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wischenakt - Erinnerung
늦은 밤
사쿠라다 가(家)
준이 글씨를 쓰는 소리. 그리고 신쿠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 안에 들려온다. 어제 있었던키라키쇼의 습격으로 인해 신쿠는 약간의 부상을 입었지만, 하룻밤이 지나자 지장이 없을 만큼 치유되어 있었다. 대신에 달라진 점이라면, 준의 방에 있는 로젠메이든 가방의 수가 늘었다는 것. 갈색 표면에 고풍스러운 금빛 장미문양이 붙어있는 4개의 가방이 준의 침대 옆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물론 지금 신쿠 외의 다른 세 로젠메이든은 잠자리에 든 상태. 요즘 들어 늦게까지 책을 읽는 버릇이 생긴 그녀만이 이 집에서 준 외에 깨어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타악!
그러나 그녀도 이제 잠자리에 들려는지 책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자, 준. 내일 봐.”
“아! 저, 저기 말야.”
준은 가방으로 걸어가던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응? 왜 그래?”
걸음을 멈춘 신쿠는 고개를 돌려 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준은 말을 꺼내도 좋을지 몰라 뭉그적댔다.
“그, 그게 저기....”
사실 아까 전부터 준은 신쿠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 질문이 그녀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결국 결심을 굳힌 준은 신쿠에게 말을 꺼냈다.
“저기..... 너희 말이야.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
“.......?”
의아한 표정의 신쿠. 그 모습에 준은 다시금 말을 골랐다.
“아니..... 로젠은, 너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해서.”
준과 신쿠는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준은 그저 묵묵히 홍차를 마시고 있는 신쿠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달그락
이윽고 찻잔을 내려놓은 신쿠는 아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건..... 거의 없어.”
희미하기만 한 기억. 영상도, 소리도 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다. 그러나 한가지, 그 인상만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그저..... 날 감싸 안아주시는 다정함, 따스함.”
부드럽게 끌어안는 손길. 귓가에 속삭이는 다정한 목소리.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주시는 베일.”
비바람에 행여 꽃이 꺽일 것을 염려하듯, 그 품에 안아 지켜주시는 분.
“살결을 통해 전해지는 마음. 온기.”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품에 안겼을 때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으로부터.
“평온한 시선.”
눈을 떴을 때 보인 푸른 눈동자. 그 속에 담겨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그저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다.
말로 전하지 않아도,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 넓고도 깊은 사랑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아무 것도 없어도.... 모든 건 거기 있어.”
희미한 기억, 뿌옇게 가려진 뇌리 속에서도 그것만은 진실된 것.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될 영원의 것.
“얼굴은 기억하고 있어?”
“어렴풋하게만.”
“히나이치고랑 스이세이세키랑 소우세이세키는?”
“그 애들도 나랑 마찬가지야.”
준의 의문에 신쿠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다시금 아득한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따스한 빛에 감싸인 사람이라는 기억 뿐이야.”
“그런....”
“중요한 것은 모습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 시간을 넘어, 모습을 바꾸며, 아버님께서는 어떤 세상에도 존재하셔.”
그러므로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이 보여준 사랑. 그녀들을 사랑한다는 사실 그 자체.
“하지만..... 로젠이 그렇게 너희를 아끼고 있다면, 어째서 너희한테 서로 싸우라고 하는 거야? 난 이해 못 하겠어!”
“그 것은.....”
준은 격렬한 어조로 지적했다. 로젠이라는 인물의 모순된 행동을. 그녀들을 사랑한다면 어째서 모습을 감추었는가. 어째서 그녀들이 서로를 해치게끔 하는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님의 소망은 앨리스를 만들어내는 것. 그러던 중에 만들어진 게 로젠메이든. 궁극의 소녀, 앨리스를 목표로 했지만...... 그걸 이루지 못 한 인형. 그게 우리야.”
신쿠는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버님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고 계셔. 하지만 동시에 앨리스를 소망하고 계셔. 사랑하는 것과 소망하는 것. 그 두 가지는 일치할 수는 있어도 동일한 개념이 아니야.”
“하지만....!!”
반박하려던 준은 말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신쿠의 푸른 눈동자. 호수 같은 그녀의 눈은 물결이 일렁이듯, 넘칠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아버님의 소망은 곧 우리들의 소망이기도 해. 앨리스가 되지 못 한 우리들은, 아버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 했다는 원죄를 가지고 있는 거야. 우리들을 태어나게 한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앨리스가 되려는 바램을 품고 있어.”
“신쿠.....”
“.....미안해. 말이 길어졌구나. 이만 자야겠어.”
준이 신쿠를 불렀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그녀는 가방으로 걸어갔다.
탁!
이윽고 가방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준은 그대로 앉은 채, 손에 든 찻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에 잠긴 채로, 마치 석상처럼 계속 그러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