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gebetener Gast
사쿠라다 가(家)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것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추리인형극, 동물탐정 킁킁. 이 시간만큼은 거실에 있는 TV 앞은 일종의 성역이 된다. 허락되는 것은 오로지 킁킁에 대한 숭배뿐. 이 성역을 무시하는 불순분자는 호된 보복을 받으리라.
“어이. 누나가 써클활동 때문에 늦는다고 먼저 밥 먹... 우악!”
방금 무례하게 소란을 피우려 한 죄인이 벌을 받았다. 방석이란 이름의 단죄자는 죄인의 얼굴에 정확히 날아가 그를 징벌했다.
“무슨 짓이야!”
“조용히 해. 지금 중요한 부분이니까. 아, 안 돼. 킁킁! 뒤야, 뒤를 조심해!!”
“킁킁이 잡히는 거야?”
“그렇지 않아, 히나이치고. 현명한 킁킁은 저런 시시한 함정에 걸려들지 않아! 아, 옆이야. 킁킁!!”
“하아.... 정말이지.”
사쿠라다 준은 인형극에 푹 빠진 인형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의 존재는 소외당한지 오래.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라서 이젠 화낼 여력도 나지 않았다.
‘인형이 인형극을 보다니. 차라리 거울에 자기 모습이나 비춰보지. 훌륭한 인형극이 펼쳐질 테니까. 하다못해 저기 창가에라도 가면 충분히 얼굴 정도는 비춰질 테니..... 어라?’
베란다 창문에 비친 거실 모습을 보던 준은 순간 흠칫했다. 자기 자신, 신쿠, 히나이치고.... 모두 3명. 하지만 창가에 비친 인영은 넷이었다.
“어라.....?”
눈을 비비고는 다시 바라보는 준. 그 때 네 번째 인영이 입가를 말아 올리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 우아아악!”
공포영화의 귀신처럼 섬뜩한 느낌에 뒷걸음치는 준.
파직! 파캉!!
그의 비명과 동시에 창문이 원형으로 패이더니, 이내 산산조각 나버렸다. 박살난 유리파편들이 거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준!!”
신쿠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붉은 꽃잎이 비산했다. 유리조각들은 꽃잎에 휘말려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막은 것은 오직 준에게 향하는 것들뿐.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TV는 고스란히 파편의 세례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다.
퍼엉!
시커먼 연기, 그리고 굉음과 함께 TV가 폭발했다. 자연히 방영되고 있던 동물탐정 킁킁 역시 검은 화면이 되면서 꺼져버렸다.
“킁킁!”
“크, 킁킁이 또 죽어버렸어.....”
히나이치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부서진 TV파편을 집어 들었다.
“히나이치고, 진정해! 킁킁은 죽지 않았어. TV가 부서진 것 뿐이야.”
그런 자매를 보호하듯 등으로 가리고는 신쿠는 고개를 들어 눈 앞의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신쿠, 이 녀석 설마....“
“아아, 그런 것 같네.”
준의 목소리에 신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보랏빛 드레스. 오른쪽 눈에 뿌리내린 장미꽃. 그 모습은 스이세이세키와 소우세이세키로부터 전해들은 바와 일치했다.
“그래. 네가 키라키쇼구나.”
신쿠의 말에 키라키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그마한 입을 열어 나직이 선언할 뿐.
“자아, 시작하도록 하죠. 앨리스 게임을.”
그 말과 동시에 세계는 일변했다.
그리고 모두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이 것은....”
그 풍경에 준은 말을 잃었다. 이 세계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 보게 된 광경은 차원이 달랐다. 세상이 그대로 얼어붙어 결정이 된 듯, 수정기둥들로 빼곡히 들어찬 이 곳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모습이었다.
“정신차려, 준. 이 곳은 이미 전장이니까.”
얼빠진 미디엄의 작태를 보다 못한 신쿠가 훈계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보랏빛 소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키라키쇼.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묻고 싶은 것?”
처음부터 공격을 해오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상대는 반응을 보였다. 그 사실에 신쿠는 안도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녀와 자매들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
“너는 7번째 로젠 메이든, 아버님이 만드신 마지막 자매야.”
“......”
신쿠의 말에 바라스이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너라면 아버님의 행방을 알고 있겠지? 아버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지?”
“.......”
키라키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과 똑같이 감정 없는 얼굴로 신쿠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정들이 신쿠 일행을 덮쳤다.
“어, 어지러워~”
“정신을 놓지마, 히나이치고! 집중해!!”
위를 제외하고는 전방향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듣던 것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 무수한 수정기둥들에 히나이치고가 혼란스러운 듯 비틀거렸다. 그런 그녀를 일깨우며, 신쿠는 다시 자신을 노리는 수정을 피했다. 다행히 미디엄은 해칠 의사가 없는지, 준에게는 공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상황이 안 좋아.’
신쿠는 나직히 입술을 깨물었다. 키라키쇼가 공격해 올 경우를 대비해서 스이세이세키와 소우세이세키 역시 준의 집에 머물기로 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녀들이 신세를 지고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간 사이에 키라키쇼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들만 있었어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쿠와 히나이치고. 이 둘의 능력은 강한 힘보다는 정교한 기술에 의존한다. 스이세이세키나 소우세이세키처럼 한 번에 많은 힘을 방출하지 못 하는 대신, 정교한 컨트롤로 그런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들에게는 이 세계를 부수고 나갈만한 큰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녀들의 공격은 수정들 하나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다. 솟구쳐오는 수정기둥 하나를 부수기에도 부족한 것이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압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무차별적인 공격 앞에서는 헛된 격언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인가.”
공격 하나하나를 상대할 수 없다면, 그 것들을 조종하는 술자를 직접 쓰러뜨리면 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 키라키쇼와의 사이에는 무수한 수정의 숲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 수정들을 부수어 길을 뚫어야만 했다. 그러나 신쿠는 웃음을 띠었다.
“굳이 부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르륵~
신쿠의 손에서 장미꽃잎들이 너울거렸다. 꽃잎들은 바람을 타고 휘날리며, 키라키쇼에게 날아갔다.
쿠웅! 쿠웅!
수정기둥들이 솟아올라 신쿠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꽃잎들은 그때마다 단지 너풀거릴 뿐, 오히려 수정들을 감고 돌며 막힘 없이 키라키쇼에게 향했다.
확실히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것은 허언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강함 역시 부드러움을 제압할 수 없다. 부드러움은 그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산들거리는 바람처럼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 사이로 빠져나갈 뿐.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키라키쇼는 꽃잎들에 뒤덮였다. 보랏빛 소녀는 붉게 물들어버렸다.
“끝난 건가?”
“아니. 아직은 아니야.”
안도하는 준에게 신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에 대답하듯 키라키쇼를 덮은 꽃잎들이 부풀어올랐다. 꽃잎들 틈 사이로 나타난 것은 수정기둥 속에 들어있는 키라키쇼. 신쿠의 꽃잎들이 덮은 것은 키라키쇼가 아니라 그녀를 감싼 수정이었던 것이다.
째앵!
키라키쇼를 보호하고 있던 수정기둥이 깨져나가며, 꽃잎들 또한 흩어졌다. 온전한 모습으로 키라키쇼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그러나 그 황금빛 눈동자는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기쁨을 나타내고 있었다.
“.....과연. 장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군요.”
키라키쇼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무심했던 어조가 진지하게 바뀌었다.
“......조금은 진지하게 상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신쿠, 뒤에!”
준의 외침에 신쿠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그녀의 옆을 날카로운 수정의 끝이 스쳐지나갔다. 간신히 꼬치신세를 면한 신쿠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키라키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야!”
다시금 준이 외쳤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신쿠가 그 외침을 들었을 때, 이미 키라키쇼의 손은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큭!”
“신쿠!!”
수정에서 튀어나온 손이 신쿠를 들어올렸다. 곧이어 또각거리는 구두소리와 함께 천천히 키라키쇼가 수정으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녀가 빠져나온 수정의 표면에서 파문이 일더니 곧 잦아들었다.
씨익~하고 키라키쇼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더 이상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다. 상대방을 파괴하는 희열에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잊고 있었다. 그녀가 상대해야 할 존재는 신쿠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만둬!”
촤아악~
딸기넝쿨이 키라키쇼의 팔을 감싸고는 강하게 틀어쥐었다. 그 힘에 그녀는 손에 잡은 신쿠를 놓칠 수 밖에 없었다.
땅에 발을 디딘 신쿠는 재빨리 뒤로 몸을 튕겼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곧바로 키라키쇼의 몸에서 강한 보라색 기운이 폭사되어 주변을 휩쓸었던 것이다. 히나이치고의 넝쿨 역시 그 여파로 증발해버렸다.
“고마워, 히나이치고.”
“으응. 천만에.”
“각자는 불리해. 함께 공격해 들어가자.”
“응!”
키라키쇼의 앞뒤에서 각각 신쿠의 꽃잎과 히나이치고의 넝쿨이 날아들었다. 키라키쇼는 재빨리 근처의 수정을 통해 사라졌다.
“지금이야, 히나이치고! 수정들을 묶어!!”
“알았어!”
촤르르륵~
딸기넝쿨들이 주위로 산개되어 하나하나 수정들을 묶었다. 그 수정들 중 하나에서 키라키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히 그녀는 넝쿨에 사로잡혀버렸다.
“Rose thorn"
신쿠의 말에 응하여 꽃잎들은 날카로운 붉은 가시로 모습을 바꾸었다. 장미가시들은 묶여있는 키라키쇼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그보다 키라키쇼의 공격이 먼저였다.
콰콰콰콰콰!!
바닥에서부터 수정들이 파도처럼 솟아오르며 신쿠들을 덮였다. 신쿠와 히나이치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틈을 타서 키라키쇼는 다시 수정 속으로 사라졌다.
“어디지?”
투두두두두!
신쿠의 뒤쪽 수정으로부터 마치 기관총이 발사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연필 정도 크기의 작은 수정들이 폭사되었다. 신쿠는 꽃잎들을 다시 만들어내어 방어했다.
투두두두!
“크윽!”
그러나 수정들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 기세에 신쿠는 뒤로 계속 밀려났다. 그녀가 밀려나는 만큼, 꽃잎들 역시 바스라졌다.
콰앙!
“꺄악!”
그 순간 신쿠의 발밑에서 날카로운 끝을 내밀며 수정기둥이 솟아올랐다.
“신쿠!”
직격이었다. 다행히 막아내긴 했는지 꿰뚫리는 것만은 면했지만, 충격을 그대로 받은 신쿠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튕겨나갔다.
“신쿠우우우~~~!!”
준은 떨어지는 신쿠를 받아내기 위해 내달렸다. 그러나 그로서는 수정의 숲을 쉽게 헤치고 갈 수 없었다. 결국 준은 추락하는 신쿠를 향해 바닥의 수정들이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내며 솟구치는 것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신쿠!”
촤라락~
그러나 수정들이 신쿠에게 도달하기 전에 히나이치고의 딸기넝쿨이 신쿠를 잡아챘다. 수정들은 헛되이 허공을 가를 수 밖에 없었다.
히나이치고는 신쿠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준이 곧 둘에게 달려왔다.
“신쿠, 괜찮아?”
“걱정하지마. 이 정도 쯤은.... 크읏!”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던 신쿠는 신음을 삼켰다. 팔에서 찌잉~ 하고 저린 감각이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팔을 쓰는 것은 무리야. 안정을 취해야 해.“
“.....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준의 걱정 섞인 말에 신쿠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준과 히나이치고 역시 신쿠를 따라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군요.”
키라키는 공중에서 신쿠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연보랏빛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살기를 품은 왼쪽 눈동자가 신쿠들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 눈에 자리잡은 장미꽃이 천천히 만개하기 시작했다.
“.....계획과는 다르지만, 여러분들의 로자미스티카,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벌어진 꽃잎 한가운데로 키라키쇼의 오른쪽 눈동자가 모습을 비추는 순간
“하아아압!”
원호를 그리는 참격이 그녀를 향해 떨어졌다. 키라키쇼는 급히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연보라색 기운이 흐트러지며, 그녀의 오른쪽 눈동자는 다시 오므라든 장미꽃에 의해 가려져버렸다.
타악!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영은 땅에 내려섰다. 신쿠들에게 굳건한 등을 보인 채로. 짧게 다른 갈색머리. 한 손에 움켜쥔 거대한 가위.
“소우세이세키!”
히나이치고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반색을 표했다.
“확실히 이 세계의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는 어려워예요. 하지만 어차피 꿈의 세계. 꿈을 관리하는 우리들이라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은 간단해예요.”
뒤에서부터 의기양양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초록색 드레스의 오드아이 소녀는 양손에 물뿌리개를 안은 채 수정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스이세이세키!”
모습이 채 드러나기도 전에, 그 독특한 말버릇에서 그녀임을 알아본 준이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늦어서 미안. 이 세계를 찾아내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버렸어.”
“하지만 다행이예요. 돌아와서 보니 집이 엉망이 되어있길래 혹시나해서 찾아본 것이 적중이야예요!”
“모두들 와주었구나.”
신쿠의 눈동자가 감격으로 일렁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의 자매들은 그녀를 돕기 위해 와준 것이다.
“키라키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상황은 4:1이다.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해도 이 정도 숫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야.”
소우세이세키는 가위를 치켜들어 적을 향해 겨누며 나직이 경고했다.
“잠깐만, 소우세이세키.”
신쿠는 준에게 부축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걸어 나온 그녀는 다시금 키라키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키라키쇼. 정말 아버님의 행방을 알려줄 수 없겠니?”
간절한 부탁. 그 울림에 로젠메이든 모두가 침묵했다.
“......”
키라키쇼는 이번에도 말 없이 신쿠들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신쿠를 응시하던 그녀는 이내 뒤로 몸을 돌렸다.
째애애앵!
세계가 부서져간다. 떨어져 내리던 파편들은 이내 증발되듯 사라져버렸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그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키라키쇼!!”
신쿠가 소리 높여 그녀를 불렀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리고 모든 파편들이 부서져 내렸을 때, 모두는 다시금 준의 집에 서 있었다.
갑작스럽게 풀린 긴장에 신쿠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집 안을 둘러본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킁킁, 끝나버렸겠네.”
“다녀왔어?”
거울에 파문이 일며 그 속에서 연보라빛 인영이 빠져 나왔다. 하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의 소년은 웃는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녀는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응! 아주 멋진 누나를 만났거든. 앗! 설마 질투하는 거야? 헤헷, 걱정 마. 기사의 레이디는 오직 한 명! 나에게는 오직 너뿐이니까 말야.”
“관심 없어.”
“우와아앗, 역시 질투하는 거구나. 기분 상한 거야? 그 누나는 단지 실력이 뛰어나서 잠시 어울려 논 것 뿐이라고. 바람 피운 거 아니야.”
“........”
“미안해~~~ 앞으로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을게. 부디 기분 풀어. 응?”
“........”
호들갑 떠는 소년의 목소리에 소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의 방정맞은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목적도 겸할 겸, 소녀는 말을 꺼냈다.
“오늘 5번째와 6번째를 완전히 끝낼 기회가 있었어.”
“에엑?! 단장님이 처음은 어디까지나 탐색전은 하라고 하셨잖아!”
“내가 그 자의 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어.”
“우웅..... 하지만 단장님이 그러라고 하셨으니까......”
말을 얼버무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 소년. 어쩔 수 없다는 듯 소녀는 말했다.
“알았어. 정 그렇다면 네 말에 따를 테니까.”
“헤헷, 고마워. 잘못하면 나, 단장님께 혼나버리거든. 아, 그럼 ‘장미’는 얻은 거야?”
“아니. 중간에 3번째와 4번째가 난입하는 바람에 얻지 못 했어.”
“그런!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상처는 없는 거야?”
“내가 그 정도에 다칠 것으로 보여?”
“으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까 말야. 어쨌든 다행이다, 무사해서. 그나저나 비겁한 녀석들이잖아. 신성한 대결을 무리지어 다니며 방해하다니!”
대결은 어디까지나 1:1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소년은 누군가들의 행태가 무척 불만인 듯 하다. 거리낌 없이 그들을 비난했다. 그런 소년의 생각을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애초에 우리들은 기사가 아니야. 승률이 더 높은 방법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그거야 그렇지만.....”
“그보다 그녀는 어때?”
“글쎄. 아까 말한 그 누나가 공격해 오는 바람에 보지는 못 했어. 아무래도 집 안에만 틀어박혀있는 것 같아.”
“.....다음 목표는 그녀로 하겠어.”
“좋아! 그럼 그 누나와도 다시 한 번 싸워볼 수 있겠지? 기대되는걸.”
“......”
“아앗, 미안해! 그냥 해본 말이야. 바람 피우지 않는다니까.”
“.......”
“미안해애애애~~~ 용서해줘~~~!!”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린 소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소녀에게 소년은 두 손을 싹싹 빌면서 용서를 구했다.
물론 계속해서 입만은 주절거리며 방정을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