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차이 2화
식당의 테이블은 여섯 명보다 ─ 아니, 네 명과 두 아이들 ─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으나, 모두 새하얀 리넨으로 장식되었고 접시들은 쓸데없이 화려한 장식이 수놓아진 것으로 대체되었다. 물론 통짜 은이 아니라 스테인리스였지만.
해리는 칠면조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대화의 양상은 자연스럽게 호그와트에 대한 내용으로 흘러갔다; 부모님은 헤르미온느가 무심코 해리가 숨기고 있었던 그의 학교 생활에 대해 흘려버리기를 내심 고대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가 그들의 이러한 내막을 눈치챘거나, 곤란할만한 대답은 저도 모르게 피해가고 있거나 어느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대화의 내용 자체에 문제는 없었다.
고로 해리는 안전했다.
허나 불행하게도 해리는 그 반면 이미 헤르미온느에 대한 오만가지 내용들을 편지로 작성해 부모님과 공유하고 만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도 헤르미온느가 숨기고 싶을지도 모르는 내용들 마저.
가령 방과 후 활동에서 한 군단의 장군이라는 직함을 맡았다거나 뭐 이런거.
그 말을 들은 헤르미온느의 어머니가 경악한 표정을 짓자, 해리는 재빨리 사용된 주문들은 모두 기절 마법에 불과하며, 퀴렐 교수의 감독 하에 치뤄졌음은 물론이고 마법 간호사들마저 있었으니 듣는 것 보다 훨씬 더 안전한 활동이었노라며 덧붙였다. 그리고 헤르미온느가 테이블 밑에서 그의 정강이를 힘차게 걷어찼다. 정말 고맙게도 어느 면모에서는 그보다 몇 배는 낫다고 해리도 인정하는 아버지가 매우 진지하고 전문가스러운 말투로 ‘만약 위험한 일이었다면 아이들에게 허락되었을리가 없다’라는 논리적인 견해로 그를 뒷받침해주었다.
허나 그가 칠면조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스스로의 처지에 동정을 느끼는 행위의 문제점은, 바로 얼마 안가 자신보다 더 심각한 처지에 놓여진 자가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 레오 박사는 이런 질문을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널 예뻐하고 있는 것 같은 그 선생, 그러니까 맥고나걸 교수님께서, 점수를 후하게 주고 계시니?’
헤르미온느는 당찬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해리는 무심코 튀어나오려 하는 차디찬 독설을 애써 삼켰다. 맥고나걸 교수는 결코 특정한 호그와트 학생을 편애하는 어설픈 교육자가 아니며, 헤르미온느는 오로지 노력이라는 정당한 방법으로 모든 점수를 받았다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또 어느 순간, 레오 그레인저는 이런 의견을 내비쳤다; 헤르미온느는 굉장히 명석한 아이이며, 만약 이 모든 마녀 소동이 없었다면 의대에 합격해 치과의사가 될수도 있었다고 말이다.
미소를 짓는 헤르미온느의 말없는 눈빛에 해리는 다시금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삼켜야만 했다. 그 외에도 헤르미온느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로 거듭날 수도 있을만한 아이인데 어찌하여 그런 생각은 고려조차 해보지 않는지, 만약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과연 그런 생각을 했을지, 아니면 그 어떤 경우에도 후손이 그들보다 뛰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는건지 따져보고 싶었다.
헤르미온느의 눈짓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폭발하기 직전까지 화가 치솟아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해리가 신동으로 거듭나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적어도 그는 해리의 공적을 치켜세워주며 더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게 했으면 했지 결코 하찮은 듯이 조롱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신동이라고 해도 아이는 아이에 불과하지만. 만약 엄마가 ‘버논 더즐리’라는 작자와 결혼하였다면, 그러한 가정에 살게 되었을 수도 있었단 말인가?
해리는 최대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정말로 변신술과 빗자루 비행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에서 널 뭉개버리고 있단 말이니?” 마이클 베레스’에반스 교수가 말했다.
“네,” 크리스마스 이브 칠면조를 한 조각 썰면서, 해리는 평정이라는 가면을 썼다. “그것도 대부분은 아주 큰 차이로 말이죠.”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순순히 고하기에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지금껏 많았기에, 해리도 여태까지 그의 아버지에게 숨기고 있던 사실이었다.
“헤르미온느가 워낙 공부에는 일가견이 있는 아이지,” 레오 그레인저 박사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해리는 이른바 전국구란 말입니다!” 마이클 베레스-에반스 교수가 뜬금없이 반박했다.
“여보!” 페투니아가 힐난했다.
헤르미온느의 웃음소리는 그녀의 처지에 대한 해리의 기분을 전혀 완화해주지 못했다.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한 헤르미온느의 태도가 오히려 그를 더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헤르미온느한테 져도 그리 부끄럽지는 않아요, 아빠,” 해리가 말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사실이었다. “혹시 헤르미온느가 입학날 전에 이미 모든 교과서를 외워버렸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있었나요? 그리고 네, 실험으로 검증해봤어요.”
“그러니까, 뭐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합니까?” 미심쩍다는 듯이 베레스-에반스 교수가 그레인저 부부에게 물어보았다.
“오, 물론이죠. 헤르미온느는 항상 모든 것을 외워두려고 하니까요,” 로베르타 그레인저 박사가 활기차게 미소지었다. “글쎄, 제 요리책에 적힌 모든 조리법들마저 달달 외워두고 있었지 뭐예요. 요즘은 저녁 식사를 준비할때마다 딸아이가 그리워지고는 한답니다.”
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른 미묘한 표정을 봤을 때, 그도 아마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을 것이라고 해리는 확신했다.
“걱정 마세요, 아빠,” 해리가 말했다, “지금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등 학습을 하고 있으니까. 적어도 부모님들과는 다르게 호그와트의 교수님들은 헤르미온느의 명석함을 잘 알고있더군요!”
해리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전원의 얼굴이 그를 향하고 다시 한번 헤르미온느가 테이블 밑에서 그를 걷어차버리는 상황이 되어서야 그는 스스로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견딜 수가 없었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헤르미온느가 똑똑하다는 것은 알고 있단다,” 식사 시간에 감히 언성을 높인 아이의 태도에 미약하게나마 인상을 찌푸린 레오 그레인저가 말했다.
“정말이지 요만큼의 생각도 없으시군요,” 해리의 목소리는 차가워질대로 차가워져있었다. “앳된 연령대 치고 많은 독서를 하니 따님께서 아주 귀여우셨겠습니다? 그야말로 한 치의 오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성적표를 받고 제대로 학교를 다니는구나 싶어서 기분 좋으셨겠죠. 허나 그레인저 박사님들, 여러분의 따님은 그녀의 세대에서 가장 촉망받는 인재이자 예비 마녀이며 호그와트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예요. 그리고 언젠가, 당신들은 순전히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부모’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헤르미온느가 테이블을 빙 둘러 해리의 자리로 향했다. 그러고는 그의 멱살을 사뿐히 쥐어잡아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켰다. 반항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으나, 헤르미온느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그는 오히려 더욱 더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인류가 ‘치과의학’이라는 학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가 순전히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부모님이 치과의사였기 때문’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단 말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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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젊은 피부를 자랑하는 로베르타는 방금 그녀의 딸아이가 ‘살아남은 아이’의 멱살을 잡고 끌며 나간 문을 침착하게 응시했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베레스 교수가 유쾌하게 말했다. “허나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해리는 항상 저런 말투를 구사하니까요.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닙니까? 벌써부터 부부라고 해도 믿겠어요.”
정말 그렇다는 것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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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앞으로 다가올 헤르미온느의 무지막지한 설교를 미리 대비했다.
허나 지하로 그를 이끌고 온 헤르미온느가 문을 살며시 닫고 마침내 뒤돌아봤을 때 ─
─ 그녀는 뜻밖에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악의없이, 순수하게.
“앞으로는 그러지 마, 해리,” 솜털같이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난 괜찮은 걸.”
해리는 그녀를 직시했다. “어떻게 그런 대우를 견디고 사는 거야?” 그가 툭 내던졌다. 부모님들께 들릴새라 속삭이듯이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의해 평소보다 반 옥타브는 높게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헤르미온느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게 정상적인 부모님이니까?”
“아냐,” 해리가 강렬하게 부정했다, “아니라고,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내 능력을 무시하지 않 ─ 그래, 어느정도 무시하긴 하지만, 이정도까지는 결코 ─”
헤르미온느가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갖다댔다.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해리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그녀가 입을 열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었다, “해리…맥고나걸 교수님과 플리트윅 교수님께서 나를 아껴주시는 이유는 내가 현 호그와트 세대에서 가장 촉망받는 우등생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엄마 아빠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아마 평생 그 사실을 꺼낼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계셔. 무엇보다, 엄마 아빠는 내 부모님이지. 그러니 안타깝게도 네게 발언권은 없어, 포터 군.”
그녀는 저녁 식사 시간 때 간혹 보이던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는, 해리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잘 알아들었나요, 포터 군?”
해리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구나,”
헤르미온느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앞으로 내밀어 그의 뺨에 지긋이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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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자리에서의 분위기가 다시금 과열되고 화기애애하게 상승하고 있을 무렵, 지하에서 고함소리가 아련하게 환청마냥 들려왔다.
“우악! 뽀뽀는 하지 말라고!”
두 가장이자 박사님들이 빵 터지며 박장대소를 함과 동시에,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선 두 어머니들이 대경한 얼굴로 지하실로 달려갔다.
얼마 안가 그들이 아이들과 함께 돌아왔을 때, 헤르미온느는 얼음장처럼 굳은 얼굴로 다시는 해리를 키스하지 않을거라고 냉엄하게 선언하고 있었고, 격노한 해리는 해리는 차라리 저 하늘의 태양이 차디차게 식어 잿더미로 변하기를 기다리면 기다렸지 절대로 그녀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겠노라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뭐, 별 특별한 일은 아닌 듯 했기에, 곧 두 아버지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크리스마스 식사를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