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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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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7)


<6장. 그래서 미카도 히카루는 한 걸음 다가선다.>

  “사람은 끝이 좋으면 대부분의 문제는 거의 잊게 되는 법이지. 한 번, 단 한 번을 결정적으로 너에 대한 인식을 뒤집을 수 있다면, 사오토메 선배에게 네 선물을 전하는 것 따위는 금방이겠지.”

  나는 미카도에게 내가 생각한 전략을 설명해주었다.

  “며칠 동안 몰래 사오토메 선배의 동태를 살핀다. 하지만 내가 스토커 취급을 받을 수 있으니 하루에 한 번 정도 미술부 주변을 지나다니는 정도로 해야겠지. 또, 사람들이 너와 나의 관계를 물어볼 때를 대비해 적절한 거짓말도 생각해둬야 한다. 일단 너와 내가 실제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어. 그러니 친구였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당연히 논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나름대로 생각해둔 게 있으니 그대로 가겠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평소에는 데면데면하게 구는데 가끔 묘하게 달라붙을 때가 있단 말이지. 내 얘기를 멍하니 듣고만 있던 미카도가 고양이를 보고 감탄했다.

  “새하얀 고양이네. 귀엽다! 마치 연꽃처럼 고고한 느낌이 들어! 이름이 뭐야?”

  내가 대답했다.

  ​“​유​키​노​(​雪​乃​)​라​고​ 한다. 네 말대로 눈처럼 새하얀 털 때문에 대충 지은 이름이지.”

  미카도가 탄성을 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갑자기 유키노가 미카도의 손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우왓!”

  당연히 미카도는 유령이기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무척 당황한 모양이다. 아니 잠깐 그 ​이​전​에​.​.​.​.​.​.​.​

  “너, 혹시 미카도가 보이는 거냐?”

  나는 나도 모르게 유키노를 보고 물었다. 당연히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 미카도가 다시 손을 내민다. 그러자 유키노가 털까지 곤두세우며 미카도 쪽을 향해 경계 태세를 취한다. 내가 미카도를 보고 말했다.

  “널 싫어하는 것 같은데?”

  미카도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런가? 이렇게 날 안 따르는 고양이는 ​처​음​이​야​.​.​.​.​.​.​.​”​

  나는 그런 미카도에게 화제를 돌리는 질문을 했다.

  ​“​.​.​.​.​.​.​아​까​도​ 그렇고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사오토메 선배가 너를 매도하는 이유가 뭐야? 역시 바람기 때문이냐?”

  미카도가 말했다.

  “아, 아마 그런 것 같아. 예전부터 아오이 누나는 나보고 불성실하다면서 불평을 했거든.”

  나는 미카도를 째려보며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네 이력이 상당히 화려하던데? 하렘 황태자라고 하면 학교 학생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정혼자로서는 네가 불만일 만도 하지.”

  미카도가 나한테 사과했다.

  “미, 미안해.”

  물론 미카도에게 약간 짜증이 난 것도 있다. 하지만 호기심도 들었다. 이놈은 왜 이렇게 여자를 좋아할까? 그래서 물어봤다.

  “됐어. 그런데 너는 대체 왜 그렇게 여자를 좋아하는 거냐?”

  미카도가 그 말을 듣고는 갑자기 표정이 밝아진다.

  “나는 꽃을 좋아해. 아마 여자애들을 사랑하는 것은 여자애들이 꽃처럼 느껴져서 그런 걸 거야.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지, 앞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피어날지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모든 꽃들에게는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서, 나는 사랑을 아낄 수가 없게 돼.”

  “헛소리 그만 해.”

  이야기를 듣다가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차갑게 미카도의 말을 자르고 말았다. 미카도의 얼굴이 굳어진다. 내가 말을 이었다.

  “네가 꽃을 사랑하는 것에 비유하지만, 사람이 꽃이랑 같을 리 없잖아? 사람은 모두 웃을 수 있고, 떠들 수 있고, 슬퍼할 수 있고, 상처를 입으면 아파한다고. 그런 목소리가, 몸짓이 있단 말이다. 꽃을 사랑하는 건 간단해. 그저 물을 주고 잎을 다듬으면 되겠지.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게 그럴 리가 없잖아? 어떤 사람은 네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질투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너 외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러다 보면 상처를 입게 되는 사람이 있겠지. 거기에 너의 잘못이 없을까? 너는 꽃을 사랑하는 거라고 포장하면서 네가 사랑했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입는 상처를 외면하고 있었던 거 아냐?”

  인정할 수 없다. 미카도의 말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인데, 자신이 하는 일을 아주 멋지고, 의미 있는 일로 포장해 자기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넘어가려는 게 올바를 리가 없다.

  미카도가 그런 내 말을 듣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네 말대로 나는 다른 사람을 입히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하​지​만​.​.​.​.​.​.​히​키​가​야​,​ 적어도 내가 꽃들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아름다움을 여자애들에게서도 느꼈다는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그 아름다움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 그래서 다가갔고, 그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여자에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것만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야.”

  미카도의 눈빛은 필사적이었다. 미카도 히카루의 지키고 싶은 마지막 진실을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까지는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미카도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오직 ‘정말로 여자애들에게는 자신이 매료될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미카도에게 있어 그것은 정말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이겠지. 적어도 여자애랑 친하게 지내본 적이 없는 내가 함부로 부정할 만한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미카도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더니 쿡 하고 웃는다. 아니 이 녀석 M인가? 안 좋은 소리를 들었는데 왜 웃고 있어? 미카도가 말했다.

  “나랑 말다툼을 한 또래 남자애는 히키가야가 처음이야. 이런 거였구나.”

  내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너는 거의 듣고만 있다가 내 말을 거의 인정해버렸으면서 이게 무슨 말다툼이라는 거냐? 제대로 말다툼을 하려면 너도 화를 내야 할 것 아냐. 아니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든가.”

  사람들은 그것을 진흙탕 매치라고 하지. 그런 내 말을 듣고 미카도가 말했다.

  “나는 울 수가 없어. 울어 본 기억도 없어. 화도 제대로 내지 못해. 나는 그저 웃을 뿐이야.”

  내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야, 열 몇 살밖에 안 먹은 놈이 그런 허세 안 부려도 되거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미카도의 표정은 그 어떤 감정이 담겨 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웃는 얼굴’이었다. 지금도, 미카도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정부(情婦)였어. 네 살 때 돌아가셨지.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나에게 말씀하셨어. ‘히카루, 항상 웃으렴. 너에게 심술을 부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웃으렴.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사랑해줄 거란다.’ 하고. 나는 어머니의 말대로 항상 웃으려고 했어. 그러다 보니 나는 우는 법을 잊어버린 거야.”

  갑자기 너무 무거운 이야기가 나에게 전해진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미카도의 과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하게, 나는 미카도가 별 고생 없이 자란 부잣집 도련님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더욱 미카도에게 좋은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 미카도에 대한 내 점수가 조금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냐, 이건 그거다.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 효과. 보라고, 힘든 과거를 지닌 사람이 태평하게 웃는 얼굴로 지낸다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 않아? 그런 거다. 그러니 이것만으로 미카도를 전면긍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뭐랄까, 오히려 미카도를 깔보는 것 같잖아.

  미카도 히카루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동정이나 위로를 받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내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때 그런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듯이. 그저 그런가 보다,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주는 것이 이 경우에 가장 알맞은 배려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말에 미카도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어서 말했다.

  “너랑 진흙탕 매치를 벌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거다.”

  미카도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가 말했다.

  “고마워, 히키가야.”

  “아, 뭐.”

  내 대꾸를 듣고 미카도가 나에게 부탁했다.

  “하치만이라고 불러도 될까?”

  갑자기 뭔 소리냐. 대체 지금 상황에서 왜 그런 소리가 나와? 이름으로 불리는 건 쑥스럽다. 그러니 피하고 싶다. 하지만 뭔가 이 분위기에서 거절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쑥스럽다는 것 빼고는 아무 명분도 없고. 나는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내뱉었다.

  ​“​.​.​.​.​.​.​마​음​대​로​ 해라.”

  “응, 고마워, 하치만!”

  ......그렇게 환하게 웃지 말라고. 만약 네가 여자였다면 반해버리고 고백했다 속공으로 차였을 자신이 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 외에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을 얻었다. 귀여운 아이다. 허나, 남자에 유령이다.

  찰칵, 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녀​왔​습​니​다​~​.​”​

  코마치의 목소리로군. 나는 현관으로 가서 코마치를 맞이했다.

  “어서 와라.”

  “응, 다녀 왔어, 오빠.”

  유키노도 나를 따라 코마치를 맞이한다. 이 녀석 코마치는 잘 따른단 말이지. 나만 거의 하인이나 침대 취급한다고.

  나는 내 뒤의 미카도를 보았다. 아까 한껏 심하게 쏘아붙였으니, 사과로 선물이라도 할까. 내가 들어온 코마치에게 말했다.

  “코마치.”

  “응?”

  코마치가 나를 바라보자 말을 잇는다.

  “너는 데이지 같아. 데이지의 꽃말은 ‘명랑’이랑 ‘순수’라고 하던데. 나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코마치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갑자기 기분 나쁘게 뭔 소리야, 오빠?”

  커억! 데미지를 입었다. 야, 일단 난 너 칭찬한 거잖아. 그런데 왜 넌 나를 상처 입히는 거냐? 하지만 코마치는 곧 표정을 풀고는 말했다.

  “그래도, ​데​이​지​라​.​.​.​.​.​.​.​ 마음에 들어!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그리고는 싱글벙글 웃는다. 정말 귀엽게 굴어야 할 타이밍을 잘 아는 여동생이다.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을 절대로 싫어할 수 없는 거겠지.

  나는 코마치 몰래 미카도에게 말했다.

  “오, 기뻐하는데? 앞으로 코마치의 비위를 맞출 때는 네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나는 미카도가 코마치에게 던진 칭찬을 내 입으로 코마치에게 전했다. 코마치는 기뻐했다. 분명, 생전에 미카도의 말은 이처럼 많은 여성들을 기쁘게 해주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때, 미카도? 죽은 뒤에도 네 말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애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이건 오늘만 주는 서비스다.

  미카도가 내 뒤에서 말했다.

  “고마워, 하치만!”

  ​.​.​.​.​.​.​그​러​니​까​ 그렇게 웃지 좀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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