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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

Harry Potter and the Methods of Rationality


원작 |

역자 | 송장의간장

인본주의 5화


퍽스의 노래가 부드럽게 사그라들었다.

어깨에 앉은 퍽스의 무게감을 느끼며, 해리는 겨울바람에 메마른 잔디를 털고 일어섰다.

주변에서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 시무스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괜찮은거야?”

불사조의 노래가 남긴 잔재에서, 그리고 퍽스가 앉아있는 어깨에서 아직도 온기가 느껴졌다. 온화한 기운이 온 몸을 타고 흘렀고, 불사조의 존재에 의해 노랫소리도 아직 생생하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상상을 초월하는 생각들이 그를 잠식했었다. 디멘터가 훼손할대로 훼손한 기억을 그는 기적적으로 되찾은 것이다. 알 수 없는 말들이 뇌 속을 자꾸만 뒤흔들며 메아리쳤다. 그러나 햇살을 받는 불사조가 붉은 금색으로 반짝이는 한, 그런 것들은 나중으로 미뤄도 상관없었다.

퍽스가 그를 향해 울었다.

“내가 뭘 해야한다고?” 해리가 퍽스에게 물었다. “무엇을?”

퍽스가 고개를 디멘터 쪽으로 향했다.

철창 안에 갇힌 파악할 수 없는 공포와 불사조를 번갈아본 해리가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터 군?” 미네르바 맥고나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괜찮은건가요?”

두 발을 딛고 일어선 해리가 몸을 돌렸다.

미네르바 맥고나걸이 굉장히 우려스럽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서 알버스 덤블도어가 주의깊은 시선으로 그를 관찰했다; 필리우스 플리트윅은 십년감수했다는 듯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저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

“그런 것 같군요, 맥고나걸 교수님,” 해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무심코 ‘미네르바’라고 부를 뻔한 충동을 느꼈으나 가까스로 멈추었다. 적어도 퍽스가 어깨에 앉아있는 한, 해리는 괜찮았다; 퍽스가 떠나는 즉시 주저앉을 수는 있겠다만, 어째선지 지금 당장은 중요치 않게 다가왔다. “괜찮은 것 같아요.”

보통 이런 상황이면 환호나 안도의 한숨 등 어떤 반응이라도 나올법했지만, 너나할 것없이 전부 할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불사조의 평온한 기운이 은은하게 퍼졌다.

해리가 몸을 돌렸다. “헤르미온느?” 그가 말했다.

일말의 로맨스라도 마음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를 못하는 것처럼,” 해리가 나지막히 고했다, “어떻게 감사인사를 전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만약 지금 네가 한 행동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답변뿐이야. 그래, 옳았어.”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다음 일이 대충 예상가니까 미리 말해둘게,” 해리가 말했다. “미안해. 만약 내가 어떻게든 도울 수 있다면 ─”

“아니,” 헤르미온느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없어. 하지만, 괜찮아. 정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해리로부터 몸을 돌려 호그와트의 정문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다수의 여학생들이 의문섞인 눈동자로 잠시 해리를 바라보고는, 이내 그녀를 뒤따라갔다. 멀어져가는 그들이 흥분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해리는, 고개를 돌려 남아있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가 지면에 널부러져 마구 비명을 지르던 모습을 전부 지켜보았겠지….

퍽스가 그의 볼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언젠가 그들이 ‘살아남은 아이’조차도 상처입고,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도움을 줄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그들이 상처입고 괴로워할 때, 마찬가지로 바닥에서 발버둥치던 해리를 떠올리며 이런 고통을 느낀다고 결코 그들이 나약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게 말이다. 어쩌면 학생들을 물리지 않고 끝까지 해리를 지켜보게 했던 교장의 의도된 계획이었을까?

무의식적으로 해리의 시선은 커다란 누더기 망토로 향했다. 해리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저런 게 존재해서는 안 돼.”

“아,” 메마르고, 정확한 목소리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말할 줄 예상했지. 허나 애석한 일이다만 포터 군, 디멘터에게는 죽음이 없단다.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시도했고, 실패했지.”

“호오, 정말입니까?”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해리가 말했다. “가령 무슨 시도를 했죠?”

“지독히도 파괴적이면서도 위협적인 특정 주문이 있다,” 퀴렐 교수가 대답했다, “정확한 이름은 발설하지 않겠다만; 저주서린 화염을 불러내는 마법이지. 분류 모자 같은 고대의 유물을 파괴할 때 곧잘 사용된다. 허나 디멘터에게 효과는 말 그대로 전무. 놈들은 불사다.”

“불사는 아니란다,” 교장이 말했다. 목소리는 다정했으나,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놈들조차 영원한 삶을 이어가지는 않아. 놈들은 이 세계에 새겨진 상처, 그리고 상처를 공격하면 도리어 더 깊어지고 커지기만 할 뿐.”

“흠,” 해리가 말했다. “만약 태양에 던져버린다면? 그러면 파괴할 수 있을까요?”

“태양에 던져버린다고?” 플리트윅 교수가 기절 직전의 갸냘픈 음성으로 되물었다.

“희박한 가능성이다, 포터 군,” 퀼레 교수가 메마르게 대꾸했다. “일단 태양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니; 그 정도면 디멘터도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거다. 그러나 만약의 가능성 때문이라도, 그리 시도하고 싶은 실험은 아니군 포터 군.”

“그렇군요,” 해리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아름답게 울음소리를 내 퍽스가, 해리의 머리에 날개를 부비더니, 이내 힘차게 날아올랐다. 디멘터를 향해 쏘아지듯이 날아간 퍽스가 불허의 뜻이 담긴 울음소리를 토해내자, 운동장 전역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빛나는 화염이 허공에 치솟았고, 다음 순간 퍽스는 사라졌다.

평온함이 아주 약간 흐릿해졌다.

온기가 아주 약간 흐릿해졌다.

해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응,” 해리가 말했다. “아직 살아있네.”

다시 한번 내려앉은 침묵, 그리고 다시 한번 결여된 환호소리;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할지 아무도 갈피를 못잡는 듯 했다 ─

“완쾌해서 천만다행이다 포터 군,” 퀴렐 교수가 다른 가능성은 고려조차 해본 적 없다는 듯이 강건하게 말했다. “자, 그러면 아마 다음 차례는 랜섬 양이었나?”

그 말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불만이 터져나왔으나, 결국 퀴렐 교수가 옳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방어술 교수는 비록 학생들의 우려사항은 잘 알겠으나, 이런 불행이 또다시 불어닥칠 가능성은 무한대로 낮다고 주장을 펼쳤다; 한번 보고 겪은 만큼 지팡이를 더 확실하게 간수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한 아직 완벽한 형상의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기회조차 갖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고, 스스로의 무방비함와 디멘터의 힘을 깨닫고 후퇴한다는 선택을 전부 겪어봐야한다며 퀴렐 교수가 모두를 설득했다….

결국 끝나고도 디멘터에게 가까이 다가갈 용의가 있다는 학생들은 그리핀도르의 딘 토마스와 론 위즐리밖에 없었다. 퀴렐 교수의 말은 옳았던 것이다.

해리는 디멘터의 철창을 곁눈질했다. 알 수 없는 말들이 다시금 내면 속에 메아리쳤다.

좋아, 해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디멘터가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가정해본다면, 답은 무엇이지?

그리고, 해답은 뻔할 정도로 명백했다.

해리는 검게 변색되어, 점차 부식해가고 있는 철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더기 같은 망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런건가.

맥고나걸 교수가 다가와 해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최악이었던 순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도착했던 그녀였기에 그저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것만으로 멈출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해리는 그녀에게 끝나고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질문을 물어봐야 한다고 했지만, 만약 바쁘다면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할 때 분명 현장을 떠나는 게 그리 탐탁치 않은 것이리라. 해리는 곧바로 그녀에게 떠나도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연하게도 날카로운 눈빛이 되돌아왔지만, 그녀는 다음에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짧은 약속 뒤에 황급히 성으로 떠났다.

딘 토마스는 디멘터의 범위 내에서도 새하얀 곰을 불러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론 위즐리는 빛나는 우윳빛 안개 벽까지 생성해내는 것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어쩌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학생들을 플리트윅 교수가 호그와트까지 인솔하기 시작했다. 해리가 같이 떠나지 않고 뒤에서 어슬렁거리는 듯 보이자, 플리트윅 교수가 그를 의문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리는 대답 대신 덤블도어를 곁눈질했다. 플리트윅 교수가 그 의미를 무엇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그의 기숙사감은 한차례 그에게 경고섞인 시선을 주고는 현장을 벗어났다.

곧이어 운동장에 남은 건 해리, 퀴렐 교수, 덤블도어 교장, 그리고 오러 삼총사 밖에 없었다.

사실 삼총사들도 보내버리는 게 최선이었으나, 해리는 먹힐만한 방법을 결국 생각해내지 못했다.

“좋아,” 오러 코모도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들고 돌아가자고.”

“저기 죄송합니다만,” 해리가 말했다. “디멘터와 한번만 더 겨뤄보고 싶은데요.”



해리의 요구사항은 다소 격양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가령 너 미쳤냐 따위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 소리를 입 밖으로 낸 건 오러 버트나루 밖에 없었지만.

“퍽스가 제게 부탁했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그 말에 덤블도어의 얼굴에 떠오른 충격에도 불구하고, 모든 반대 의견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언쟁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남아있는 불사조의 평온함마저 깎아내리는 듯했기에 해리는 조금이지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봐요,” 해리가 말했다, “좀 전에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단 말이에요. 이런 행복한 기억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런 행복한 기억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거죠. 한번만, 딱 한번만, 네?”

설득력이 결여된 호소였다.

“제 생각에,” 가늘게 뜬 눈으로 해리를 응시하던 퀴렐 교수가 마침내 말했다, “만약 우리가 이 부탁을 거절한다면, 포터 군은 아마 언제든지 몰래 성을 나와 직접 디멘터를 찾아다닐 것만 같군요. 내 식견이 틀렸는가, 포터 군?”

그 말에 충격어린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금이야말로 그가 조커를 내밀 차례였다.

“교장님께서 패트로누스를 계속 유지하시더라도 별로 상관없어요,” 해리가 말했다. 패트로누스가 있든 없든, 저는 변함없이 디멘터의 영향을 받을 테니까.

모두들, 심지어 퀴렐 교수조차도 그의 발언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패트로누스가 4개나 있다면 해리가 다칠래야 다칠수가 없다고 추론한 교장이 마침내 수긍했다.

만약 디멘터가 당신의 철벽같은 패트로누스를 조금이라도 꿰뚫을 수가 없었다면, 당신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거북한 모습의 사내조차도 보지 못했을 거예요, 알버스 덤블도어….

당연한 말이지만 해리는 그의 생각을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디멘터를 향해 다가갔다.

“교장님,” 해리가 물었다, “만약 래번클로 기숙사 입구의 독수리상이 이런 수수께끼를 냈다고 가정해보십시오: 디멘터의 근원에는 무엇이 도사리는가? 그럼 교장님께서는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공포,” 교장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오류’였다. 디멘터가 근접하면, 공포도 엄습한다. 공포는 아프고, 심신을 나약하게 만든다. 본능이고 이성이고 공포가 곁에서 떠나기를 원한다.

공포가 최대의 문제라고 여기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고다.

고로 사람들은 디멘터가 순수한 공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라고 단정을 지어버린 것이다; 공포 그 자체 의외에 두려워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디멘터도 간섭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러나….

디멘터의 근원에는 무엇이 도사리는가?

공포.

정신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할정도로 끔찍한 게 무엇인가?

공포.

죽일 수 없는 존재는 무엇인가?

공포.

…생각해보면, 완벽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허나 사람들이 가장 당연한 첫번째 해답보다 더 깊게 파고들지 못하고 꺼려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사람들은 공포를 이해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두려워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디멘터와 마주쳤을 때, ‘혹시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 실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저 부작용에 불과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봤자 안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

4개의 패트로누스에게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는 디멘터의 철창에 다다랐을 무렵, 오러 세 명과 퀴렐 교수가 일제히 헛바람을 들이키며 경악성을 토해냈다. 전원의 눈이 디멘터로 향해, 마치 무언가를 듣는 듯이 경청하고 있었다; 오러 고리아노프의 표정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그러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든 퀴렐 교수가 디멘터를 향해 침을 거칠게 뱉었다.

“먹잇감을 빼앗기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군,” 덤블도어가 나지막히 말했다. “뭐. 혹시 필요하게 된다면, 퀴리너스, 호그와트는 언제나 그대의 피신처가 되어줄 걸세.”

“뭐라고 말했나요?” 해리가 물었다.

모든 얼굴이 그를 향했다.

“듣지 못했단 말이니…?”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내게 말하더군,” 퀴렐 교수가 말했다, “나를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내가 어디로 숨든지, 기필코 추적해 먹어주겠다고 말이다.” 굳은 그의 표정에는 두려움 따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아,” 해리가 말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군요, 퀴렐 교수님.” 어차피 디멘터가 실제로 말하거나 사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들의 형상은 전부 보는 이의 생각과 예상에 의해 꾸며지는 것일 뿐….

이제 전원이 상당히 괴이쩍은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러들이 초조하게 서로를, 그리고 디멘터를, 마지막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디멘터의 철창 코앞에 당도했다.

“놈들은 세상에 새겨진 상처다,” 해리가 중얼거렸다.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마 이 말을 했던 자는 고드릭 ​그​리​핀​도​르​였​겠​군​요​.​”​

“그래….” 덤블도어가 경탄했다. “어떻게 알았니?”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자들은 전부 래번클로에 배정받아 다른 기숙사에는 없을 거라는 흔한 오해죠, 해리가 생각했다.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래번클로에 배정받았다는 의미는 그 개인의 가장 부각된 장점이 진실을 향한 호기심과 갈망임을 뜻한다. 그리고 이건 단지 이성주의자들만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니다. 언젠가는 한가지 문제를 두고 주의깊고, 신중하게 고민해야할 순간이 오는 법. 무언가를 찾아 헤맬 때는, 훌륭한 책략이 필요한 법. 그리고 답을 찾아 나설 때 그 무엇보다 중대한 요소는, 다름아닌 진실을 맞설 용기….

해리의 시선은 누더기 망토 밑의, 고작 부패하는 시체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득한 공포를 향했다. 아마 로웨나 래번클로도 필시 깨달았을 것이다, 수수께끼로 여긴다면 명백하게 답이 보이는 쉬운 수수께끼였으니까.

그리고 패트로누스가 동물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이유도 분명하게 보였다. 동물들은 무지하기에, 두려움에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다.

허나 해리는 알고 있었고, 언제나 알고 있을 것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움츠리지 않고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비기는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으나, 이미 그의 정신에는 그 뿌리가 자리를 잡았고, 고통을 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반사신경이 만들어진지 오래. 단순히 다른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해리는 압도적인 공포를 망각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여태까지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떠올리는 행복한 기억이 그 공포와 무관하지 않으면 된다.

해리는 플리트윅 교수가 되돌려준 지팡이를 들어올려, 패트로누스 마법을 위한 첫번째 동작을 준비했다.

내면 속에서, 해리는 불사조의 마지막 잔재를 소각하고, 평온하고 몽롱한 기운을 거두어, 퍽스의 아름다운 울음소리 대신 전투를 위해 전신을 각성시켰다. 잠들어있는 신체의 곳곳을 서둘러 깨워나갔다. 패트로누스 마법을 위해 온 정신의 힘을 가다듬어, 마지막으로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을 위해 서서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는 떠올렸다.

아버지가 선물해 준 수많은 책들.

여러 부품으로 만들어져 짧게 경쾌한 음악을 틀어주는, 그야말로 해리가 자그마치 삼 일 밤낮을 투자한 선물을 어머니날에 받았을 때 엄마가 짓던 환한 미소.

친부모님이 그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는 맥고나걸 교수님의 말씀.

헤르미온느가 그를 따라잡는 것도 모자라 제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의의 라이벌이자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었을 때.

어둠에 빠져있던 드레이코를 끌어내어, 그가 서서히 빛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는 모습.

그를 의지하는 네빌, 시무스, 라벤더, 그리고 딘. 호그와트가 위험해지면 언제라도 달려와 맞서싸워줄 모두들.

인생이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전부를.

그의 지팡이가 패트로누스 마법을 위한 첫번째 동작을 취했다.

해리는 패트로누스의 부재에도 디멘터와 치열하게 맞서던, 찬란한 별들을 그렸다. 허나 이번에 해리는 전에 빠져있던 재료를 추가했다. 육안으로는 한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지만, 여러 그림과 동영상으로 수도 없이 접해본 형상을. 

지구.

푸르고 새하야면서도,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에서 고고하게 떠 햇빛을 반사하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별. 당연히 그 그림에 있어야만 했고, 당연히 그 그림의 주인공이어야 하는 지구.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만물에 의미를 부여해주었으니까. 지구의 존재에 의해 별들의 의미가 명확해지고, 단순히 주체되지 못한 핵융합 반응을 넘은 무언가로 승격된 것이다. 

언젠가 이 은하계를 점령하고, 약속된 밤하늘을 지키는 것은 다름아닌 지구가 될 테니까.

성간여행을 여유롭게 즐길 자손의 자손의 자손들, 인류의 먼 후계자들마저 변함없이 디멘터의 악랄한 마수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인가? 

아니. 당연히 아니다. 

그 광활한 약속에 비하면 디멘터들은 티끌만도 못한 골칫거리일 뿐; 불사도, 불멸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지구; 훗날 ‘고대 지구’로 기억될 장소에서 태어난 행운아이면서도 불행아들 몇 명에게만 해당하는 사소한 골칫거리가 될테지. 허나 지성체가 그 힘을 완벽하게 발휘하고,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대에서 태어난 한 줌의 지성체가 살아간다는 의미는 그 또한 포함한 것이다. 

알고 있지 않은가. 

끝없이 펼쳐진 미래는 우리의 행동, 우리의 손아귀에 달려있다고. 

디멘터같이 일시적인 골칫거리와 수없이 도사리는 어둠과 맞서야만 하는, 동이 트기 전 새벽녘의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엄마와 아빠. 

헤르미온느와의 우정과 드레이코의 여정. 

네빌, 시무스, 라벤더 그리고 딘.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 그리고 빛. 

지구, 별들, 밤하늘의 약속.

무궁한 가능성을 보유한 인본과 인류….

지팡이를 쥔 해리의 손가락이 시작 동작으로 서서히 펴졌다; 그래,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어떤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지 이제는 안다.

그리고 해리의 눈동자는 누더기가 된 망토 밑, 디멘터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를 직시했다. 텅 비었고 공허한, 세상에 뚫린 구멍. 세상의 온기가 포악하게 빨려들어가는, 무색의 공간.

그것에서 뿜어져나오는 공포는 모든 행복을 앗아가고, 그 접근성은 모든 기력을 흡수하며, 그것의 입맞춤은 존재를 근원부터 붕괴시킨다.

이제야 너를 알겠다, 지팡이를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휘두르고 손가락을 정확한 간격으로 펼치며 해리가 속으로 말했다. 드디어 네 정체를 이해했어. 

너는 죽음의 상징, 어떤 마법의 법칙으로 인해 세계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는 평생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 없거든.

죽음은 아직 인류가 완벽하게 이겨내지 못한, 유치한 개념일 뿐이니까.

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너를 넘어선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누구와도 이별하지 않아도 될 거야…

영원히.


“익스펙토 패트로눔!”


댐이 터진 듯 사고가 미친듯이 밀려나와 팔로 흘러, 지팡이에 깃들었고, 새하얗고 눈부신 빛으로 승화했다. 그리고 그 빛이 점차 빚어지며, 물질화되어갔다.

그리고 두 팔, 두 다리, 머리를 가진, 직립보행의 인영;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의 동물, 인간의 형상이 강림했다.

해리가 전신의 기력을 주문에 쏟아부으면 쏟아부을수록 점차 찬란한 빛을 흩뿌리는 인영은 해질녘보다 화창한 백열광을 자랑하여, 경악에 휩싸인 퀴렐 교수와 오러들이 반사적으로 두 눈을 가렸다 ─


그리고 언젠가 수많은 별들로 흩어졌을 인류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충격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고대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함구할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부모님께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들은, 한때나마 죽음이 존재했다는 끔찍한 사실에 통곡할 거다!


인간의 형상은 이제 정오 때의 태양보다 찬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밝은 나머지 해리는 전신의 피부에 온기마저 느꼈다; 

그리고 해리는 그를 잠식한 거절의 의사를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내던지기 위해, 정신을 가로막은 둑을 전부 터뜨려 눈이 멀 정도로 인영을 비추고, 또 비추었다.


너는 불멸 따위가 아냐, 언젠가는 인류가 네 존재에 종지부를 찍을 테니.

사고와 마법, 그리고 과학의 힘으로, 가능하다면 내 선에서 너를 끝내겠어.

승리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나는 결코 죽음 앞에서 움츠리지 않아.

죽음의 손길이 내게는 물론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절대 닿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내가 너보다 먼저 종말을 맞이한들,

또다른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또다른 자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다.

이 세상의 상처가 전부 사라질 때까지.


해리가 지팡이를 내리자, 눈부신 인영도 점차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한차례 숨을 내쉬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해리는 시선을 철창에서 떼어, 너나할 것 없이 전부 그를 주시하고 있는 전원을 빙 둘러보았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퀴렐 교수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러 삼총사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디멘터를 처치한 사람을 보는 듯한 기이한 표정이었다.

철창 안에는 텅 빈 누더기 같은 망토만이 쓸쓸하게 남아있었다.

간지폭풍 해리포터. 날 가져요 엉엉 ㅜㅜ

디멘터의 정체는 바로 '죽음'. 그에 비롯되는 공포는 그저 부차적인 것뿐. 원작의 재해석입니다.

마침 생물학 강의에서 교수님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는 지금,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평균 수명도 함께 길어져, 그 순환이 반복되어 결국 마음만 먹으면 영생을 누릴 가능성도 있다고. 

거의 농담조였지만, 그 정도로 우리는 금단의 경지에 손이 닿기 직전이라는 겁니다. 우리 세대는 아니더라도 먼 미래에는, 정말 인간이 순수 과학의 힘으로 불로불사를 이룰 수도 있겠죠. 어찌보면 과학의 궁극, 나아가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해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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