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라비린스 제 3화
결전의 날을 일주일 앞둔 주말, 나는 쇼핑을 하러 나갔다. 목적은 물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거다.
손으로 직접 만든 걸 주는 것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시간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직접 뜬 물건(예를 들면 머플러라거나 스웨터 같은?)은, 직접 떠 줬다는 마음은 기쁘지만 정작 쓰려고 하면 어지간히 센스가 좋고 잘 만들어진 게 아니면 쓰기에 곤란하리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하게 가게에서 사려고 하고 있다. 대학교 친구들과 여행하러 가거나 컴퓨터를 사거나 하느라 요즘 지출이 많긴 했지만, 다행히 여름에 알바로 모아둔 돈이 아직 좀 남아 있다.
선물이라는 건 어려운 법이라 너무 고급스러운 걸 준다고 해서 기뻐한다고 할 순 없고, 오히려 곤란해할 가능성이 높다. 적당한 가격에 기뻐해줄만한 물건을 찾아야 하니 이것도 꽤 까다롭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귀고 있는 남성이면, 더더욱 뭘 주면 괜찮을지를 알기 힘들다. 아버지에게 선물하는 거랑은 다르니까.
며칠 전부터 시간이 남으면 뭐 좋은 물건이 없나 하고 여러 가게들을 둘러봤었지만, 이거다 싶은게 눈에 띄지 않았다.
대체 뭐가 괜찮을까.
양복? ――――어려운데. 센스도 드러나고.
액세서리? ―――아니아니, 고등학생이고, 별로 흥미 없는 것 같고.
손목시계라거나――――꽤 괜찮은 느낌일지도.
보면 볼수록 혼란스러워진다. 자신이 이렇게나 우유부단했었나 싶다. 아니, 자신에 대한 건 좀 더 잽싸게 결단할 수 있겠지만, 남을 위해 고르는 게 되면 온갖 생각들이 떠올라 버린다.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녀가 바로 옆에 왔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건 그런 식으로 매장들을 오가던 탓이려나.
“――――언니.”
“에?”
돌아보자, 거기엔.
“사치코?! 아아, 깜짝 놀랐어.”
“간신히 깨달아 주셨네요.”
릴리안에 다닐 적의 내 사랑스런 여동생, 사치코가 서 있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고상한 모습. 1년쯤 전부터는 더더욱 온화함이 더해져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더더욱 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지도 못한 재회에, 우리는 한동안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런데 언니, 오늘 이 곳에는 무슨 일인가요?”
“에, 그건.”
말이 막혀 버렸다. 그도 그럴게, 내가 물건을 보고 있던 곳은 남성 패션 코너였으니까.
아직 사치코에겐 유키 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비밀로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낯부끄럽기도 하고 사치코가 남성 혐오증인 것도 있으니, 꽤 말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선물을 고르러 왔다고도 말하기 힘들었는데.
“역시, 언니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러?”
“그, 그럼 사치코도?”
남성 혐오증이었을텐데, 어느새? 아니면 설마, 그 카시와기 스구루에게라도 주는 거려나. 약혼자로서.
갈은 걸 생각하고 있자.
“예. 그건 그렇고 언니, 굉장히 젊은 취미시네요.”
“그, 그러려나?”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셔츠를 보고 사치코가 말한다. 그런 거려나. 내 생가엔 오히려 좀 수수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뇨, 죄송해요. 생기넘쳐서 좋네요.”
“에, 에에……?”
“그래도, 행복하겠네요. 언니가 그렇게나 생각해 주다니.”
“에.”
가슴이 철렁한다.
설마 사치코가 알고 있었던 걸까. 유미 쨩 주변에서 들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되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르고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마음에 그려 준다면, 아버지도 행복하시겠죠.”
“…………에.”
“저도 아버지에게 선물을 뭐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어라, 잠깐 기다려. 사치코, 네가 선물하는 상대라는 건, 아버지?”
“그런데요……에, 언니, 그렇지 않았나요?”
사치코가 약간 미심쩍어하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아―――――마, 맞아, 물론 그랬어. 아무도 그이에게라든가……아, 아냐,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인가요, 언니? 얼굴이 새빨갛게…….”
“아, 더, 더우니까, 그래, 여기 히터가 너무 세서.”
“그런……가요? 그래도 언니, 코트를.”
“그, 그렇네. 코트를 걸친 채라 더운 걸지도.”
안 되겠어. 뭘 말하면 말할수록, 사치코에게 의문을 심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는 필사적으로 정신줄을 가다듬는다.
“왠지 오늘의 언니는, 평소와는 다른 것 같은 기분이.”
“기분 탓이겠지. 나는 평소와 변함 없어.”
“그런……가요.”
아직 얼마간 의심은 남아있는 것 같지만, 사치코도 그 이상은 추궁해 오지 않았다. 나도 간신히 침착을 되찾아 여동생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맞아, 언니. 모처럼인데, 같이 사지 않으실래요?”
“그렇……네. 그래도 나, 그렇게 고급스러운 건 벅차고.”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우기고 나서, 누가 봐도 젊은이 용이거나 너무 발랄한 것 같은 걸 사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래서 나는 그런 변명을 입에 담았는데.
“언니, 너무해요. 저, 그렇게 고급스러운 걸 사거나 하진 않아요.”
사치코는 입을 빼죽이며 반론했다.
그런 여동생의 모습은 정말로 귀여웠지만, 오늘만은 어쩌기 힘들다.
“에에, 그래도, 취미가 맞으려나?”
“언니……저랑 같이 쇼핑하는 게 싫으신가요?”
“그 그, 그런 거 아냐! 그렇네. 그럼 같이 둘러보자.”
“예!”
슬퍼보이는 표정을 짓는 사치코를 보고 저도 모르게 동의하자, 그 순간 사치코는 기쁜 듯이 표정이 활짝 피었다.
“그럼, 가죠, 언니.”
생기 넘치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나 싶어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럼, 언니. 오늘은 즐거웠어요.”
“나도야. 또 다음에 보자.”
“예, 그러면 안녕히 가세요.”
“잘 가. 또 봐.”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사치코가 돌아간다.
해가 저무는 게 일러져서, 이미 주위는 캄캄해져 있다. 쇼핑을 하고 가볍게 차를 마신 뒤 가게를 나서자, 이미 그런 시간이 되어 있었다.
여동생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자기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은 뒤, 나는.
“으아아아아앙―, 나 멍청이!”
소리치면서 머리를 부둥켜안고 침대로 몸을 날렸다.
아무리 오랜만에 사치코랑 같이 보낼 수 있었다고 해도. 굉장히 들떠있던 사치코가 귀여웠다고 해도, 여동생이 그런 표정을 지은 이유가 나랑 같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기뻤다곤 해도.
거기에 낚여, 선물을 사 버렸다.
아니, 선물을 산 것 자체는 결코 나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예정 대로였지만, 문제는 산 물건 쪽이다.
“으으……이제 돈 없는데…….”
한탄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고.
어째서 거절하지 못했던 걸까. 딱히 꼭 오늘 사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좋은 물건이 없었다고라도 말했으면 괜찮았을텐데.
어쩌지. 지금부터 알바를 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시간이 없다.
사치코는 물론 좋아하지만, 오늘만은 원망스럽다.
“어쩌지…….”
베개에 얼굴을 묻으면서 나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슬쩍 책상 위로 눈길을 향하자, 오늘 막 사온 선물이 예쁘게 포장되어 놓여 있는게 보인다.
건넬 때를 생각하면, 유키 군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며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두근거림을 느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불안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져 버렸다.
“요코, 저녁밥 다 됐어. 내려 오렴.”
아래층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굉장히 허무하게 귀로 들어온다.
이럴 예정이 아니었는데. 하고 생각하며, 무거워진 몸을 질질 끌듯 일어났다.
“―――그런 거, 반품하면 되잖아.”
“에?”
크리스마스 이브 당일 낮에, 히노 양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유키 군과의 약속 시간은 저녁이지만,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나는 히노 양에게 연락을 해서, 말을 나누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거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날에 갑자기 불린 히노 양은, 처음에는 떨떠름해하고 있었지만 결국 나에게 어울려 주었다. 마침 그녀도 약속이 저녁부터기에 시간도 비어 있었던 모양이고, 내가 걱정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아니 뭐, 분명 내 이야기를 듣고 놀리는 게 목적이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과정을 거쳐 서로 합류해,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일의 전말을 이야기하자, 히노 양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꺼낸 거다.
“그도 그럴게, 선물 용으로 산 거니까, 당연히 아직 열어보지 않았을 거잖아? 그러면 반품할 수 있잖아.”
“아…….”
그래. 히노양이 말하는 대로잖아. 얼이 빠져 있던 나는, 그런 간단한 것도 깨닫지 못했던 거다.
나는 기가 막혀, 다음 순간에는 자신의 얼빠짐을 저주했다.
“아아아아……그렇네. 그랬어.”
전국 체인인 유명 편의점의 카운터에 엎드려서, 힘없이 말한다.
“아하하, 뭐, 아직 시간 있잖아? 지금부터라도 서두르면 괜찮지 않아?”
“그래, 그렇지……아!”
“무, 무슨 일이니?!”
히노 양의 말에 나는 기운을 되찾을 뻔 했지만, 무언가를 깨달았다. 당황스레 가방 안에서 지갑을 꺼내 내용물을 확인한다.
“미즈노, 양?”
“………….”
하지만 찾으려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침을해지며 히노 양을 치떠본다.
“……영수증, 버려버렸어.”
“아니, 그런 눈으로 보면 욕정해 버리니까……가 아니라. 그래도, 그러면. 아, 그래도 포장지는 그대로지? 그 가게 거라는 건 알 수 있을 테니, 안되더라도 가 보면 어때? 어디 가게에서 샀니?”
그 말을 듣고, 나는 가게 이름을 말한다.
“이런, 그러면 S역 쪽까지 안 가면 안되잖아. 지금부터 왕복할 시간을 생각하면……어쨌든 무리였네.”
“그……렇네.”
어깨가 처진다.
정말로, 자신의 어리석음에 눈물을 흘리고 싶어진다. 이래 봬도 릴리안에 다닐 적엔, 뭐든지 실수없이 해내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오히려 남들이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홍장미님, 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돈데.
눈에 띌 정도로 낙담한 내 모습을 보고, 히노 양은 카페라테를 입에 머금으며 쓴웃음 지었다.
“뭐, 괜찮잖아. 의외로 마음에 들어할지도 모르고.”
“그러려나.”
자그만 목소리로 대답한다.
정말로 그럴까. 물론 물건 자체는 나쁜 건 아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상상은 나쁜 방향으로 향해간다.
“……미즈노 양이 주는 선물이라면, 뭘 받아도 기뻐하는 게 당연하잖아.”
“에, 무슨 말 했어?”
“아니아니, 아무것도. 뭐, 새삼스레 투덜투덜 고민해도 어쩔 수 없잖아. 그것 말고도 생각할 것들, 있지?”
“그, 그렇네.”
그녀가 말하는 대로 시간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걸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에에, 그럼, 오늘 내 모습, 이상하지 않니?”
여러모로 고민한 끝에 고른, 오늘의 코디네이트는.
베이지랑 브라운을 바탕으로 한 보드넥 스웨터는, 볼륨 있는 소매와 곳곳이 비쳐 보이는 디자인이 포인트. 허리에 체인 벨트를 감고, 액세서리를 달고 있다.
“……역시 이거, 그만두는게 낫지 않을까?”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잔뜩 열린 보드넥에서 엿보이는 캐미솔의 어깨끈.
“이런 게 너무 보이면, 상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기, 어느 시대 사람이야.”
기막혀하는 표정을 짓는 히노 양.
“괜찮아. 그보다 여전히 시크하고 어른스러운 걸 고르네. 크리스마스 이브니, 좀 더 귀여운 걸로 입으면 될텐데.”
“……무리야. 거기에, 부모님도 만나게 될 거고.”
“그렇네. 뭐, 일단 오늘은 그게 제일 큰 거고.”
거기서 히노 양은 컵에 남겨진 카페라테를 단숨에 마셨다. 손목시계로 시계를 보면 슬슬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나도 서둘러 남은 커피를 목에 흘려넣는다.
“……뭐 그래도, 모처럼 온 날이니까.”
일어나자 마자, 히노 양ㅇ 나를 향해 한 눈을 감고.
“찬스를 만들어서, 키스 정도는 하라고?”
내 귓가에 속삭이듯, 그러면서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히노 양과 헤어져,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유키 군의 모습이 있었다.
“미안해. 기다리게 했으려나?”
“으으응, 지금 막 온 참이니까.”
“그래.”
“응……에에, 그럼, 갈까?”
“응.”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로, 나와 유키 군은 걸음을 옮겼다. 나도 그랬지만, 옆에서 걷는 유키 군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향하는 곳은 유키 군의 집.
드디어 나는, 결전의 장소에 발을 디딘다.
제 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