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사고
7시 반이라는 다소 늦은 시각에 저녁을 끝마친 파드마 패틸은 래번클로 기숙사의 서재를 향해 대연회장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수다떠는 건 즐거웠고 그레인저의 명예를 박살내는 건 더더욱 재밌었지만, 그렇다고 학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법. 내일 오전에 있을 약초학 수업까지 로밀리아로르 가지에 관한 과제물을 양피지에 6인치를 꽉꽉 채워 내야 했기에, 오늘 밤이야말로 반드시 끝내야만 한다.
구불지고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거닐 무렵,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마치 바로 그녀의 뒤에서부터 말하는 것처럼 음습하게 귓가를 때렸다.
“파드마 패틸….”
번개같이 뒤로 돌아선 그녀의 손에는 이미 지팡이가 쥐어져있었다. 해리 포터가 손쉽게 그녀의 뒤를 점해 놀래킬 생각을 했다면 아주 큰 오산 ─
─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파드마는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노려보았다. 혹시 복화술 마법을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
─ 그러나 그 방향에도 아무도 없었다.
속삭이는 듯한 한숨이 다시금 공기를 장악했다. 부드럽고도, 너무나고 위험하게 들리는 게 마치 바람소리와도 같다.
“파드마 패틸, 슬리데린 소녀여….”
“해리 포터, 슬리데린 소년,” 그녀가 언성을 높여 말했다.
이미 포터와 그의 카오스 군단을 수차례 맞섰던 경험이 있는 그녀는 이 또한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 몰라도 해리 포터의 짓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물론 복화술 마법은 시전자의 시야가 확보되어야만 가능한 마법이라는 것이다. 다소 구불거리는 복도이기는 하나 일단 육안으로 보이는 곳은 전부 확인했건만, 그 어디에도 포터는 보이지 않았다….
…상관없다.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적이니까.
그 순간 그녀의 바로 옆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쏜살같이 몸을 회전시킨 그녀가 진원지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는 외쳤다, “루미너스!”
적색의 섬광이 쏘아져나가 벽에 부딪쳤다. 상흔이 새겨진 벽은 얼마간 붉게 빛나더니, 이내 서서히 사라져갔다.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해리 포터가 정말로 투명한 상태일리는 없을 것이다, 성인 마법사조차 실패할 때가 더 많은 고등 마법이니까. 어차피 파드마는 그에 대한 전설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어 몇보 양보해서라도 그중 9할 이상을 허구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이번에는 반대켠에서 들려왔다.
“해리 포터는 벼랑 끝까지 몰려있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이제 그녀의 귓가 근처까지 가까워졌다.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간신히 붙잡고 있지, 허나 너는 이미 추락하고 있구나, 슬리데린 소녀여….”
“모자는 나를 슬리데린에 배정시키려 하지 않았어 포터!” 뒤를 돌아볼 수고를 덜기 위해 벽을 등진 그녀가 지팡이를 치켜들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해리 포터는 30분 전부터 래번클로의 휴게실에 있었단다, 케빈 앤트휘슬과 마이클 코너의 포션 재료 암기를 한참 도와주고 있을 터. 허나 상관 없는 이야기지. 나는 네게 경고를 하러 왔다 파드마 패틸. 선택은 자유지만 만약 어길 경우에 벌어질 일 또한, 전적으로 네 탓이 될 거란다.”
“하, 그래,” 그녀가 냉담하게 쏘아붙였다. “어디 한번 그 잘난 경고를 지껄여봐 포터, 내가 두려워할 줄 알고?”
“한때, 슬리데린은 위대한 기숙사였지,” 목소리는 어쩐지 울적한 기색이었다. “한때는 슬리데린 기숙사에 배정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수 있었다 파드마 패틸. 하지만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고, 비틀리기 시작했어. 슬리데린 기숙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있나, 파드마 패틸?”
“몰라, 나하고는 상관없어!”
“아니, 상관있지 상관있어,” 분명히 머리를 벽에 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바로 배후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너는 아직도 모자로부터 그 기숙사를 권유받은 소녀이니까. 그저 래번클로를 선택했다고 네가 영원토록 팬시 파킨슨이 아니고, 훗날 팬시 파킨슨 같은 인물이 되지 않을 것 같았나?”
한기에 등골이 오싹해지다 못해 피부에 두드러기까지 날 것만 같았다. 해리 포터가 사실 레질리맨스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저 콧방귀만 뀌었을 뿐이다. 그녀는 애써 자세를 바로하고, 애써 표독스럽게 내뱉었다, “슬리데린은 힘을 위해 어둠으로 돌아섰어, 마치 너처럼 말이지 포터.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어.”
“하지만 결백한 소녀에 대해 악의에 찬 소문을 퍼뜨렸지 않니? 응?” 목소리가 속삭였다, “네 개인적인 야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건만, 그 소문에 대할할만한 강력한 아군들이 그녀에게 있다는 것을 고려조차 않고 입을 떠벌렸잖나. 이건 옛적의 자랑스러운 슬리데린이 아니다. 살라자르의 긍지가 아니다. 그건 타락한 슬리데린에 불과하지. ‘파드마 말포이’가 아닌 ‘파드마 파키슨’이여….”
그녀는 태어나서 이 정도로 소름이 돋았던 적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유령일지도,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유령이 이렇게 스스로를 은닉할 수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어쩌면 그냥 일부러 항상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 무엇보다 대다수의 유령은 이토록 꺼림찍하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죽은 ‘인간’에 불과하지 않은가 ─ “누, 누구야 너? 피투성이 바론?”
“해리 포터가 괴롭힘 당하고 구타당했을 때,”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는 아군에게 복수는 삼가라고 부탁을 했었지. 기억나나 파드마 패틸? 어째서냐면 해리 포터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으나, 아직 추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란다. 스스로의 절박한 처지를 인지하고, 발악을 하고 있지. 하지만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그녀의 아군에게 그러한 부탁을 하지 않았다. 파드마 패틸, 해리 포터는 분노했어, 그 어떤 때보다 더…그리고, 그에게는 그만의 아군이 있단다.”
그녀는 무심코 몸서리를 쳤다.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확연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적나라한 행동이었기에 그녀는 스스로를 저주했다.
“오, 두려워말렴,” 목소리가 한숨을 쉬었다. “널 공격하진 않을 테니까. 파드마 패틸,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정말로 결백해. 추락하고 있지도 않고, 벼랑 끝에 서있지도 않아. 그녀가 아군들에게 복수를 삼가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건, 애초에 그런 끔찍한 상황을 고려조차 못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해리 포터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위한답시고 너를 공격할 경우, 그녀와의 인연을 지키기는커녕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말 한마디조차 섞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단다.” 목소리에는 짙은 슬픔이 묻어나왔다. “정말 상냥한 소녀야, 나 같은 인간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레인저는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수 없어!” 파드마가 외쳤다. “만약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녀가 상냥한 사람이라면 ─”
“그래, 그럼 너는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수 있나, 파드마 패틸? 결과물이 두려운 나머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네가.”
“아냐! 아니라고! 그저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이야!”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친구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시도했었어. 그리고 실패했을 때 놀라워했고, 우울해했었지. 그 배경에는 패트로누스 마법의 진정한 비밀을 아는 자는 역사상 몇 안되었고, 오늘 이 날에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소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단다.”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렀다. “그럴지 언정, 그녀의 빛은 여전히 밝고, 그 실패도 그녀에게 결코 오점으로 남지는 못한다. 우리가 있는 이 복도를 있게 한 고드릭 그리핀도르와 같은 이유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패트로누스를 불러오지 못한 것이니.”
착각이 아니라 복도의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냉기 마법을 쓴 것처럼.
“그리고 해리 포터만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유일한 아군은 아니다.” 목소리에는 이제 메마른 유쾌함이 서려있었다. 공포스럽게도, 그녀는 불현듯 퀴렐 교수를 연상하고 말았다. “내가 알기로 필리우스 플리트윅과 미네르바 맥고나걸 또한 그녀를 상당히 아끼더군. 만약 네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들이 알게 되면, 네게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나? 물론 그들이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을 터. 허나 어쩌면 네게 예전보다 더 적은 가산점을 줄 수도 있고, 네게 돌아가는 기회도 적어질 수 ─”
“포터가, 교수님들에게 내 뒷담을 까고 다닌다고?”
으스스한 웃음소리가 피어올랐다. “그 둘에게도 귀가 있고 눈이 있지 않나? 척 보면 알아차릴 터.” 목소리가 별안간 슬픔에 물들었다. “과연 그들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과연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눈치채지 못할까? 한때 그들은 명석하고 현명했던 파드마 패틸 또한 아꼈을지 모르나, 너는 그들의 애정을 자진해서 버리려 하고 있어….”
파드마의 기도는 말라붙어갔다. 그런 식으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아랑곳 않고 속행할 경우, 과연 네 곁에 누가 남아줄지 심히 궁금해지는 구나 파트마 패틸. 정녕 네 언니와 거리를 벌리는 게 그 모든 것을 감안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패르바티의 휘광에 가려진 그림자가 되는 게?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언니와 동일하게 취급당하는 것이지, 아니 이 경우에는 ‘다시’ 언니와 동일시 되어버리는 거겠군. 하지만 언니와 격차를 벌리는 것이 선량한 여자아이를 힘들게 만들 정도로 중요한가? 빛이 이미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어둠이 되라는 법은 없다 파드마 패틸. 어쩌면, 너 또한 네 쌍둥이 언니처럼 빛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심장은 터질 정도로 거칠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건 누구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녀만의 비밀이었 ─
“학생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광경을 직접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어,” 목소리가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의 삶을 고단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손으로 학교를 교육의 공간에서 감옥으로 변이시켜버리지. 어째서 인간은 사서 고생을 하면서 불행에 몸을 던질까? 그 질문의 답을 일부분 정도는 말해줄 수 있다, 파드마 패틸. 생각부터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아무 느낌없이 고통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역지사지의 논리를 고려조차 안하고 있어. 그 행동에 자신 또한 언젠가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고 여기는 법이 없지. 허나 파드마 패틸, 이 길을 계속 나아가다간 고통스러워질거다. 암, 그렇게 되고 말고. 네가 지금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에게 입힌 외로움의 고통, 두려움과 불신의 고통은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도래하면 누구도 손을 쓸 수가 없어, 자업자득일테니.”
그녀의 지팡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래번클로에 배정받은 것으로 영원히 편이 갈라지는 것은 아니란다, 소녀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그리고 너 자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편이 정해지는 법. 사람들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등불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남아있는 불빛조차 꺼트려버리는 어둠이 될 텐가? 빛과 어둠 사이의 선택은 배정 모자의 감언이설 따위가 아닌, 바로 그런 거야. 가장 힘든 것은, 여기서 주저없이 ‘빛’을 선택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해, 자신이 혹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깊이 생각보는 분석력을 갖추는 것.”
정적이 내려앉았다. 목소리가 말을 이어가지 않고 계속 침묵을 고수하자, 파드마는 그것을 이만 가도 좋다는 암묵적인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손에 힘이 풀린 나머지 지팡이를 떨어뜨릴 뻔 하였으나, 파드마는 억지로 그것을 주머니 속에 쑤셔넣었다. 벽에서 벗어나 한걸음 내딛자마자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잡은 뒤, 그녀는 복도를 빠져나가 ─
“나도 빛과 어둠 사이에서 항상 옳은 쪽을 택했던 것은 아니다.” 언성이 높아진 목소리가 다소 거칠게 그녀의 귓가 앞에서 속삭였다. “그러니 내 지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라. 나조차도 수없이 실패를 거듭했으니, 오 그래, 믿기지 않겠지만 실패했었지. 하지만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우는 짓거리로는 절대 네 야망을 이루지 못할 거다, 그 계략에는 결여된 게 있기 때문이지. 바로, 교활함. 넌 그저 남에게 고통을 끼치는 행위 자체가 가져다주는 쾌락을 즐기는 것에 불과해.
빛과 어둠을 항상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던 나이지만, 선과 악은 단 한번도 분별하지 못한 적이 없어. 넌 그런 너마저도 피해를 입게 만들고 싶지 않은 상냥한 피해자의 마음씨 덕분에 여태껏 보복없이 태평하게 지낼 수 있었을 뿐. 그녀가 원하지 않기에, 나는 네게 아무런 해도 가할 수가 없다. 그저, 그 행동을 결코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것만 알아두도록. 이제보니 네게는 슬리데린이라는 이름조차 아깝구나. 어서 가서 약초학 숙제나 끝내거라, 래번클로!”
속삭임은 마지막이 되어서는 마치 뱀과도 같은 바람소리 마냥 소름끼치게 들렸다. 그 말이 끝난 즉시 파드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마치 레시포드에게 쫓기는 것 마냥, 복도에서 뛰는 건 금지라는 규칙도 상관않고 뛰었다. 심지어 그녀를 발견한 다른 학생들이 경악하며 손가락질을 해대도 그녀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격렬한 박동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비로소 래번클로 기숙사 정문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어찌하여 태양은 낮에 비추고 밤에는 비추지 않는가” 라는 문의 질문에 논리적인 대답을 내놓을 때까지 무려 3번이나 시도해야만 했다. 마침내 기숙사 문이 열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
─ 몇몇 여학생들과 남학생, 상급생과 동급생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그녀를 멍청하게 바라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자리한 오각형 테이블에서 마이클 코너와 케빈 앤트휘슬, 그리고 해리 포터가 교과서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멀린이시여!” 소파에서 재빨리 일어난 페넬로페 클리어워터가 대경하며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파드마?”
“귀,” 파드마가 말을 더듬었다, “귀, 귀귀, 귀신을 들었 ─”
“혹시 피투성이 바론은 아니었니?” 클리어워터가 말했다. 지팡이로 잔을 소환한 그녀가 ‘아구아멘티’로 물을 잔뜩 따라서 건네주었다. “자, 일단 진정좀 하고 앉아 ─”
그러나 파드마의 시선은 벌써부터 오각형 테이블로 가있었다.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는 해리 포터의 눈빛은, 차분하고 진지하면서도 어쩐지 슬픈 기색이 감돌았다.
“네 짓이지!” 파드마가 불쑥 외쳤다. “어, 어 ─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단번에 래번클로 휴게실의 분위기는 누가 물이라도 끼얹은 것마냥 싸늘해졌다.
해리는 흔들림 없이 그녀를 계속 주시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뭔가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도 있어 파드마?”
“변명할 생각은 하지도 마,” 쉴세없이 떨리는 음성으로 파드마가 말했다, “그 유령, 네가 불러온 거잖아, 그 ─”
“난 진심이야,” 해리가 말했다. “내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니? 가령 간식이 필요하다든가, 음료수가 필요하다든가, 아니면 숙제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든가 말이야?”
모두의 시선이 그 둘을 향했다.
“…왜지?” 파드마가 마침내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 달리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분간이 안갔다.
“왜냐하면, 우리들 중 누군가는 벼랑 끝까지 몰려있기 때문이겠지,” 해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운명이 갈리는거고. 그러니 파드마, 부탁인데 내가 너를 어떻게든 도울 방법이 없을까?”
그의 눈동자를 직시하던 그녀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 또한, 그녀처럼 언젠가 경고를 받고 스스로의 처지를 자각했다는 것을.
“그….” 그녀가 주저하며 말했다. “로밀리아로르 가지에 대해 6인치 짜리 숙제가 남아있는 데 ─”
“잠깐 방으로 가서 약초학 노트좀 갖고올게,” 해리가 단번에 말했다. 오각형 테이블에서 일어선 그는 앤트휘슬과 코너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나중에 보자.”
그 둘의 대답은 없었다. 기숙사의 모두와 마찬가지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 해리 포터의 뒷모습 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계단을 한참 올라가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파드마가 직접 말을 꺼낼 때까지는 아무도 질문 공세를 하지 말아줬으면 해, 모두들 알겠지?”
“아, 알았어,” 1학년 전원과 상급생 몇 명이 대답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어째선지 겁에 질려있었다.
그리고 파드마는 해리 포터와 로밀리아로르 가지라는 주제 말고도 여러가지의 대화를 나누었다 ─ 심지어 그 누구와도 상담해본 적이 없던, 그러나 해리의 유령 아군은 알고 있던, 패르바티와 동일시 취급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해리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이내 이상한 표지의 책들을 잔뜩 꺼냈다. 무게감이 상당한 책더미를 건네며, 해리는 그녀에게 비밀을 맹세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 책들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녀의 사고 자체를 한단계 끌어올려, 패르바티와 차별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매우 매혹적인 말도 덧붙였다….
9시쯤 해리가 이만 가봐야 한다며 사과를 할 무렵, 에세이는 고작 반절 정도만이 완성된 상태였다.
그리고 퇴실하던 해리가 멈칫하고는, 뒤를 돌아보며 역시 그녀는 슬리데린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어쩐지 따뜻해져가는 가슴에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그녀는 이내 그 말의 의미와, 그 말을 누가 했는지 깨닫고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위해 연회장으로 내려온 파드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맨디가 바로 옆에 앉아있던 소녀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잠자코 맨디의 말을 듣던 소녀가 래번클로 테이블에서 일어서며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사실 어젯밤 파드마는 소녀가 다른 기숙실에서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까놓고 보니 이게 오히려 더 심하지 않은가, 이제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사과를 건네야만 했으니까.
식은땀이 절로 났지만, 파드마는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지 알고 있었다.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소녀가 우뚝 섰다 ─
“미안해.”
“아, 뭐?” 뜬금없이 대사를 빼앗겨버린 파드마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미안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반복했다. 그녀의 언성은 연회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그…해리가 네게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어. 그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맹세도 받았고, 더불어서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걔와 말도 섞지 않을거야…정말, 정말 미안해 패틸 양.”
헤르미온느의 자세와 언동은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어, 그게….” 파드마가 말했다. 뭐가 뭔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방금 전:
“조금 더 상냥해져보라고 내가 말했었잖아!” 헤르미온느가 절규하듯이 외쳤다.
해리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벙찐 것은 물론이고, 이 빈 교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큰 목소리에 다소 위축이 되고만 것이다.
“아니 ─ 하지만 ─ 하지만 난 상냥하게 대했다고!” 해리가 항변했다. “내가 재기시킨 거나 마찬가지야, 자칫 탈선할뻔한 파드마에게 올바른 길을 밝혀줬어! 어쩌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걔 미래를 장밋빛으로 물들여준 거나 마찬가지지! 아 젠장, 네가 퀴렐 교수님이 제시했던 작전의 원본을 들었다면 이런 말은 하지도 않았 ─” 본의 아니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말했다고 인지한 해리는 바로 입을 꾹 닫았지만, 때는 너무 늦어있었다.
헤르미온느가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를 초조한 듯이 움켜쥐었다.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 모습에 해리가 입을 벌렸다. “교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시던? 파드마를 살해하라고?”
해리를 향한 방어술 교수의 권유는 그의 학년에 영향력이 다분한 학생들을 전부 파악해내, 호그와트의 소문의 진원지를 장악하라는 것이었다. 호그와트에 재학중인 진정한 슬리데린이라면 한번쯤은 해볼법하고, 성공한다면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도전과제 중의 하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건 아냐,” 해리가 잽싸게 부정했다, “대충 그저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장악해보라는 작전이었어. 하지만 난 그보다 좀 더 상냥한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골몰했지. 그러다가 그냥 파드마한테 돌직구를 던지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더라고. 협박을 가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저지른 짓이 의미하는 바, 그리고 그 행동이 불러일으킬 역효과 따위를 설명하는 것 ─”
“지금 그건 협박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싶은 거니?” 헤르미온느가 머리칼을 쥐다못해 잡아뜯기 시작했다.
“으음….” 해리가 신음했다. “뭐, 조금은 협박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네, 그치만 헤르미온느, 사람들은 처벌이 없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게 돼. 자신에게 돌아오는 고통이 없으면, 거리낌 없이 남에게 고통을 주고. 만약 파드마가 그딴 거짓 소문을 퍼뜨리면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아마 계속해서 그런 ─”
“그럼 네가 파드마에게 한 짓거리에는 아무런 역효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해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헤르미온느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다른 애들이 너를 어떻게 여길 거라고 생각해 해리? 그리고 나는 어떻게 여길까? ‘만약 헤르미온느에 관한 말을 해버리면, 신경이 거슬린 해리가 유령을 보낼거야.’ 애들이 이렇게 생각할 게 분명한데, 넌 정말 이걸 원해? 원하냐고, 응?”
해리가 입을 열었으나 마치 벙어리가 된 것 마냥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책상에 강하게 내려친 책들을 다시 품 안에 넣기 위해 상체를 숙인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너하고는 이제 일주일 동안 말도 섞지 않을거야, 그리고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겠어, 그 이유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네가 입힌 피해가 조금이라도 가실 수 있겠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그러니까 ─ 그러니까, 그때는 뭐, 그때가서 생각해봐야할 것 같네 ─”
“헤르미온느!” 해리가 저도 모르게 절박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난 그저 도우려고 했을 뿐이라고!”
그녀가 교실 문을 열며 그를 돌아보았다.
“해리,” 성난 얼굴로 그렇게 말한 그녀의 목소리는, 노기로 인해 사뭇 떨리기까지 했다, “넌 변하고 있어, 퀴렐 교수님 때문에. 그 사람이 널 어둠으로 끌어가고 있는거야 해리.”
“그…교수님하고 이 일은 관계없어, 이건 순전히 내 의지로 한 ─”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워졌다. “언젠가는 여느 때와 같이 교수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간 너는, 어둠이 되어 돌아오게 될 거야. 어쩌면, 아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 제발, 제발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해….”
“점심 식사에서 반드시 온전하게 되돌아오겠다고,” 해리가 말했다, “약속할게.”
생각도 안하고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나부끼는 곱슬머리를 마지막으로,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사망플래그 한번 지대로 박는구만 머저리, 해리의 내면의 비평가가 비아냥거렸다. 이제 넌 토요일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거고, 네 유언은 ‘미안해, 헤르미온느’가 되겠지. 그리고 그녀는 너와의 마지막 기억이 절박한 심정의 너를 무시하고 사정없이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린 싸늘한 행위였다는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 ─
좀 닥쳐봐.
헤르미온느의 옆자리에 앉아 아침 식사를 시작한 파드마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그 정체불명의 유령에게 매우 유익하고 중요한 말을 들었으며, 해리 포터의 행동은 옳았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나간 뒤 몇몇 학생들은 대단히 안도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반대로 몇몇은 오히려 더 겁에 질린 듯이 안색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그 뒤 확실히 헤르미온느에 관한 질나쁜 소문은 많이 사라졌다, 적어도 1학년들 사이에서, 그리고 해리 포터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공공장소에서는.
파드마에게 일어난 일의 배후가 본인이냐는 플리트윅 교수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해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틀간의 징계를 받고 말았다. 비록 유령에 불과했고 파드마가 물리적으로 다치지는 않았다고 하나, 래번클로 학생으로서의 통념에 어긋나는 행위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고개를 끄덕인 해리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불만없이 수긍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플리트윅 교수에게 물었다.
결과적으로 파드마의 악행에 제동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래도 그는 사적으로도 해리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는가?
그 말을 듣고 멈칫한 플리트윅 교수는, 잠시 동안 신중하겍 고려해보더니, 엄숙하지만 그래도 아이 같은 목소리로 너는 다른 학생들과 ‘평범하게’ 공감할 수 있는 방법부터 배워야할 것 같다는 충고를 했다.
그리고 해리는 무심코 이런 충고야말로 퀴렐 교수의 입에서는 절대 나올래야 나올리가 없는 부류라고 생각해버렸다.
만약 퀴렐 교수의 방법, 즉 지극히 일반적인 슬리데린의 방식을 선택했더라면, 당근과 채찍을 써가며 파드마와 소문의 배후자들을 완벽하게 장악했더라면, 파드마는 아마 그와의 대화를 평생 혼자만의 비밀로 갖고갔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헤르미온느도 평생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황이 흘러갔다면 파드마는 결코 재기하지 못했을 것이고, 계속 그 잘못된 길을 나아가다 결국 시련을 겪었겠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투명 망토를 걸치고 복화술 마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해리는 단 한번도 파드마에게 거짓을 고한 적은 없었다.
아직도 그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해리로써는 알 도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헤르미온느는 더 이상 그와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정작 파드마와는 부쩍 말을 많이 섞게 되었다. 다시 홀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파왔다. 마치 고독에 특화되다 못해 숙달되어버린 뇌가 헤르미온느와 어울렸던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그 능력을 망각해버린 것처럼.
퀴렐 교수와의 점심 약속이 있는 토요일까지 시간은 너무나도, 지나칠 정도로 느릿하게 흘러가는 듯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