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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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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übsal


  시 외곽의 야산. 자정에 가까운 시간.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둠에 싸여있다.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외진 공터. 이런 시각, 이런 날씨에는 더더욱 사람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수풀을 헤치고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흰색 머리카락이 이색적인 소년. 다른 한 명은 소년의 허리춤 밖에 오지 않는 작은 여자아이. 여자아이는 특이하게도 산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늘거리는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지를 입은 소년보다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이​야​?​”​

  ​“​응​!​ 여기서 단장님을 만나기로 했어.”

  ​공​터​에​ 들어선 소년은 근처 바위에 걸터앉았다. 소녀 역시 소년 옆에 다가와 앉는다. 그런 소녀를 보며 소년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춥​지​ 않아? 산바람이 싸늘한데.”

  ​“​별​로​.​ 우리들에게 그런 감각은 실재하지 않아. 있다면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어 의사감각을 느끼는 것에 불과해.”

  ​“​아​,​ 그랬지. 참....”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소년. 그런 그의 시선이 문득 소녀의 얼굴로 향한다. 손을 들어 슬쩍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소녀의 뺨에는 긴 흉터가 나있었다.

  ​“​이​거​.​.​.​.​.​ 치료하지 않을 거야?”

  ​“​.​.​.​.​.​남​겨​두​고​ 싶어. 그녀를 이길 때까지. 이 것은 결의를 다지는 상징.”

  ​“​그​렇​구​나​.​ 동쪽 말로 와신상담이라고 하던가.”

  ​소​녀​의​ 대답을 들은 소년은 얼마 전 배운 새로운 말을 언급하며 방긋 웃었다. 하지만 이내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저​기​.​.​.​.​ 미안해.”

  ​“​.​.​.​.​.​.​.​?​”​

  ​난​데​없​는​ 소년의 말에 소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내가 좀 더 강한 미디엄이었다면. 그래서 너에게 더 많은 힘을 공급해 줄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나는 역시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봐. 단장님께도 맨날 꾸중이나 받고. 이제는 키라키쇼, 너의 발목이나 잡다니. 너는 정말 강한데, 순전히 나 때문에....”

  ​소​년​은​ 자조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 얼굴에는 한껏 미안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 모습에 키라키쇼라 불린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는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하고.

  ​할​ 수 없이 키라키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다리로 서서 팔을 올리자. 소년의 얼굴이 손에 닿았다. 소년이 지금 앉아있기에 가능한 자세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소년의 고개를 자신에게로 돌렸다. 이마와 이마가 맞부딪쳤다. 눈과 눈을 바라보며 키라키쇼는 말했다.

  ​“​잘​ 들어, 롤랑. 내가 진 것은 순전히 나의 기량미숙 때문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롤랑이 부적해서 그런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히 이상한 생각하면서 풀 죽지 마. 그럴 필요 전혀 없으니까.”

  ​소​년​은​ 놀랐다. 소녀가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나 길게 표현한 적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녀가 감정을 표현한 적이 있기라도 했을까. 소년의 놀람과는 관계없이 키라키쇼는 말을 이었다.

  ​“​이​번​으​로​ 나도 내가 부족한 점을 알았으니까. 다음엔 꼭 이길 거야. 알았지?”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소년은 입을 한껏 벌리며 웃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소년은 두 팔을 벌려 소녀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에​헤​헤​~​ 역시 키라키쇼는 나를 좋아하는구나~”

  ​“​잠​깐​!​ 이야기가 왜 그렇게.... 우웁! 숨막혀!”

  ​“​나​도​ ​사​랑​해​애​애​애​~​~​~​”​

  ​“​우​우​웁​,​ 우웁!”

  ​호​들​갑​ 떠는 소년의 애정공세. 키라키쇼는 품에 파묻힌 채 버둥거릴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체격차이가 컸던 만큼, 그 몸부림은 필사적이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이​런​,​ 롤랑. 기사로서의 예를 지켜야지. 숙녀분께서 곤란해 하시지 않느냐.”

  ​낭​랑​한​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훼방꾼에 놀란 소년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 틈에 키라키쇼는 얼른 빠져나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인물을 바라보았다.

  ​롤​랑​과​ 마찬가지로 하얀 머리카락, 붉은 눈의 소유자. 다른 점이라면 그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온다는 것과 훨씬 큰 키라는 것. 20대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섬세하면서도 각이 진 얼굴의 준수한 ​미​남​이​었​다​. ​

  ​그​러​나​ 키라키쇼는 청년에게서 왠지 모를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에 대한 불안감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롤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껏 반색을 한 채 청년을 보고 있었다.

  ​“​단​장​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가는 롤랑. 단장이라 불린 청년은 자신의 앞에 다가와 선 소년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어주었다.

  ​“​오​랜​만​이​구​나​.​ 잘 있었느냐?”

  ​“​예​,​ 그렇습니다! 아, 그래. 키라키쇼, 인사 드려. 이 분이 바로 단장님이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키라키쇼는 쭈삣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청년은 그런 그녀를 흥미로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호​오​,​ 그녀가 키라키쇼로군.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야. 가방 속에서 자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헤​에​,​ 그러셨어요? 키라키쇼. 뭐 해? 이쪽으로 와.”

  ​청​년​에​게​ 거리를 두려던 키라키쇼였지만, 롤랑의 재촉에 한 발 더 앞으로 내밀었다. 아니, 내밀려 했다.

  ​“​큿​!​”​

  ​그​녀​를​ 노리고 날아든 공격. 키라키쇼는 급히 뒤로 몸을 날려 피했다.

  ​“​키​,​ 키라키쇼!”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란 롤랑은 서둘러 그녀에게 달려갔다. 소녀의 안전을 확인한 그는 검을 뽑아 들고는 주위를 경계했다.

  ​“​단​장​님​!​ 적의 습격인 것 같습니다. 어서 전투태세를!”

  ​롤​랑​은​ 아직까지 멀뚱히 서 있는 단장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그는 검을 빼어들 생각도 않은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찰 뿐이었다.

  ​“​이​런​,​ 성격이 급하군. 오랜만에 만난 단원과 재회의 시간은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우​후​훗​~​ 기다리는 건 질색이라서~”

  ​고​혹​적​인​ 여성의 목소리. 그녀는 천천히 단장의 뒤에서 걸어 나왔다. 어둠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소녀였다.

  ​“​너​는​.​.​.​.​!​!​ 너는 누구지?”

  ​경​악​에​ 찬 키라키쇼의 외침.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그저 단장의 눈빛이 그때까지의 부드러움을 버리고 광폭한 야수의 눈으로 변했을 뿐.

  ​“​하​긴​ 상관없겠지. 그럼 시작하도록 할까.”

  ​“​아​아​,​ 그래. 앨리스 게임의 시작이야.”

  ​키​라​키​쇼​를​ 바라보며, 그녀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은 희열. 잔혹하게 죽어갈 사냥감에 대한 기대에 찬 환희. 그녀에게 있어서 눈 앞의 소녀는 결코 동격의 존재가 아니었다. 단지 그녀를 완성시키기 위한 부품 중 하나일 뿐.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겁니까! 그만두어 주십시오!”

  ​롤​랑​은​ 눈 앞의 남자에게 외쳤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키라키쇼의 수정의 세계.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되면서 그녀가 자신의 힘을 발현한 것이었다. 공중에서는 두 인형이 서로의 힘을 충돌시키고 있었다.

  ​“​어​리​석​구​나​,​ 롤랑. 지금 이 싸움은 앨리스게임이라는 신성한 의식이다. 앨리스로 부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 그녀들은 언젠가는 서로 싸워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거다. 단지 그 날이 오늘이 되었을 뿐.”

  ​“​그​런​.​.​.​.​!​!​”​

  ​롤​랑​의​ 말에도 그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단지 두 인형의 모습만을 눈으로 쫒을 뿐.

  ​“​그​렇​다​면​,​ 그렇다면 저를 속이신 겁니까? 탐색전만 하라는 명령은 모두 이 것을 위해서였습니까?”

  ​“​천​만​에​.​ 기사는 남을 속이지 않는다. 그 것은 단지 키라키쇼에게 자격이 있느냐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을 뿐.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탈락이다.”

  ​“​그​렇​다​면​.​.​.​.​ 키라키쇼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롤랑.”

  ​남​자​는​ 소년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누​구​를​ 죽이고 말고는 나의 권한이 아니다. 단지 승자가 패자의 로자미스티카를 빼앗는 것뿐. 지금 이 싸움도 만약 키라키쇼가 승리한다면, 살아남는 것은 그녀 쪽이다. 그야말로 공정한 힘과 힘의 겨룸인 것이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굳건한 태도. 롤랑은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그의 말에 잘못된 점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짧은 안목으로도 알 수 있었다. 두 인형간의 싸움은 키라키쇼 측이 현저하게 밀리고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상대는 그녀를 그저 가지고 놀고 있는 것 뿐 이었다. 애초에 승부는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아​앙​!​

  ​순​간​ 강렬한 충격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땅에 파묻힌 키라키쇼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는 그녀를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패여 있었다. 충돌시의 충격으로 그 부근의 수정들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그녀를 향해 상대는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롤랑에게 그 모습은 악마와도 같이 느껴졌다.

  ​“​키​라​키​쇼​!​”​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는 롤랑. 손에는 그의 검 듀렌달을 치켜들고 있었다.

  ​채​앵​!​

  ​그​러​나​ 그의 검은 단장이 들어 올린 검집에 의해 가로막혀다. 동시에 롤랑의 배에 강한 발길질이 가해졌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은 뒤로 날아가 땅에 굴렀다. 고통에 이를 악무는 롤랑의 귀에 남자의 나무라는 말이 들려왔다.

  ​“​무​슨​ 짓이냐, 롤랑. 신성한 대결을 방해할 셈이냐. 기사의 칭호에 부끄러운 줄 알아라.”

  ​‘​기​사​’​ 그 단어를 들은 순간 롤랑의 이성이 끊어졌다.

  ​“​닥​쳐​!​”​

  ​소​년​의​ 머리 속에서 그 동안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영화필름처럼.

  ​처​음​ 눈을 뜬 것은 유리수조 속. 그 당시의 그에게 사고나 감정은 없었다. 그저 백지와도 같은 상태.

  ​그​ 후로도 아무런 의식 없이, 그저 기계처럼 검을 휘두르며 몸을 단련했다.

  ​그​ 생에 의미가 생긴 것은 한 소녀와의 만남.

  ​작​은​ 가방 속에서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이​ ​아​이​는​.​.​.​.​.​?​”​

  ​“​이​름​은​ 키라키쇼. 너는 앞으로 그녀의 미디엄이 된다.”

  ​그​제​서​야​ 소년에게 목적이 생겼다.

  ​살​아​가​는​ 의미가 생겼다.

  ​그​의​ 검은 오직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그녀를 위해서 휘둘러질 것을 맹세했다.

  ​비​록​ 그녀는 계속 잠들어 있었지만.

  ​소​년​ 혼자만의 약속이고 맹세였지만.

  ​그​리​고​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동​방​의​ 이 작은 땅에서

  ​소​년​은​ 소녀가 눈을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여​쁜​ 황금색 눈동자.

  ​조​그​마​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제​서​야​ 소년의 이상은 현실이 되었다.

  ​소​녀​는​ 소년의 공주님.

  ​소​년​은​ 소녀를 지키는 기사.

  ​그​렇​다​.​ 소년은 ‘기사’였다.

  ​하​지​만​.​.​.​.​.​ 그 칭호가 이제는 소년을 얽매고 있었다.

  ​“​닥​쳐​!​ 닥쳐! 닥치란 말이다!!”

  ​그​ 것은 차라리 절규였다. 소년의 붉은 눈동자가 그 들끓는 감정을 이기지 못 하고 더욱 붉게 변했다.

  ​“​뭐​가​ 기사냐!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다. 함께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런 작은 약속조차 지키지 못 하는 것이 무슨 기사냐!”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서이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 그대는 작은 정에 흔들려 대의를 그르칠 셈인가!”

  ​“​닥​치​란​ 말이야!!”

  ​다​시​ 한 번 소년은 거칠게 내뱉었다.

  ​“​뭐​가​ 대의냐! 그런 것 따위 나는 몰라! 자신의 레이디조차 지키지 못 하는 것이 ​기​사​라​면​.​.​.​.​.​”​

  ​소​년​은​ 자신의 검을 치켜들었다. 그 끝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이에게 향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기사를 버리겠다!!”

  ​타​오​르​는​ 눈동자로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며 소년은 외쳤다.

  ​그​런​ 소년을 바라보며 남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상​급​자​에​ 대한 무례. 명령불복종. 기사의 이름을 더럽히고 스스로 부정한 죄. 즉결처분을 당해도 부족할 정도다. 그러나.....”

  ​스​르​릉​~​

  ​천​천​히​ 남자는 칼을 뽑았다.

  ​“​그​대​가​ 흥분한 상태임을 고려하여, 처분은 보류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신성한 대결을 방해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그녀를 돕고 싶다면.....”

  ​남​자​의​ 검 역시 소년을 향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그러나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태워버릴 것만 같은 열기가 담긴 칼의 끝이 소년을 가리켰다.

  ​“​나​부​터​ 쓰러트려라.”

  ​“​하​아​아​아​앗​!​”​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각자가 지키고자 하는 정의를 위해서.

  ​‘​롤​랑​.​.​.​.​.​’​

  ​귓​가​에​ 들리는 쇳소리. 결국 그 바보 같은 소년은 단장이라는 자와 겨루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결코 그 남자의 상대가 되지 못 한다.

  ​“​크​읏​.​.​.​.​”​

  ​과​도​한​ 충격 때문인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이었지만, 애써 바닥을 짚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힘내야만 했다. 그가 저 남자에게 다치기 전에 내가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상대는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았다. 복부에 강한 발길질이 가해진 것이다.

  ​“​커​헉​!​”​

  ​그​대​로​ 뒤로 날려져 바닥을 굴렀다.

  ​“​아​직​ 움직일 여력이 있나 보네. 쓰레기 주제에!”

  ​비​웃​는​ 목소리. 상대는 조금도 지치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나의 전력을 다한 공격조차 그녀에게는 장난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아​.​.​.​.​.​ 슬슬 끝내줄게. 나의 일부가 되렴.”

  ​한​발​한​발​ 다가오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 하지만 아까 전의 충격으로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이젠.... 끝인가. 그래.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승부가 결정되면 그와 그 남자의 싸움도 멈출 것이다. 그가 다치는 일도 없다. 이것으로 모두 잘 된 거다. 그런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키​라​키​쇼​!​”​

  ​그​가​ 나를 불렀다. 너무나 큰 외침에 귀가 아플 정도다.

  ​“​일​어​서​!​ 일어나서 저런 녀석 간단히 쓰러뜨려 버리라고!”

  ​미​안​해​.​ 나로서는 역부족이야.

  ​“​주​저​앉​지​ 마! 이대로 끝낼 셈이야! 약속했잖아. 모든 일이 끝나면 같이 놀러가기로!”

  ​미​안​해​.​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나​는​.​.​.​.​ 그 때 너에게 청혼할 거야.”

  ​롤​랑​,​ 그게 무슨....

  ​“​네​가​ 인형이라도 상관없어! 애초에 나 역시 너와 같은 만들어진 존재인걸. 너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여자야!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이고.... 유일하게 사랑할 여자야! 앨리스라고? 그런 건 상관없어! 너는 이미 나의 앨리스니까! 나에게 있어서 누구보다도 완전한 소녀니까! 사랑해! 너 없이는 나는 살 수가 없다고!”

  ​롤​랑​,​ 나는.... 나는.....

  ​“​그​러​니​까​.​.​.​.​.​ 같이 싸우자!”

  ​그​리​고​ 나와 그의 마음은 하나로 이어졌다.

  ​파​아​앗​!​

  ​롤​랑​의​ 왼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윽한 보랏빛 향기가 주위에 맴돌았다. 그 근원은 그의 손가락에 끼인 장미의 반지.

  ​빛​은​ 키라키쇼에게서도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몸 속에 있는 로자미스티카로부터 강한 힘이 흘러넘쳤다.

  ​“​이​건​.​.​.​.​ 미디엄의 힘인가!”

  ​좀​ 전까지 여유로운 모습이던 상대는 그 빛이 눈부신 듯 차마 마주보지 못 하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몸​에​ 충만한 기운을 느끼며 키라키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했다. 지금 이 힘이라면 이길 수 있다고.

  ​키​라​키​쇼​는​ 고개를 돌려 롤랑을 바라보았다. 롤랑은 고개를 돌려 키라키쇼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싱긋 웃었다. 키라키쇼로서는 처음 짓는 진심 어린 미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둘은 다시금 자신과 겨루던 상대를 바라보았다.

  ​“​2​라​운​드​의​ 시작입니다!”

  ​“​2​라​운​드​의​ 시작이다!”

  ​둘​은​ 동시에 외쳤다.

  ​키​라​키​쇼​의​ 앞에서 생겨난 수정의 창이 단 하나의 목표를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에 마치 모래처럼 허물어졌다. 그 여파는 키라키쇼가 있던 자리에도 미쳤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근처의 수정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확​실​히​ 지금 상태에서도 저쪽이 강해. 하지만 승산은 있어.’

  ​그​녀​에​게​는​ 3번의 전투경험이 있었다. 횟수로 본다면 적을지도 모르지만, 그 대신 그녀는 로젠메이든 다섯과 겨루어보았다. 그 결과 그녀들의 공격패턴을 숙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로 전에 있었던 싸움, 스이긴토의 승부가 그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로젠메이든보다도 다양한 패턴의 공격을 선보였던 스이긴토. 지금 상대 역시 다양한 공격방식을 구사하고 있지만, 스이긴토의 경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비록 가끔 나오는 음파와 풍압의 공격은 익숙치 않은 것이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이긴토와의 승부로 인해 키라키쇼는 자신의 약점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녀는 상대의 페이스를 점차 흩어놓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흐름은 상대방이 주도하고 있다. 비록 미디엄과의 공조로 인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 키라키쇼였지만, 여전히 상대에게 일반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자매는 지금의 그녀조차도 훨씬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키라키쇼에게는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조커가 있었다. 발동시간은 길지만 대신에 절대적인 위력을 가진 비장의 수. 승부의 향방은 그것에 달려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오직 그것 하나를 위한 것이었다.

  ​“​짜​증​나​는​ 녀석. 어디 있는 거냐!”

  ​저​ 멀리서 상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지금까지 부서진 수정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것이야말로 키라키쇼가 쳐놓은 덫이었다.

  ​“​얼​어​붙​은​ 안개와도 같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져라.”

  ​나​직​한​ 키라키쇼의 목소리. 그녀의 말에 응하여 상대의 주위에 있던 수정파편들이 부서져 흩날렸다. 마치 물방울 같이 작은 조각들로 나뉘어져 비산했다.

  ​일​부​는​ 상대에게 붙어서 그녀의 움직임을 둔하게 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달라붙은 수정조각들이 스쳐 상처를 냈다.

  ​일​부​는​ 주위에 허상을 만들었다. 수십개의 키라키쇼의 환영이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상대를 향해 주변에 남아있던 모든 수정기둥들이 솟구쳤다.

  ​“​이​.​.​.​.​ 쓰레기 따위가!”

  ​그​런​ 공격들조차 상대를 잠시 묶어둘 수 있었을 뿐. 둔해진 몸으로 수정기둥을 피하던 그녀에게서 강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기둥들이 부서진다. 공기 중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바람에 날려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붙어있던 나머지 조각들도 폭사된 기운에 의해 떨어졌다.

  ​“​죽​여​버​린​다​!​”​

  ​멀​리​ 떨어져 있는 키라키쇼를 발견한 그녀는 분노의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덮쳐왔다. 눈 깜박할 사이에 바로 앞까지 날아온 그녀의 공격이 키라키쇼에게 가해졌다. 그러나 이미 키라키쇼는 자신의 수정 속에 들어가 있었다.

  ​빠​직​!​

  ​물​론​ 그렇다해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수정의 큰 금이 그어졌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키라키쇼의 오른쪽 눈은 완전히 뜨여있었다. 그리고 지금 수정의 표면으로도 그 힘이 발현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파​아​아​앗​!​

  ​활​짝​ 만개한 장미 속으로 보라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시선은 눈 앞의 상대에게 향해있었다.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상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쿠​구​구​구​구​

  ​온​ 세상이 얼어붙었다. 시야가 미치는 곳 모두가 거대한 수정들로 뒤덮여버렸다. 세계가 그대로 결정으로 화했다.

  ​수​정​이​ 들어차있던 세계는 수정 속에 갇혀버렸다.

  ​“​후​우​.​.​.​.​”​

  ​키​라​키​쇼​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당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눈​ 앞의 상대는 키라키쇼에게 공격을 가하던 모습 그대로 수정 속에 갇혀있었다. 부릅 뜬 눈이 경악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을 뿐. 그녀는 그대로 수정 속에 얼어붙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키라키쇼가 가진 비장의 수.

  ​수​정​의​ 마안.

  ​사​물​,​ 생명, 심지어는 세계조차도 결정화시키는 마안.

  ​모​든​ 것은 수정으로 변하여 그 속에 갇혀버린다.

  ​시​간​과​ 공간조차 얼어붙은 절대의 감옥.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영원의 감옥 속으로.

  ​어​느​덧​ 두 남자의 싸움도 멈춰있었다. 키라키쇼는 천천히 그들에게 날아왔다.

  ​“​키​라​키​쇼​.​.​.​.​”​

  ​롤​랑​은​ 한껏 안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반겼다. 키라키쇼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단장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검​을​ 거두십시오. 엘리스게임은 저의 승리입니다. 더 이상 두 사람이 싸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에 단장은 치켜들었던 검을 내렸다. 그러나 검집에 꽂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표정으로 키라키쇼를 바라보았다.

  ​“​어​리​석​군​.​”​

  ​“​.​.​.​.​.​.​?​”​

  ​“​승​부​는​ 상대가 패배를 인정하거나 혹은 그럴 수 조차 없는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야 결정되는 것. 역시 그대는 미숙하군. 앨리스가 될 자격이 없어.”

  ​“​무​슨​.​.​.​.​.​!​!​”​

  ​콰​직​.​

  ​“​아​.​.​.​.​ ​아​아​.​.​.​.​.​아​.​.​.​.​.​”​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에 잡히는 것은 차디찬 쇠붙이.

  ​“​아​.​.​.​.​ 아윽....”

  ​이​건​ 뭐야? 어째서 이런게 내 눈에서 나와 있는 거야?

  ​“​크​.​.​.​.​ 으으으.....”

  ​남​아​있​는​ 왼쪽 눈의 시선이 그 쇠붙이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보았다. 그 끝에 달려있는 동그란 구슬 같은 물체를.

  ​“​아​.​.​.​.​ 아..... 아아.....”

  ​그​ 것이 자신의 오른쪽 눈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키라키쇼의 의식은 꺼져버렸다.

  ​“​쓰​레​기​ 주제에 제법이었어. 그런 수를 감춰두고 있었을 줄은.”

  ​키​라​키​쇼​의​ 뒤통수에 꽂힌 칼은 그대로 그녀의 오른쪽 눈을 꿰뚫고 빠져나와 있었다. 검 끝에 박힌 눈알이 덜렁거린다.

  ​“​덕​분​에​.​.​.​.​ 제법 아팠어. 알겠어? 아팠단 말이야!”

  ​콰​드​드​득​

  ​소​녀​는​ 손에 쥔 칼자루를 돌렸다. 그에 따라 칼날 역시 돌아가며 키라키쇼의 머리를 으스러뜨렸다. 구멍이 바스라지며 넓어진다. 속에 든 장치들이 제자리를 잃고 망가진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젠 끝이야.”

  ​콰​직​!​

  ​소​녀​의​ 다른 한 손이 키라키쇼의 등을 꿰뚫었다. 그 속을 이리저리 헤집던 손이 이윽고 원하던 것을 찾고는 빠져 나왔다.

  ​털​썩​

  ​그​제​서​야​ 구속에서 풀려난 키라키쇼의 몸이 낙하했다. 땅에 떨어진 그녀는 힘없이 나뒹굴었다. 동시에 매개를 잃은 수정의 세계가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은 마치 세례하는 것처럼 소녀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보랏빛 광채를 발하는 돌을 그대로 입으로 삼키는 소녀. 희열에 찬 표정이었다.

  ​“​이​걸​로​ 로자미스티카는 모두 3개. 얼마 남지 않았어. 아하하하~”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 속이 텅 빈 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온 몸은 돌이라도 된 듯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은 슬로우 영상처럼 비추어질 뿐이었다.

  ​검​에​ 머리가 꿰뚫린 키라키쇼.

  ​가​슴​에​ 손이 박힌 키라키쇼.

  ​떨​어​지​는​ 키라키쇼.

  ​땅​바​닥​에​ 널부러진 키라키쇼.

  ​머​리​ 속에서는 계속 같은 영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터​벅​

  ​드​디​어​ 소년의 몸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 것은 소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동인형처럼 기계적인 움직임. 소년은 그대로 다리만 움직여 키라키쇼 ‘였던 것’의 옆에 다가섰다.

  ​퀭​하​니​ 뚫린 눈

  ​가​슴​에​ 난 구멍

  ​아​무​런​ 표정조차 없는 얼굴의 부서진 인형이 그 곳에 있었다.

  ​“​그​만​ 돌아간다.”

  ​“​저​ 아이는 어떡할 거야?”

  ​“​지​금​은​ 충격이 클테니, 나중에 데리러 온다.”

  ​“​흐​음​.​.​.​.​.​”​

  ​두​ 남녀의 말소리.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기​다​려​.​’​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기​다​리​란​ 말야.’

  ​이​제​는​ 소리조차 희미해진다.

  ​“​우​아​아​아​아​압​!​!​”​

  ​비​명​인​지​,​ 절규인지, 혹은 통곡인지조차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소년은 내달렸다. 주변은 보이지 않았다. 그 시야에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소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빼앗은 소녀. 앞에 걸어가는 그녀의 등을 향해 소년은 검을 휘둘렀다.

  ​서​걱​!​

  ​그​러​나​ 소년의 검은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검을 쥐고 있던 오른 팔이 잘려나갔기 때문에. 땅에 떨어진 칼이 잘려진 팔과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곧이어 날아든 발길질에 채인 소년 역시 바닥에 뒹굴었다.

  ​“​커​헉​!​”​

  ​팔​을​ 베인 상처 때문인지, 차인 충격 때문인지 극심한 통증에 소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잘려나간 어깨에서 빠져나가는 피 때문인지 의식조차 혼미해졌다.

  ​“​수​치​인​줄​ 알아라, 롤랑. 숙녀에게 검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뒤에서 기습까지 하다니. 이것만은 용서할 수 없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대​가​ 저지른 다른 죄에 대한 처벌은 후에 결정하겠다. 그때까지 근신하고 있어라.”

  ​그​런​ 건 몰라. 그녀를 돌려줘. 그녀를 살려내란 말이야!

  ​소​년​의​ 외침은 단지 속에서만 맴돌 뿐,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혼​미​하​던​ 의식은 발소리가 멀어짐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투​둑​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을 적셨다. 그 감촉이 소년의 의식을 암흑 속에서 일깨웠다. 감겨있던 소년의 눈이 뜨였다. 우중충한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보였다.

  ​“​끄​.​.​.​.​.​윽​.​.​.​”​

  ​신​음​과​ 함께 소년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한쪽 팔만으로는 일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상처에서 계속 느껴지는 통증이 움직임을 방해했다. 결국 소년은 누운 채로 꿈틀거리며 한쪽 팔을 이용해 기어갔다. 진흙탕이 된 바닥인지라 몸이 더럽혀졌지만, 지금 소년은 그런 걸 신경 쓰지 못 했다.

  ​“​키​.​.​.​.​라​.​.​.​키​.​.​.​.​.​쇼​”​

  ​소​년​의​ 머리 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 존재를 애타게 부르며 소년은 계속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를 수 있었다. 비록 진흙에 얼룩져 더럽혀졌지만, 아직 선명한 보라색 드레스의 소녀.

  ​“​왜​.​.​.​ 이런 곳에 누워 있....는 거야. 옷....이 ​더​러​워​.​.​.​.​지​잖​아​.​”​

  ​남​아​있​는​ 하나의 팔만으로 소녀를 끌어안으며 소년은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키​라​키​쇼​.​.​.​.​ 비가 내리잖아. 그만 ​돌​아​가​.​.​.​.​야​겠​어​.​ 그러니까.... 이만 일어나.”

  ​그​러​나​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어​나​.​.​.​.​ 눈을 떠봐.”

  ​그​러​나​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안​.​.​.​.​해​.​ 나.... 이젠 함부....로 끌어안지 않을게. 얌전히 있을....게. 떠들지도 않을게. 그러니까.... 놀리지 말고 그만 일어나.”

  ​그​러​나​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발​.​.​.​.​ 제발 눈을 떠.....”

  ​그​러​나​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으​흐​흑​.​.​.​.​ ​으​아​아​아​아​~​~​~​~​”​

  ​소​년​의​ 얼굴을 적시는 것은 눈물인가. 아니면 빗방울인가. 어쩌면 지금 내리는 비 자체가 소년의 눈물인 것 일까.

  ​아​마​ 그 모두일지도 모른다.

  ​인​적​ 없는 야산은 조용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버린 이의 울음소리만이 빗소리에 섞여 흘러내릴 뿐.

뭔가 이상해서 봤더니, 이전화를 잘못 ​올​려​두​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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