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감옥 실험 3화
눈을 뜬 시체 같은 여인의 무기질적인 동공에는 그 어떤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미쳤구나,” 갈라진 목소리로 벨라트릭스가 중얼거렸다, “못난 벨라가 미쳐가는거야….”
퀴렐 교수는 침착하고 정확하게 해리가 벨라트릭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강의를 해줬다. 자신마저 세뇌시키기 위해 어떠한 설정을 잡아야 하는지 말이다.
어쩌면 편리하게 생각한건지도, 아니면 순전히 여흥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벨라트릭스를 종속시키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건 그토록 지극히 사소한 이유였다.
그 감정을 잃는 건 벨라트릭스에게 있어서 결코 행복한 게 아닌 것이기에, 아즈카반에서도 그 사랑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너를 처절히 사랑한다. 몸과 마음과 열의를 다해서. 그야말로 영혼까지 불태워서. 너는 그 마음에 화답해주지 않지만, 그녀가 쓸만한 말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 사실은 벨라트릭스도 인지한다.
네가 소지한 최흉의 병기였던 그녀를, 너는 ‘귀여운 벨라’라고 곧잘 부르곤 했다.
해리는 어둠의 마왕이 부모님을 살해했던 그 날로부터 기억을 끌어올렸다. 잔인한 냉소, 경멸이 섞인 웃음소리, 증오가 가득찬 고주파의 목소리. 어둠의 마왕이 할법한 대사를 즉석에서 떠올리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디 네가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귀여운 벨라,” 냉혹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광년은 쓸모가 없으니까.”
벨라트릭스의 눈이, 공허한 허공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세차게 깜박거렸다.
“주…인님…저는 주인님을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찾아봤으나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살아…살아계셨군요….” 그녀의 말은 전부 속삭이는 것처럼 나지막히 들려왔다. 거기에 과연 감정이 실려있는지, 해리로써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얼굴을 보여줘] 해리의 발을 휘감던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해리는 투명 망토의 후드를 재껴 내렸다.
그리고 지극히 섬세하게 조정된 해리의 무감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두 눈은 일말의 동정도 표츌하는 일 없이, 오로지 한기와 희미한 흥미만이 서려있었다. (그 와중에도 해리는 생각했다. 구해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해줄게….)
“그 흉터….” 벨라트릭스가 중얼거렸다. “그 아이는….”
“아직도 다들 그렇게 여기더군,” 해리가 너털하게 웃었다. “여태껏 엉뚱한 곳에서 나를 찾고 있었구나, 귀여운 벨라야.”
(해리는 어째서 퀴렐 교수가 대신 어둠의 마왕을 연기할 수 없는지 물어보았으나, 아무 연고도 없는 자신이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의 혼에 씌였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그의 답변을 듣고는 납득했다.)
벨라트릭스는 말 없이 두 눈을 해리에게 고정했다.
[파셀통그로 아무 말이나 해] 뱀이 바람소리를 냈다.
일말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뱀을 향해 고개를 돌린 해리가 화답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정적이 일었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벨라트릭스가 중얼거렸다.
뱀이 바람소리를 냈다, [그것에 삼켜지리라.]
“그것에 삼켜지리라,” 냉혹한 목소리가 말을 끝맺었다. 퀴렐 교수가 어째서 그 암구호를 알고 있는지 해리는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불우한 죽음을 먹는 자 한 명과, 밀실, 그리고 하드코어한 레질리먼시가 연관되었으리라고 해리의 뇌는 짐작했다.
“지팡이,” 벨라트릭스가 중얼거렸다,
“포터 가에 떨어져있던 주인님의 지팡이를 가져와 은닉했습니다…아버님의 무덤 바로 오른쪽의 묘 안에…그러면 이제 제 마지막 책무를 다하였으니, 죽여주시는 건가요…항상, 만약 제가 죽는다면 주인님의 손에 살해당하고 싶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행복한 기억이었던 게 분명해….”
해리는 심장을 부여잡고만 싶었다. 견디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러나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 패트로누스를 유지해야 ─
짜증이 서린 표정으로 해리가 날카롭게 비아냥거렸다. “잡소리는 그만하도록. 디멘터와 사랑놀음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면, 나를 따라오거라 귀여운 벨라야.”
벨라트릭스가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두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지만, 나약해빠진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유 마법으로 옮겨야겠어,] 해리가 뱀을 향해 쉿소리를 냈다. [탈주를 생각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어.]
[알았음.] 뱀이 말했다, [허나 그녀를 얕보지 마, 한때는 최흉의 전사였으니.] 뱀이 경고하듯 녹색의 삼각형 머리를 휘저었다. [내가 굶주리고 9할 이상의 기량을 상실한들, 위협적인 건 매한가지. 네 말에 틀림은 없지만, 경계해.]
녹빛의 뱀이 유영하듯이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겁에 질린 눈빛으로 누런 피부의 털복숭이 사내가 지팡이를 든채 조심스럽게 옥 안으로 들어왔다.
“주, 주인님?” 하수인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명령대로 하도록,” 어둠의 마왕이 냉혹하게 내뱉었다. 소년의 몸에서 그런 목소리가 튀어나오니 한층 더 섬뜩하게 들렸다. “그리고 패트로누스를 결코 해제하지 말아라. 내가 무사하지 않으면 보상도 없을뿐더러, 네 가족도 편히 죽지는 못할거라는 건 명심하고 있을 터.”
그렇게 저주 같은 말을 끝낸 어둠의 마왕은 투명 망토를 다시 뒤집어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두려움이 가득 서린 얼굴로 하수인은 벨라트릭스의 옥문을 열고는, 망토 소맷자락에서 작은 바늘을 꺼내 해골 못지 않은 벨라트릭스의 피부를 찔렀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작은 핏방울이 하수인이 바닥에 내려놓은 인형에 내려앉아 스며들자, 하수인이 숨을 죽여 주문을 영창했다.
영창이 끝나자 바닥에는 또 하나의 해골 같은 육체가 미동없이 누워있게 되었다. 한동안 망설이는 듯 주저하던 하수인이었지만, 짜증내듯 혀를 찬 어둠의 마왕의 재촉에 화들짝 놀라 재빨리 벨라트릭스에게 지팡이를 겨누고는 중얼거렸다. 곧이어 침대에 누워있던 해골은 옷 한점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었고, 지면에 누워있는 해골은 흐릿한 느낌의 옷차림으로 바뀌었다.
지면에 널브러진 신체가 걸친 옷을 조금 찢은 하수인은 이내 망토 소맷자락에서 황금빛 액체가 담겼던 흔적이 약간 남은 빈 플라스크를 꺼내었다. 플라스크를 방 구석에 놓고 방금 찢은 옷의 천으로 가리자, 안 그래도 흐릿한 방과 비슷한 색을 연출하여 감쪽같이 위장이 되었다.
하수인이 지팡이를 흔들자 침대에 누운 해골 같은 인영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새까만 망토가 그녀를 휘감았다. 곧이어 초코우유가 담긴 병이 그녀의 손에 쥐어지자, 싸늘한 목소리가 명령을 내렸다. 벨라트릭스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명령에 따라 조심스럽게 그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윽고 하수인이 벨라트릭스를 투명화시킨 후, 자신도 투명화하자, 그들은 발걸음을 뗐다. 등 뒤에 닫힌 문이 잠기면서 철컥, 하는 소리를 자아냈고, 어느 한 옥의 구석에 새롭게 자리한 작은 플라스크 병 하나와, 그 옥의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한 구만이 바뀌었을 뿐인 복도는, 다시금 어둠으로 물들었다.
잠시 시간을 돌려, 텅 빈 가게에서 밀회를 하던 와중, 퀴렐 교수는 ‘우리는 ‘완전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라고 선언했다.
그 순간 해리는 무심코 완전 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속담을 그대로 읊어버리고 시작했으나, 미처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속담을 떠올리고는 읊는 도중 그대로 입을 닫아버렸다.
너는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만약 완전 범죄를 성공적으로 실행했다면, 아무도 그 범행을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 그럼 어떻게 ‘완전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그런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면 깨닫게 되어버린다. 완전 범죄는 아마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지만, 검시관이 사인을 자연사, 혹은 자살로 판단내리거나, 원래 경제적으로 허덕이던 가게가 마침내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는 형식으로 신문이 보도할 경우….
다음 날 아침, (모두가 알다시피) 단 한번의 탈옥조차 허용하지 않은 아즈카반의 감옥에서 벨라트릭스 블랙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그 어느 누구도 부검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고려조차 없었다. 간수들은 그저 일상처럼 복도를 잠근 뒤 떠났고, 다음 날 예언자 일보에는 그녀의 사망 기사가 보도된다…
…그것이 퀴렐 교수가 설계한 완전 범죄였다.
그리고 그 계획을 박살낸 건 퀴렐 교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