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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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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12)


<10장. 히키가야 하치만은 시키부 호노카에게 휘둘린다.>

  소문이라는 건 어떤 식으로 퍼지는지 법칙을 알기 어렵다. 요 며칠 동안 나는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돌 만한 일을 두어 번 정도 저질렀는데 소문이 난 것은 미카도를 험담한 데에 대한 것뿐이었다. 사실 시키부와의 충돌 사건도 거기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으므로 둘을 합친 소문이 날 수도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미카도에 대한 소문만 돌고 있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겠다. 그래도 그것을 통해 단 하나 알아낸 것이 있기는 했다. 일단 그것으로 만족하자.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왔다. 아직도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시키부의 오해를 풀어야 되지만 지금 시키부는 자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말을 걸 수가 없다. 수업종이 쳤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수업을 들을 때 뒤쪽에서 내 자리를 향해 쪽지 같은 게 많이 날아왔다. 떨어진 것을 확인하니 ‘죽어’, ‘최악’ 등의 험한 말이 적혀있다. 거참 무섭구만.

  이걸로 나는 확신했다. 교실에 있을 때 괜히 시키부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가는 시키부에게까지 폐를 끼치게 된다. 따라서 적어도 교실에 있는 동안에는 오해를 풀 수 없다.

  결국, 나는 오늘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시키부의 오해를 풀 수 없었다. 그저 시키부를 옆에서 몰래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내가 시키부를 좋아하는 것 같은 전개잖아. 그만 보자. ......하지만 신경이 쓰인다고. 같은 반 여자애가 멋대로 있지도 않은 남의 연애 고민을 해결해준다고 하는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잖아?

  미카도의 경우는, 요 며칠 동안에는 수업시간에도 계속 나에게 말을 걸고는 했는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다. 그게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미카도가 옆에서 둥둥 떠다니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 나중에 한 번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

  “야, 너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내 질문에 미카도가 대답했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말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하치만, 하치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싫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비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뭐, 비밀이야 어쩔 수 없겠지. 남이 감추고 싶은 것을 시시콜콜 캐묻는 것은 실례라고. 게다가 남의 비밀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의 비밀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생각해야지. 애당초 거짓말에 대해서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나는 관대하다. 왜냐 하면 나도 필요하면 거짓말을 하니까다.”

  ​“​.​.​.​.​.​.​그​렇​구​나​.​ 그럼 ‘아직은’ ‘비밀’로 할게.”

**

  하루가 돌아 다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지금 내 앞에는 시키부가 서있다. 약속대로 오늘도 모습을 드러내셨군. 나는 지금이 바로 오해를 풀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이, 시키부. 너는 어제 심각한 오해를 했다. 미술부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 자체가 없다고.”

  그냥 그 정도를 넘어 이 학교 학생들 전체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란 말이다. 그나마 내가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귀찮은 유령 미카도를 제외하면 시키부 정도다. 안쓰러워서 미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시키부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렇게 뺄 거 없어! 나한테 맡기면 잘 될 거라니까! 비밀도 지켜줄게. 누구야? 말만 해봐!”

  ​“​.​.​.​.​.​.​그​렇​다​는​데​?​ 어떡할래?”

  미카도가 나를 보고 묻는다. 당연히 시키부의 협력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말했다.

  “진짜 나는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연애 문제 같은 게 아니라고.”

  하지만 시키부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계속 제멋대로 말했다.

  “의외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구나?”

  그러면서 짓궂게 웃는다. 아주 기운 넘치시는구만.

  내가 아무리 나는 현재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미술부에 간 것은 다른 용무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어도 시키부는 듣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퍼플 공주’였지. 연애 경험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연애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일 것이다. 소위, 연애뇌라고 하는 것인가. 게다가 어제 내가 미카도와 한 혼잣말이 그녀에게는 ‘퍼플 공주’의 도움을 받을까 말까 하는 혼잣말로 들린 것 같으니 그것도 한 몫 했으리라. 이대로는 대화가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역시 오해는 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방향성을 바꾸기로 했다. 내 사랑(물론 그런 것은 있지도 않다.)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 시키부는 알아서 포기하겠지.

  “그래서, 미술부실에는 대체 누굴 만나러 간 거야?”

  계속 물어오는 시키부에게 이번에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사오토메 아오이 선배다.”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사오토메 선배를 보러 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키부는 그 말을 듣고 ‘Hikigaya Hachiman loves Saotome Aoi!’를 연상했을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어쩌다가 미카도의 장례식에 갔을 때 처음 보고 이후로 조금 신경이 쓰였거든.”

  이것도 거짓말이 아니다. ‘진실’만을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지. 그 사람은 내 얘기를 결코 얌전히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야. 나는 네 도움은 필요 없어.”

  내 말을 듣고 미카도가 옆에서 구시렁거린다.

  “하치만, 분명 거짓말은 아니지만 뭔가 사기꾼 같아.”

  시키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 잠시 뒤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오이노우에 말이야? 너무 어려운 상대잖아. 가장 고귀한 귀족 아가씨. 우리 평민이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 바로 그 반응을 원했다. 그리고 이제 ‘그래서 너도 그냥 포기했구나’ 하고 알아서 납득하고 돌아가주면 완벽하다. 그건 그렇고 아오이노우에라는 건 사오토메 선배의 별칭인가? 이 학교는 원가 현대적인 감성보다 고풍스런 감성이 각광받는 모양이로군. 나는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키부의 반응은 또 나의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까지는 도와줄게. 방과 후에 다시 여기서 집합하자.”

  “어, ​저​기​.​.​.​.​.​.​.​”​

  시키부는 또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 멋대로 내 예정 좀 잡지 마. 이렇게 해서 나는 시키부 호노카의 지시에 따라 온갖 의미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뭐, 됐다. 몇 번 실패하다 보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겠지.

**

  며칠 동안에 내가 해온 헛짓거리를 간략히 설명해보겠다.

  <첫 번째 작전 회의>

  시키부: 고백의 가장 상투적인 수단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러브레터지. 네가 정성을 들여 쓴 손편지로 아오이노우에에게 네 진지한 마음을 전하는 거야.

  나: 어떻게 고작 글만으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거냐? 직접 만나보아도 사람의 품성을 확신할 수 없는데, 어떻게 편지만으로 사람에게 믿음을 줄 수 있겠어? 내가 진지하게 쓰더라도 사오토메 선배가 받아주지 않을 거다. 바로 찢어버리거나 하지 않을까?

  미카도: 하치만, 그러지 말고 한 번 해봐.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시키부: 잔말 말고 한 번 써봐! 진지하게!

  나는 결국 시키부의 첨삭에 의해 아주 오글거리는 문구로 점철된 편지를 쓰게 되었다. 요약하면 언제나 사오토메 선배를 봐왔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옥상으로 나와 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내 고집으로 편지에 이름만은 적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오토메 선배의 신발장에 넣었다. 

  결과는 대충 이렇다.

  미술부 활동을 끝낸 사오토메 선배가 편지를 발견하고 읽어보자마자 찢어버림으로써 실패했다. 지금 저 선배는 죽어버린 정혼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약간의 남성혐오증 증세도 나오고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저런 반응이 나오겠지.

  <결과 보고 후>

  나: 내 말 맞지?

  시키부: 으윽, 다음 작전으로 가자.

  <두 번째 작전 회의>

  시키부: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잦은 접촉! 그것이 기회를 만들어줄 거야! 네가 아오이노우에가 보는 앞에서 물건을 떨어뜨리고, 그녀가 그것을 주워줌으로써 인연을 만들 수 있어.

  나: 연애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냐? 지금 내 이미지가 사오토메 선배한테 얼마나 안 좋은데? 아마 내가 떨어뜨린 물건을 콱 밟고 지나가지 않을까?

  미카도: 하치만, 아오이 누나에 대해 너무 안 좋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시키부: 넌 연애를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이건 분명 효과 있는 방법이야! 한 번 해봐. 분명 효과가 제로는 아닐 거야.

  결과는 대충 이렇다.

  내가 떨어뜨린 학생수첩을 사오토메 선배는 망설임 없이 짓밟고 지나갔다. 학생수첩에는 신발 자국이 남았다.

  나와 마주치자마자 사오토메 선배는 엄청 노려보았다. 원래의 내 의도대로 나에게 궁금한 것이 생기긴 했겠으나 나에 대해 화가 나 있기 때문에 한동안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나는 만족했다.

  <결과 보고 후>

  나: 이번에도 내 예상대로 됐는데, 자칭 연애의 달인 되시는 분?

  시키부: ​.​.​.​.​.​.​이​번​에​도​ 운이 나빴어. 하지만 내 작전이 이걸로 끝인 것은 아니야!

  미카도: 아오이 누나가 설마 그럴 줄이야. 하치만에게 엄청 많이 화가 났나 봐.

  <세 번째 작전 회의>

  시키부: 네 이미지를 쇄신해야 돼. 의외로 좋은 녀석이라는 어필을 할 필요가 있어.

  미카도: (싱글벙글)어디서 들었던 말이랑 비슷한데?

  나: ​.​.​.​.​.​.​지​금​까​지​ 들었던 작전 중에 그나마 가장 쓸만하군. [차마 이 작전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못하겠다.]

  시키부: 나쁜 놈으로 알려져 있는 네가 작은 동물들을 잘 돌봐주는 의외의 면이 있다면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을 거야.

  나: 무슨 70~80년대 양아치냐. 너 그거 순정만화에서 봤지.

  시키부: (눈을 돌린다.)

  미카도: 괜찮지 않아, 하치만? 원래 하치만은 작은 동물을 잘 돌봐주는 상냥한 사람이잖아.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거야.

  나: [일단 해보기는 할까. 그보다 시키부가 의외로 끈질기군.] 해보기는 하겠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사오토메 선배는 나 따위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걸?

  결과는 대충 이렇다.

  사오토메 선배 앞에서 다른 작전 때는 나서지 않던 시키부까지 동원되어 내 작은 동물을 좋아하는 이미지를 어필했다. 그러나 잠시 동안은 관심을 가진 듯했던 사오토메 선배는 끝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

  나의 비밀장소에서 시키부는 낙담한 채 한숨을 쉬고 있었다. 누가 보면 네가 실연한 줄 알겠다. 내가 말했다.

  “뭐, 네가 열심히 도와준 것은 참 고맙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이제 슬슬 포기해도 될 때라고 생각되는데?”

  시키부가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 돼~. 보통은 이렇게까지는 안 된단 말이야~.”

  내가 그녀를 보고 말했다.

  “뭐, 연애를 순정만화로 배우고 연애소설로 익힌 사람의 전형적인 한계라는 거지.”

  “큭. 그, 그러는 너도 연애 경험 따위는 없을 거 아냐?”

  시키부는 이제는 자신이 연애의 달인이라고 맞받아치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감이 떨어진 모양이다. 내가 그녀의 힐난에 대답했다.

  “연애라, 실연하는 것도 연애라고 한다면 나도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지. 성공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실패하는 방법 정도는 사전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해박하단 말이다.”

  옆에서 미카도가 불쌍하다는 듯 쳐다본다.

  “하치만, 그거 절대 자랑이 아니야.”

  시키부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럼 이번에도 실패할 줄 알았어?”

  내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확신이라고 말하는 게 더 좋으려나.”

  “그, 그럼 왜 불평하면서도 내가 하자는 대로 한 거야?”

  거기에 대해서라면 내 계산 미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설마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려고 할 줄은 몰랐거든. 방향성을 잘못 잡기는 했지만 학교에서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호의에 나도 당황했다고나 할까. 어찌 됐든 호의에 보답하는 뜻으로 끝까지 솔직하게 대해주자.

  “몇 번 실패하면 네가 알아서 포기할 줄 알았지.”

  “하치만, 너무 솔직하잖아.”

  미카도가 또 나한테 뭐라고 그런다.

  시키부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 정말 아오이노우에를 좋아하는 거 맞아? 아무리 가능성이 작고, 실패할 거라 예상했다고 해도 여러 가지 시도가 전부 실패하면 낙담할 만도 한데 너는 계속 태연했어. 그러다 보니 네가 정말 그녀를 좋아하는지 의심이 들었어.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드디어 깨달았냐? 너무 늦었잖아. 내가 말했다.

  “처음부터 말했잖아. 나한테는 좋아하는 사람 따위는 없다고. 네가 멋대로 착각한 것뿐이다.”

  시키부가 내 말을 듣고 조금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하, 하지만 아오이노우에가 신경이 쓰인다고 그랬었잖아!”

  분명 그랬었지. 허나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 말은 사실이다. 내가 미술부실에 간 것은 사오토메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고 쭉 신경이 쓰였던 것도 맞아. 하지만 그건 연애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대화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사오토메 선배와 친해질 필요도 그다지 없어. 따지고 보면 ‘물건 전해주기’ 정도의 일이니까.”

  그 전해야 할 물건이 상당히 골치 아픈 것들이기는 하지만 일단 물건 전해주기가 내 목적이 맞다.

  시키부가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대체 무슨 일이야? 그날 물감을 뒤집어 쓴 모습으로 나온 것과 관계가 있는 거야?”

  “하치만, 시키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줘. 시키부는 하치만을 도와주려 했잖아.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해.”

  미카도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민했다. 시키부 호노카를 본 결과 꽤 좋은 녀석이라는 것은 알았다. 나름대로 나를 도와주려고 의욕을 쏟는 모습을 보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감동도 했다. 확실히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것은 조금 너무한 일이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유령 얘기가 나온 시점에서 나는 미친놈 취급을 당할 테니까 말이다.

  결론은 하나, 진실과 아주 약간의 거짓을 섞는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그럴 만하네’라고 생각할 스토리를 짜내는 거다. 이미 며칠 전부터 나는 누군가 미카도와의 관계를 물으면 대답할 말을 생각해놓았다. 그것을 활용할 때다.

  사실 이것은 미카도와 관련된 사람에게 대응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다. 원래는 상관없어야 할 시키부에게 이야기할 가능성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거기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또 시키부가 나를 도와주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 녀석은 오지랖이 넓은 여장부 스타일이다. 좋은 녀석이니까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끌어들이기 싫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은 시키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잠시 간의 침묵 끝에 나는 시키부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내가 미카도 히카루의 ‘진실’을 지켜주기 위해 하기로 한 거짓말을 입 밖에 꺼낸다.

  “웬만하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운을 띄우고 나는 거짓말을 시작했다. 일단 미리 생각해둔 미카도와 나의 관계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적절히 편집해서 설명했다.

  듣고 있던 시키부와 미카도의 표정이 놀라움에 물들어간다. 내가 이야기를 다 마치자 미카도가 나를 보며 말했다.

  “대단해, 하치만! 순간 나조차도 ‘내가 정말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 있는 스토리였어!”

   당연하지. 네 행동거지를 관찰하고 나서 생각한 거짓말인데, 당연히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시키부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겨우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럼, 그걸 위해서 아오이노우에와 이야기를 하러 간 거란 말이야?”

  “그렇지. 그게 내 목적이다. 어떻게든 D-DAY 이전에 해결해야 될 사항이지. 하지만 거기에 사오토메 선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의욕만 나게 한다면 되니까 오히려 나에 대한 대항심으로 의욕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내가 하는 것은 그냥 몇 가지를 보여주는 거고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사오토메 선배야.”

  “그래서 그렇게 일부러 화날 만한 소리를 한 거고?”

  “미카도에 대해 완전히 미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 됐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내 말을 듣고 시키부는 아직도 석연치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부러 학교 내에서의 입장을 나쁘게 할 필요는 없잖아? 남 돕다가 자기가 피해를 입으면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의 네 학교생활이 꼬이게 생겼는데.”

  당연한 질문이다. 하지만 시키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에게 피해가 큰 피해가 있지는 아닐 것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1학기 정도만 마치고 전학 갈 생각이니까.”

  그 말에 미카도와 시키부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미카도가 나를 보고 물었다.

  “하치만, 그게 무슨 소리야? 전학 갈 거라니?”

  시키부 또한 물어온다.

  “전학 갈 거라고? 이번 학기만 끝나면 말이야?”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답을 해주는 느낌으로 말했다.

  “내 학교생활은 어차피 시작부터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었어. 명문교라고 생각했던 이 학교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야. 웬만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해?”

  사오토메 선배의 일이 해결되고 미카도가 내게서 떨어지면 나는 조용히 지내다가 방학 동안에 전학을 가는 거다.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나는 이 학교가 싫다. 귀족 학생들의 비위를 맞추고 이상한 헛소문이나 퍼뜨리며 사람을 악당 취급하는 교사와 학생들이 끔찍하게 싫다. 그러니 내가 떠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내 말을 듣고 시키부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 힘겹게 내게 말했다.

  ​“​그​렇​.​.​.​.​.​.​구​나​.​ 우리 학교는 너한테 상처만 입혔으니까, 그렇게라도 하려는 게 당연하네.”

  그렇게까지 말하고 시키부는 양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때렸다. 짝,짝 하는 소리가 난 다음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한 듯 심지가 굳어 보이는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렇군, 역시 오지랖이 넓은 여자애다.

  ......아마, 중학교 때 만났다면 이 녀석에게 진심으로 반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자.

  시키부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기왕 간섭해버렸으니, 내가 끝까지 도와줄게! 분명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거야.”

  ​“​하​치​만​.​.​.​.​.​.​!​”​

  미카도도 나의 이름을 부른다. 뭐야, 두 사람 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런 적은 평생 처음이로군.

  시키부 호노카는 아주 좋은 녀석이다. 이 학교에도 제대로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런 여자애가 또 다시 나를 돕겠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시키부가 도와준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시키부에게 폐만 끼치고 끝날 것이다. 그런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 따위는 없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밖에 없고 그런 각오를 했다 해도 어쩔 수 없이 괴로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내밀어진 손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을 잡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부​탁​한​다​.​”​

  분명, 그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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