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속의 믿음 2화
얼마 안가 왼 손에서 느껴지던 타오르는 듯한 감각이 사라지자, 해리는 잠시 정신줄을 놓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퍼진 뒤, 숨죽여 흐느꼈다.
흠, 인간의 언어로 다시금 사고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해리의 정신이,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충분한 가치를 보았나?
천천히, 해리의 정상적인 손이 허공에 뻗어 책상 끝을 움켜쥐었다.
느릿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해리는, 두 발로 지면을 딛고 완전하게 일어섰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 그는.
미소지었다.
엄밀히 말해 미소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미소는 미소였다.
감사합니다 퀴렐 교수님. 교수님이 없었다면 지고 말았을 겁니다.
아직 드레이코는 완벽하게 탈바꿈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시작조차 못햇다. 드레이코가 이제 무엇을 믿고있던 간에, 그는 여전히 죽음을 먹는 자의 아들이었다, 그건 불변의 법칙이다. 여전히 ‘강간’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허세에 찌들은 청소년들이 하는 일종의 ‘놀이’라고 인식하며 자란 놈인것이다. 하지만 시작치고는 상당히 좋았다.
결코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다고 볼 수는 없었다.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말을 꾸며가며 머리속으로 구상한 것이니 완벽할리가 없다.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12월 까지는 이러한 전개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적어도 해리가 드레이코에게 확실하게 보이는 증거를 도피하지 않는 법을 완벽히 전수하기 전까지는.
허나 드레이코의 얼굴에 서린 공포를 포착하고, 그가 이미 대체적인 가설을 고려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해리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단 한순간의 호기심은 마치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는 단 한순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처럼 합리성을 만회해주는 효과도 지녔다.
돌이켜보면, 해리는 스스로에게 마법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하기까지 고작 몇 시간밖에 투자를 하지 않았지만, 11살 소년의 어리숙한 정신 방벽을 완벽하게 꿰뚫을 때까지 무려 한 다달이라 기나긴 시간을 투자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해리는 특정한 과제를 완수할때까지 소모되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측정하는 행동에 굉장히 취약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보인 일련의 행동으로 인해 그가 ‘과학의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가? 해리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해리는 드레이코의 상념에서 ‘마법이 고갈되어가고 있다’라는 가설이 소멸하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기해주었으며, 실제로 그러한 실험 방향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에게 직접 실험을 맡겼다. 먼저 유전학에 대해 설명을 끝마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린 뒤에, 드레이코에게 자연스럽게 ‘마법 생물’에 대해 자각하는 것은 유도했다 (뭐 사실 해리는 분류 모자 같은 고대의 유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한 것들은 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제작할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작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허나 해리는 드러난 증거들을 과장해서 설명하지는 않았고, 결과의 의미 또한 괴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실험이 멀린의 제재로 인해 오류로 판명나자, 그는 드레이코에게 사실 그대로를 전하였다.
그리고 뭐, 보다시피 그는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거짓을 고한 것은 아니다. 드레이코는 그것을 믿었고, 그 믿음에 의해 그것은 곧 사실이 될 테니까.
그래도 그 결말은, 솔직하게 말해,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몸을 돌린 해리는, 문으로 절뚝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이제 드레이코의 잠금 마법에 도전할 차례다.
물론 가장 첫 시도는 순전히 손잡이를 돌려보는 것이다. 드레이코가 허세를 부리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으니까.
보아하니 드레이코는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피니테 인칸타템.” 다소 잠긴 목소리로 해리가 고했지만, 그는 주문이 발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고로 다시 시도해본 결과, 정상적으로 마법이 작동했다. 허나 다시 팔을 들어올려 손잡이를 돌려보아도 눈곱만큼도 움직이지가 않았다. 뭐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슬슬 본선을 치룰 차례였다. 해리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부터 시전하려는 이 주문은 그가 배운 마법 가운데 가장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대마법이었다.
“알로호모라!”
영창과 함께 해리는 제자리에서 비틀거렸다.
그러나 교실 문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사태에 해리는 커다란 충격을 먹고 말았다. 물론 하늘이 두쪽나도 덤블도어가 일찍이 언급했던 금지된 복도를 탐방할 생각 따위는 추호에도 없었다. 허나 마법적으로 처리된 자물쇠를 푸는 마법은 상당히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해리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배워두었던 것이다. 덤블도어가 금지한 금지된 복도는 정녕 드레이코 말포이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한 보안 마법이 걸렸다는 것조차 인지할 수 없는 불나방들을 유혹하기 위해 존재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슬슬 공포의 마수가 해리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구급약 키트의 사용방법에 ‘통각마비성 붕대’는 고작해야 30분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소모성 물품이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있었다. 제한 시간이 지나면 붕대는 자동적으로 해제되어버리고, 24시간 동안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51분. 통각마비성 붕대를 착용한 것은 대략 5분 전이었다.
고로 잠시 뒤로 물러선 해리는, 문을 신중하게 관찰했다. 고동색의 오크 나무로 이루어져있었고, 오직 황동인 것 같은 금속의 손잡이만이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있었다.
현재 해리에게 절단 마법이나 폭발 마법 같은 공격성 다분한 마법에 대한 지식은 없었고, 폭발성 물질을 변신술로 생성하는 것은 불에 타는 물질을 변신술로 생성해서는 안된다는 변신술의 법칙에 위배된다. 산성은 액체였고 연기를 자아낼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난제 따위, 그와 같은 창의력 대장에게는 장애물 취급도 받지 못한다.
황동으로 이루어진 문의 경첩에 지팡이를 댄 해리는, 물질적인 솜보다 다소 추상적인 형식의 솜의 형태를 상상하는 것에 집중했고, 그와 동시에 경첩을 이룬 금속 자체를 상상해, 두 가지의 상상을 맞물려, 형태를 일그러뜨렸다. 한 달 가량 매일 변신술을 연습한 해리는 5 입방 센티미터 가량의 물질을 일 분 이내에 완벽하게 변신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2분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첩은 변함없이 건재했다.
드레이코의 잠금 마법을 고안해낸 천재적인 자가 누군지던 간에, 이러한 방법도 예상 아래에 두었던 것이 분명햇다. 아니면 문 자체가 호그와트 성의 일부이며 고로 변신술에 면역성을 지니고 있거나.
곁눈질을 통해 해리는 교실의 벽이 통짜 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닥도 마찬가지. 천장도 매한가지다. 고체로 이루어진 전체에서 일부분만을 특정해 변신술을 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가지 방법이라면 벽 전체에 변신술을 거는 것이었지만 그의 역량으로는 애초에 무리인데다가 가능하다고 해도 최소 몇 시간에서 몇 일동안 꾸준히 노력해야 비로소 끝마칠 수 있는 거사일 것임이 분명했고, 벽이 호그와트의 성 그 자체와 일체된 것이라면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해리가 소지하고 있는 ‘시간을 돌리는 기계’는 오후 9시까지는 결코 봉인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문이 잠궈지지 않았을 오후 6시로 시간을 돌리는 것이 가능했다.
고문 마법의 지속시간은 얼마나 될까?
해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금 눈가가 시큰해져가며 눈물이 고여가는 것을 느꼈다.
해리의 명석하고 창의적인 두뇌는 방금 막 주머니 속에 안착한 공구세트에 자리한 쇠톱을 꺼내 손목을 절단한다는 경이롭기 그지없는 발상을 툭 하고 제안해왔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겠지만, 드레이코의 고문 마법보다 그 통증이 덜 할 가능성도 있었다; 적어도 신경계 자체가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구급약 키트 안에는 지혈대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해리가 앞으로 평생동안 후회하고 또 후회할,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발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해리는 솔직히 두 시간 가량의 지속적인 고문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이 교실에서 나가고 싶었다, 당장 나가고 싶었다, 시간을 돌리는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두 시간 후까지 이 장소에서 마냥 고통이 맺힌 절규를 부르짖으며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당장 나가 이 고문 마법을 해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생각해 이 쓸모없는 자식아! 해리가 그의 두뇌에게 비명을 질러댔다. 생각해! 생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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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데린의 기숙사는 한껏 한산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저녁 식사를 하러 대연회장으로 출발한 상태.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드레이코는 전혀 배가 고프지가 않았다.
개인실로 들어가 문을 굳게 잠근 드레이코는, 마법을 걸고, 침묵 마법을 건 뒤, 침대에 앉아,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불공평했다.
너무 불공평했다.
정말 이토록 완패를 당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언제나 아버지는 처음으로 더 이상 어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완패를 당하는 것은 뼈저리도록 아플 것이라고 충고를 했지만, 그는 그 한번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 불공평했다, 난생 처음 겪은 패배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야 한다니, 지나치게 불공평한 처사가 아닌가.
이 지하 감옥 어딘가에서, 한때나마 드레이코가 마음에 들어했던 소년이 고통에 울부짖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드레이코는 그의 마음에 든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다 준 적이 전무했다. 처벌받아도 마땅한 자들이 절규하는 것을 바라보는건 즐거울 터였지만, 이건 그냥 구토감만을 유발할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조차 경고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감각이었기에, 드레이코는 이것이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겪는 시련인지, 아니면 그저 그가 나약하기 때문인지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차라리 울부짖고 있는 사람이 팬시 파킨슨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불쾌함은 사라졌을텐데.
그리고 가장 최악인 것은 바로 해리 포터를 적대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이제 드레이코의 곁에는 누가 남아 있는가? 덤블도어? 지금껏 그토록 그를 조롱해왔는데도? 차라리 산채로 불에 구워지는게 더 달가운 드레이코였다.
드레이코는 더 이상 갈 곳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리 포터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만약 해리 포터가 그를 거부한다면, 드레이코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죽음을 먹는 자가 될 수도 없고, 덤블도어의 파벌에도 들어갈 수 없고, 과학도 더 이상 배울 수가 없는 그저 그런 소년으로 퇴화되는 것이다.
함정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완벽하게 설치되었었다. 어둠의 의식을 통해 희생시킨 무언가는 영원토록 되돌릴 수 없다고 아버지는 경고하고 또 경고했었다. 허나 그의 아버지조차도 머글들이 지팡이조차 필요없는 의식을, 그것도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느새 거행하고 있는 의식을 발명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과학자들만이 알고 있는 끔찍한 비밀 중 하나였으며, 그것이야말로 바로 해리 포터가 그에게 사용한 의식이었다.
드레이코는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잊고 싶었다, 이 모든 일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싶었지만 이제와서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늦어도 너무 늦고 말았다. 그는 이미 한 명의 어엿한 과학자가 되고 말았으니까.
드레이코의 이성은 해리 포터를 풀어주고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지 오래였다. 그리고 가장 현명한 행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신 드레이코는 침대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는 소리없이 오열했다.
그는 이미 해리 포터를 상처입혔다. 어쩌면 그게 그게 드레이코가 해리 포터를 상처 입힐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몰랐고, 그는 평생동안 그 기억 하나만을 붙잡고 번민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이다.
계속 비명이나 지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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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한 때나마 쇠톱이었던 파편들을 바닥에 털어놓았다. 그 만큼 톱질을 했는데도 흠집조차 없는 황동의 경첩은 금강불괴로 판명이 났다. 천천히 해리는 만약 그가 애처롭게 변신술로 염산이나 폭발물을 생성해 경첩에다가 쏟아부었어도 문을 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사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적어도 쇠톱은 산산조각이 났다.
시계는 이미 오후 7시 2분, 즉 제한 시간까지 고작 15분을 남기고 있었고, 해리는 그의 주머니 속에 다른 날카로운 도구가 존재하는지 필사적으로 기억하려 노력했다. 다시금 눈가가 시큰거리며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만약, 시간을 돌리는 기계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당장 시간을 돌려─
그 순간, 해리는 스스로가 어이없을 정도로 바보같이 느껴졌다.
방 안에 갇혔던 경험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이미 그에게 이러한 사태를 타파할 올바른 방법을 일러준 상태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 시간을 돌리는 기계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충고도 함께.
맥고나걸 교수님께서는 과연 그가 처한 상황이 법을 위반할 정도로 특수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실 것인가? 아니면 두 말 필요도 없다는 듯이 시간을 돌리는 기계를 압수해버릴까?
해리는 그가 남긴 흔적들과, 소지품들을 모두 챙겨 주머니 속에 우겨넣었다. 사방팔방에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토악질은 스코지파이 주문 하나로 해결되었지만, 망토를 흥건하게 적신 땀마저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뒤집힌 책상은 뒤집힌 채로 두었다, 한 손으로 원상태로 돌리기에는 지나치게 비생산적인 노동이었으니까.
모든 업무가 끝나자, 해리는 그의 손목에 달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7시 4분.
그리고 해리는 가만히 기다렸다. 1분 1초가 마치 억겁처럼 느껴졌다.
오후 7시 7분,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덥수룩하고 폭신한 수염을 자랑하는 플리트윅 교수의 걱정어린 얼굴이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빼꼼 하고 내밀어졌다. “괜찮니, 해리?” 래번클로의 기숙사 사감이 높은 톤의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여기에 갇혀 있다는 쪽지를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