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기사를 쓰고싶어서 후편
‘츠키하라 유키전’은 예상보다 더 괜찮았다. 홀에서 빠져나와 가까이 있는 카페에 들어갈 때까지도 마미의 흥분은 멈추지 않았다. 무심코 유키 군에게도 열변을 토해 버렸다. 유키 군도 마미의 말에 가지각색의 반응을 돌려주고, 의견이나 감상을 말해주어서 그게 다시금 마미의 정렬에 속도를 붙였다.
“아아, 역시 디지털카메라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본 것들을 이것저것 찍어뒀을 텐데요.”
“그래도, 저런 건 보통 촬영 금지 아니야?”
“뭐어, 그렇기는 한데요.”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뇌 속에 인화되어있는 전시 내용을 떠올려 본다.
언젠가 마미도 그런 기사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전시물이었다.
카페에서 프루츠 타르트를 내온 뒤에도 마미의 마음은 아직 다스려지지 않는다.
“자신이 전장의 중심에 가까이 있으면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게 대단해요. 그러면서도 그 설득력 있는 묘사력. 샘이 날 정도예요.”
이야기하면서 오렌지와 크림을 입으로 옮긴다.
그러자 그때까지 마미의 의견에 거의 고기를 끄덕이기만 했던 유키 군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그래도, 완전히 객관적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지 않을까?”
“에?”
포크를 입에 문 채로 유키 군의 얼굴을 살핀다. 유키 군은 레어치즈 케이크에 포크를 찌르면서 말을 잇는다.
“그게 말야, 전장의 중심이라고 해도 계속 동측에 있었으니까, 서방의 정보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 그건 뭐어.”
“그걸 어떻게든 객관적으로 쓰려 노력하면서 그런 전달력을 가지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군데군데 어거지인 부분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뭐어, 그 정세에서 서방에 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던 것도 문제였겠지만.”
“으, 응.”
“아, 그래도 사진 쪽은 대단했던 것 같아. 그건 정말로 숨기는 것 없이 상황을 비추고 있다고 느꼈고. 뭐라고 할까, 그림자를 굉장히 다룬다고 해야 하려나.”
“………….”
“문장과 사진의 조화도 괜찮았어. 그것도 문장과 사진, 한쪽에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고……아니, 뭔가 잘난 듯 말해 버렸지만 이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유키 군은 가볍게 웃으며 커피를 입에 옮겼지만, 마미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절찬만을 하고 있던 그 전시내용을 유키 군은 마미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흥분하고 있던 마미는 약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대, 대단해요. 유키 군. 전 그런 식으로는 전혀 보지 못했는데.”
“에? 하지만 나도 마미 양이 느꼈던 것 같은 건 느끼지 못했어. 보는 사람이 다르면 이렇게나 다르구나 싶어.”
그렇다. 신문이나 기사 등은 보는 사람이나 읽는 방식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제삼자의 눈이라는 건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귀중한 조언인 셈이다.
지금까지도 이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언니, 선배, 후배, 학우들. 그래도 모두가 릴리안이라고 하는 제한된 세계 속에서의 일이었다.
“저, 저기, 유키 군. 그럼, 그 제2전시실에 있었던 기사 말인데요…….”
“아ー, 그건 깜짝 놀랐어! 그게……”
듣고싶다.
좀 더 이 사람의 의견을. 마음을. 느낀 내용을.
마미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오늘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모자를 잡으며 마미가 정중한 인사를 했다.
“아니, 나야말로. 유미가 못 오게 된 탓에 나 같은 게 오게 되어서 면목이 없어.”
“그렇지 않아요. 저, 유키 군의 의견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그래? 그런 거려나. 그렇다면 괜찮은데.”
물론, 거짓말 같은 게 아니다. 마미는 정말로 좋은 자극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릴리안 학보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끓어오르고 있다.
그럴 때.
“나는 마미 양이 부럽다고 느꼈는데.”
“?”
생각지도 못한 유키 군의 말에 마미는 눈을 끔뻑거렸다. 얼굴의 각도를 약간 돌려, 유키 군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머리의 뒤에 깍지를 끼고 어딘가 비스듬한 곳을 보는 듯한 모습으로 유키 군은 말을 이었다.
“오늘 전시를 보고 있는 마미 양, 그리고 그 뒤에 카페에 들어가기 전후에 츠키하라 씨의 작품이나 기사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의 마미 양이 말야. 뜨겁고 정말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전신에서 오라 같은 게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할까. 뭔가에 그렇게나 몰두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부러웠어. 마미 양이 빛나 보였어.”
“그, 그런. 저, 그렇게 보였나요?”
확실히 자기 자신도 흥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대체 얼마나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을까. 갑자기 부끄러움이 덮쳐왔다.
하지만 유키 군은 옆에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 마미의 상태는 눈치채지 못한 듯
“나, 지금은 그렇게나 몰두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래도 확실히 하나데라의 학생횐가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았나요?”
“학생회는 즐겁고 보람도 있지만, 그거랑은 좀 달라. 마미 양처럼 마음속 깊이 좋아하며 사력을 다하고 있다기에는.”
“저는 이런 것밖에 없으니까요.”
“하나만 있으면 충분해.”
거기서 이야기가 끊겼다.
눈길만을 돌려서 유키 군의 모습을 훔쳐 보면, 어딘가 먼 옛날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은 눈빛으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미 양과 같은 얼굴인데 유미 양과는 전혀 다르다.
대체 뭘까.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갑자기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다. 일단 마미는 뭔가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저기!”
에에,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입을 연 뒤에 생각한다.
“그, 괜찮다면 다음에도 유키 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것저것 들려 주셔도 괜찮을까요?”
“에?”
깜짝 놀란 듯 유키 군은 마미를 바라봤다.
나나난, 뭘 말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말해 버렸으니 주워담을 수도 없어서.
“유키 군의 의견, 굉장한 자극이 됐어요. 그러니까 또 기회가 있으면 여러 가지를 들려줬으면 해요. 저기, 릴리안 학보의 기사라거나. 그거랑, 또, 오늘같은 때라거나.”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게 되어왔다.
뭔가 지금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해 버린 건 아닐까. 실제로 유키 군은 여우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마미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도저히 얼굴을 마주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행히도 모자의 챙이 마미의 표정을 숨겨주는 중이라곤 생각하는데
“나 같은 사람의 의견으로 괜찮아?”
“에, 예! 그거면 전혀 충분해요.”
아, 이런. 전혀의 용법을 틀려 버렸다. 아니, 그런 건 지금은 어쨌건 됐고.
“그럼, 기회가 있으면.”
“예, 기회가 있으면요.”
그렇게 약속한 뒤 유키 군과 헤어졌다. 그리고 유키 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순간, 어디선가 찾아온 피로가 왈칵 덮쳐왔다.
“후와아……어, 어째서……?”
집에 돌아가자 어머니가 마미의 모습을 보고 웃음 지었다.
“어머, 마미 쨩. 오늘은 굉장히 사랑스러운 양복으로 외출했네.”
“에, 그, 그래?”
“오늘은 유미 양과 나갈 예정 아니었니?”
“으, 응. 맞아. 그게 왜?”
“그게, 마치 데이트에 다녀온 것처럼 보였으니까.”
“무……그, 그래, 유미 양하고 데이트였으니까. 외출할 때는 제대로 된 모습으로 안 나가면 이상하잖아?”
“그렇지만, 평소에 마미 쨩은 뭔가 일어날 때를 생각해서 좀 더 움직이기 쉬운 모습으로 나가잖니.”
그래. 그 말 대로다. 어머니가 말하고 있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솔직히 말할 수도 없었다.
“가끔은 이런 옷도 입고싶은 걸. 나도 여자애고.”
“흐응ー. 그렇구나, 마미 쨩도 여자애인걸.”
“………….”
어머니의 말투가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이 이상 뭔가 입 밖으로 꺼냈다간 점점 이상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 같아서 결국 아무것도 말 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자 유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파자마 차림이었지만, 몸 상태는 제법 좋아졌는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유키, 너 마미 양한테 이상한 건 하지 않았지?”
“뭐야. 오자마자 그거야? 애초에, 같이 가라고 한 건 유미잖아.”
“그건 열 때문에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지. 왜 그런 걸 말해 버린 걸까.”
“걱정 안 해도 아무 일도 없었어. 평범하게 전시회를 본 뒤에 잠깐 차를 마시고 온 것뿐이니까.”
“뭐어, 유키니까 괜찮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째서 집에 오자마자 그런 걸 물어본 걸까. 상대가 남동생이라고는 해도 친구를 남자와 둘만 남겨뒀다는 데 대한 부담감인가.
“그래도, 뭐어, 유미가 안 가도 괜찮았던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유미가 흥미있어할 것 같진 않은 내용이었잖아?”
“안 그래ー. 나라도 보면 흥미가 생길 거로 생각하고.”
“그러려나.”
“그렇다니까. 그것보다, 신경 쓰이던 게 있었는데, 어떻게 마미 양을 찾은 거야? 나, 잘 생각해 보니까 마미 양이 어떤 여자앤지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게 나중에 떠올라서. 설마 그 주변에 있는 여자애한테 모두 말을 걸어본 건 아니지?”
“그럴 리 없잖아. 마미 양 같아 보이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어. 상대도 내 얼굴을 보고 유미와 똑같다고 생각한 모양이고.”
“흐응ー…….”
유미는 수상하다는 눈길로 유키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밀어붙인 건데 어째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유키는 더 이상 태클 걸리기 전에 후딱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뒤에서 유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구태여 무시하며 자기 방문을 열었다.
“참말, 자기가 멋대로 밀어붙여 놓고선 너무하네.”
방에 들어가서 지갑을 책상 위에 내던진다.
침대 쪽으로 걸어가 그대로 퍼지려고 했지만, 문득 마음을 고쳐 다시금 책상 쪽을 바라본다. 서랍 둘째 단을 열어 공책 아래에 놓여있던 ‘그걸’ 집어든다.
그건 얼마 전에 정말로 우연히 손에 넣은 야마구치 마미 양의 사진. 그 사진 속의 마미 양은 화내거나 수줍어하거나 삐치는 등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틀림없이 야마구치 마미 양의 사진인데, 어째설까. 오늘 함께 있었던 마미 양과는 미묘하게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사진과 실물의 차이인 걸까.
팔짱을 끼고 하루 동안의 일을 차근차근 되짚어본다.
“……아, 그런가.”
사진을 보고 오늘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떠올린 뒤, 유키는 간신히 뭐가 달랐던 건지를 이해했다.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고 욕실에 들어간 뒤, 자기 전의 한때. 마미는 책상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일기장이 펼쳐져 있고,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일기는 처음 3줄 정도를 쓴 뒤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어째설까. 오늘의 전시회는 그렇게나 좋았는데.
전시 내용에 대해서 생각한 건 바로 그 장소나 나간 뒤에 메모했고, 자료 같은 것도 사 왔으니 잊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평소라면 일기에 이것저것 쓸 텐데. 그곳에서는 떠올리지 못했던 것, 나중에 고민한 것 등 마음이 진정된 뒤 냉정한 사고 속에서 정리한 내용을 일기에 쓰는 게 평소의 일인데.
“후우.”
펜을 놓고 책상 위에서 팔짱을 끼고 얼굴을 묻는다.
지금까지 컨디션이 나쁘거나 슬럼프일 때는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것과는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됐어, 오늘은 다른 걸 쓰자.”
전시 내용을 쓰는 걸 포기하고, 다른 걸 써 내려간다. 그래,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해프닝으로 유키 군과 만나게 된 거다. 태어나고 처음으로 남자애와 둘이서 외출…….
“………….”
역시 첫머리를 쓴 뒤에 더 이상 펜이 나아가지 않는다. 오늘 있었던 일은 머릿속에 이렇게나 선명히 떠오르는데.
“우와아아, 이제 됐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펜을 내던진 뒤 일어나서, 침대에 엎어지듯 쓰러진다.
“어째설까…….”
엎어진 채로 고개만을 옆으로 돌리자
옷장 앞에 오늘 입은 원피스가 걸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원피스를 향해 마미는 작은 소리로 속삭여 보았다.
“저기, 너는 왠지 알고 있니?”
물론 원피스는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후우…….”
또다시 한숨.
결국, 추가로 써넣은 건 단 한 줄이었다.
「오늘은, 유키 군과 첫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라는 단어가 문제였던 걸까. 필요 의상으로 의식해 버린다. 게다가 ‘유키 군과 첫’ 같은 걸 쓰면, 이 뒤에 두 번째나 세 번째가 있을 것 같이 보여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유키 군과 했던 이야기, 유키 군의 생각, 그런 내용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그래도 그걸 문장으로써 남길 수가 없었다.
이제 됐어. 모르겠는 걸 계속 안고 있어봐야 별수 없다. 못 쓰는 건 못 쓰는 거다. 그 이유는 다음에 만났을 때 생각하든 하자.
“―――다음에, 만났을 때……?”
그런 때가 찾아오는 걸까.
그래도.
확실히 약속했다. 유키 군은 응해 주었다. ‘기회가 있으면’ 이라고.
그런 ‘기회’가 찾아온 미래를 떠올리자, 왠지 자연스럽게 얼굴이 풀어진다. 이것도 왠진 잘 모르겠지만, 전혀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기에 그대로 이불에 들어가기로 했다.
불을 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책상 위에는 겨우 한 줄의, 하지만 그 수십 배, 수백 배의 마음이 담겨있는 한 줄이 쓰인 일기장이 접혀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