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
10월 22일
눈을 뜬 유키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을 일으키고, 얼이 나간 듯이 고개를 몇 번 돌린다. 방 안을 둘러보고, 틀림없이 자기 방이라는 걸 확인한다.
굉장히 긴 꿈을 꾸고있던 기분이 든다.
“하핫…….”
마른 웃음이 나온다.
변함없는 자신의 방.
책상에 침대에 옷장, 오디오나 게임류가 놓여있는 선반, 책장, 적당히 널부러져있는 마루, 모든 게 낯익은 것들이었다.
손으로 머리를 누른다.
그런 꿈을 꾸다니, 자신도 굉장히 망상이 심한 모양이다. BETA에 전술기라니,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곤 해도 다들 이야기를 들으면 웃을 것 같다.
……다들이라니, 누구야.
당연하잖아. 요시노에 레이, 츠타코에 코바야시, 노리코, 쇼코, 미나코……친밀한 친구, 후배나 선배들.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자 8시 10분. 서둘러 일어나서 학교에 안 가면 지각해 버릴 시간이다.
거기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애초에 8시를 지나서도 자고 있었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 평소라면 진즉 요시노와 레이가 깨우러 와서, 계속 자려고 했다간 요시노의 프로레슬링 기술이 작렬하곤, 그러다 어째선지 레이에게 성희롱 섞인 짓을 해 버리고, 패닉에 빠진 레이에게 막타를 먹고, 이런 아침 광경이 펼쳐지지 않으면 이상할 텐데.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너무 조용하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조용해서, 귀를 기울여 봐도 사람 목소리나 술렁거림, 동물의 울음소리,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 그런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라곤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도 틀림없을 거라는 예감도 느껴졌다.
유키는 확인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역시나, 거기에 펼쳐져 있는 건.
“…………레알이냐, 하하, 하.”
실소밖에 안 나왔다.
곁에 있어야 할 요시노의 집은 거대한 로봇 같은 것의 하반신에 찌푸러져, 집이라 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레이의 집도 마찬가지다.
“이건 분명, ‘게키신’이지…….”
마찬가지다.
저번과 변함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다. 요시노와 레이의 집은 찌푸러지고, 주변에도 멀쩡한 주택가의 모습이 아닌 단순한 폐허가 되어있다.
이게 현실이라고 하면 아까까지 건 예지몽이었던 걸까, 아니면 돌아온 걸까.
모른다면 확인해볼 수밖에 없다. 유키는 일단 방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폐허인 거리로 발을 디뎠다.
걷기 시작하고 바로 위화감을 느꼈다.
한가득 펼쳐진 폐허나 마찬가지인 마을. 그것까진 바뀌지 않았는데, 전혀 본 적 없는 곳인 것 같았다.
모두 박살 나버려서 알아보긴 힘들지만, 자신이 살고 있던 동네는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뒤를 돌아보면, 자신의 집과 요시노, 레이의 집. 그것들만은 변함없었다.
“기분 탓……인가?”
하지만 걸음을 옮겨갈수록 기분 탓이 아니라는 걸 느낄 뿐이었다. 건물은 무너져있어도, 길은 남아 있다. 아무리 걸어봐도 유키가 모르는 동네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한때 역이었던 것 같은 건축물에 도착했다. 쇠퇴한 역사에는 ‘히이라기초 역’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요코하마 쪽……인가?”
그다지 왔던 기억이 없기에 모르는 거리라고 느꼈던 것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왜, 요코하마 같은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 머물러 있을 수도 없어서, 적당히 걸어가다가 이윽고 완만한 오르막에 도착해, 언덕을 올라가자 그곳에서 삼엄한 건물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유키가 소속해 있던 기지와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틀림없이 군사 기지다.
“무슨 일이야, 대체…….”
영문을 알지 못한 채로 비트적비트적 문쪽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기다려, 멈춰라. 넌 누구냐.”
문에서 경계를 서는 병사 둘이 유키가 가는 길을 막는다.
수염 한 명 흑인 한 명에, 수염이 총을 유키에게 향하고 흑인 쪽이 신중하게 다가온다. 이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있었지만, 경계병은 이 둘은 아니었다. 이미 유키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달라졌기에 이전 기지의 중요인물 이름을 낸다고 해도 효과는 전혀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주저하는 동안에 신병을 구속당해 영창에 처박혀 버렸다.
“젠장……뭔가가 다른 건지, 애초에 전제가 다른 건지…….”
홀로 틀어박힌 어슴푸레한 영창에서 고민한다.
이 기지는 요코하마방면 기지라고 정문에 쓰여 있었다. 유키의 기억으론 이전에 속해있던 건 무사시노 기지였으니까 서로 다른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면 왜 이런 상황이 된 걸까.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역시 전혀 다른 세계인 걸지도 모른다.
다시금 이전 세계에서 경험한 걸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각에 잠기기에는 딱 좋은 공간이라고 말 못할 것도 아니다.
이전 세계에서 유키는, 처음에는 이 세계를 꿈이라고 생각해 신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꿈같은 게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뒤에, 훈련병으로서 기지에 속할 곳을 얻었지만, 당연하게도 매일 모두의 발목을 잡기만 해댔었다.
이윽고 훈련을 마치고, 위사가 되어, 정작 BETA와 싸우기 전에 일어난 일이 ‘얼터너티브 5’의 발동이었다. 남게 된 동료들과 함께 탈출하는 구축함을 배웅할 때까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의 기억이 중간중간 애매했다.
계속 싸워온 기억은 있다. ‘얼터너티브 5’는 결국 BETA를 섬멸하는데는 실패하고, 유키의 부대도 전장에 끌려나갔다. 온갖 전장을 돌아다녀, 동료들을 잃고, 이윽고 자기 자신도 BETA의 손에 걸려 죽었다.
기억은 애매했지만 중요한 건 기억하고 있다. ‘얼터너티브 5’는 발동시켜선 안 된다. 그걸론 답이 없다는 건 몸에 박혀 있었으니까.
“그래도……이 세계도 똑같은 건가……?”
이미 전개가 크게 달라, 얼터너티브 계획 그 자체가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은 그걸 확인해야만 한다.
혹시나 얼터너티브 계획이 존재한다면 목표는 명확하다. ‘얼터너티브 4’를 성공시켜, ‘얼터너티브 5’가 발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젠장, 어쩌지……? 그렇다고 하면 이런 데 처박혀 있을 상황이 아닌데.”
며칠간이나 자유를 빼앗기는 건 심한 타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행동을 해야만 하겠지만, 어떡하면 좋은지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감싸안았다.
“――정말, 오늘은 이상한 날이네. 잇따라 둘이라니.”
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든다.
“에리코 선생님……에?!”
“에? 뭐야, 또 ‘선생님’?”
서 있던 건 에리코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여성이었다. 공통점을 들라고 하면 미인이고 가슴이 크다고 하는 부분 정도다.
여성은 평가하는 듯한 눈길로 유키를 사양없이 보고 있다.
에리코가 아니라는데 실망했지만, 문득 생각을 고친다. 저번 때도 이렇게 붙잡혀 갇혀있던 유키의 상태를 에리코가 보러 왔었다.
“저기! 이 기지의 부사령……이지요?”
일어나서 쇠 격자에 손을 댄다.
여성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직감이 이걸 놓쳐선 안 된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지금 당장에라도 발뒤축을 돌려서 떠나갈 것 같은 기색을 풍기고 있다. 붙잡을 만한, 뭔가 강렬하게 주의를 끌 만한 건덕지가 필요하다.
“저를, 여기서 내 주세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라면 여기서도 할 수 있잖아?”
“남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깁니다. 여기는 모니터 되고 있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줄 수는 없어. 여기서 이야기하도록. 싫다면 나는 돌아갈 거고.”
“…………‘얼터너티브 4’는 실패해요.”
“에?!”
“지금도 하늘 위에서는 5번째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거지요?”
“기다려.”
내기였다.
모두 같은 세계는 아니라도, 비슷한 세계라면 분명 ‘얼터너티브’ 계획은 존재하리라고.
“……확실히, 여기서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네. 좋아, 장소를 바꾸자.”
여성의 말에, 아무래도 내기에 성공한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다곤 해도 어디까지나 처음 첫 게임 이야기고, 게다가 상대는 단순히 간보려는 정도겠지. 앞으로가 본편이었다.
요코시마기지 부사령관의 방.
부사령관의 이름은 코즈키 유코, 날카롭긴 하지만 굉장한 미녀라는 건 틀림없다.
유코의 권한으로 영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좋았지만, 그 뒤는 4시간에 걸쳐서 온갖 검사를 받아 녹초가 됐다. 뭐, 신체검사를 받는 걸로 기억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이전 세계의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건 수확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서 스스로 깨달았을테니, 기쁘진 않다.
검사가 끝난 뒤에는 유코의 방에 끌려가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고 유코의 질문에 대해 대답했다. 전에도 비슷한 세계에 있었다는 것. 하지만 요코하마 기지가 아니었다는 것. 얼터너티브 계획에 대한 것. 처음에는 잘 얼버무릴까 했는데, 유코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중간에 모순이 나올 건 뻔하니 그만뒀다.
얼터너티브 계획에 대해서는 이전 세계에 있을 때 에리코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범위 내에서 설명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이야기하면서도 믿을 수 있을법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야기 중간에 유코는 총을 향할 때도 있어서, 틀렸나 싶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유코는 총을 내리고 유키의 이야기를 믿어 주었다. 아니, 믿은 것까진 아니겠지만 적어도 들을 가치가 있다고는 평가해 준 거겠지.
“흐응~. 그런데, 무사시노 기지구나. 적어도 이 세계에 그런 기지는 존재하지 않아.”
예상하고 있었다곤 해도, 실제로 들으면 역시 충격이었다. 그러면 그 기지에서 절차탁마해온 동료는, 엄하게 훈련시켜 준 상관은, 다른 기지의 직원들은 어떻게 됐다는 건가. 요코하마 기지에 존재해 준다면 기쁘겠지만.
“그런 이야기 내용으로, 발도 총을 내려 주셨네요.”
“나는 천재니까,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거라면 간단해. 그리고 내 뇌는 너 같은 존재가 있을 가능성은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 그런가요?”
“뭐어. 그리고, 그 외에도 나는 네가 거짓말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적어도 너 스스로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찾아왔다고 믿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그야,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요.”
뭘 기반으로 판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믿어 주는 건 고맙다. 여기서 버림받았다간 유키에겐 믿을만한 곳은 없는 거니까.
의문은 끊이지 않지만, BETA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 위기를 맞았고, 얼터너티브 계획은 돌고 있다. 그렇다면 유키가 할 수 있는 건 ‘얼터너티브 4’가 완성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거다.
“하지만 너희들, 정말로 뭔가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말씀이신가요?”
“여기까지 가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이상하니까.”
“그러니까, 무슨 마……”
말을 하려다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다.
영창에서 처음으로 유코를 만났을 때, 유코가 무의식중에 분명 “잇따라 둘”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별로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었지만, 지금 유코의 말과 더하면 아귀가 맞는다.
“코즈키 박사……?”
유키의 말을 무시하고 유코는 단말기를 조작하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조금 지쳤어. 같은 일을 이어서 하게 될 줄이야.”
의문을 꺼내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퍼뜩 뒤를 돌아보자, 방 안에 발을 디뎌 넣는 사람이 한 명.
젊다. 아마 유키와 비슷할 정도로 젊고 학생이라고 해도 문제없어 보이는 남자. 어리다는 느낌조차 남아있는 얼굴을 보고 기억이 자극된다.
“뭔가요, 코즈키 선생님. 계속 기다리게 하곤, 뭔가 있었……응?”
입실해 온 남자의 말이 멈춘다. 유키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어라…….”
무심코 정면에서 마주본다.
“시로가네, 너 이 녀석에 대해 알고 있어?”
“에? 아뇨, 이런 전개, 저는 모르――”
시로가네, 라고 불린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유키를 바라본다.
그 소리를 다시 듣고 되살아나는 기억.
“어이어이, 날 기억 못하는 거야?”
“――?! 너, 설마.”
유키의 말을 듣고, 시로가네도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역시 너희들, 아는 사이구나. 한패……라고 치기엔 너무 부자연스럽지만.”
불신감이 가득한 눈초리로 유코가 둘을 노려보고 있지만, 그런 눈길조차 신경쓰이지 않았다.
유코는 “잇따라 둘”이라고 말했다. 거기다 아까는 “너희들”이라고도 말했다. 거기서 끌어낼 수 있는 답은, 유키와 같은 처지인 사람이 또 한 명, 유키보다 먼저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시로가네가 보여준 반응.
“하핫……무슨 일인지.”
무심코 웃음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하――――하핫, 어이어이, ‘레알’이냐.”
시로가네도 표현하기 힘든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아아, ‘레알’이야.”
이건 정말, 웃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유코 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심기가 언짢은 듯이 둘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여어, 제대로 기다려 주고 있던 모양이네. 자, 말했던 대로 제대로 나는 찾아왔지…………‘실버 팡’?”
“뭐가 말야. 정말, 너무 기다리게 했잖아……‘트릭 스타’씨.”
틀림 없다.
눈앞의 남자도 역시, 유키와 비슷하게 세계를 루프해서 찾아온 거다. 유키가 이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말을 나눈 상대, ‘실버 팡’.
무슨 인연인지 이번에는 이렇게 처음부터 얼굴을 맞대게 되었지만, 과연 이게 좋게 구를지 나쁘게 구를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렇게 두 번째의 세계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