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리운 액시던트
10월 24일
“헤에, 재밌어 보이잖아. 좋아, 해봐 줄게.”
“레알임까?!”
이른 아침밥을 먹은 뒤 바로 유코의 집무실로 향해 타케루와 함께 어제 생각한 전술기의 신무장에 대한 개요를 보여주자, 유코는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룻밤만에 만들었다곤 해도, 나름대로 정리한 유키와 타케루의 진언. 그게 어떤 때 도움이 될지를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쓰느라 잠도 별로 자지 못했다.
역작이라고 할만한 물건까진 아니지만, 그걸 파라락 넘겨보기만 하곤 오케이 사인을 내리면 기뻐해야 할지 장난으로 하는 소린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되물어 버린 거다.
“스스로 가져왔으면서, 그렇게 놀랄 거 없잖아? 뭐, 있는 걸 전부 해줄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한 유코의 태도가 아직 믿기지 않아, 고개를 돌려 타케루와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아무래도 신형병기는 바로 내놓을 수 없지만, 기존 무기를 쓸 수 있는 것들은 수고도 시간도 오래 안 걸릴 것 같고. 우선은 시뮬레이터에 틀어박혀서 신 OS랑 같이 기능을 확인해 보도록 해.”
“에, 벌써 새 OS가 다 된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아직 완성이야 안 됐지만……아아, 내일이나 모레 테스트용 버전은 나올 것 같으니, 그때가 되면 후쿠자와에겐 테스트 파일럿을 맡길 테니까.”
유코는 간단한 듯이 말했지만, OS라는 게 그렇게나 간단히 만들어지는 물건인가. 메인으로 작업하고 있는 건 카스미일텐데, 그만큼 우수하다는 이야긴가. 역시나 천재라고 불리는 코즈키 유코의 조수를 하는 값은 한다.
“그래서, 볼일은 그것뿐이야? 만족했으면 나가 줘. 나는 바쁘니까.”
필요한 이야기만 다 듣곤 이제 필요 없다는 듯 바로 내쫓는다. 이대로 방에 돌아가는 것도 좀 그래서, 타케루의 제안에 따라 카스미를 만나러 가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 보았다.
카스미는 과묵하긴 했지만, 딱히 두 사람을 싫어하는 기색도 없었고 말을 걸면 대답은 돌려 준다. 카스미 같은 어린 애가 기밀 프로젝트의 중심에 가까운 위치에서 개발과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는데 다시금 놀란다. 지금은 세계 전부가 최전선이기에, 어른이건 애건 능력이 있고 상황에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온갖 곳을 뛰어다니고 있는 거다.
세계를,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라곤 해도, 어린 애에게 힘든 중책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 마음을 새로이 느끼면서 카스미와 헤어진다.
“……바이바이.”
떠날 때,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드는 카스미의 미소를 받으며 방을 나선다.
“그래도, 좀 맥빠지네. 그렇게나 시간을 들였는데…….”
“뭐, 써 주겠다고 한 거니까 괜찮잖아. 그것보다, 유키는 열심히 테스트를 해서 우리가 전술기에 탈 때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달라고.”
“아, 나한테 귀찮은 걸 떠맡기고, 완성품에만 타려는 꿍꿍이냐.”
“얌마, 재밌는 부분은 다 가져가는 거면서 불만 뱉지 마. 나도 전술기에 정말 타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고 있지만, 타케루가 하는 이야기는 진심이겠지. 루프 한 뒤에도 지식도 체력도 원래 상태다 보니, 훈련 메뉴따윈 따분할 거다. 그런데도 훈련생을 지원하고 싶다고 하는 거니, 정말로 소중한 동료인 거겠지.
동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욱신거린다.
“아아, 맡겨 둬. 타케루가 전술기에 탈 즈음엔, 새 OS와 무장으로 완전히 너보다 위에 가 있어 줄테니까.”
“바로 역전 할거야.”
둘은 서로 힘있게 마주 웃고.
목적을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그렇다곤 해도, 유키는 새로운 OS와 무장이 완성되기 전까진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렇기에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하는데 시간을 써 나간다. 새로운 개념이 도입된다고 해도, 그걸 쓸 수 있을만한 실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오전 중에는 체력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한 메뉴를 담담히 해치우고, 점심을 후딱 해치운 뒤 시뮬레이터를 통해 훈련하기로 한다.
시뮬레이터를 쓴 훈련은 좋아했다. 실기를 쓴 훈련을 할 수 있다면 최고인 거야 당연하지만, 탄약 문제든 정비 문제든 돈이 걸리기 마련이라 쉽사리 할 수 있을 리 없다. 거기에 비해 시뮬레이터는 다른데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껏 훈련할 수 있다.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괜찮은 거다. 정밀한 시뮬레이터는 실기랑 다른 부분도 거의 없고, 실기로 옮긴 뒤에도 시뮬레이터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전부 해낼 수 있다.
그럴싸한 이유를 잔뜩 들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애초에 게임을 좋아하던 유키에게는 게임을 할 때의 감각에 가깝다. 끝없이 계속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디메리트도 있지만.
“……젠장, 당했나.”
볼크 데이터를 통한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도 자신이 조작하던 기체가 대파한 걸 보고 몸의 힘을 뺀다.
혼자서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타케루와 함께 했을 때 보다 진도가 나쁘다.
단지, 새삼스레 여러 것들을 의식하면서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캔슬이나 콤보라는 개념이나 신규무장이 있으면 혼자서도 좀 더 깊은 곳까지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최대한 나은 결과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BETA에게 대항하기에 힘이 크게 벅찼다.
훈련도, 시간을 들이기만 하는 걸론 효과가 적다. 뭘 목적으로 삼고 뭘 얻고자 하는지를 항상 생각하면서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시뮬레이터에서 밖으로 나오자, 어째선지 주위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드디어 나왔나.”
“몇시간 달린 거야?”
“대단하네, 대체 누구지?”
그건, 시뮬레이터에 들어간 뒤로 나올 기색이 없던 유키에 대한 놀람과 찬탄이 섞인 이야기였지만, 유키 입장에선 거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후다닥 이 자리에서 떠나려고 발뒤축을 돌리곤, 잽싸게 도망가듯이 떠나갔다.
“역시, 시뮬레이털 너무 독점했나? 저 녀석, 혼자서 대체 얼마나 쳐 해 싸는 거야, 같은 식으로 느꼈으면 좀 그런데.”
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긴 하지만, 훈련을 안 할 수도 없다.
결국,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기도 해서, 저녁을 먹은 뒤 다시금 시뮬레이터로 훈련을 진행하고 하루를 마쳤다.
10월 26일
아침을 먹자 마자 유코의 집무실에 불려갔다. 오늘 아침은 타케루는 없이, 유키 혼자다. 안에 들어가자 유코와 카스미의 모습이 보였다.
“새 OS의 테스트 버전이 완성됐어.”
유코는 서두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제도 들었긴 하지만, 정말로 이런 단기간에 완성되면 놀란다.
“카스미가 굉장히 힘내 줬으니까, 고마워하라고~.”
그 말을 듣고 카스미를 보자, 확실히 눈이 좀 붉고, 눈 아래에 기미같은 게 껴있는 것 처럼 보였다.
유키는 카스미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춘다.
“그렇구나, 힘내 준 거지?”
“예…………힘냈어요…….”
“고마워, 카스미 쨩.”
“?!”
스윽 머리를 쓰다듬자, 토끼귀가 폴짝 뛰어올랐다.
뺨도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다.
“바로 후쿠자와에겐 시험을 부탁할 테니까, 시뮬레이터 룸으로 가겠어. 오늘 하루, 관계자 외에는 출입 금지로 해 뒀으니까.”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요. 어 잠깐, 코즈키 박사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모처럼 만든 거니까, 자신할만한 건지 보겠어.”
그렇게 되어, 유코, 카스미와 같이 시뮬레이터 룸을 향하게 되었다.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시뮬레이터 룸은 고요했다. 유코가 관제를 맡고, 유키는 기대를 안고 시뮬레이터를 기동한다.
“……우옷, 이건…….”
움직여 보곤, 기체의 반응이 상상 이상이라 놀란다. 지금까지의 조종과 똑같이 생각했다간 기체가 제대로 제어도 되지 않을 정도다. 조종간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작에 거의 낭비가 없다.
하지만 원래 예전의 세계에서 온갖 게임을 마쳐온 몸이다 보니, 그리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고 서서히 자유자재로 몰 수 있게 되어간다.
그리고 잘 몰 수 있게 되면 될수록 새 OS의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OS로는 할 수 없었던 동작이 가능해진다. 모는데 문제가 없어진 뒤엔, 선행입력이나 캔슬도 시험해 본다.
“우와! 마치 전혀 다른 기체 같은데.”
흐르는 듯한 움직임. 어제까지와 같은 후부키로 느껴지질 않는다.
『후쿠자와, 어떤 느낌이니? 너희가 말하고 있던 기능을 OS에 넣고, 즉응성을 높이기 위해서 고성능 CPU랑 조합한 물건이야.』
“대단해요, 이거. 이거라면 날릴 수 있어요!”
『나는 잘 모르겠지만……일단, 대강 익숙해 지면 볼크 데이터의 공략이라도 해 보도록 해.』
그렇게 말하곤, 유코는 바로 설정을 진행해 볼크 데이터의 공략에 돌입시킨다.
당연히, 그 안에서도 새 OS의 효과는 드러났다. 유코도 알기 쉬운 형태로.
BETA라는 눈에 보이는 적을 상대로 삼는 걸로, 새 OS의 대단함이 똑똑히 보인다.
움직임이 처음으로 유키와 타케루 시뮬레이션을 실시했을 때의 움직임과 전혀 다르다는 건 전문가가 아닌 유코가 보기에도 확연했다.
하이브 안을 종횡무진 달리고, 뛰고, BETA를 구축한다. 저번보다도 효율적으로 BETA를 지워나가고, 교전을 피해, 단독으로 하이브 안을 나아가는 모습은 상쾌하기조차 하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공략이 가능해질 정도로 손쉽진 않다. 아직 유키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분도 있고, 캔슬이나 선행입력을 해도 타임 랙이나 경직시간의 수정이 유키의 감각과는 다를 때도 있다.
그래도, 홀로 돌입한 것치곤 충분한 성과를 첫 돌입에서 올릴 수 있었다.
시뮬레이터에서 나온 유키를, 유쾌한 듯 미소 짓는 유코와 무표정한 카스미가 맞이한다.
“대단하잖아. 큰소리친 만큼, 새 OS는 제법 쓸만해 보이네.”
“아니, 이건 대단해요. 정말로 대단하구나, 카스미 쨩은! 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라고~.”
라며, 새 OS가 즐거웠던 덕에 신나는 기분으로 다시금 카스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버렸다. 겉보기가 어리긴 하지만, 사실은 별로 나이차가 나지 않는다는 걸 듣고 싫어할까 싶었지만, 피하지 않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건가.
“상……인가요.”
“잠깐, 후쿠자와. 야시로한테 야한 짓 가르치지 말아 줘.”
“어, 어째서 그렇게 되는 겁니까?!”
“야한 짓……하는 건가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눈을 치뜨며 바라보는 카스미.
“아, 안해 안해! 에에, 맞아. 다음에 같이 놀자! 어때?”
“놀이……저, 잘 몰라요…….”
계속 기지에서 얼터너티브 계획에 관련되어 있었다고 하면, 놀이같은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오락이 부족한 세계다. 무표정한 카스미를 어떻게든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면, 내가 많이 가르쳐 줄 테니까. 응?”
“…………예.”
“좋아―, 약속이야.”
멋대로 약속하곤, 만족스럽게 끄덕인다.
아는 사람이 없는 이 세계에서, 이런 인간관계의 구축이나 자그만 약속 등은 생각 외로 힘이 되는 거다.
“어린애한테 ‘내, 내가 어른의 놀이라는 걸 많이 가르쳐 줄 테니까’라니, 더이상 수상할 수가 없네.”
“그런 위험한 소리 안 했는데요?!”
“뭐어, 얼빠진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래서, 후쿠자와. 써 봤을 때 어땠어? 신경 쓰이는 부분은 사소한 부분이라도 좋으니까.”
“에, 그, 그렇네요…….”
진지 모드로 바꾼 뒤, 조작중에 신경 쓰였던 걸 이야기해 나간다.
“――그럼, 이 상태로 후쿠자와는 계속 테스트를 진행. 카스미는 조정.”
“하루 내내 말인가요?”
“그걸 위한 테스트 파일럿이고, 그걸 위해서 대절한 거야. 이건 디버그도 겸하고 있고, 콤보의 데이터를 모으기도 해야 하고, 어쨌거나 횟수를 늘려서 최대한 많은 걸 시험해 줘. 상식적으로 안 할만한 짓도. 같은 것만 계속 하는 거라면 의미가 없으니까.”
“아, 알았습니다.”
새 OS의 완성에 관련되게 되면, 유키에게도 자연스럽게 기합이 들어간다. 볼크 데이터만이 아니라 시가전이나 평지, 산악 등에서의 싸움, 방위전이나 후퇴전 등, 시추에이션에도 배리에이션을 주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하루를 전부 써도 충분하다곤 하기 힘들다.
“그럼 난 갈테니, 야시로랑 둘이서만 있다고 해서 이상한 마음 먹으면 안된다?”
“안 먹는다니까요!”
마지막까지 농담을 하곤 유코는 방을 떠났다.
남겨진 유키는, 카스미를 내려다 봤다. 눈이 마주친다.
“좋아, 그럼 기합 넣어서 가 볼까! 부탁할게, 카스미 쨩.”
“…………예.”
이렇게, 하루를 시뮬레이터에 쩔어 보내게 되었다.
사이사이 휴식을 끼워, 때때로 카스미와 의견 교환을 하면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되풀이한다. 중간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필살기에 도전해 보거나 한 건 애교다. 카스미 외에는 아무도 없고, 오랜 시간동안 훈련을 하고 있으면 중간에 자극이나 변화가 고파지는 거다.
PX에서 늦은 저녁을 먹은 뒤 아무래도 피로의 색이 보이는 카스미를 방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좀 더 노력해 볼까 싶어 시뮬레이터 룸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어라~, 이런 데서 뭘 하고 있니?”
“에?”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와서 그쪽을 바라보자, 붙임성 있는 미소를 띤 하루코가 있었다.
“후쿠자와 군이 가려고 하는 곳은 시뮬레이터 룸이지? 오늘 하루, 코즈키 부사령관이 특수시험을 위해 대절해서, 관계자 외에는 출입 금지라더라.”
“에, 아아…….”
“그러니까, 후쿠자와 군도 더 안으로 가면 안 돼.”
하루코는 유키가 관계자라는 걸 모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관계자라고 전해도 딱히 나쁠 거야 없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다.
또, 어차피 곳 강화장비로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보니 재킷도 없는 셔츠 차림이라, 지금도 하루코에게 계급은 보이지 않는다.
“그, 그렇지. 깜빡했었어. 시간이 남았으니까, 훈련이라도 할까 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얼버무렸다.
덧붙여서 하루코의 재킷 옷깃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소위 계급장이 있었다. 유키가 상상하고 있던 대로였다.
“그래, 한가하구나. 그럼, 나랑 좋은 거 하지 않을래?”
“……에?”
윙크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뛴 유키.
“――뭔가 했더니, 농군가.”
뭐어, 예상할 수 있었던 거긴 하지만.
“에, 뭐야. 어떤 걸 상상했었니?”
하루코의 슈트가 호를 그리며 링에 빨려 들어갔다.
둘이 찾아온 건, 또다시 실내에 있는 훈련장. 거기서 하루코에게 다시 프리스로 승부를 도전받은 거다.
요즘 시대에 농구 지도같은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다 보니 하루코의 농구는 독학으로 익힌 거긴 하지만, 운동신경이 원래 좋았던 덕인지 슈트의 정밀도는 높다. 유키도 지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미묘하게 감각이 맞지 않는다. 볼이 원래 시대의 농구공과 미묘하게 다른 탓일지도 모르고, 낡아빠져서 손에서 미끌어지는 탓일지도 모른다.
“젠장! 프리 스로 승부가 아니라, 1 on 1 하지 않을래?”
“응? 뭐야 그거?”
“아, 그런가, 이런 것도 당연하지 않은 건가……에에, 요는 1대 1 승부. 한 사람이 오펜스, 다른 한 사람이 디펜스로 교대로 공방을 하는 거야. 공격하는 쪽이 슈트를 넣으면 1 포인트.”
“괜찮네, 재밌을 것 같아.”
바로 하루코도 찬성했다.
처음으로 하는 1 on 1에 하루코는 당황한 모양인지, 시작하고 한동안은 디펜스는 어쨌든 오펜스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초반은 유키가 포인트를 리드해 나갔지만, 하루코는 타고난 센스로 바로 대응한다.
운동능력만이라면 유키 쪽이 위지만 농구 관련 움직임이나 기술쪽이 되면 하루코 쪽이 낫고, 이 세계의 하루코는 농구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탓으로 굉장히 독특하게 움직인다. 그게 좋은 페인트가 되어서 유키도 농락당해, 그 결과 꽤나 괜찮은 승부가 진행되었다.
“우와―, 이거, 재밌네.”
한 손으로 드리블, 다른 한 손으로 떨어지는 땀을 닦으면서, 즐거운 듯 다부진 표정을 띄우는 하루코.
“젠장―, 이상한데. 압도적으로 리드하고 있었을 텐데.”
마지막 공방을 앞둔 현재, 유키가 1 포인트 리드하고 있지만 후공인 하루코가 이번 공격으로 골을 넣으면 동점이 된다.
“그렇게 간단하겐 못 당하지.”
쳐들어 온다.
스피드에 변화를 줘서 목표를 읽게 두지 않는다. 거기에 걸려들어, 하루코와의 거리가 벌어진다.
“좋았어!”
“아직이야!”
순발력이라면 지지 않는다는 듯 슛 자세에 들어간 하루코를 향해 유키는 블록을 취했지만, 하루코는 놀랍게도 페이드 어웨이 슛을 던져왔다.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뻗는다. 손끝이 가까스로 스쳤지만, 슛에 영향을 줬는지 어떨지까진 모르겠다.
“――으, 으악!”
“꺄악?!”
그보다도, 필사적으로 블록을 하기 위해 뛴 탓에 공중에서 균형을 잃어,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아야야야야……넘어졌네. 괜찮아, 카시와기 양……?”
유키 자신은 그리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도 다 탄력으로 가득찬 쿠션이 유키를 받아준 덕분. 방금까지만 해도 유키는 그 쿠션에 얼굴을 묻고 있었고, 숨이 막혀 그걸 누르며 고개를 든 거다.
즉, 그거라는 건 하루코의 가슴이었다.
“잠까……아, 아무래도 갑자기, 너무 나간 거 아니니, 유키 군?”
유키의 쿠션이 되어, 쓰러진 채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아래서 올려다보는 하루코. 그 풍만한 가슴을 손으로 잡고 있는 건 유키 자신. 재킷을 벗은 탱크톱 차림이니까, 손바닥에는 감촉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덤으로 하루코의 다리를 가르듯이 몸이 들어가 있기에, 자세도 좋지 않다.
“뭐어, 내 패배니까 약속 대로 내 몸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긴 한데……조금 더 로맨틱한 게 좋을지도~.”
“에, 아, 아냐! 이건 사고라니까?!”
당황하며 하루코의 몸 위에서 뛰쳐 일어난다.
“남자 주제에, 발뺌할 셈이야?”
손을 짚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는 하루코.
“그, 그런게 아니라, 에, 애초에 약속이고 뭐고 한 적도 없고!”
“아하핫, 뭐, 그렇지만.”
“아니, 그래도 정말, 미안…….”
사고라곤 해도 완전히 성희롱이었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만화나 게임의 주인공 같은 일을 일으켜 버릴줄이야. 아니, 요시노나 레이랑 함께 지낼 즈음에는 이런 해프닝도 어째선지 간간히 일어나긴 했지만. 잊을 것만 같은, 과거의 기억. 왠지 그리운 느낌마저 든다. 루프 전 세계의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몇 년 만의 일인지.
“왜 그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는 거야……?”
유키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지만, 하루코가 뭔가 말하는 소리를 듣곤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보자 유키를 바라보는 하루코의 눈동자가 보였다. 유키에게 있어선 그립기까지 한 사고라 해도, 하루코에게 있어선 단순한 성희롱일 뿐이다.
하지만 하루코의 표정에 분노나 경멸같은 건 섞여있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러면서도 유키를 감싸안는 듯한 대범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일까. 유키가 입을 열기 전에 하루코 쪽이 말한다.
“……뭐, 괜찮아. 내가 진 건 사실이고, 그걸로 지금 건 비긴걸로 해 줄게.”
“에에? 아, 응, 그런가요…….”
“후쿠자와 군은, 야한 것치곤 순정파야?”
“나, 나는 딱히, 평범하다고.”
살펴보듯이, 몸을 구부리며 바라보는 하루코. 그런 자세를 취하면 가슴이 강조되니까 자연스레 눈길이 그쪽으로 향해 버린다. 아까 전에 만져 버렸으니까 더더욱 그렇다.
“아하하, 역시 야하잖아.”
“잠깐, 일부러 한 거야, 카시와기 양?!”
예기치도 못하게 얻은 그리운 분위기에.
이 한순간만은, 세계의 상황도 잊고 빠져드는 유키였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