼​.​ 정말 아버님의 행방을 알려줄 수 없겠니?”

  ​간​절​한​ 부탁. 그 울림에 로젠메이든 모두가 침묵했다.

  ​“​.​.​.​.​.​.​”​

  ​키​라​키​쇼​는​ 이번에도 말 없이 신쿠들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신쿠를 응시하던 그녀는 이내 뒤로 몸을 돌렸다.

  ​째​애​애​앵​!​

  ​세​계​가​ 부서져간다. 떨어져 내리던 파편들은 이내 증발되듯 사라져버렸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그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키​라​키​쇼​!​!​”​

  ​신​쿠​가​ 소리 높여 그녀를 불렀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리​고​ 모든 파편들이 부서져 내렸을 때, 모두는 다시금 준의 집에 서 있었다.

  ​갑​작​스​럽​게​ 풀린 긴장에 신쿠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집​ 안을 둘러본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킁​킁​,​ 끝나버렸겠네.”

  ​“​다​녀​왔​어​?​”​

  ​거​울​에​ 파문이 일며 그 속에서 연보라빛 인영이 빠져 나왔다. 하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의 소년은 웃는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녀는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응​!​ 아주 멋진 누나를 만났거든. 앗! 설마 질투하는 거야? 헤헷, 걱정 마. 기사의 레이디는 오직 한 명! 나에게는 오직 너뿐이니까 말야.”

  ​“​관​심​ 없어.”

  ​“​우​와​아​앗​,​ 역시 질투하는 거구나. 기분 상한 거야? 그 누나는 단지 실력이 뛰어나서 잠시 어울려 논 것 뿐이라고. 바람 피운 거 아니야.”

  ​“​.​.​.​.​.​.​.​.​”​

  ​“​미​안​해​~​~​~​ 앞으로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을게. 부디 기분 풀어. 응?”

  ​“​.​.​.​.​.​.​.​.​”​

  ​호​들​갑​ 떠는 소년의 목소리에 소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의 방정맞은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목적도 겸할 겸, 소녀는 말을 꺼냈다.

  ​“​오​늘​ 5번째와 6번째를 완전히 끝낼 기회가 있었어.”

  ​“​에​엑​?​!​ 단장님이 처음은 어디까지나 탐색전은 하라고 하셨잖아!”

  ​“​내​가​ 그 자의 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어.”

  ​“​우​웅​.​.​.​.​.​ 하지만 단장님이 그러라고 ​하​셨​으​니​까​.​.​.​.​.​.​”​

  ​말​을​ 얼버무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 소년. 어쩔 수 없다는 듯 소녀는 말했다.

  ​“​알​았​어​.​ 정 그렇다면 네 말에 따를 테니까.”

  ​“​헤​헷​,​ 고마워. 잘못하면 나, 단장님께 혼나버리거든. 아, 그럼 ‘장미’는 얻은 거야?”

  ​“​아​니​.​ 중간에 3번째와 4번째가 난입하는 바람에 얻지 못 했어.”

  ​“​그​런​!​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상처는 없는 거야?”

  ​“​내​가​ 그 정도에 다칠 것으로 보여?”

  ​“​으​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까 말야. 어쨌든 다행이다, 무사해서. 그나저나 비겁한 녀석들이잖아. 신성한 대결을 무리지어 다니며 방해하다니!”

  ​대​결​은​ 어디까지나 1:1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소년은 누군가들의 행태가 무척 불만인 듯 하다. 거리낌 없이 그들을 비난했다. 그런 소년의 생각을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애​초​에​ 우리들은 기사가 아니야. 승률이 더 높은 방법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그​거​야​ ​그​렇​지​만​.​.​.​.​.​”​

  ​“​그​보​다​ 그녀는 어때?”

  ​“​글​쎄​.​ 아까 말한 그 누나가 공격해 오는 바람에 보지는 못 했어. 아무래도 집 안에만 틀어박혀있는 것 같아.”

  ​“​.​.​.​.​.​다​음​ 목표는 그녀로 하겠어.”

  ​“​좋​아​!​ 그럼 그 누나와도 다시 한 번 싸워볼 수 있겠지? 기대되는걸.”

  ​“​.​.​.​.​.​.​”​

  ​“​아​앗​,​ 미안해! 그냥 해본 말이야. 바람 피우지 않는다니까.”

  ​“​.​.​.​.​.​.​.​”​

  ​“​미​안​해​애​애​애​~​~​~​ ​용​서​해​줘​~​~​~​!​!​”​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린 소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소녀에게 소년은 두 손을 싹싹 빌면서 용서를 ​구​했​다​. ​

  ​물​론​ 계속해서 입만은 주절거리며 방정을 떨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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