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유키 시리즈 시즈카편

マリみて 祐麒シリーズ


Original |

Translator | 淸風

봄바람은 노래를 싣고


 오랜만에 일본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역시, 유럽의 공기랑은 맛이 다르다. 결코 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립고도 안심할 수 있는 냄새가 느껴진다. 목이 편하다거나, 바람이 잘 지나다닌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감각적인 거겠지.
 짧은 감상에서 현실로 돌아와, 시즈카는 가방을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내린다. 예전보다도 길어진 머리카락이 어깨에 걸려 흔들린다.
 공항 로비는,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하다. 앞으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밖으로 여행을 떠날 사람, 일본에 돌아온 사람, 배웅하러 온 사람, 맞이하러 온 사람, 일본인도, 백인도, 흑인도, 온갖 사람들이 갖가지 표정을 짓고 같은 장소에 있다. 자신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자신도 비슷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 보니 왠지 웃겨서 마음 속으로 미소를 띄운다.
“……자, 슬슬 가 볼까.”
 계속 가만히 있어봐야 의미도 없고, 옛날을 회상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다.
 여행가방을 끌고, 등을 쭉 펴고, 시즈카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귀국한 당일에는 집에 돌아가서 오랜 여행으로 쌓였던 피로를 풀었다. 부모님께 이탈리아 이야기를 하고, 이년간 제대로 귀성도 하지 않았던 불효를 내심으로 사과한다. 물론 편지나 전화는 드렸고 부모님도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말하고 싶었던 일이나 듣고 싶었던 일도 잔뜩 있었을 거다. 그래서 나는 그걸 의식하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성악 이야기나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엔 괜찮았지만, 내용이 차례차례 개인적인 것들이나 연애 관련 이야기로 넘어오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입을 열기 힘들어진다.
 이탈리아에서 괜찮은 상대는 없었냐거나, 누가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데리고 와도 괜찮냐는 등, 이 나이대의 딸을 가진 부모님이 할만한 이야기같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 딸의 애인을 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손자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건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선 바빠서 그럴 짬도 없었는데.
 대답하는 것도 껄끄러워진데다, 원래부터 외출할 예정이 있었고 체류시간도 한정되어 있었기에 시즈카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끊고 오랜만에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일본을 떠난 뒤 돌아오기까지 일본은 변한 건지 변하지 않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모르는 건물이나 가게가 새로 생기긴 했지만, 눈을 크게 뜰 정도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장소에 따라선 눈부실 정도의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즈카가 아는 범위 내에선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반쯤 안심하고, 반쯤 한숨쉬며, 시즈카는 오랜만에 일본 땅을 걷는다.

 계절은 봄.

 새로 지은 교복이나 슈트를 두른 신입생이나 신입사원 같아 보이는 사람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인다.
 그러고 보면 그런 시기였구나 하고 홀로 납득한다.
 2년 전, 자신은 친구와 함께 같은 계단을 올라가는 걸 그만뒀다. 그것 자체에는 후회도 미련도 없지만, 실제로 이런 광경을 눈으로 봐 버렸을 때 가슴에 아무것도 안 떠오를 리는 없다.

 그래설까.
 저도 모르게 릴리안 앞까지 와 버린 건.

 모교의 문을 눈앞에 두고, 시즈카는 아무 말도 없이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떠오르는 건 여러가지 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낼 말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수업시간이려나. 학생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운동장에서도 먼 자리여선지, 소리도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시즈카는 조금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릴리안에서 몸을 돌렸다.

 고등부 건물에서 멀어져, 조금 망설인 뒤 대학교 부지쪽으로 걸음을 디딘다.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전혀 다닌 적 없는 대학 안에 들어가려니, 약간 긴장됐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버리니 긴장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대학교에 다니는 나이기도 하고, 원래 릴리안 학생인지 어떤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부지 안을 걷고 있는 동년배 여성 사이에 섞이면 위화감 없이 녹아들 수 있었다.
 잘 알지 못하는 부지 안을 내키는 대로 산책하며 즐긴다.
 세월을 느끼게 하는 건물, 건물 안을 걷는 학생들의 모습, 깨끗히 정비된 안뜰, 강의가 없는 시간인지 벤치에서 수다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
 조금 떨어진 곳에 지어진 새 건물은 도서관이려나.
 혹시나 자신도 여기에 다니면서 그녀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거나 하는 별 의미 없는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순 없었다. 뭔가 뿌연 그림이 머릿속에 형태 없이 떠오를 뿐이다.
 노래에 얽매여서 논다거나 친구랑 사귄다거나 하는 경험이 부족했던 탓일까. 즐거운 대학 생활이라는 게 어떤 모습인지 느낌이 없다.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 정도밖에 상상되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서, 오는 길에 자판기에서 산 미네랄워터를 따서 입을 한 모금 축인다.
 눈을 감으면, 외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온갖 소리들로 대체된다. 시즈카는 마음 편히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상냥하고 즐거운 봄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느끼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박새의 소프라노가 귀를 두드린다.
 천천히 숨을 쉬며 공기에 잠겨간다.
 마치, 오랜 옛날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공간에 녹아들어서.

 이윽고, 시즈카의 귀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닿았다. 그냥 걷고 있는 많은 학생 중 하나인 게 아니라,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시즈카에게 향해 오는 소리였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천천히 시즈카의 앞에서 멈춰섰다.
 시즈카는 살포시 눈을 떴다.
​“​…​…​오​랜​만​이​에​요​,​ 시즈카 님.”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조금 어른스러워진 시마코가 서 있었다.


 학식은 북적거린다는 이유로 대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기로 했다.
 둘 다 음료수를 주문하곤 숨을 돌린다.
“그리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안 드네.”
“서로의 근황은 계속 전하고 있었으니까요.”
 2년간 편지는 끊임없이 주고받았었다. 문장으로 연락하고 있어선지, 얼굴을 마주보곤 하기 힘들만한 이야기도 쓸 수 있었던 느낌이 든다.

 시즈카는 대학 수험을 향한 압박, 슬럼프에 빠졌을 때의 괴로움이나 고민을.

 시마코는 여동생 이야기나 가족,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그래서, 얼굴을 마주 보는 건 2년 만이라고 해도, 서로에 대해선 고등학교 때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유미 양이나 요시노 양을 안 불러도 괜찮으신 건가요?”
“괜찮아. 그녀들하고 그렇게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는 시마코를 만나고 싶었던 거니까.”
 특별한 화제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서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야기를 할 뿐. 그런 시간이 왠지 즐겁다.

 약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시즈카는 문득 떠오른 걸 물어 보았다.
“시마코는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니?”
“에, 그런 남자는 없어요.”
 약간 말이 떨린 게 신경 쓰였다.
“남자는 없다, 는 소리는?”
“예, 노리코랑.”
“아, 그런가.”
 납득했다.
 편지에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쓰고 있었고, 되새겨 보면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행복한 모양이구나.”
“예.”
 표정을 보면 모든게 느껴진다.
 고민한 시기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이미 시즈카가 할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저보다도, 시즈카 님은.”
“나?”
 홍차에 입을 대곤, 눈을 깜빡인다.
“유감스럽게도 나한텐 없어, 그런 사람은.”
“그런가요.”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즈카는 조용히 끄덕인다.
 그 뒤, 역시 무난한 이야기를 나눈 뒤 둘은 가게를 나선다.
 시마코는 이 뒤에 강의가 있다고 해서, 대학교에 돌아가기 위해 헤어지게 되었다. 대학교 문 앞에서 다시금 서로를 바라보고 말을 나눈다.
“그럼, 다음에 봐.”
“예. 시즈카 님도 건강하세요.”
“응. 그건 그렇고, 굉장히 좋은 표정을 짓게 되었구나. 사랑을 하고 있어설까? 빛나고 있어.”
 그러자, 시마코는 느슨하게 웨이브진 머리칼을 누르며 미소지으며.
“시즈카 님도, 빛나고 계신데요?”
 라고, 장난스런 눈초리로 말을 꺼냈다.
 시마코도 굉장히 변했구나 싶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시즈카는 시침 떼는 표정을 지키면서.
“그래? 미래의 신랑 후보가 있어서일까.”
 턱을 괴곤, 시마코보다 훨씬 더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바라본다.

 놀란 시마코의 표정에 만족하며, 시즈카는 릴리안을 떠났다.



 다시금 거리로 나간다.
 오랜만에 도시의 혼잡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연이 풍부한 공원을 향하기로 했다.
 너무 신경쓰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배기가스가 가득한 공기를 나서서 마시고 싶지는 않기에, 순순히 풀의 냄새를, 숲의 향기를 즐기기로 한다.
 평일 낮이어선지 사람의 모습은 그리 많지 않다.
 자그만 어린애가 몇 명 놀고 있고, 연배 있는 어르신이 산보하고 있는 모습이 슬쩍슬쩍 보이는 정도다.
 넓은 공간에 나와서 뭔가를 노래하고 싶어 졌지만, 아무래도 그러긴 힘들다고 느껴 가볍게 허밍을 하며 천천히 산책한다.
 봄이라곤 해도 아직 한기가 남아있어, 검은 니트 위에 청록색 롱 카디건을 두르고 있다. 아래는 코듀로이 미니스커트에 다리 토시와 부츠.
 뺨을 쓰다듬는 바람에선, 한기와 온기가 함께 느껴진다.
 양팔을 펼쳐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둥실둥실 온몸을 회전시킨다. 낙엽이 가볍게 날아올라, 사랑스런 하모니를 연주한다.
 도중에 매점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있는 잔디 위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 뒤, 가까운 나무에 몸을 기대자 저도 모르게 선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당황해서 시곗바늘을 보곤 몸을 일으킨다. 옷에 붙어있던 먼지나 낙엽을 손으로 털어내고, 쓰레기를 정리한 뒤 공원을 나선다.


 저녁이라고 하기엔 아직 조금 이른 시간.
 시즈카는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나아간다. 걸으면서 가방 안의 카스케트를 꺼내 머리에 쓴다. 거울로 모습을 살펴볼 짬은 없어서, 걷는 중에 있는 가게의 쇼윈도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잔 조정을 한다.
 오늘 옷차림에 주홍색 카스케트가 과연 어울릴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지만, 이게 제일 눈에 띄고 알기 쉬웠으니까.
 지정된 장소는 역 앞의 광장 시계 아래.
 표식은 서로의 모자.

 정말 사소한 우연을 계기로, 이러니저러니 해도 1년 반 이상 편지와 전화를 계속 주고받아왔다.
 요즘 치곤 아날로그적인 대화 수단이지만, 메일도 안 썼으니 빈도는 그리 잦지는 않았고, 사진이나 데이터를 주고받지도 않았다.
 내용도, 이성간의 관계를 느끼게 할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괜찮을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나, 일본에서의 학창생활, 혹은 이탈리아에서의 식생활 등, 각자의 근황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글로 쓰거나 할 뿐.
 그래도 그 관계는 시즈카에게 시마코와는 다른 종류의 위안을 확실히 주고 있었다. 기계적인 문자는 아닌, 사람의 손으로 쓰인 살아있는 문자가 편지에 생명을 주고 있었으니까, 계속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상대가 거기에 있구나 하는 느낌을 편지를 통해 받을 수 있었다.
 과연, 유미는 이걸 알고 있을까. 모른다고 하면, 혹시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도 된다. 오늘은 만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만나는 것도 재밌겠다.
 아니, 유미랑 만나기 전에 우선은 지금을 신경쓰자.


 지정된 장소의 바로 옆까지 와서, 주위를 둘러본다.
 거기서 시즈카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릴 뻔해 입을 막았다.
 평일이라곤 해도 저녁인데다 역 앞이기도 해서, 학생들이나 쇼핑하는 주부들의 모습이 잔뜩 보였다.
 거기서 안절부절못하며 움직이고 있는 모자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은, 릴리안 여학원 시대에 본 유미의 얼굴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딱히 표식 같은 건 필요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기분을 느낀다. 입가를 누르곤 있지만, 웃음이 흘러나온다.
 상대는 아직 시즈카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인지, 여전히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돌리고 있다.
 좀 더 구경하고 싶다는 장난스런 마음도 솟아올랐지만, 시계를 보면 약속시간이 이미 3분정도 지나 있어서 서둘러 걸어간다.
 그러자, 상대도 간신히 시즈카를 알아본 모양이다. 시즈카의 모습, 모자, 그리고 바로 자신을 향해오는 걸 보고 깨달은 거겠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딱딱한 미소를 띄우면서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시즈카도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곤, 귀까지 걸리는 머리카락을 그러올리듯 손을 들었다.

 바람이 불어 지나간다.

 계절은 봄.

 역 앞 길의, 가로수인 벚나무가 분홍빛 꽃잎을 흩뿌린다.


 그의 바로 앞에서 천천히 멈춰서, 시즈카도 미소지었다.


 머리칼으로, 어깨로, 그리고 상대에게 내민 손바닥으로, 내려오는 벚꽃잎을 받으면서.






~추신~
 오랜만에 시즈카 님입니다. 왜 이 시기에 시즈카가 일본에 돌아왔냐거나 하는 걸 신경쓰면 안됩니다. 아니,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유키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웃음)
 그래도, 시즈카에겐 왠지 이런 게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저번에도 소리 뿐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면,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좋다고 할까요. 이번엔 소리는 없었지만.
 과연 진전은 있었을런지요...

역자의 말:
 여러분, 평안하세요.
 사실 원래 오늘은 번역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작가분께서 토코 SS 공지를 올리신 걸 보고 온 몸이 덩실덩실거리면서 저도 모르게 마리미테 팬픽을 번역해야겠구나 하고 번역을 시작해서 끝내고 있더라고요.

 그나저나, 안절부절못하며 움직이고 있는 모자는 대체 어떤 모자려나요···. 정말 궁금하네요.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그 전에 토코 편 올라오면 거기서 먼저 뵙고요!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