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라비린스 에필로그
“잘 먹었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즐거웠어요.”
현관 앞까지 배웅해와 주신 아주머님과 유미 쨩을 향해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원래는 차로 역까지 보내줘야 할 텐데, 남편도 참, 분위기에 취해 와인을 너무 마셔 버려서…….”
거실 소파에서 기분 좋은 듯이 잠에 빠져 계신다는 거다. 왠지 절로 미소가 나온다.
“괜찮습니다. 아직 버스도 남아 있고요.”
“유키, 제대로 바래다 주라고.”
“말 안해도 그럴 거야.”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언제든지 다시 와 주렴, 요코 쨩.”
“예.”
그렇게 불리는데 익숙해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문을 지났을 즈음 뒤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인사를 한다. 유키 군은 조금 앞에서 걷고 있다.
“아, 기다려 주세요, 요코 님.”
발걸음을 떼려 했을 때 뒤에서 불려 뒤를 돌아보자, 유미 쨩이 하얀 김을 내쉬며 종종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왔다.
“무슨 일이니?”
“에에, 그게요.”
뭔가 말하기 힘든 듯이 머뭇거리고 있다.
거기서 나는, 문득 디저트 타임 때의 복수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볼일 있어? 유미 언니.”
하지만.
“………….”
“…………으.”
유미 쨩도 놀란 것 같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건 말하는 내 쪽이 훨씬 부끄럽다는 걸 말이 끝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그도 그럴게, 그건 즉…….
“아, 아니, 유미 쨔”
“에에, 요코, 쨩.”
말을 고치기 전에 유미 쨩의 반격을 먹어버린 나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운 ‘손녀’였던 그녀 앞에서 당황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눈 앞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하게도, 생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학원 축제 때도, 장미관의 크리스마스 파티 때도, 졸업을 앞두고 따뜻한 딸기우유를 함께 마실 때도, 그녀는 내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손녀’였다.
아니, ‘손녀’인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애정을 담아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유미 쨩.’
이라고.
하지만 지금 내 입장은 굉장히 미묘해져서, 그녀와의 관계도 굉장히 기묘한 상황이 되어서.
“저기, 이거.”
그 말을 한 유미 쨩도 조금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지만, 윗옷 주머니에서 뭔가 자그만 봉투같은 걸 꺼내며 내게 건넸다.
“제가 드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엣, 유미 쨩이?”
난 유미 짱에게 파우치를 선물로 줬었지만, 설마 유미 쨩이 이런 준비를 했을줄은 몰랐다.
“예, 그,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니긴 한데요.”
“어째서. 기뻐. 고맙게 받을게.”
자그만 봉투를 받아든다.
“저기, 댁에 돌아가셔서 열어봐 주세요.”
부끄러워설까. 그래도 뭐, 기대를 남겨두는 것도 좋겠지. 과연 유미 쨩의 선물이 뭔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마음에 안 들면 억지로 안 받아주셔도 괜찮으니까요.”
“그럴 리 없잖아. 고마워.”
빙긋 미소짓는다.
“그럼, 오늘은 정말로 즐거웠어. 잘 자렴.”
“안녕히 주무세요.”
봉투를 가방에 넣고, 나는 기다리고 있던 유키 군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걸음을 옮긴다.
다른 사람의 눈길을 신경 쓸 일 없이, 유키 군의 옆에서.
버스에 타고 역을 향한다.
막차도 가까운 늦은 시간이라 버스 안에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았다. 유키 군도 역까지 바래다 주겠다며 옆자리에 탔다.
가는 동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몇 시간도 채 안되는 동안의 일이지만, 이야기 할 일은 끊이지 않았다.
유키 군의 방에서 키스할뻔한 상황으로 갔었던 건 둘 다 일부러 화제로 꺼내지 않았다. 조금 유감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 안심스런 마음.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둘이 함께 조금씩 걸어가면 괜찮은 거다. 더는 옆에 있는 걸로 쓸데없이 고민하거나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역이 가까워져와, 주위가 꽤나 밝아지기 시작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와아, 봐, 유키 군. 굉장히 예뻐.”
“응.”
내 소리에 유키 군도 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때.
버스가 커브를 돌았다.
“꺅?!”
원심력에 실려 균형이 무너져서.
―――쪽
“―――――으으?!”
당황해서 떨어졌지만.
“……에, 아, 지금?”
내 입술이 닿은, 부드러운 피부.
유키 군의 뺨.
유키 군은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다. 어두운 버스 속에서도 그 얼굴이 달아오른게 보였다. 손으로 뺨을 만지려 하다가, 그만두고 입가를 누른다.
“에에, 그.”
이렇게 말하는 나도, 생각지도 못하는 사고에 뭘 어째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입술에 남은 감촉에 가슴만이 들뛰고.
버스가 속도를 늦춰, 천천히 멈춰선다.
밖을 보자, 신호가 빨간 불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인파. 역앞의 조명과 가로등, 도로조명이 신호등의 빛과 섞여서 버스 안을 신비한 빛으로 물들인다.
이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어서 달리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 역에 도착한다.
“에에―――.”
뭐라고 하면 괜찮을까.
이대로 조용히 있는 것도 거북해서, 나는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기쁜 사고였기도 하니 미소를 지으며.
“에에, 그. 메리 크리스마스, 일까?”
그렇게 말한 거였다.
즐거웠던 크리스마스 파티와 ‘그’ 사고의 여운을 남긴 채로 집에 도착해, 내 방으로 돌아갔다.
코트를 옷걸이에 걸고 유키 군이 준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내서 잠시동안 빨려들듯 바라본 뒤, 옷장에 넣었다.
가방 안에서 지갑을 꺼내려다가 안에 넣었던 봉지를 찾았다. 그건 유미 쨩에게서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대체, 뭘까.”
그 애가 나를 위해서 뭘 사 준 걸지, 기쁨과 기대감에 가득해 봉투를 풀어 보자 안에는 자그만 상자가 들어 있었다. 그 상자까지도 열어 보자,
“……엣?”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건―――
“이건…….”
손에 든다.
그건 실버 우드 십자 펜던트. 은으로 된 부분의 세공이 굉장히 섬세하고, 나무 부분과의 콘트라스트가 정말로 아름다웠지만.
“설마…….”
로자리오?!
릴리안에서 로자리오를 건넨다는 행동이 의미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자매 서약이고, 유미 쨩이 내게 그걸 건네고 내가 받았다는 건……
그래서 유미 쨩은 그런 소리를 한 건가.
아니,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유미 쨩이 준 선물을 퇴짜놓을수도 없다. 혹시나 특별한 의미가 아니라 단순한 액세서리로 선물한 걸지도 모르고……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래도……하는 식으로 사고는 루프에 빠질 뿐.
“다, 당했다――――――?!”
나는 펜던트를 손에 든 채로 말했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얼이 빠져 있었다 싶다. 깨닫고 보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유미 쨩이 준 선물을 제대로 쥐고선.
“……정말, 유미 쨩도 참…….”
그 남매에겐 계속 당하기만 하는구나.
나는 뭔가를 체념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미소를 머금으며 로자리오를 눈앞에 내걸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