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편-1P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등굣길.
겨울이라 눈이 쌓이길 기대했는데, 오늘은 오후 늦게 눈비가 내린다고 한다.
동계교복은 와이셔츠와 조끼, 외투로 구성되어 안에 껴입은 내복까지 합치면 4벌을 걸친 셈이지만 웬만큼 두터운 점퍼 하나의 방한능력을 따라오지 못한다.
주머니에 양 손을 넣고서 추위에 부들부들 떨며, 실수로 현관 앞에 두고 와버린 목도리를 떠올린다. 시간이야 많이 남았지만 집까지 돌아가는 것도 귀찮고, 목도리 하나에 이 추위를 두 차례나 겪고 싶진 않으니 일찌감치 뒤돌아보기를 관둔다.
걸어서 30분 걸리는 등굣길의 중턱에서 옆 골목으로 접어들면 그 아이의 집이 나온다.
대문 앞에 멈춰 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만 기다리렴’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투정을 부리는 그 애의 목소리도 나지막하게 들린다.
이번에 나와 같은 일반학교를 다니게 된 그녀의 가이드 역할도 할 겸 등교를 함께 하기로 그쪽 부모님과 약속을 해뒀다.
모은 손에 입김을 불어 손을 덥히고, 그 손으로 귀를 덥히는 동안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에게 억지로 떠밀려 집에서 쫓겨나 앞마당을 터덜터덜 가로지르는 그녀의 발소리도 들린다.
그렇다면 이제 대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를 발견해야 정상일 텐데.
털썩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잠잠해지고 1분이 지나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애가 칠칠 맞아서 걷다가 잠드는 일도 종종 있으니 네가 잘 체크해주렴.’
어제 새겨들었던 그녀 어머니의 충고가 문득 떠오르고 나니 나는 억지로라도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담장을 넘으려니 담장 위로 살벌한 가시 철조망이 있고, 최대한 엎드려 대문 아래의 빈틈을 보는 수 밖에 없어 즉시 실행에 옮긴다.
보이는 것은 바닥에 철썩 붙어있는 사람의 다리, 지레 짐작으로 연상되는 그녀의 모습은 벽에 기대어 앉아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낮잠을 만끽하고 있다.
“어이, 소야.”
이름을 부르며 대문을 탕 치자, 무릎을 접고 있던 한쪽다리가 움찔하더니 일어나려는 듯한 자세로 허공에 질문을 던진다.
“누구세요?”
“우선 이 문부터 열지 그러냐.”
지금처럼 졸린 눈을 비빈다거나 제대로 머리를 말리지 않아 귀신처럼 산발을 하고 있거나 셔츠를 치마 안에 넣거나 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그녀의 본래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마법학회에서 촉망 받는 인재이자 동시에 위력적인 소환마법으로 중재자들에게 경계대상 1위로 꼽혀 그 악명을 떨치던 통제불능의 마법사가 이제 모든 과거를 털어버리고 평범한 여고생처럼 교복을 입고 꾸벅꾸벅 졸면서 등교를 하는 중이라니, 내 옆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졸지마, 어디 걸려 넘어지면 어쩌려고.”
라고 말하기 무섭게 전봇대와 부딪히기 직전의 그녀를 끌어당긴 나는 있는 힘껏 가져온 그 무게를 어디다 실어야 할지를 몰라 엉겁결에 내 가슴 쪽으로 당겼다.
다혈질에 성격파탄자인 그녀가 이 상황을 풀어날 만한 세 가지 예상패턴.
1. 무슨 짓이냐며 내 뺨을 때린다.
2. 아무 말 없이 내 뺨을 때린다.
3. 주먹으로 나의 명치를 때린다.
혹은…
“아, 아아, 미안. 깜빡 졸았네.”
그냥 가버린다.
억지로 성추행이라도 한 것 인줄로 오해를 살 법도 한데, 그녀는 별로 당황하지 않고 다시 졸린 눈으로 나보다 앞서 걷기 시작한다.
때려 맞는 플롯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 이전에 그녀가 ‘그 날’ 이후로 너무 변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 닿고 있다.
평소의 그녀는 길가다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혔을 때 그 상대가 주저앉을 때까지 정강이를 걷어차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냥 못 넘어가는 위험한 인물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경질부터 내고 보던 그녀가 늘 간섭만 하던 나를 앞에 두고 주먹질 대신 생전 하지도 않던 사과를 하다니, 이건 놀라움을 넘어서 나를 정신병리적 상태로 내몰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역 쪽에 있는 아파트 재개발 공사장에 크레인을 들였다는데, 점심시간에 보러 가지 않을래?”
“흐음, 마법이 없어졌으니 못 보던 것들은 앞으로도 많이 생길 거잖아? 일부러 구경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아침 조례시간, 오늘도 당번들이 책상과 의자를 반으로 가져온다.
담임이 처음 보는 얼굴의 학생을 데려오고, 그 학생은 태만한 표정과 무기력한 걸음걸이로 뒷자리에 마루 끌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어색하게 앉는다.
벌써 10일 째 이런 조례의 연속이다.
이렇게 오는 중기입학생들의 몸짓, 표정, 분위기에는 일관적인 면이 존재한다.
모두가 하나 같이 의욕이 없고 수업에도 관심이 없으며 먼저 말을 걸어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이 나름의 공통점.
그들에게는 화려하고 찬란했던 과거가 있다. 지금은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특권층의 힘을 가지고 내려다보는 것을 즐기던 과거, 그들이 하등 시 해오던 우리 같은 일반고교의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다.
마법사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왔던 건 아니었다.
협회가 제시한 정식마법사 기준을 넘어서는 이는 50명 중 1명도 되지 않는 극소수였기에, 시기를 거듭할수록 마법이 사회를 움직이는 데 비중이 늘어나고 재능을 가진 마법사는 도무지 그 필요량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법사의 타이틀을 가진 이들의 긍지는 굉장한 것이었다.
“뒤에서 뻔뻔하게 엎드려 자고 있는데 수학도 걔 안 깨우는 거 봤냐?”
“참, 마법사가 마법도 못 쓰면서 왜 저렇게 건방져.”
“내가 삼촌한테 들었는데, 저것들은 국가공훈자라서 출석 미달이라도 졸업 시켜주고 특기 있으면 대학 보내서 교수도 시켜준대.”
“뭐? 생활지원금 준다더니 그것도 모자라 수능 안보고 졸업까지 시켜주냐? 어처구니가 없다. 저런 병신을 왜?”
옆에서 아이들이 하는 대화내용을 엿듣다 보면 있는 얘기도 들리고 없는 얘기도 지어낸다. 하는 말의 대부분은 맞는 것들이지만 대화가 한창 달아오르다 보면 과대한 포장에 거짓도 섞게 되는 법이니까.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붙어 잡담을 나누는 소위 ‘책상파’들은 저희들 대화흐름이 끊긴다 싶으면 무난한 소재로 넘어가 저렇게 남의 뒤를 후벼 파는 식으로 흉을 본다.
휴대폰을 만지는 척 종종 엿들으면서도 그들이 전직 마법사들을 미운 털로 여기는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전직 마법사의 눈에 거슬리는 태도나 행동 따위가 단지 꼬투리를 잡기 위한 빌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친구 호태는 중학교 때부터 같은 동창이었고 지금은 바로 옆 반인데, 아주 개방적이고 적극적이며 친절한 아이지만 책상파들에게 마법사였다는 이유만으로 어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늘은 시커멓게 구름이 끼고 교사 뒤편의 산에는 이제 낙엽이 다 져서 살아있는 색이 없다.
날씨 꼴이 이렇다 보니 공원호수를 산책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창가로 보이는 바깥 배경은 모두 죽은 듯 멈춰있다.
“표정이 안 좋네. 아침엔 멀쩡하더니.”
소야가 건너편 여자 반에서 구교사까지 일부러 나를 찾아왔다.
점심시간에는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이 별로 없다.
도시락을 싸오기 귀찮을뿐더러 근방 500미터 이내의 30여개 식당에서 교내급식체크카드를 허용하고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학교처럼 닫힌 공간은 가능한 한 빠져나가고 싶은 것이 학생들의 본성이니까.
“점심은 먹었어?”
“아, 집에서 가져온 바나나 하나랑 우유.”
옆 창턱에 걸터앉는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빨대 꽂힌 우유, 그것 또한 바나나 향인가?
점심이 바나나 한 개? 라고 묻자 사과는 좀 지겨워서, 라며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한 대답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