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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44


“인간!?”


누군가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비명을 토해냈다. “무슨,” 모두가 놀란 사이 호리에르마저 짧은 신음을 토해냈고, 시히델은 그저 멍하니 저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여기 있는 거지?”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거야?”


“호리에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모두들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서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 곧 인간들 또한 이를 느끼고 시선이 언덕 위로 올라갔다가 “혼령!?” 제각기 소리를 지르면서 우왕좌왕 움직였다. 시히델은 자신도 너무 놀란 나머지 그들이 재빨리 무기를 들고 저 아래에서 대치할 때까지 아무 말도 생각도 하지를 못했다.
그렇게 잠시 뒤, 멍하니 구덩이 위에 서 있는 혼령들과 그 아래에서 별 의미도 없는 무기들을 들고 모인 인간들이 서로를 쳐다보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나 둘 중 어느 쪽도 딱히 나서지 않는 도중 호리에르가 혼자 말했다.


“일단 진정하게. 꼭 이때 싸우거나 그럴 필요는 없–”


“혼령들아!”


그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인간들 중 누군가가 나서며 혼령들이 서 있는 위를 향해 소리쳤다.


“우린 불필요한 싸움은 원하지 않는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여긴 너희들이 올 곳이 아니야! 어서 물러가라!”


“저게 뭐라고?”


저 말은 멍하니 있던 시히델에게 불을 지폈다. 그녀는 옆에서 방해가 되는 혼령 둘을 홱 밀치고 앞으로 걸어 나와, 벼랑 끝에서 매섭게 고함쳤다.


“네녀석들이야말로 이런 곳에서 무슨 짓거리냐! 정말 너희 인간들은 어딜 가든 지긋지긋하게도 방해만 되고! 당장 여기서 썩 나가지 않으면 내 당장–”


“시히델!!”


갑작스럽게 다그치는 기운에 시히델은 그만 온몸의 기운이 쭈뼛 섰다가 축 늘어졌다. 바다를 볼 때 이따금씩 몰려오던 그 거대한 파도가 갑작스럽게 덮친 것 같은 느낌. 깜짝 놀란 그녀는 대체 누가 이렇게 무서운 기세로 화를 낼 수 있는지 옆을 보자, 호리에르가 굉장히 엄한 기세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시히델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고, 이렇게 그녀를 고정시킨 늙은 혼령은 곧 시선을 돌려, 저 아래를 내려다본 뒤 천천히 인간들을 둘러보았다.


“애가 흥분한 것에 대해서는 내가 사과하겠소. 하지만 내 맹세하건데 우리 또한 싸우려고 여기 온 게 아니오.”


그의 말은 넓은 기운을 타고 구덩이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인간들은 그의 진심이 전해지는지 그가 말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는 호리에르요! 내가 이 혼령들을 여기로 이끌고 왔지. 당신들도 눈치챘겠지만 거기 있는 건 신령님들께서 만드신 유적이라고 생각해, 그곳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러 왔소. 하지만 오해는 마시오! 우리는 그 유적에 우리 혼령들과 인간의 싸움을 끝낼 만한 무언가 있다고 생각해서 온 것이외다. 충돌을 원치 않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이니, 그저 이곳에 머물면서 저 유적을 둘러볼 수 있게 공간을 조금 내어 준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오!”


“호리에르!”


한 혼령이 반발했다.


“그걸 다 말하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럼 숨겨서 좋을 게 있겠나.”


호리에르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고, 이에 그 혼령은 영 내키지 않는단 반응이었지만 어쨌든 조용히 모두와 함께 인간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편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얘기하는 듯 수군거리고 있다가, 다음 순간 그 중에 입을 전혀 열지 않는 한 명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호리에르라고 했나.”


시히델은 그 인간을 내려다봤다. 인간은 나이를 구별하는 법이 혼령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고 할까, 어쨌든 얼굴에 생기보다는 마치 낙엽과도 같은 그것이 감도는 것으로 보아,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으로) 나이가 제법 되어보이는 것 같았다. 적어도 저 인간들 중에는 저만큼 나이가 있어 보이는 인간이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이 중년의 인간 남성은 위의 혼령들 중 최연장자인 이를 보고 말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여기로 데려왔다. 이유는…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아까 저 친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싸우는걸 원하지 않아. 만일 너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저 뒤쪽에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저 유적이란 것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저걸 목적으로 온 건 아니니까.”


“잠깐만요, 노일! 왜 우리가 저런 혼령들한테 비켜줘야–”


“조용히 해.”


아까 혼령이 호리에르에게 뭐라고 했듯 인간들 중에서도 누군가가 뭐라 했고, 이에 그 노일이라는 이름의 대표가 일축했다.


“어쨌든, 우리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너희가 먼저 우리를 건드리거나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없겠지만, 명심해라. 그게 우리가 너희 혼령들에게 친절함을 베풀 수 있다는 건 아냐.”


말을 끝낸 노일은 용건이 끝나서 같은 인간들에게 “가자.” 한 마디와 함께 정말로 저 뒤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몇몇 인간들이 구덩이 앞쪽에 풀어놨던 듯한 짐을 챙겨서 돌아갈 때까지 호리에르는 조용히 기다렸고, 다른 혼령들도 그와 함께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좋아.” 마침내 모든 인간들이 저 뒤쪽을 향해 반쯤 걸어가자, 혼령들의 대표가 모두를 둘러보며 미소지었다.


“이제 여기서 지내도록 하지. 오늘은 피곤하니 다들 쉬게나.”








“으으,”


오늘도 역시 머리를 감싸쥔 채 비틀비틀 걸어나오는 제이미였다. “머리야,” 이쯤되니 이게 단순한 두통이 아님을 확실하게 느끼는 그녀. 물론 어제도 뭐가 원인인지 알았지만, 이렇게 인간 따위가– 아니, (제이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람이 한 명의 혼령을 자신의 것으로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머리아팠다. 물론 대놓고 사람들 죽이면서 날뛰던 어제보다는 나았지만, 역시나 이건 익숙해질 리가 없었고, 설령 익숙해진다 해도 이런 두통 정도는 기본으로 겪어야 할 것 같았다.


[걱정 마, 제이미. 너가 앞으로 보게 될 대부분의 기억은 인간의 것이야. 이번만 그러는 거지.]


“그래. 그래야겠지.”


반쯤 감긴 눈으로 힘없이 대답하는 제이미였다. 한편 이런 그녀 앞에서 걸어가던 소년은 뒤를 슥 보고는 약간 불안해하는 얼굴을 했다.


“저기, 괜찮으세요? 왜 그렇게 안좋은 얼굴을–”


“소야!”


갑자기 누가 소리를 지르자 모두 그쪽을 보았다. 아린이 언제 왔는지 오르막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둘의 모습이 보이자 성큼성큼 걸어왔다.


“신령님이랑 잘 얘기했으얘?”


“어, 으, 응.”


고개를 끄덕이는 솔. 이에 아린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뒤의 제이미를 보았다. 애써 웃는 제이미였지만 상태가 그리 좋진 않음을 아린도 느꼈는지 잠시 입만 뻐끔거리고는, 곧 제이미가


“그냥 먼저 내려가. 난 천천히 갈게.”


아예 미리 말하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곧 “으야.” 솔의 팔을 덥석 잡고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어어–” 솔이 당황하면서 발을 어설프게 움직이는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제이미는 그 사이 머릿속에 그 죽어가던 어느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간신히 억누른 뒤 발을 움직이려 했다.


“괜찮으세요?”


웬 부드럽게 정제된 목소리가 들리자 제이미는 뒤를 돌아봤다. 란, 아니 그보단 순한 얼굴을 보니 마르한인 그가 언제 저 안에서 나왔는지 제이미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령님께서 시히델의 기억을 보여주고 있다 하시던데, 견딜만 하신가요?”


“네, 어쨌든…”


제이미는 머리에서 손을 떼며 최대한 괜찮게 보이려고 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르한.


“당신은 사람이라 혼령의 기억을 보는데 조금 적응이 힘들 겁니다. 하지만 잠시뿐이지 그렇게 해는 없으니 걱정 마세요.”


그가 인간이라 부르지 않고 사람이라 부르는 것에 제이미의 눈썹이 올라갔다. 시히델의 말투가 너무 머릿속에 박힌 탓일까? 아니, 인간이라 부르는 건 엔시나도 마찬가지였고, 이에 제이미는 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가 곧 닫고,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다시 목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그, 거기 있던 게 당신 맞아요? 그 마르한이.”


“네, 접니다.”


미소를 짓는 마르한.


“시히델은… 옛 친구입니다. 아직도 그 애가 기억나네요, 저는. 워낙에 활발하고 열정도 많은 애였어서, 혼령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했죠.”


옛 친구라는 표현이 제이미를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그럼 지금은, 어어, 죽었나요? 죄송하지만…”


무심코 물었다가 미안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신관은 다만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직접 보면 아실 겁니다. 신령님께서 아마 그 기억까지 보여주시겠죠.”


“무슨 기억이요?”


제이미는 이 질문도 이어서 하려 했으나, 마르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입을 닫았다. 그래도 이렇게 기억 속 인물에 대해 물어보니 두통이 조금은 나아졌고, 곧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 아예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를 뒤로 하고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걷는 그녀의 모습을 마르한이 지켜볼 때, 거처 안에서 신령이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얘기는 다 끝났느냐?”


유가 묻자 마르한은 그쪽을 보고 “네.” 미소를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인간계에서 온 사람은 정말 특이하네요.”


하지만 신령은 웃음이라곤 없는 채, 마치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듯,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얼굴과 기운으로 조용히 그의 옆에 섰다. 이에 마르한이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너,”


잠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고정된 유가 마르한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 소년에게서 무언가 느껴지는 건 없었느냐?”


“솔이라는 그 아이 말입니까?”


마르한, 란의 눈이 동그래졌다. “글쎄요…” 이에 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서히 어른의 모습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산길 쪽으로 스르르 움직였다. “됐다.” 그녀가 연못이 있는 쪽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잠시 쉬어야겠다. 나중에 얘기하자꾸나.”


신령이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마르한, 그리고 그 뒤에서 조용히 있는 란도 가만히 산길을 바라봤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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