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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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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3)


<3장. 미카도 히카루는 히키가야 하치만에게 부탁한다.>

  내 비명소리를 듣고 거실로 돌아갔던 코마치가 쪼르르 달려왔다.

  “오빠? 무슨 일 있어?”

  나는 눈을 돌리지 않고 내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코마치에게 물었다.

  “혹시 너, 저거 보이냐?”

  “응? 뭐 말이야? 천장? 형광등?”

  ​.​.​.​.​.​.​아​무​래​도​ 반응을 보니, 저 미카도는 코마치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다. 뭘 좀 잘못 본 모양이야.”

  물론 아직 미카도는 그 위치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유령이 있다고 코마치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일단, 적어도 코마치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이고, 내가 한 1, 2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중2병을 심하게 앓았었기 때문에 만약 말한다면 ‘오빠, 머리 아파?’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서 일단 코마치에게는 이렇게 말해두었다.

  “오빠? 그런데 왜 계속 천장을 노려보고 있어?”

  미안하다, 코마치. 나는 지금 너의 물음에 솔직히 대답할 수 없어. 어차피 안 믿을 테니까 말이다.

  “그냥 좀.”

  나는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내 눈은 아직 미카도를 향해 있다. 어? 그런데 미카도는 어딜 보고 있는 거지? 뭔가 감탄한 표정으로 딴 데를 쳐다보고 있잖아? 잠시 어딘가를 응시하던 미카도가 내 쪽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대담하구나, 코마치 양.”

  응? 뭔 소리야? 나는 순간 코마치를 돌아봤다. 그러니 코마치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딱 봐도 사이즈가 맞지 않는 티셔츠 하나를 원피스 삼아 입고 있었다. 여동생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남에게 보이기 창피한 모습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유령 쪽으로 하이킥을 날리며 외쳤다.

  “뭘 보고 있는 거냐!?”

  “왓, 오빠 왜 갑자기 그래?”

  아마 코마치에게는 내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며 허공에다 발차기를 날린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내 분노가 담긴 하이킥은 미카도에게 닿지 않았다. 내 발이 미카도를 그냥 통과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비현실적은 광경에 나는 아연해졌다. 진짜 유령이란 말인가? 아차, 별 생각 없이 달려들었잖아! 이대로 가면.......

  쿵!

  나는 현관에 추락했다. 아야야, 아프다. 그래도 신발장 모서리 같은 데 찍히지 않은 게 다행이로군. 아프긴 하지만 심하게 부딪힌 곳은 없는 것 같다.

  “오빠, 괜찮아?”

  코마치가 나에게 물어온다. 내 위의 유령은 ‘깜짝이야’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아직도 코마치를 향해 있었다. 야, 그 음흉한 눈 치워!

  하지만 지금 나는 저 유령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코마치를 피신시켜야겠지. 나는 코마치에게 외쳤다.

  “코마치, 당장 들어가서 옷 제대로 된 걸로 갈아입어!”

  “어? 새삼스레 왜 그래?”

  코마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당연하다. 내 여동생은 평소에도 그러고 다녔거든. 나도 뭐라 한 적이 없었고 말이지. 하지만 여기서 코마치가 저 꼴로 계속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코마치에게 설교했다.

  “코마치, 너도 이제 중학교 2학년 여자애다. 2차 성징이 진행 중일 때라고. 그런 여자애가 집에서라고는 하지만 거의 발가벗고 다니는 거에 가까운 모습을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냐! 알았냐? 앞으로 내 티셔츠를 잠옷 대신 입는 것 금지!”

  내 열정이 전해진 모양인지 코마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코마치의 모습이 사라지자, 유령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런, 여동생한테 엄청 엄격하구나.”

  “닥쳐, 변태!”

  나는 단호히 대꾸했다. 일단 이것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 현관에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미카도를 내 방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일단 따라와라.”

  내가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오자 미카도도 곧바로 따라 들어오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미카도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문을 닫았다. 이제 너무 크게 말하지만 않는다면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둥둥 떠다니는 유령을 보고 내가 말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좀 내려와라.”

  “우으~ 떠 있는 게 더 ​좋​은​데​.​.​.​.​.​.​”​

  그렇게 불평한 미카도였지만 내가 노려보자 바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알고 있는 미카도 히카루인가?”

  미카도가 대답한다.

  “맞아. 헤이안 학원 고등부 1학년 미카도 히카루.”

  “분명 죽었었지?”

  “아마? 죽을 때 기억이 희미하지만 물에 빠졌던 것 같기는 해.”

  “그럼 지금 여기에 내가 보고 있는 너는 유령이란 말이로군.”

  “그런 셈이야.”

  “혹시 너 나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이냐?”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장례식장에서는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목소리는? 혹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아니, 그나마 여러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봤지만 아무도 반응이 없었어. 하지만 히키타니가 왠지 내 목소리에 반응한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따라온 거야.”

  여기까지 듣고 나서 생각했다.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진짜 유령이 있거나 아니면 내가 미쳤거나.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 자신이 미쳤다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나 슬프다. 일단 정말 유령이라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을 해볼까. 나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미카도를 바라보고 내가 지금까지의 대화에 대한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결과물을 입 밖에 냈다.

  ​“​.​.​.​.​.​.​그​래​,​ 미카도, 제2의 인생 시작 축하한다. 그러니까 이제 내 눈에 안 띄는 곳에 가서 잘 지내라. 안녕히.”

  “어?”

  내 말을 듣고 미카도가 당황한 듯 내뱉었다. 내가 말했다.

  “이봐, 결국 넌 죽었고, 유령이라는 거잖아. 어찌 됐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돼. 그러니 네가 살아 있는 나한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말이지. 그러니 이대로 조용히 사라져주면 고맙겠는데.”

  “저, 저기 그건 좀.”

  “걱정하지 마라. 유령을 봤어요, 하고 퇴마사, 무당 같은 사람들을 부르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철저히 너를 못 본 셈 쳐주지. 그러니 너는 어딘가에 처박혀서 조용히 유령 생활을 즐기다가 만족하면 성불 같은 거 하면 되지 않겠냐?”

  나는 협상 같은 것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귀찮은 일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스스로의 잠재능력을 깨울 수 있지. 나는 최선을 다해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다. 내 말에 미카도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아니, 어째서지? 너한테도 나쁜 얘기는 아니잖아.”

  그렇잖아? 서로 모르는 척을 하며 원만히 넘어가자는 거라고, 얼마나 괜찮은 제안이냐고. 예전부터 몇 번 내가 제안 받았고 그때마다 선택했던 파이널 앤서란 말이다. 그래도 내 제안이 미카도에게는 왠지 모르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미카도가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장례식장을 벗어날 수 없었어. 하지만 히키타니를 따라가려다 보니 나올 수 있게 됐지. 그 이후로는 이동하려는 생각을 안 해도 내가 히키타니 주변에서 끌려 다니고 있었어. 아마, 나는 히키타니에게 씐 것 같아.”

  ​.​.​.​.​.​.​뭐​.​.​.​.​.​.​라​고​?​ 미카도의 말에 아연해졌다. 얘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내가 난청이 생겼나? 어, 뭐라고? ​뭐​.​.​.​.​.​.​라​고​?​ 머릿속으로 계속 ‘잘못 들은 거라고 해줘’ 하는 말을 되뇌며 미카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너는 지금 나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 이거냐?”

  미카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아마 한 반경 3미터 정도밖에 떨어질 수 없나 봐. 그 이상 가려고 해도 몸이 뭔가에 가로막힌 듯 갈 수가 없어.”

  내가 머리를 감싸 쥐어야 할 사태였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잠시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유령이라는 현실감 없는 사태와 조우한 내가 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참백도, 참백도가 필요해. 소울 소사이어티는 뭐 하고 있는 거냐!

  잠깐, 침착함을 잃지 말자, 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학교생활이라는 진흙탕을 헤쳐 온 몸이 아니던가. 그때도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 일을 할 뿐이다. 나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나는 미카도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애걸했다.

  “부탁이다, 미카도. 떨어져 줘! 어린 나이에 죽었으니 분명 억울하겠지. 하지만 나는 너에게 잘못한 게 없잖아. 혹시 내가 모르는 원한이 있었다면 속 시원히 말해 봐. 사과할 테니까.”

  나의 반응에 미카도의 당황한 반응이 돌아왔다.

  “아, 아니야. 뭔가 원한이 있다거나 억하심정이 있는 거 아니고 해를 끼칠 생각도 없으니까 안심해. 진짜야.”

  왠지 유령한테 위로를 받게 되는 나였다. 뭔가 한심하다. 나는 고개를 들고 미카도에게 물었다.

  “나에게서 떨어져줄 수 있겠어?”

  미카도가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아니.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해.”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지금의 나로서는 너한테서 떨어질 수 없다는 소리야.”

  “뭐? 네가 멋대로 나한테 붙은 거잖아.”

  “그렇긴 한데, 그건 무의식 같은 거라 내가 조절할 수 없다고나 할까.”

  “그런 ​무​책​임​한​.​.​.​.​.​.​.​”​

  “미안해.”

  미카도는 정말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얼굴 하나는 정말 쓸데없이 잘생겨서 그 모습에 순간 말을 잃었다. 미카도는 말을 이어갔다.

  “아마 내가 유령으로 남은 이유는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맞다. 보통 죽어서 유령이 된다고 하면 그런 거라고들 많이 말하지. 소설이나, 만화나, 라노벨이나 그런 설정을 많이 써먹는다. 내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미카도가 내 눈을 마주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히키타니가 내 미련을 해결해준다면 내가 히키타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을까?”

  확신할 수도 없는 소리를 잘도 내뱉는다. 하지만 유령인 미카도 히카루 본인이 말한 만큼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가장 바람직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야 내 귀 엄청 얄팍하잖아. 어찌 됐든 적어도 들어볼 가치는 있는 것 같다.

  내가 미카도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미련이라는 게 뭔데? 지난번에 말했던 그 부탁이라는 거랑 관계 있냐?”

  미카도가 깜짝 놀란 듯했다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 말, 기억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그​건​.​.​.​.​.​.​됐​어​.​ 그 부탁이라는 건 이제 의미 없는 거니까.”

  이 말을 하면서 다시 쓸쓸한 표정으로 바뀐다. 정말 표정이 다양한 녀석이다. 미카도의 말이 이어졌다.

   “그 대신, 다른 부탁을 해도 될까?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부탁이야, 히키타니! 나는 너의 도움이 필요해.”

  미카도가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진지한 상황이다. 여기서 나는 그 부탁이란 것을 들어보고 수락이나 거절을 해야 되겠지. 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말해둬야 할 게 있다. 너무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미카도에게 전해야 할 정말 중요한 말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말했어야 했는데 결코 말하지 못한 말을 먼저 전해보기로 했다.

  “......아까 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내 이름은 히키가야다.”

  미카도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 히키가야? 히키타니가 아니었어? 谷을 ‘타니’가 아니라 ‘가야’로 읽는 거구나, 미, 미안. 그게, ​보​통​.​.​.​.​.​.​谷​은​ ‘타니’로 읽히는 경우가 더 많잖아. 그래서 조금 착각을 했던 것 같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정말 미안!”

  그러는 미카도를 보고 나는 말했다.

  “이제 알면 됐어. 그보다 먼저 네 부탁이라는 것부터 들어보자.”

  그러자 다시 미카도의 표정이 무언가를 자랑하는 듯한 표정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너 표정 전환 너무 빠른 거 아니냐. 미카도는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에​게​는​ 정말정말 소중한 여자애가 있어. 아오이 누나라고 하는데, 접시꽃을 연상시키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나보다 한 살 위로 우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나는 죽기 전에 아오이 누나한테 편지를 보냈었어. 거기에 이렇게 적었지. ‘이 편지는 첫 번째 선물입니다. 당신의 생일에 나머지 여섯 개의 선물을 준비해놓았으니 기대해 주십시오.’ 그런데 알다시피 나는 이제 죽어서 그 선물을 전해줄 수가 없어. 부탁이야, 히키가야! 내 대신 아오이 누나한테 선물을 전해줘!”

  “거절한다.”

  “어?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는 거 아냐? 너무해, 히키가야.”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이 유명한 바람둥이 하렘 황태자라면 미련이란 것도 십중팔구는 여자 문제였을 텐데 그걸 놓치다니. 괜히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미카도에게 말했다.

  “여자 문제에 내가 끼어들어서 잘 해결될 리가 없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키겠지. 지금 현재로서는 여자들이랑 얽히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미카도가 말했다.

  “히키가야,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지 마. 상황을 악화시킨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부정적이잖아.”

  그렇게 말하는 유령에게 나는 옛날 어떤 여자애가 혹시 나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들이댔다가 ‘나르가야’라는 별명이 생긴 일을 이야기해줬다.

  미카도는 식겁했다.

  “으아~.”

  하지만 그는 곧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어. 너한테 진정으로 동정이 가. 하지만 그런 일 하나 가지고 여자 일에 상관 않겠다고 하는 건 지나친 거 아닐까? 모든 여자애가 다 그러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그에게 나는 이번에는 호감 가는 여자애에게 내가 사랑에 관한 노랫말을 가진 애니 노래를 시디에 담아 선물했다가 ‘오타가야’라는 별명을 얻은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시 미카도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에는 뭔가 더듬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저기, 그게, 저, 뭐랄까, 그, 미안.”

  사과를 받고 말았습니다. 유령이 나를 뭔가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미카도는 끈질기게도 나를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괜히 싫은 기억 떠올리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아오이 누나는 사람을 ​‘​나​르​시​스​트​’​라​거​나​ ‘오타쿠’라거나 하며 놀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

  “그건 네가 상대라서 그런 거 아니고?”

  “어?”

  “잘 생각해봐. 조금 남자다운 면이 부족하긴 하지만 너는 정말 잘생겼어. 그리고 집안도 상당히 빵빵하지, 안 그래? 그러니 오죽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겠느냐고!”

  “어? 그렇게 칭찬을 들으면 조금 ​쑥​스​러​운​데​.​.​.​.​.​.​.​”​

  미카도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사람이 남을 칭찬하는 이유가 뭘 거 같나? 그건 말이지,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발목을 걸기 쉽게 만들어 저 밑으로 추락시키기 위해서라고!

  “그런 너한테 여자들이 못된 모습을 쉽게 보여줄 것 같아? 아마 네 주변 여자들이 착해 보이는 것은 너의 착각이다. 십중팔구 내숭을 떨고 있는 거라고!”

  내 말에 미카도는 소극적으로 반론을 했다.

  “아니야, 정말 다들 사랑스럽고, ​예​쁜​.​.​.​.​.​.​.​”​

  결정타를 날릴 때가 됐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관찰해온 헤이안 학원의 여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참고로 나는 지난번에 너와 이야기를 나눈 후 이름 모를 사람들로부터 ‘너처럼 비천한 놈과 이야기를 나누면 황태자님이 더러워진다. 꺼져라 쓰레기.’라는 요지의 불행의 편지를 네 통 받았지. 아마 너를 좋아하는 여자애의 소행일 거다. 이런 여자애들이 네 앞에서 편지를 통해 나에게 했던 막말을 할 것 같아? 뭐, 하렘 황태자시라면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나도 동의해. 하지만 그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놓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잖아? 하지만 너의 추종자들은 뭔가 그런 인식이 빠져 있다고 할까, 너한테 미쳐 있는 걸로 보이더라고. 나는 네가 말하는 그 아오이라는 사람이 그 사람들보다 나으리라는 생각은 도저히 안 드는데?”

  최신의 트라우마까지 동원한 내 말에 미카도는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뻐끔뻐끔거리고 있었다. 이걸로 저 녀석도 나에게 부탁하려는 마음이 싹 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미카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지만, ​그​래​도​.​.​.​.​.​.​!​”​

  “뭐?”

  아직도 할 말이 있는 거냐. 내가 뒷말을 재촉하자 미카도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아오이 누나는 착한 사람이야. 그 사람은 내숭을 떨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내 앞에서 착한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내 주변 여자애들 중에 네가 싫어할 만한 여자애들이 많이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오이 누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는 강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내가 한 말을 취소하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 눈빛을 받자 나는 저 미소년에게서 처음으로 ‘남자답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오이란 사람이 그 정도로 소중한가? 그렇다면 그 앞에서 안 좋은 소리를 한 것은 좀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일단 사과를 해두기로 했다.

  ​“​.​.​.​.​.​.​미​안​하​다​.​ 보지도 못한 사람한테 안 좋은 소리를 해서.”

  미카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으응, 아니야. 괜찮아. 오히려 내가 미안해. 네가 그렇게까지 내 주변의 여자애들을 싫어한다면 내가 차마 부탁을 할 수 없겠지.”

  미카도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린다. 뭐야, 저 녀석. 저렇게 미련이 흘러넘치는 표정을 하고 괜찮다고 말하면 내가 곧이곧대로 믿을 거라 생각한 건가? 딱 봐도 괜찮지 않은 얼굴이잖아. 그런 눈을 하고 입만 웃는다고 내가 몰라볼 거라 생각했어? 이래봬도 나는 인간 관찰만이 학교에서의 유일한 취미인 사람이라고!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그 뭐냐,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나는 미카도에게 말했다.

  “괜찮다는 얼굴이 아니잖아. 그, 뭐냐, 아오이란 사람에 대해 좀 자세히 알려줘. 듣고 나서 생각해볼 테니까.”

  그 말을 듣자 미카도의 표정이 환해진다. 이제야 좀 봐줄 만한 얼굴이 됐다.

  “응! 고마워, 히키가야! ​그​러​니​까​.​.​.​.​.​.​아​오​이​ 누나는 ​말​이​지​.​.​.​.​.​.​.​”​

  미카도는 나에게 아오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표정은 마치 아는 사람들에게 코마치를 자랑하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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