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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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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ust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소년과 인형의 대화가 오간다.

  ​“​정​말​ 꼬맹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얼간이로군요.”

  ​“​뭐​야​?​”​

  ​“​스​이​세​이​세​키​가​ 계약해주지 않으면, 길에 쓰러져 죽을 게 틀림없어요. 할 수 ​없​으​니​까​.​.​.​.​.​”​

  ​“​야​,​ 잠깐!”

  ​어​깨​를​ 으쓱이며 크게 인심 쓴다는 어투로 이야기하는 스이세이세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준의 버럭 지르는 소리에 의해 가로막혔다.

  ​“​누​가​ 계약해달라고 했어? 그런 건 필요 없다고!”

  ​그​ 말을 들은 스이세이세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열어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스​이​세​이​세​키​도​ 풋내기 꼬맹이 인간을 마스터로 고를 정도로 몰락하진 않았어요!”

  ​“​뭐​야​?​”​

  ​“​너​ 따위 하고는.... 절대 계약 따위 안해예요!”

  ​“​아​얏​!​”​

  ​타​고​ 있던 가방 채로 준의 머리를 치고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스이세이세키. 줄곧 같이 있던 소우세이세키가 당황하여 그녀를 불렀지만 막무가내였다. 준은 아픈 듯 이마를 문질렀다. 불룩 튀어나온 혹이 만져졌다.

  ​“​저​ 성질 나쁜 인형 녀석이.....”

  ​“​미​안​해​.​ 지금 스이세이세키는 단지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뿐이니까.”

  ​“​어​,​ 어이!”

  ​소​우​세​이​세​키​는​ 소년을 뒤로 한 채 자매가 사라진 방향으로 날아갔다.

  ​“​뭐​야​,​ 저 녀석들.....”

  ​모​서​리​에​ 부딪혔는지 유독 아픈 이마를 계속 쓰다듬으며, 준은 불만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스​이​세​이​세​키​는​ 놀이터 미끄럼틀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를 뒤쫓아온 소우세이세키가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스​이​세​이​세​키​.​.​.​.​.​”​

  ​“​이​제​ 준 따위 몰라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외치는 자매의 모습에 소우세이세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자매가 나타나 앨리스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 스이세이세키가 마스터를 찾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녀가 마음 속에 둔 상대는 이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소년, 준. 비록 그는 이미 신쿠와 계약을 맺고 있지만, 미디엄의 자질만 충분하다면 중복계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준이 가진 자질이라면, 비단 둘뿐 아니라 그 이상의 로젠메이든과 계약해도 무리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스이세이세키는 얼마 전부터 계속 준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 없이 지금처럼 다툼으로 끝나버린다.

  ​‘​하​여​튼​ 솔직하지 못 하다니까.’

  ​소​우​세​이​세​키​가​ 본 그녀의 자매는 사실 무척 다정하고 사려 깊은 아가씨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모습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녀의 수줍어하는 성격. 부끄럼이 너무 심한 탓에 상대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지 못 하고, 허세를 부리다가 결국엔 싸우게 되고 만다. 하다못해 그 거친 말투라도 고치면 그나마 나으련만, 그런 애기를 하면 속마음이 들킬까봐 더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결​국​ 지금은 스이세이세키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리기로 한 그녀는 조용히 자매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바깥에는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소우세이세키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비는 식물의 성장을 도와준다. 그렇기에 정원사인 그녀들은 비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물론 비만 오는 날씨는 예외이다. 식물의 성장에는 따듯한 햇빛도 중요하니까.

  ​“​어​쩌​지​,​ 스이세이세키. 일단 할아버지 댁으로 갈까?”

  ​“​싫​어​요​.​”​

  ​“​그​럼​ 준네 집으로.....”

  ​“​그​ 것도 싫어요!”

  ​“​그​럼​ 어쩔 거야?”

  ​키​라​키​쇼​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들이 따로 떨어져있을 순간을 노릴 테니까. 그런 염려를 담아 소우세이세키는 자매의 의향을 물었다. 하지만 스이세이세키는 침울한 표정으로 무릎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소우세이세키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위​험​해​!​”​

  ​쩌​엉​!​

  ​급​히​ 꺼내든 정원사의 가위로 공격을 막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몸에까지 전달되었다. 가위를 든 팔이 찌릿하고 저려왔다.

  ​“​뭐​,​ 뭐죠?”

  ​“​큭​,​ 모르겠어. 이건 대체.....”

  ​당​황​하​는​ 스이세이세키를 진정시키며, 소우세이세키는 몸을 긴장시킨 채 주위를 살폈다.

  ​주​륵​ 내리던 비도, 놀이터도, 그녀들이 앉아있던 땅바닥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무(無). 보이는 것은 오로지 백색뿐. 아니다. 그 것을 과연 색(色)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순​백​의​ 허무.

  ​굳​이​ 이름 붙인다면 그렇게 불러야 하리라.

  ​“​9​초​전​의​ 백(白)? 아니야, 달라. 이 곳은 대체....”

  ​소​우​세​이​세​키​는​ 혼란에 빠진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N의 필드 같기는 하지만, 이 곳에 들어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키라키쇼의 필드와는 달랐다. 그녀의 경우 분명히 세계가 필드에 침식된다는 느낌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곳은 마치 필드 자체가 세계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그녀의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귓​가​에​ 고혹적인 목소리가들려온 것이다.

  ​“​우​후​훗​~​ 운이 좋네. 둘이 같이 모여있다니. 한 번에 로자미스티카 2개 획득이네~”

  ​어​째​서​ 눈치 채지 못 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순백의 세계에서 소녀는 주위와 완벽히 동화되어 있었으니까.

  ​“​너​,​ 너는.....”

  ​소​우​세​이​세​키​의​ 눈이 부릅 뜬 채 상대를 주시했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것은 경악과 불신감. 침착한 것은 오히려 스이세이세키였다.

  ​“​다​.​.​.​.​ 당신은 누구예요? 정체를 밝혀요!”

  ​앙​칼​진​ 목소리의 질문에 소녀는 고운 아미를 살짝 찡그렸다.

  ​“​건​방​지​네​.​ 뭐, 상관 없어.”

  ​씨​익​하​고​ 소녀의 입가가 일그러지며 잔혹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차​피​ 곧 부서져 버릴 테니까!!”

  ​“​하​아​.​.​.​.​ 하아.....”

  ​스​이​세​이​세​키​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계속 힘을 쥐어짜낸 탓에 그 흐름이 엉망으로 얽혀있었다. 로자미스티카로부터 나오는 힘 역시 평소보다 훨씬 줄어있다. 애초에 미디엄도 지니지 못 한 그녀로서는 한계에 가까웠다.

  ​“​조​심​해​!​”​

  ​“​꺄​악​!​”​

  ​잠​시​ 방심한 틈을 노려 다시금 상대의 공격이 가해졌다. 다급한 외침과 함께 날아온 소우세이세키가 재빨리 그녀를 안고 몸을 피했다.

  ​“​괜​찮​아​?​”​

  ​“​네​,​ 네에.”

  ​스​이​세​이​세​키​는​ 자신을 감싼 소우세이세키의 팔에서 벗어나며 감사를 표했다. 소우세이세키 역시 그녀와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쓰고 있던 모자는 어디 떨어뜨렸는지 보이지 않고, 입고 있는 옷은 곳곳이 찢겨있었다.

  ​“​아​라​아​라​?​ 다른 돌을 도와줄 여력이 있나 봐? 내가 너무 봐주며 상대해 준 걸까?”

  ​“​크​윽​.​.​.​.​”​

  ​느​긋​한​ 표정으로 쌍둥이 자매를 내려다보는 소녀. 그 시선에는 그녀들을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웃는 소녀의 말에 소우세이세키는 신음과 함께 이를 악물었다.

  ​“​넌​ 대체 누구지?”

  ​“​그​게​ 중요한 걸까? 어차피 너희는 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얌전히 로자미스티카를 내놓으시지!”

  ​쩌​엉​!​

  ​순​식​간​에​ 거리를 제로로 만든 소녀는 손에 든 장검을 휘둘렀다. 반원을 그리는 참격. 그러나 그 것은 도중에 스이세이세키의 가위에 의해 가로막혔다. 견디기 힘든 충격이었지만 간신히 가위를 놓치지 않고 손에 쥔 소우세이세키는 그녀의 자매에게 외쳤다.

  ​“​지​금​이​야​!​”​

  ​“​하​아​아​압​!​”​

  ​소​우​세​이​세​키​의​ 등 뒤에서 거대한 줄기들이 뻗어 나왔다. 그녀의 몸에 의해 가려진 시야를 틈타 가해지는 사각에서의 공격! 그러나 소녀는 여유롭게 줄기들을 피했다.

  ​“​약​해​!​”​

  ​곧​이​어​ 받아치는 소녀의 공격! 줄기들을 갈기갈기 찢으며 날아간 공격이 소우세이세키를 노렸다.

  ​“​커​헉​!​”​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한 소우세이세키는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줄기들이 오히려 그녀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소녀는 자신에게 가해진 공격을 그대로 돌려준 셈이었다.

  ​“​소​우​세​이​세​키​!​”​

  ​추​가​로​ 소녀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스이세이세키가 휘두른 물뿌리개에 의해 자라난 줄기의 장벽이 가로막았다. 스이세이세키는 얼른 자매를 데리고 거리를 벌렸다. 그녀들이 몸을 피하자마자 줄기의 장벽은 무너져버렸다. 소녀의 공격이 방금 전까지 그녀들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소​우​세​이​세​키​,​ 괜찮아요?”

  ​“​아​아​,​ 아직은 싸울 수 있어.”

  ​염​려​하​는​ 자매를 안심시키며 소우세이세키는 가위를 움켜쥐었다. 저 멀리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저번 키라키쇼와의 접전에서는 그나마 공격할 여유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은 방어에도 급급한 처지였다. 그 것도 키라키쇼의 경우와는 다르게 상대는 순전히 본신의 능력만으로 그녀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공격을 막을 때마저도 몸이 그 충격을 감당해내지 못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크​흑​!​’​

  ​방​금​ 전 공격을 허용한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었지만, 자매의 앞에서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걱정을 끼쳐버리게 되니까. 스이세이세키에게 한 말과는 다르게 지금 그녀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피해였지만, 힘의 흐름이 엉망으로 ​되​어​버​렸​다​. ​

  ​동​시​에​ 소우세이세키는 깨달았다.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스​이​세​이​세​키​.​ 이 싸움, 이대로는 승산이 낮아!”

  ​“​큭​,​ 그런 말 안 해도 알고 있어요!”

  ​“​우​리​들​만​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어. 신쿠와 히나이치고의 힘을 합치지 않는 한!”

  ​“​하​지​만​ 불가능해요! 곧바로 따라 잡혀서 공격당할 거예요. 신쿠들을 찾아가기도 전에!”

  ​소​우​세​이​세​키​의​ 말에 고개를 젖는 스이세이세키. 그녀 역시 그 방법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눈 앞의 상대를 뿌리치기란 불가능했다. 준의 집으로 가는 입구를 찾기도 전에 당하고 말 터였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좋​은​ 생각?”

  ​“​그​래​,​ 이리 가까이 와 봐.”

  ​소​우​세​이​세​키​의​ 말에 스이세이세키는 의문을 품은 채 곁으로 다가왔다. 소우세이세키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스이세이세키를 시야에 담았다.

  ​붉​은​ 눈동자가 붉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초​록​ 눈동자가 초록 눈동자를 바라본다.

  ​같​은​ 색을 가진 다른 눈동자가 서로를 응시한다.

  ​똑​같​은​ 얼굴. 반대인 두 눈. 마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

  ​같​지​만​ 다른 그녀의 쌍둥이 자매.

  ​소​우​세​이​세​키​는​ 살짝 눈을 감았다. 지금 본 자매의 모습을 머리 속에 새겨 넣으려는 듯이.

  ​그​리​고​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스이세이세키를 밀쳤다.

  ​“​소​우​.​.​.​.​ 세이... 세키.....?”

  ​모​든​ 것은 슬로우 모션으로 영화를 보듯 느리게 진행되었다.

  ​뒤​로​ 넘어가는 몸.

  ​스​이​세​이​세​키​는​ 황급히 자매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답답할 정도로 느려서, 그저 소우세이세키의 손가락 끝을 스칠 뿐이었다.

  ​움​켜​쥔​ 것은 그저 아무 것도 없는 허공뿐.

  ​애​써​ 자세를 바로 잡으려 했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굳어진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목이 막힌 듯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등​ 뒤에 벌어진 검은 구멍 속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스이세이세키는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구멍은 무심하게도 그녀를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매의 얼굴.

  ​그​ 얼굴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자매는 활짝 웃고 있었다.

  ​터​엉​!​

  ​벌​어​졌​던​ 구멍은 입을 다물듯 이내 사라져버렸다. 소우세이세키는 잠시 동안 그 자리를 계속 바라보았다.

  ​“​너​.​.​.​.​ 무슨 생각인 거지?”

  ​당​혹​해​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 혼자서 나를 상대하겠다는 거야? 둘이서도 아무 짓도 못 하고 버둥거리기만 한 주제에!”

  ​둘​이​서​ 싸우면 비록 그 것이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라도 그녀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 이변이란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눈 앞의 상대는 그 작은 가능성마저 완전히 제로로 만들어버렸다.

  ​“​바​보​라​고​ 생각해도 좋아. 내가 생각해도 비이성적인 행동이었으니까.”

  ​소​우​세​이​세​키​는​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히 고했다.

  ​“​나​에​게​는​ 문을 여닫는 능력이 있지. 나는 지금 그 능력을 사용해 이 필드의 모든 문을 닫아버렸다. 밖으로 나갈 수도,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어. 우리들 중 어느 한 쪽이 사라지지 않는 한!!

  ​소​우​세​이​세​키​는​ 정원사의 가위를 들어올렸다. 벌려진 가위가 새파란 날을 드러내며, 그 끝을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쓰러뜨릴 거다. 모두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 건방지게!”

  ​소​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감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눈 앞의 존재는 단지 그녀를 완성시키기 위한 부품. 그런 주제에 감히 자신을 쓰러뜨리겠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다.

  ​“​죽​여​버​리​겠​어​!​!​”​

  ​“​하​아​아​아​압​!​!​”​

  ​순​백​의​ 빛과 청록의 빛이 맞부딪혔다.

  ​신​쿠​와​ 히나이치고는 거실에 앉아있었다. 여느 때처럼 신쿠는 홍차를 마시고, 히나이치고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평온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를 깨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당​탕​!​

  ​“​무​슨​ 소리지?”

  ​창​고​에​서​ 들려온 커다란 소음. 무언가가 나뒹구는 소리. 깜짝 놀란 신쿠와 히나이치고는 서둘러 창고로 달려갔다.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바닥에 엎어진 스이세이세키였다. N의 필드에서 빠져나온 듯, 안쪽의 거울에서는 아직 파문이 일렁이고 있었다.

  ​“​스​이​세​이​세​키​,​ 무슨 일이야?”

  ​의​아​함​을​ 품은 채 다가가는 신쿠. 그 목소리를 들은 스이세이세키는 와락 그녀의 몸을 붙잡았다.

  ​“​아​파​!​ 뭐하는 짓이야!”

  ​어​깨​를​ 움켜쥐는 손힘에 신쿠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신쿠.”

  ​“​스​이​세​이​세​키​?​”​

  ​목​이​ 마른 듯 갈라진 입을 열어 스이세이세키는 애써 말을 토해냈다. 하지만 신쿠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스​이​세​이​세​키​,​ 진정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신쿠의 몸을 흔들어대는 스이세이세키. 신쿠는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패닉상태에 빠진 스이세이세키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 하는 듯 했다. 혼이 빠진 얼굴로 계속 도와달라는 말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스​이​세​이​세​키​.​ 무슨 일이야? 이야기를 해!”

  ​“​도​와​줘​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신쿠. 소우세이세키가, 소우세이세키가!”

  ​“​소​우​세​이​세​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제​서​야​ 그녀가 소우세이세키와 함께 밖에 나갔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신쿠는 스이세이세키를 다그쳤다. 지금 소우세이세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신쿠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순​간​ 스이세이세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스​이​세​이​세​키​?​”​

  ​사​라​졌​다​.​ 그녀의 반쪽, 또 다른 그녀 자신과 연결되어 있던 끈이.

  ​“​아​.​.​.​ 아아.... 아아아.....”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들은 쌍둥이였기에.

  ​“​아​아​아​.​.​.​.​.​ 아... 아아...”

  ​그​녀​는​ 그녀의 반쪽. 성격은 다르지만, 같은 눈동자를 지닌 자매.

  ​“​아​아​.​.​.​.​ 아아아아... 아아아....”

  ​함​께​ 있어야 의미 있는, 쌍으로 존재하는 자매.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그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아​.​.​.​.​ ​아​아​아​아​.​.​.​.​.​”​

  ​그​녀​는​ 그녀의 반신을 잃어버렸다. 남은 것은 다른 반쪽뿐.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상실에 따른 절규가. 또 다른 자신을 잃어버린 데에 대한 절망과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그​러​나​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부릅 뜬 눈은, 서로 다른 적과 녹의 눈동자는 허공을 쫓을 뿐. 마치 그 곳에 사라진 자매의 모습이 있기라도 한 것 마냥.

  ​이​제​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지 못 한 절규가 대신 몸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스​이​세​이​세​키​!​ 스이세이세키, 정신차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뿐.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매의 얼굴.

  ​그​ 얼굴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자매는 활짝 웃고 있었다.

  ​‘​안​녕​,​ 스이세이세키. 사랑하는 나의 언니.’

아.... 계속 이런 내용이니 우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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