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K. 롤링: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인체발화 현상을 일으킬 확률 87%.
작가의 말: 로저 베이컨은 13세기의 인물이며 과학적 방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의 연구기록에 관한 일기장을 과학자에게 건내주는 행위는, 작가에게 셰익스피어 따위의 인물이 애용했던 필기도구가 아니라, 글쓰기를 창시한 인물의 필기도구를 선물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해리가 졸도할 뻔한 것은 결코 오버가 아닙니다.
해리 포터가 애원하는 장면은 분명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제바아아아알,” 해리 포터가 애원했다.
프레드와 조지는 다시금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해리 포터의 얼굴에는 절망어린 표정이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케빈 엔트위슬의 고양이 건, 헤르미온느와 소멸하는 음료수 등 모두 전말을 말해줬잖아, 배정 모자 건과 리멤브럴이나 스네이프 교수님과 관한 건 말할래야 말할 수가 없고….”
어깨를 으쓱인 프레드와 조지가 몸을 돌리고는 멀어져갔다.
“만약 혹시라도 알게 된다면,” 위즐리 쌍둥이 형제가 낭송하듯이 말했다,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거 잊지 마, 알겠지?”
“이 악마! 너희 둘 다 악마야!”
프레드와 조지는 등을 진채 빈 교실의 문을 닫고는, 혹시 해리 포터가 문 너머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까봐 얼마 동안 얼굴에서 미소를 띄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입꼬리가 추욱 늘어졌다.
“혹시 해리의 추측들을 듣고─”
“─뭔가 기억나는 건, 역시 없겠지?” 그들이 동시에 서로에게 말하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은 플룸이 그들을 도우는 것을 거절하는 장면이었다, 비록 무엇을 부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보아하니 그들은 다른 방면을 수색해 그들의 범죄 행각을 도울만한 인물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기억을 삭제당하는 것을 동의했을리가 없을 테니까.
어떻게 그들은 그 말도 안되는 일들을 고작 40갈레온이라는 예산으로 성공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처음에는 그들이 지나치게 설득력있는 증거를 조작해낸 나머지 해리가 정말로 지니와 결혼해버리는 일이 일어날까 걱정했지만…상황을 보아하니 그들은 그것마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위즌가모트 법정 회의록은 다시 한번 간섭을 당해 원상태로 돌아갔고, 용이 지키고 있는 그린고트의 금고 안에 있을 조작된 약혼 서약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말았으며, 뭐 그렇게 되었다. 사실 섬뜩하기마저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예언자 일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이 모든 사건들을 조작했다고 믿고 있고, 공교롭게도 ‘이러쿵 저러쿵’의 ‘해리 포터, 루나 러브굿과 비밀리에 약혼’이라는 다음 날 일자의 표제로 인해 불난 집에 기름마저 붓고 말았다.
어쩌면 공소시효가 끝나면 그들이 고용한 정체불명의 인물이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그들은 희망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상태로 있어야 했다. 인생 최고의 장난을, 아니 어쩌면 장난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해내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정작 본인들도 어떻게 해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 미친, 처음에는 그 길을 개척해나갔는데, 어떻게 그들의 업적을 알게 된 이후인 지금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봐도 생각조차 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들 또한 모른다는 것을 해리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위즐리와 관계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엄마조차 그들을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했건 간에, 이 사건의 배후가 호그와트의 학생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뭐,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손가락을 튕기기만 해도 무엇이든지 일으킬 수 있는 누군가를 제외하고서라도. 허나 해리의 말에 따르면 그는 베리타세룸을 복용한 뒤 철저하게 심문을 당했다고 한다…그것을 행하고 있는 오러들에게 살벌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덤블도어를 대동한채. 오러들은 해리가 결코 장난을 쳤거나 그 외의 이상한 짓거리를 행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진 직후, 곧바로 호그와트에서 헐레벌떡 도망치다시피 나갔다.
그들이 일구어낸 위업에 오러들이 애꿎은 해리 포터를 심문하고 있다는 사실에 프레드와 조지는 모욕감을 느껴야 하는지 기뻐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해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보답받은 듯 했다.
설령 리타 스키터와 예언자 일보 편집장이 벌써 종적을 감추고 이 나라를 떴더라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 부분만큼은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아버지는 칭찬을 퍼부을것이다, 물론 어머니가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지니에 의해 불태워져버린 그들의 잔해를 향해서이겠지만.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는 아버지인 아서 위즐리에게 사실을 말할 테니까. 한편….
…한편 공교롭게도 언젠가 복도에서 그들을 지나치던 덤블도어가 한차례 재채기를 하더니, 그의 주머니에서 작은 꾸러미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안에는 결계해지를 위한, 그것도 굉장한 성능의 모노클이 들어있었다. 자신들의 새로운 외눈 안경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들은 ‘금지된’ 3층 복도에 뛰어들어가, ‘마법의 거울’까지 갔다 돌아왔다. 과연 모든 것을 정확하게 탐지할 수는 없었지만, 모노클을 쓰니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소유하에 모노클이 있다는 것을 결코 들키지 않기 위해 요주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교장실에 끌려가 엄격한 처벌과 함께 퇴학을 권고받을지도 모르니까.
허나 그리핀도르에 배정받는 사람들이 전원 맥고나걸 교수처럼 거듭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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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특징이 없는 새하얀 방 안의 책상 앞에서, 검정색의 깔끔한 망토를 걸친 무표정의 사내와 대치하며 자아내는 적막감.
방은 그 어떠한 탐색 마법이라도 방지하는 면역 처리가 되어있었으며, 그것조차 모자란지 27차례의 각종 마법들을 세밀하게 걸고서야 비로소 무표정의 사내가 “안녕하십니까, 포터 군,”이라며 인사를 건내왔다.
곧 해리의 머리뚜껑을 열고 그의 내면 속에 침입할 예정인 사람 치고는 검정색 망토 사내의 인사는 기묘할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준비하시길,” 높낮이 없는 평탄한 어조로 사내가 말했다.
오클러먼시 교본에 따르길, 레질리먼스에게 노출되는 인간의 정신은 오직 표면으로 한정되어있다. 그 표면을 지켜내는 것에 실패하고만다면, 레질리먼스는 그 방벽을 뚫고 들어가 본인의 뇌가 이해하는 만큼의 정보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즉, 뚫고 들어간다고 해도 레질리먼스의 뇌가 그 정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레질리먼시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보아하니 인간의 정신은, 그것의 소유자인 인간조차 겉부분마저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구성되어있기에. 혹 인지과학의 대가가 되면 강력한 레질리먼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며 해리는 고심해보았지만, 반복된 실험 끝에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흥분하는 좋지 않은 버릇을 고쳐야된다는 교훈을 강제로 배워야만했다. 학문을 배웠다고 해서 인간을 창조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서 이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그것의 카운터, 오클러먼시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또다른 인물이라고 인지해야한다. 되도록 자세하게 구상하여, 완벽하게 다른 페르소나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숙달되면 이러한 절차는 필요가 없겠지만, 초기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표면’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레질리먼스가 침입을 시도할 시, 충분한 집중을 기울일 경우 그들의 정신간섭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을 감지한 자의 임무는 실제의 페르소나 위에 가상의 페르소나를 덮어씌워 레질리먼스가 그것만을 보게끔 하는것이다.
그 행위에 충분히 숙달될 경우, 스스로를 굉장히 단순한, 이를테면 목석 같은 인물로 포장할 수가 있게 되어, 본래의 정신 ‘표면’이 존재하던 자리를 위장할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기본적인 오클러먼시 정신 방벽이다. 목석 같은 인물로 가장하는 것을 배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 후에는 일사천리다. 그리고 정신의 표면은 그 안에 내제하고 있는 중심부보다 부피가 훨씬 더 얕기에, 어느 정도 노력 하에 따라서는 반 영구적으로 위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만약 누군가가 ‘완벽한’ 오클러먼스(오클러먼시 사용자)일 경우, 그는 레질리먼스가 던지는 질문들에 그 무엇보다도 빨리 위조된 답변을 내놓으며, 그가 현재 가장하고 있는 가공의 인물로 완벽하게 탈바꿈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아무리 경험이 많은 뛰어난 레질리먼스라고 해도 속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만약 완벽한 오클러먼스가 ‘나는 오클러먼시 정신 방벽이 없다’라는 허위를 흘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거짓인지 판별할 방법은 없다. 더욱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가 ‘완벽한’ 오클러먼스인지 아닌지조차 파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상당히 희귀한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분명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레질리먼시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인간이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정신에 대한 마법사들의 이해도가 아직 얼마나 미개하며,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텔레파시가 고작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것만으로도 바보가 되어버리는지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비극적인 사실이었다.
인간은 서로를 그저 ‘추측’만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개개인의 인격을 수십억개의 뇌세포가 보내는 신호를 개별적으로 분석해 통합하여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지구상 가장 뛰어난 심리적 조작사에게 그자리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해보라고 지시한다면, 인공지능 대신 미친 놈을 보는 듯한 그의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뇌를 상대의 뇌로 가장을 해, 그들의 생각, 행동의 원리 등을 유추한다. 인격을 덮어씌우는 것이다. 가령 화가 난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뇌에 분노를 주입시켜, 그 뇌의 행동에 따른 결과물이 바로 ‘추측’이다. 분노를 상징하는 신경망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아는 사람이 존재하기라도 하는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심리적 조작사마저 신경 세포가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으며, 최고의 레질리먼스 또한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
레질리먼스가 이해하는 모든 것을, 오클러먼스 또한 위장할 수가 있다. 결국 둘은 일맥상통한다 ─ 그 말은 즉 둘 다 기본적으로 같은 신경망을 바탕으로 구동된다는 것이다.
고로, 창과 방패의 승부는 처음부터 방패의 승리로 예정되어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마법 세계, 아니 전세계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 되어 있었을터….
깊게 숨을 들이쉰 해리는, 신중을 기해 집중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사실 난생 처음, 정말 처음으로, 해리는 ‘불가사의한 힘’이라는 놈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의 한 달이라는 각고의 연습과, 실질적인 노력보다는 잔머리를 굴린 끝에, 해리는 오싹할정도로 싸늘한 분노 상태에서 오클러먼시를 연습해보기로 했다. 그맘 때쯤에는 그런 어쭙잖은 속임수에 헛된 희망을 거의 버린 상태였었지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오클러먼시 교본에 수록된 최고 난이도의 연습을 두 시간 안팍으로 돌파해내는데에 성공했고, 바로 다음날 그는 퀴렐 교수에게 가 모든 준비를 끝마쳤노라고 고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암흑면’은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행위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문득 해리는, 처음으로 그가 완전히 ‘암흑면’으로 빠져버렸던 사건이자, 일종의 트리거가 되어버린 그 계기를 떠올렸다. 스스로에게 만족한 듯, 세베루스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5점? 아니, 네 건방진 태도로 인해 래번클로에서 10점 감점으로 해두지.”
얼음장같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해리는 ‘자신이 곧 해리 포터의 내면 속을 훤히 내다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검정색 망토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리는, 이 상황에 가장 걸맞을 듯한 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새하얀 방 안의 책상 앞에서, 검정색의 깔끔한 망토를 걸친 무표정의 사내와 대치하며 자아내는 적막감.
킴발 키니슨은 ‘자신이 곧 은하계 방위군의 제 2단계 렌즈맨의 내면 속을 훤히 내다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검정색 망토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몇 초후의 결과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묘사는 킴발 키니슨이라는 인물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멘토 오브 아리시아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았기에, 눈 앞의 일개 마법사는 ‘그레이 렌즈맨’이 가장한 허위의 정보를 가까스로 열람하는 것조차 힘에 부칠 것이 틀림없었다…
…바로, 현재 그가 위장하고 있는 신분인, 해리 포터라는 순진무구한 십대 소년의 조작된 정보 말이다.
“주, 준비 됐어요,” 킴발 키니슨이 열한 살 소년의 겁에 질린 초조한 목소리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말했다.
“레질리먼스,” 검정색 망토의 사내가 주문을 영창했다.
그리고 정적.
얼마 안가 검정색 망토의 마법사가, 평정을 잃고 눈꺼풀을 꿈쩍일 만큼 충격적인 무언가를 목도했다는 듯이, 별안간 눈을 몇 차례 껌벅거렸다. 입을 연 그의 목소리에서 명경지수란 개뿔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아남은 아이에게 불가사의한 ‘어둠의 이면’이 존재한다, 라?”
해리는 볼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흠,” 사내가 말했다. 어느새 그의 표정은 예의 그 차분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실례합니다만 포터 군, 스스로가 가진 장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좋으나, 그것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어쩌면 정말로 포터 군은 열한 살이라는 앳된 나이에 오클러먼시를 쟁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솔직히 말해 탄복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덤블도어 씨가 ‘미친 척’하고 있나, 싶었으니까요. 분열 사고에 대한 포터 군의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난 나머지 아동 학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웠기까지 했죠, 아무튼 이정도라면 완벽한 오클러먼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과, 첫 시도에 수준급의 오클러먼시 정신 방벽을 구축해낼 수 있을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은 다른 이야기. 어불성설입니다. 혹 제가 레질리먼시를 구사했을 때, 무언가 침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까?”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해리는 고개를 침울하게 저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집중하십시오. 포터 군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첫 수업만에 완벽한 인격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신 ‘표면’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자, 준비하세요.”
해리는 다시 한번 킴발 키니슨이라는 인격으로 가장하며, 집중력을 발휘했지만, 정신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기에 자꾸만 생각해서는 안되는 생각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 엿됐네.
해리는 이를 갈았다. 그나마 강의 이후에 저 강사의 기억을 삭제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레질리먼스.”
정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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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특징이 없는 새하얀 방 안의 책상 앞에서, 검정색의 깔끔한 망토를 걸친 무표정의 사내와 대치하며 자아내는 적막감.
강의가 시작한지 4일째가 되는, 일요일 오후였다. 이처럼 적절한 쇼미더머니를 발휘할 경우, 주말과 관계없이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에 강의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포터 군,” 예의 그 마법들을 싹 다 걸고 난 후에, 이제는 낯이 익을대로 익은 강사가 무감정한 음성으로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베스터 씨,” 해리가 힘없이 대꾸했다. “미리 말하지만, 부디 이번만큼은 충격을 먹지 않으시길 바래요.”
“정녕 제가 놀라움을 표했었단 말입니까?” 다소 흥미를 보이며,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뭐 일단.” 그가 지팡이를 가리키며 해리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레질리먼스.”
침묵이 일었고, 별안간 검정색 망토의 마법사가 소몰이 막대에 얻어맞은 것 마냥 펄쩍 뛰며 경련을 일으켰다.
“어둠의 마왕이 살아있다고?” 그가 콜록거렸다. 마법사의 눈동자는 이미 초기의 평정을 잃고 튀어나올 것 같이 휘둥그레져있었다. “덤블도어가 투명 마법을 걸고 여자 기숙사로 몰래 숨어들었다니?”
한숨을 토하며 해리는 그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약 3초 뒤에….
“그래서,” 그가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평정을 되찾는 데 훌륭하게 실패하고야 말았다. “정녕 포터 군은 본인이 마법의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 초월자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고 굳게 믿고있는 겁니까.”
“그래요,” 여전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해리가 일말의 주저없이 대답했다. “저는 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니까요.”
“흠. 그리고 보아하니 분류 모자에 따르면 포터 군이 차기 어둠의 마왕이 될 재목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또한 당신은 제가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은 물론이고, 이미 예전에 과연 당신이 제게 오클러먼시를 가르치는 것이 합당할지에 대해 기나긴 언쟁을 펼쳤던 것도 지금 보았겠죠, 그리고 끝끝내 베스터 씨, 당신이 수락한 것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이만 강의를 속행하면 안되겠습니까?”
“…어쩔 수 없죠,” 지난 번과 똑같이, 사내는 정확히 6초가 지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잠시 행동을 멈추며, 그가 어쩐지 애석해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적어도 그 ‘금과 은의 환율’에 대한 것만이라도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사람의 기억을 초기화시키고, 완벽하게 같은 상황에서 전과 일치하는 자극을 유발할 때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전처럼 되풀이 되는지, 해리는 혐오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훌륭한 환원주의자라면 애초에 가져서는 안 될 환각이었다.
작가의 말: 로저 베이컨은 13세기의 인물이며 과학적 방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의 연구기록에 관한 일기장을 과학자에게 건내주는 행위는, 작가에게 셰익스피어 따위의 인물이 애용했던 필기도구가 아니라, 글쓰기를 창시한 인물의 필기도구를 선물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해리가 졸도할 뻔한 것은 결코 오버가 아닙니다.
공감 1화
해리 포터가 애원하는 장면은 분명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제바아아아알,” 해리 포터가 애원했다.
프레드와 조지는 다시금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해리 포터의 얼굴에는 절망어린 표정이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케빈 엔트위슬의 고양이 건, 헤르미온느와 소멸하는 음료수 등 모두 전말을 말해줬잖아, 배정 모자 건과 리멤브럴이나 스네이프 교수님과 관한 건 말할래야 말할 수가 없고….”
어깨를 으쓱인 프레드와 조지가 몸을 돌리고는 멀어져갔다.
“만약 혹시라도 알게 된다면,” 위즐리 쌍둥이 형제가 낭송하듯이 말했다,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거 잊지 마, 알겠지?”
“이 악마! 너희 둘 다 악마야!”
프레드와 조지는 등을 진채 빈 교실의 문을 닫고는, 혹시 해리 포터가 문 너머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까봐 얼마 동안 얼굴에서 미소를 띄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입꼬리가 추욱 늘어졌다.
“혹시 해리의 추측들을 듣고─”
“─뭔가 기억나는 건, 역시 없겠지?” 그들이 동시에 서로에게 말하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은 플룸이 그들을 도우는 것을 거절하는 장면이었다, 비록 무엇을 부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보아하니 그들은 다른 방면을 수색해 그들의 범죄 행각을 도울만한 인물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기억을 삭제당하는 것을 동의했을리가 없을 테니까.
어떻게 그들은 그 말도 안되는 일들을 고작 40갈레온이라는 예산으로 성공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처음에는 그들이 지나치게 설득력있는 증거를 조작해낸 나머지 해리가 정말로 지니와 결혼해버리는 일이 일어날까 걱정했지만…상황을 보아하니 그들은 그것마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위즌가모트 법정 회의록은 다시 한번 간섭을 당해 원상태로 돌아갔고, 용이 지키고 있는 그린고트의 금고 안에 있을 조작된 약혼 서약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말았으며, 뭐 그렇게 되었다. 사실 섬뜩하기마저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예언자 일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이 모든 사건들을 조작했다고 믿고 있고, 공교롭게도 ‘이러쿵 저러쿵’의 ‘해리 포터, 루나 러브굿과 비밀리에 약혼’이라는 다음 날 일자의 표제로 인해 불난 집에 기름마저 붓고 말았다.
어쩌면 공소시효가 끝나면 그들이 고용한 정체불명의 인물이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그들은 희망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상태로 있어야 했다. 인생 최고의 장난을, 아니 어쩌면 장난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해내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정작 본인들도 어떻게 해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 미친, 처음에는 그 길을 개척해나갔는데, 어떻게 그들의 업적을 알게 된 이후인 지금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봐도 생각조차 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들 또한 모른다는 것을 해리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위즐리와 관계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엄마조차 그들을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했건 간에, 이 사건의 배후가 호그와트의 학생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뭐,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손가락을 튕기기만 해도 무엇이든지 일으킬 수 있는 누군가를 제외하고서라도. 허나 해리의 말에 따르면 그는 베리타세룸을 복용한 뒤 철저하게 심문을 당했다고 한다…그것을 행하고 있는 오러들에게 살벌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덤블도어를 대동한채. 오러들은 해리가 결코 장난을 쳤거나 그 외의 이상한 짓거리를 행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진 직후, 곧바로 호그와트에서 헐레벌떡 도망치다시피 나갔다.
그들이 일구어낸 위업에 오러들이 애꿎은 해리 포터를 심문하고 있다는 사실에 프레드와 조지는 모욕감을 느껴야 하는지 기뻐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해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보답받은 듯 했다.
설령 리타 스키터와 예언자 일보 편집장이 벌써 종적을 감추고 이 나라를 떴더라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 부분만큼은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아버지는 칭찬을 퍼부을것이다, 물론 어머니가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지니에 의해 불태워져버린 그들의 잔해를 향해서이겠지만.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는 아버지인 아서 위즐리에게 사실을 말할 테니까. 한편….
…한편 공교롭게도 언젠가 복도에서 그들을 지나치던 덤블도어가 한차례 재채기를 하더니, 그의 주머니에서 작은 꾸러미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안에는 결계해지를 위한, 그것도 굉장한 성능의 모노클이 들어있었다. 자신들의 새로운 외눈 안경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들은 ‘금지된’ 3층 복도에 뛰어들어가, ‘마법의 거울’까지 갔다 돌아왔다. 과연 모든 것을 정확하게 탐지할 수는 없었지만, 모노클을 쓰니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소유하에 모노클이 있다는 것을 결코 들키지 않기 위해 요주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교장실에 끌려가 엄격한 처벌과 함께 퇴학을 권고받을지도 모르니까.
허나 그리핀도르에 배정받는 사람들이 전원 맥고나걸 교수처럼 거듭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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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특징이 없는 새하얀 방 안의 책상 앞에서, 검정색의 깔끔한 망토를 걸친 무표정의 사내와 대치하며 자아내는 적막감.
방은 그 어떠한 탐색 마법이라도 방지하는 면역 처리가 되어있었으며, 그것조차 모자란지 27차례의 각종 마법들을 세밀하게 걸고서야 비로소 무표정의 사내가 “안녕하십니까, 포터 군,”이라며 인사를 건내왔다.
곧 해리의 머리뚜껑을 열고 그의 내면 속에 침입할 예정인 사람 치고는 검정색 망토 사내의 인사는 기묘할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준비하시길,” 높낮이 없는 평탄한 어조로 사내가 말했다.
오클러먼시 교본에 따르길, 레질리먼스에게 노출되는 인간의 정신은 오직 표면으로 한정되어있다. 그 표면을 지켜내는 것에 실패하고만다면, 레질리먼스는 그 방벽을 뚫고 들어가 본인의 뇌가 이해하는 만큼의 정보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즉, 뚫고 들어간다고 해도 레질리먼스의 뇌가 그 정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레질리먼시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보아하니 인간의 정신은, 그것의 소유자인 인간조차 겉부분마저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구성되어있기에. 혹 인지과학의 대가가 되면 강력한 레질리먼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며 해리는 고심해보았지만, 반복된 실험 끝에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흥분하는 좋지 않은 버릇을 고쳐야된다는 교훈을 강제로 배워야만했다. 학문을 배웠다고 해서 인간을 창조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서 이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그것의 카운터, 오클러먼시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또다른 인물이라고 인지해야한다. 되도록 자세하게 구상하여, 완벽하게 다른 페르소나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숙달되면 이러한 절차는 필요가 없겠지만, 초기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표면’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레질리먼스가 침입을 시도할 시, 충분한 집중을 기울일 경우 그들의 정신간섭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을 감지한 자의 임무는 실제의 페르소나 위에 가상의 페르소나를 덮어씌워 레질리먼스가 그것만을 보게끔 하는것이다.
그 행위에 충분히 숙달될 경우, 스스로를 굉장히 단순한, 이를테면 목석 같은 인물로 포장할 수가 있게 되어, 본래의 정신 ‘표면’이 존재하던 자리를 위장할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기본적인 오클러먼시 정신 방벽이다. 목석 같은 인물로 가장하는 것을 배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 후에는 일사천리다. 그리고 정신의 표면은 그 안에 내제하고 있는 중심부보다 부피가 훨씬 더 얕기에, 어느 정도 노력 하에 따라서는 반 영구적으로 위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만약 누군가가 ‘완벽한’ 오클러먼스(오클러먼시 사용자)일 경우, 그는 레질리먼스가 던지는 질문들에 그 무엇보다도 빨리 위조된 답변을 내놓으며, 그가 현재 가장하고 있는 가공의 인물로 완벽하게 탈바꿈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아무리 경험이 많은 뛰어난 레질리먼스라고 해도 속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만약 완벽한 오클러먼스가 ‘나는 오클러먼시 정신 방벽이 없다’라는 허위를 흘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거짓인지 판별할 방법은 없다. 더욱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가 ‘완벽한’ 오클러먼스인지 아닌지조차 파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상당히 희귀한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분명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레질리먼시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인간이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정신에 대한 마법사들의 이해도가 아직 얼마나 미개하며,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텔레파시가 고작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것만으로도 바보가 되어버리는지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비극적인 사실이었다.
인간은 서로를 그저 ‘추측’만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개개인의 인격을 수십억개의 뇌세포가 보내는 신호를 개별적으로 분석해 통합하여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지구상 가장 뛰어난 심리적 조작사에게 그자리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해보라고 지시한다면, 인공지능 대신 미친 놈을 보는 듯한 그의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뇌를 상대의 뇌로 가장을 해, 그들의 생각, 행동의 원리 등을 유추한다. 인격을 덮어씌우는 것이다. 가령 화가 난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뇌에 분노를 주입시켜, 그 뇌의 행동에 따른 결과물이 바로 ‘추측’이다. 분노를 상징하는 신경망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아는 사람이 존재하기라도 하는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심리적 조작사마저 신경 세포가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으며, 최고의 레질리먼스 또한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
레질리먼스가 이해하는 모든 것을, 오클러먼스 또한 위장할 수가 있다. 결국 둘은 일맥상통한다 ─ 그 말은 즉 둘 다 기본적으로 같은 신경망을 바탕으로 구동된다는 것이다.
고로, 창과 방패의 승부는 처음부터 방패의 승리로 예정되어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마법 세계, 아니 전세계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 되어 있었을터….
깊게 숨을 들이쉰 해리는, 신중을 기해 집중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사실 난생 처음, 정말 처음으로, 해리는 ‘불가사의한 힘’이라는 놈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의 한 달이라는 각고의 연습과, 실질적인 노력보다는 잔머리를 굴린 끝에, 해리는 오싹할정도로 싸늘한 분노 상태에서 오클러먼시를 연습해보기로 했다. 그맘 때쯤에는 그런 어쭙잖은 속임수에 헛된 희망을 거의 버린 상태였었지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오클러먼시 교본에 수록된 최고 난이도의 연습을 두 시간 안팍으로 돌파해내는데에 성공했고, 바로 다음날 그는 퀴렐 교수에게 가 모든 준비를 끝마쳤노라고 고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암흑면’은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행위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문득 해리는, 처음으로 그가 완전히 ‘암흑면’으로 빠져버렸던 사건이자, 일종의 트리거가 되어버린 그 계기를 떠올렸다. 스스로에게 만족한 듯, 세베루스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5점? 아니, 네 건방진 태도로 인해 래번클로에서 10점 감점으로 해두지.”
얼음장같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해리는 ‘자신이 곧 해리 포터의 내면 속을 훤히 내다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검정색 망토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리는, 이 상황에 가장 걸맞을 듯한 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새하얀 방 안의 책상 앞에서, 검정색의 깔끔한 망토를 걸친 무표정의 사내와 대치하며 자아내는 적막감.
킴발 키니슨은 ‘자신이 곧 은하계 방위군의 제 2단계 렌즈맨의 내면 속을 훤히 내다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검정색 망토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몇 초후의 결과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묘사는 킴발 키니슨이라는 인물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멘토 오브 아리시아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았기에, 눈 앞의 일개 마법사는 ‘그레이 렌즈맨’이 가장한 허위의 정보를 가까스로 열람하는 것조차 힘에 부칠 것이 틀림없었다…
…바로, 현재 그가 위장하고 있는 신분인, 해리 포터라는 순진무구한 십대 소년의 조작된 정보 말이다.
“주, 준비 됐어요,” 킴발 키니슨이 열한 살 소년의 겁에 질린 초조한 목소리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말했다.
“레질리먼스,” 검정색 망토의 사내가 주문을 영창했다.
그리고 정적.
얼마 안가 검정색 망토의 마법사가, 평정을 잃고 눈꺼풀을 꿈쩍일 만큼 충격적인 무언가를 목도했다는 듯이, 별안간 눈을 몇 차례 껌벅거렸다. 입을 연 그의 목소리에서 명경지수란 개뿔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아남은 아이에게 불가사의한 ‘어둠의 이면’이 존재한다, 라?”
해리는 볼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흠,” 사내가 말했다. 어느새 그의 표정은 예의 그 차분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실례합니다만 포터 군, 스스로가 가진 장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좋으나, 그것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어쩌면 정말로 포터 군은 열한 살이라는 앳된 나이에 오클러먼시를 쟁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솔직히 말해 탄복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덤블도어 씨가 ‘미친 척’하고 있나, 싶었으니까요. 분열 사고에 대한 포터 군의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난 나머지 아동 학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웠기까지 했죠, 아무튼 이정도라면 완벽한 오클러먼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과, 첫 시도에 수준급의 오클러먼시 정신 방벽을 구축해낼 수 있을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은 다른 이야기. 어불성설입니다. 혹 제가 레질리먼시를 구사했을 때, 무언가 침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까?”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해리는 고개를 침울하게 저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집중하십시오. 포터 군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첫 수업만에 완벽한 인격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신 ‘표면’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자, 준비하세요.”
해리는 다시 한번 킴발 키니슨이라는 인격으로 가장하며, 집중력을 발휘했지만, 정신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기에 자꾸만 생각해서는 안되는 생각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 엿됐네.
해리는 이를 갈았다. 그나마 강의 이후에 저 강사의 기억을 삭제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레질리먼스.”
정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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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특징이 없는 새하얀 방 안의 책상 앞에서, 검정색의 깔끔한 망토를 걸친 무표정의 사내와 대치하며 자아내는 적막감.
강의가 시작한지 4일째가 되는, 일요일 오후였다. 이처럼 적절한 쇼미더머니를 발휘할 경우, 주말과 관계없이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에 강의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포터 군,” 예의 그 마법들을 싹 다 걸고 난 후에, 이제는 낯이 익을대로 익은 강사가 무감정한 음성으로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베스터 씨,” 해리가 힘없이 대꾸했다. “미리 말하지만, 부디 이번만큼은 충격을 먹지 않으시길 바래요.”
“정녕 제가 놀라움을 표했었단 말입니까?” 다소 흥미를 보이며,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뭐 일단.” 그가 지팡이를 가리키며 해리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레질리먼스.”
침묵이 일었고, 별안간 검정색 망토의 마법사가 소몰이 막대에 얻어맞은 것 마냥 펄쩍 뛰며 경련을 일으켰다.
“어둠의 마왕이 살아있다고?” 그가 콜록거렸다. 마법사의 눈동자는 이미 초기의 평정을 잃고 튀어나올 것 같이 휘둥그레져있었다. “덤블도어가 투명 마법을 걸고 여자 기숙사로 몰래 숨어들었다니?”
한숨을 토하며 해리는 그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약 3초 뒤에….
“그래서,” 그가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평정을 되찾는 데 훌륭하게 실패하고야 말았다. “정녕 포터 군은 본인이 마법의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 초월자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고 굳게 믿고있는 겁니까.”
“그래요,” 여전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해리가 일말의 주저없이 대답했다. “저는 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니까요.”
“흠. 그리고 보아하니 분류 모자에 따르면 포터 군이 차기 어둠의 마왕이 될 재목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또한 당신은 제가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은 물론이고, 이미 예전에 과연 당신이 제게 오클러먼시를 가르치는 것이 합당할지에 대해 기나긴 언쟁을 펼쳤던 것도 지금 보았겠죠, 그리고 끝끝내 베스터 씨, 당신이 수락한 것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이만 강의를 속행하면 안되겠습니까?”
“…어쩔 수 없죠,” 지난 번과 똑같이, 사내는 정확히 6초가 지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잠시 행동을 멈추며, 그가 어쩐지 애석해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적어도 그 ‘금과 은의 환율’에 대한 것만이라도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사람의 기억을 초기화시키고, 완벽하게 같은 상황에서 전과 일치하는 자극을 유발할 때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전처럼 되풀이 되는지, 해리는 혐오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훌륭한 환원주의자라면 애초에 가져서는 안 될 환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