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감옥 실험 1화
토요일.
예상대로 어제 잠드는 데 애를 먹은 해리는, 미리 예비해두었던 수면약을 기어코 복용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가 긴장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기 위해 무려 몇 달 전에 미리 프레드와 조지로부터 구매를 해두었던 상태였다. (왜 보이 스카우트에서도 말하지 않던가, 준비성은 철저하게라고….)
고로 해리는 강제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주머니 또한 그가 혹시라도 필요할지 모르는 도구들로 꽉꽉 채워졌다. 사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머지 주머니의 용량에 슬슬 한계를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거대한 뱀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무엇을 집어넣어야 할지 모르기에 자동차 배터리처럼 큰 질량의 물건은 어쩔 수 없이 빼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어느정도 숙련된 변신술로 자동차 배터리와 비슷한 질량의 물건은 4분 내로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딱히 문제될 것은 없어보였다.
비상용 신호탄과 산소 아세틸렌 토치, 그리고 연료툥 같이 불태울 수 있는 물건은 변신술로 만들 수 없으니 가져가야만 했다.
(준비는 철저하게, 준비는 철저히….)
메리의 집.
주문을 받은 웨이트리스가 고개를 숙이고는 퇴실하자 퀴렐 교수가 바로 약 4가지 정도의 주문을 시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는 시덥잖은 내용의 연속이었다. 퀴렐 교수는 어둠의 마왕이 방어술 교수직에 내린 저주가 불러일으킨 결투의 하락세와 영국 마법 세계 사회의 변화에 관한 복잡한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해리는 터질 듯한 심장소리를 감추기 위해 지혜롭게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얼마 안가 웨이트리스가 입장해 요리를 내려놓았고, 다시금 그녀가 퇴장하자마자 퀴렐 교수는 손짓으로 문을 닫아 잠궈놓고는, 예의 29가지의 주문을 외웠다. 베스터 씨가 영창하던 주문 중 하나가 빠져있는 듯 했기에, 해리는 고개를 갸웃거렷다.
영창을 끝낸 퀴렐 교수가 ─
─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
─ 푸른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있는 녹색의 뱀으로 변신했다 ─
[배고픈가? 빨리 먹도록, 기력도, 시간도 최대한 필요할테니.]
두 눈을 크게 뜬 해리였지만, 이내 침착하고 뱀의 바람소리를 냈다, [아침은 든든히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접시의 면발을 입 안으로 쑤셔넣었다.
평탄한 파충류의 눈동자로 그를 미동없이 바라보던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여기서는 설명하기 싫다. 다른 장소를 선호. 들켜서는 안되고, 흔적을 남겨서도 안 돼.]
[아무도 우리를 추적할 수 없게,] 해리가 바람소리를 냈다.
[그렇다. 그렇게 내가 믿음이 가나? 대답하기 전에 생각부터. 나는 네게 신뢰를 필요로 하는 중대한 부탁을 할 참이다. 망설여진다면, 지금 거절하도록.]
광택어린 뱀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군 해리는,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서도 소스로 범벅이 된 면발을 입으로 가져갔다.
방어술 교수는…좋게 말해서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의 목표를 어느정도 파악했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게 너무나도 많은 미지의 사내.
그러나 퀴렐 교수는 해리를 소환해 추락시키고 있던 자를 잡아내기 위해 자그마치 200명의 소녀를 한꺼번에 쓰러뜨렸다. 해리의 지팡이를 통해 디멘터가 영혼을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추론해낸 것 또한 퀴렐 교수였다. 고작 2주만에, 방어술 교수는 해리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원해줬다는 의미.
어쩌면 방어술 교수는 훗날 이면에 감춰진 중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리의 목숨을 일부러 남겨두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그에게 이면의 동기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퀴렐 교수의 행보는 단순 변덕으로 보기는 어렵다. 허나 퀴렐 교수는 해리가 오클러먼시를 배울 기회를 제공했으며, 패배하는 법까지 가르쳤다…만약 방어술 교수가 해리 포터를 이용하고 싶은거라면, 적어도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는 나약한 해리 포터가 아닌, 성장한 해리 포터를 필요로 한다는 것. 친구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이용해먹기 위해 퇴보시키기는커녕 성장시켜준다.
간혹 방어술 교수에게서 한기와 공허함, 냉혹한 말투 등이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퀴렐 교수가 이러한 면모를 보이는 건 오로지 해리밖에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가. 즉 특별한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해리는 퀴렐 교수에게 느껴지는 유대감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단지 방어술 교수는 해리가 마법세계에서 만난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뚜렷한 사고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은 확고하게 말할 수가 있다.
그에 근접했던 인물들은 전부 얼마 가지 않아 퀴디치를 시작했거나, 타임 머신을 보호 케이스에 넣을 생각을 못했거나, 죽음을 친우로 받아들여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의도가 얼마나 선했는지야 상관 없는 문제다. 늦던 빠르던, 주로 빠르던, 그들은 자신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혼란을 뇌 속에 보유하고 있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시인해버렸다. 퀴렐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이해 관계와, 개인적인 호감과는 별개로 그 둘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었다. 마법세계에 남은 ‘유이’한 존재들. 설령 방어술 교수가 가끔 무서워보이거나 어둠처럼 느껴진다고 한들, 다른 이들도 간혹 해리를 비슷하게 여기고 있으니 딱히 문제는 없었다.
[믿습니다,] 해리가 바람소리를 냈다.
그리고 뱀이 계획의 첫번째 단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리는 면발의 마지막 한입을 입에 쳐넣고 씹었다. 그와 마주보며 앉은 퀴렐 교수는 어느샌가 다시 인간의 형태로 되돌아와, 마치 아무 특별한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수프를 뜨고 있었다.
입 안에 든 음식을 삼킴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심장이 미친듯이 날뛰는 감각을 경험해야만 했다. 지금 그들이 곧 시행할 보안 대비는 그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엄중한 대책일 것이 분명했다….
“그럼 시험해볼 준비는 되었나, 포터 군?” 퀴렐 교수가 선선히 말했다.
물론 시험이 아니었으나 퀴렐 교수가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리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중첩으로 보안 방벽을 건 이 방 안에서조차 방심하지 않는 인물이니까.
“넵,” 해리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첫번째.
해리는 “망토”라고 중얼거려 주머니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고는, 그대로 주머니도 허리띠에서 풀어 테이블 건너편으로 밀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방어술 교수가 지팡이를 전개하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 뒤, 지팡이 끝을 주머니에 가져다대고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이 주문을 검으로써 퀴렐 교수는 뱀의 형태로 안전하게 자의로 주머니 속을 오고가고 할 수 있게 될뿐더러, 안에서 바깥의 소리마저 들을 수가 있게 된다.
두번째.
일련의 행동을 끝마친 퀴렐 교수가 상체를 펴서 다시 지팡이를 내리는 순간, 공교롭게도 지팡이의 끝부분이 해리를 향했다. 해리는 시간이동 장치가 얌전히 있을 가슴팍에 마치 벌레가 꾸물거리는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세번째.
방어술 교수가 다시금 뱀으로 변신하자마자, 예의 그 파멸의 징조가 매우 옅어졌다. 바닥을 기어간 뱀이 주머니 근처로 다가가자, 주머니의 입구가 마치 그 녹색의 뱀을 잡아먹듯이 화악 벌어졌고, 이내 뱀의 꼬리마저 사라져버리자 파멸의 징조는 희미하게 느껴지기만 할정도로 퇴색이 되어버렸다.
네번째.
해리는 가능한 퀴렐 교수가 마법으로 케이스 안에 고정시킨 모래시계의 위치가 흐트러지지 않게 온 몸을 경직시키고는 팔 만을 움직여 지팡이를 드리웠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해리가 중얼거리자, 주머니가 두둥실 떠 그를 향해 느릿하게 날아왔다.
천천히, 또 천천히, 퀴렐 교수가 지시했듯이 주머니는 허공을 가르며 해리를 향했다. 만약 주머니가 조금이나마 열릴 것 같은 기미가 보이는 즉시 부유 마법을 사용해 방 반대편으로 날려버리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해리는 두 눈을 부릅 뜨고 주의깊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주머니가 약 1미터 부근까지 접근하자, 파멸의 징조도 다시 느껴졌다.
그리고 허리띠에 주머니를 다시 붙이자 파멸의 징조는 그 어느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고, 아직은 견딜만 했다.
애니마구스 형태로 변신한 퀴렐 교수가 해리의 골반 부근에 안착한 주머니의 확장 공간 안에 똬리를 틀고 있음에도 말이다.
다섯번째.
해리는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반대쪽 손에 들린 투명 망토를 휘둘러 뒤집어썼다.
여섯번째.
그리하여 모든 방해로부터 자유롭고, 그에 더해서 퀴렐 교수의 보안 마법이 중첩으로 걸린 방 안에서, 투명 망토를 걸치고 나서야 비로소 해리는 로브 속에 손을 넣어 시간이동 장치의 바깥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한번 돌릴 수가 있었다.
케이스 내부에 있는 모래시계는 단단히 고정되어 일말의 움직임도 없었으나, 모래시계 자체를 감싸는 배경이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
음식이 테이블에서 사라지고, 의자가 제자리로 껑충 뛰어갔으며, 문이 벌컥 열렸다.
‘메리의 방’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사전에 퀴렐 교수가 가명으로 ‘메리의 집’에 지금 이 방의 예약이 잡혀있는지 문의를 했었으니까 ─ 예약을 잡은 것도, 미리 잡아놓은 예약을 취소한 것도 아닌, 그저 문의만 했다.
일곱번째.
투명 망토를 벗어던지지 않고 해리는 열려있는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 메리의 집이 자랑하는 반듯하게 타일이 붙여진 복도를 거쳐 이윽고 가게의 주인인 제이크에 의해 운영되는 호화로운 바에 다다랐다. 들어오는 손님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바에는 점심의 피크 타임 이전의 오전이라는 시간 탓인지 몇 명 보이지 않았기에, 해리는 정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리기 전까지 몇 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중얼거리는 듯한 대화와 알코올이 넘어가는 소리를 엿들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별안간 문이 벌컥 열리며 푸근한 인상의 뚱뚱한 아일랜드의 남성이 입장했고, 그 사이를 틈타 해리는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여덟번째.
해리는 말없이 계속 걸었다. 메리의 집이 점으로 보일 정도로 멀어지자 방향을 틀어 다이애건 앨리로 향하는 작은 골목길로 들어선 해리의 앞에 펼쳐진 것은, 마법이라도 걸었는지 지독한 음침함을 자랑하는 어둑한 가게였다.
아홉번째.
“황새치 멜론 친구 (Sword fish melon friend),” 해리가 구절을 말하자, 자물쇠가 덜컥 하고 열렸다.
가게 안 또한 칠흑처럼 어두웠다. 젖혀진 문으로부터 스며드는 빛이 비추자 넓직한 빈 방이 드러났다. 한때 가구점이었던 이 곳은 방어술 교수의 말에 따르면 몇 달 전에 파산하였고, 건물주에 의해 회수되었으나 아직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지 않은 상태였다. 벽은 단조로운 흰색으로 칠해졌고, 목조 바닥은 훼손이 심해 손길을 타지 않은 듯 했으며, 특징이라고는 반대쪽 벽에 존재하는 닫혀진 문이 유일했다; 한때는 여기가 전시실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이 해리의 배후에서 닫히자마자,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열번째.
지팡이를 꺼낸 해리는 “루모스,”라고 중얼거려, 하얀 빛으로 방을 밝혔다. 허리띠에서 주머니를 떼어낸 그가 (손가락으로 거머쥐는 순간 파멸의 징조가 더 거세졌다) 방의 반대켠으로 가볍게 던졌다 (파멸의 징조가 거의 사라지듯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투명 망토를 벗은 해리가, 날카로운 바람과도 같은 소리로 낮게 말했다, [끝났습니다.]
열한번째.
주머니에서 불쑥하고 녹색의 세모꼴 머리가 튀어나오더니, 이내 족히 1미터는 되어보이는 기다란 뱀의 몸이 꾸물거리며 기어나왔다. 얼마 안가, 뱀의 형태는 이지러지고 퀴렐 교수로 변신했다.
열두번째.
해리는 방어술 교수가 서른 개의 주문을 전부 외울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됐다,” 주문을 끝마친 퀴렐 교수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이미 한참 전에 망한거나 다름없으니, 속 편하게 인간의 형태로 평범하게 대화하겠다. 나는 살라자르의 후손이나 진짜 뱀은 아니기에, 안타깝게도 파셀통그와는 다소 맞지 않으니.”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포터 군,” 퀴렐 교수가 말했다. 해리의 지팡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빛에 의해 음영진 그의 창백한 푸른색 눈동자는 강렬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제 방해자가 없게 되었으니, 네게 중대한 질문을 물어보고 싶구나.”
“물어보세요,” 가볍게 뜀박질을 시작한 심장을 느끼며, 해리가 말했다.
“영국 마법세계의 정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리가 예상했던 질문은 정확히 말해 아니었으나, 어디까지나 비슷하기는 했기에 해리는 준비된 대사를 나불거렸다, “제 한정된 지식에 의하여, 마법부와 위즌가모트 둘 다 멍청하기 그지없고, 타락한 악의 집단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맞다,” 퀴렐 교수가 말했다. “내가 왜 이 질문을 던졌는지 이해하겟나?”
해리는 깊게 산소를 들이쉬고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퀴렐 교수의 눈을 마주보았다. 티끌만한 정보에서 기가막힌 추론을 해내는 법은 사전에 정답을 파악해내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아버린 해리였기에, 퀴렐 교수와의 대담에서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되리라싶어서 1주 전에 완벽한 답변을 구축해놓았던 것이었다. 남은 것은 정해진 답변에 약간의 변형만 가미하면….
“즉, 교수님같이 흥미로운 사람들이 잔뜩 속해있는 비밀 단체에 저를 초대하시려는 거군요,”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 단체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영국 마법 세계의 정부를 뒤집어엎어 개혁시키는 거겠죠, 그리고 미리 말해두겠는데 예, 물론입죠, 저도 기꺼이 그 여정에 동행하겠습니다.”
찰나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안타깝게도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만,” 퀴렐 교수가 말했다. 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부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네가 불법, 그것도 대역죄에 속할 범죄를 도울 의사가 있는지 물어볼 계획이었다.”
젠장할, 해리가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아직 퀴렐 교수님께서 딱히 ‘아니’라고는 안하셨으니까 가망성은…. “계속해보세요.”
“계속하기 전에,” 퀴렐 교수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결여되어있었다. “너는 스스로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그릇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포터 군? 다시 말하지만 결국 거절의 의사가 존재한다면, 지금 당장 말해라.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거절하기 꺼려진다면, 터뜨려버리도록.”
“불법이나 대역죄 건은 별로 거북하지 않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오히려 위험 요소 여부성이 껄끄럽다면 껄끄럽다고 해야하겠지만, 제가 아는 교수님은 위험을 굳이 감수할만한 사람이 아니죠.”
퀴렐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건 너와의 관계를 불순하게 남용하는 것이며, 호그와트의 교직원으로써 짊어진 신뢰에 금을 ─”
“그건 굳이 안 말해도 압니다,” 해리가 말했다.
퀴렐 교수의 입꼬리가 다시 꿈틀거렸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그러도록 하마. 포터 군, 자네는 간혹 진실만을 사용해 거짓말을 치고는 하지, 뛰어난 언변으로 말장난을 쳐 진정한 의도를 사이 사이에 숨겨 얼핏보면 은닉되어있지만, 언젠가는 상대방이 눈치채게끔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한 행동을 지금까지 유쾌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말해둘테니, 명심해두거라 포터 군. 오늘 내가 희망하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만큼은, 반드시 거짓을 고해야만 한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어떤 단서나 말장난도 없이, 네게 물어본 사람이 적이건 가장 친한 친구이건 간에 딱 잘라서 거짓을 말해야 한다. 말포이도, 그레인저도, 맥고나걸도 예외는 아니다. 약간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해야만 한다. 여기에 네게 걸린 명예는 그야말로 ‘따위’로 치부해야 한다. 예외의 경우는 없다.”
그리고 장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해리의 영혼의 일부가 신중하게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제게 말씀해주시기 전에…” 해리가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필요할 정도로 위급한 사항입니까?”
“네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지,” 퀴렐 교수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너 말고는 없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으나, 이번에는 길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해리가 나지막히 고했다. “임무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방어술 교수의 어두운 망토가, 해리의 지팡이에서 터져나오는 백색의 섬광에 의한 벽의 음영에 이지러지는 듯한 환영을 자아냈다. “포터 군, 통상적인 패트로누스 마법은 디멘터의 공포만을 방어한다. 허나 여전히 놈들은 패트로누스를 넘어 시전자의 존재를 볼 수 있고, 인지한다. 그런데 네 패트로누스 마법만은 다르다. 놈들의 시야를 멀게, 아니 고작 멀게하는 것만이 아냐. 내가 본 그 누더기 망토 밑의 무언가는 네게 살해를 당하면서도 우리를 결코 바라보지 않았어. 죽어가면서조차, 마치 우리의 존재를 망각해버린 것처럼.”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인화한 디멘터의 진정한 정체를 정면으로 대적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는, 별로 놀라운 사실이 되지 못했다. 디멘터가 인류의 마지막 적일수는 있어도, 지적인 적은 아니니까. 인류가 천연두를 박멸했을 때, 천연두가 딱히 반격을 해온 것은 아니잖은가?
“포터 군, 그린고트의 중추는 도깨비들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구축한 마법으로 철저하게 보안이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금고는 창립 후에도 여러 차례 완벽하게 도난당한 적이 있지. 마법에 의한 것이면, 마법으로 해제도 가능하다. 이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아즈카반을 성공적으로 탈옥한 이는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아. 그 어느 누구도. 모든 주문에는 반대 주문도 존재하고, 어떤 장벽이라도 돌파할 방법은 있어. 그런데 어째서 여태껏 아무도 아즈카반을 탈옥할 수 없었을까?”
“아즈카반에는 불사의 존재가 버티고 있으니까요,” 해리가 말했다. “너무나도 끔찍해서 그 누구도 이겨낼 수 없는 것이.”
그게 바로 아즈카반이 지닌 완벽한 경비의 핵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간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아즈카반을 비호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였다.
“디멘터들은 자기들의 식사가 벗어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질색하지,” 퀴렐 교수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누군가가 시도하는 순간, 놈들은 바로 알아차린다. 그 곳에는 물경 백 이상의 디멘터들이 도사리고 있고, 간수들과도 주기적으로 소통을 하니까. 간단한 이야기다, 포터 군. 강력한 마법사라면 아즈카반을 출입하는 것도, 퇴장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아. 그래, 디멘터들에게 속박된 물건들만 제자리에 내버려둘 경우에는.”
“하지만 디멘터는 불사가 아닙니다,” 해리가 말했다. 지금 그 생각만으로도, 해리는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단 한순간도 놈들이 불사라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퀴렐 교수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포터 군, 처음으로 디멘터와 대면하고, 패트로누스 마법을 실패했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기억하는가?”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치 오장육부가 덜컥 내려앉는 지독한 느낌과 함께, 해리는 이 대화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즈카반에 결백한 자가 수감되어있다,” 퀴렐 교수가 말했다.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구멍이 불타오르듯이 아파왔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이 대화의 대상이 되는 자는 그 당시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리지 않았었다,” 가면 갈수록 음영이 짙어지는 어둠의 망토를 펄럭이며, 방어술 교수가 말했다. “충분히 고문을 가할 시간, 수준급의 레질리먼시, 그리고 언급하기조차 꺼려지는 몇가지 의식이라는 조건이 주어진다면, 임페리우스보다 더욱 확실하게 인간의 의지를 박살낼 수 있지. 내가 이 사실을, 이 모든 내용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단 한 개의 단서도 말해줄 수 없다만, 너는 날 믿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즈카반에는 단 일순간도 자신의 의지로 어둠의 마왕을 숭배한 적이 없는 자가 있다. 수 년을 이 세상에서 가장 냉혹하고 어두운 곳에서, 무고하게 고통의 시간을 곱씹으면서.”
그것은 거의 반사적인 직관력이었다. 해리의 입은 번개와도 같은 그의 사고력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 어떤 단서도, 경고도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완벽하게 ─
“그 자의 성은 ‘블랙’이로군요,” 해리가 말했다.
정적이 일었다. 완벽한 정적 속에서, 창백한 푸른빛 눈동자만이 그를 직시했다.
“이런,” 한참 후에 퀴렐 교수가 말했다. “이로써 네가 임무를 받아들인 후에야 그 자의 이름을 말해준다는 계획은 물건너갔군. 혹 내 생각을 읽고있는지 물어보고 싶다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해리는 입을 꾹 닫았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의 과정을 믿는다면 비교적 간단한 직관이었다. 아즈카반에 무고하게 수감되었을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유일하게 재판을 받지 않고 넘어간 자이니까 ─
“정말이지 놀랍구나, 포터 군,” 퀴렐 교수가 말했다. 그의 표정은 진중했다. “그러나 이건 매우 중대한 문제다. 혹시 누군가가 너와 같은 방법으로 추정해버릴 수도 있으니, 알아야만 한다. 그러니 말해다오, 포터 군. 멀린께, 아틀란티스에, 그리고 성간의 공허에 맹세코 나는 도저히 모르겠구나.
어떻게, 어떻게 내가 지금껏 일컫던 그 자가 ‘벨라트릭스’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