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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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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14)


<12장. 사이가 아사이와 히키가야 하치만은 서로를 도발한다.>

  “…….”

  내 앞에는 지금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아저씨가 서 있다. 여기는 미카도가 생전에 살았던 집 앞이다. 미카도가 꼭 여기에 들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해서 여기로 왔다가 이곳을 지키고 있던 아저씨와 맞닥뜨린 것이다. 아저씨가 의혹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히키가야 하치만이라고 미카도랑은, 그, 좀 아는 사이인데…….”

  음, 말문이 막힌다. 긴장이 되어서 미리 준비한 거짓말도 입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응? 뭐지? 아저씨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렇군요. 히키가야 님이셨군요. 도련님께서는 마침내 친구를 사귀셨던 것이로군요.”

  네? 무슨 착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아는 사이라고 말했는데 왜 친구라는 단어가 나오는 거지? 어찌 됐든 분위기가 괜찮은 거 같으니 한 번 말이나 꺼내볼까?

  “저기, 좀 들어가봐도 될까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보셔도 됩니다. 히키가야 님은 도련님의 친구시니까요.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또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셔서 내가 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들라고 말씀드렸다.

  무슨 사고과정을 거쳤기에 내가 미카도의 친구라고 착각을 하시는 건지도, 대체 뭐가 미안하시다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들여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말하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미카도가 나에게 말해준다.

  “아저씨는 내 호위와 운전기사 일을 같이 하셨는데, 마음씨가 여리고 좋은 분이야. 언제나 나를 친자식처럼 신경 써서 돌봐주셨지.”

  그러고는 뭔가를 중얼중얼거렸다.

  (그런 분이시니까, 하치만에 대해 우리 집안이 한 일을 아셨다면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셨을까……)

  미카도의 집에 들어갔다. 혼자서 살았다고 하기에는 아주 넓었다. 이래서 부르주아는 안 되는 거다. 이 정도면 명백한 공간 낭비라고.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듯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미카도가 나에게 안내를 한다.

  “여기야, 여기! 이걸 봐줘!”

  미카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내 품 속에서 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꺼내보니 화면에는 ‘시키부’라고 적혀 있었다. 시키부가 웬 일이지?

  받을까 생각했지만 시키부와 이 이상 연관되면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 정 급한 일이라면 메일을 보내겠지.

  “역시 안 받는구나.”

  옆에서 미카도가 말을 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으쓱했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 보니 메일이 몇 통 와 있었다. 전부 시키부한테서 온 거다. 뭐지, 대체? 메일들을 확인해본다.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사노미야를 조심해!}

  “아사노미야? 뭐야, 그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미카도가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모르는구나. 그래도 어차피 곧 알게 될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너는 아사노미야가 뭔지 알아?”

  “아마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봐. 하지만 거기에 신경 쓰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하치만에게 보여줄 수가 없어.”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아사노미야가 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미카도가 아까 가리친 곳으로 가니 두꺼운 책자가 하나 놓여 있다. 사진 앨범인가?

  “내 추억 모음집이야.”

  미카도가 말했다.

  나는 앨범을 열었다. 맨 첫 장은 크게 한 장. 쪼그만 아기 사진이다.

  “아, 내 생후 일 년 기념사진이다. 귀엽지 않아?”

  미카도가 옆에서 해설해주었다. 음, 귀엽긴 하군. 여자들이 봤다간 끔뻑 죽을 거다.

  나는 한 장을 넘겼다. 그러자 또 그 아기의 다른 사진들로 가득하다. 또 한 장을 넘겼다. 마찬가지다. 나는 미카도를 노려보며 말했다.

  “설마 네가 어렸을 때 얼마나 귀여웠는지 자랑하려고 나를 이곳에 오게 한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다른 사진들도 나올 거야.”

  그래서 나는 한 장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사진 하나가 있었다. 한 두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미카도가 어느 여성에게 안겨 있는 사진이었다.

  “그건……어머니와 같이 찍은 사진이야.”

  미카도가 약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는 모양이다. 아무 상관없는 나도 조금은 숙연해졌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분위기를 전환할 겸 물었다.

  “그런데, 나는 네 장례식장에서 네 어머니와 엄청 닮은 사람을 본 것 같은데? 혹시 네 누나였냐?”

  미카도의 장례식장에서 본 여자를 떠올린다. 기모노를 입고 앉아 있었으며 왠지 모르게 웃고 있던 것 같았던 여자였다. 잠깐이지만 호기심이 생겼었다.

  미카도는 잠시 숨을 삼키는 소리만 내고 아무 말도 않았다. 그러다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응, 나는 누나가 없어. 그 사람은……외가 친척이야.”

  그렇군. 외가 쪽이라면 미카도네 어머니랑 닮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어느 새 아기는 젖꼭지를 떼고 땅 위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금씩 아이는 자라고 있다. 그러다 또 내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여섯 살 정도의 미카도와 두 여자애가 같이 찍힌 사진이다. 미카도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고, 여자애 한 명은 무표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뭔가 삐친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소중한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의 사진이야. 내가 하치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이거였어.”

  미카도가 그립다는 눈빛으로 사진을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것은 미카도뿐이지만 그 사진 속의 세 명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무표정한 여자애도 얼굴에 살짝 느슨한 느낌이 들고, 삐친 여자애는 진심으로 화난 것이 아닌 듯 슬쩍 미카도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저 삐친 여자애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사오토메 선배다.

  “왜 나한테 이걸 보여주는 거냐?”

  내가 미카도에게 물었다. 미카도가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거만이 아니야. 다른 사진들도 봐줘.”

  나는 그 사진 이후에 있는 사진들도 살펴보았다. 미카도는 항상 웃고 있고 무표정한 여자애는 대체로 그대로였다. 하지만 사오토메 선배의 표정은 사진마다 조금씩 달랐다. 어떤 사진에서는 밝게 웃고 있고 어떤 사진에서는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모습이다.

  미카도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린다.

  “하치만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하치만은 화를 내는 아오이 누나밖에 모르잖아. 아오이 누나한테 심한 일을 당했잖아. 분명 하치만은 나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아오이 누나를 좋게 볼 수는 없을 거야. 그래도 나는 하치만이 내 소중한 여자애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아는 아오이 누나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자랑하고 싶었어! 어때, 하치만? 이 사진에 찍힌 아오이 누나는 정말 사랑스럽지 않아? 내가 좋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런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알겠어?”

  미카도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 사진에 찍힌 사오토메 선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군, 그 선배는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던 사람이었나. 미카도의 말이 이어진다.

  “하치만, 내 선물을 받으면, 아오이 누나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난들 알겠냐?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

  그렇게 대답해주고 나서 나는 사오토메 선배에 대한 감상을 덧붙였다.

  “만약, 예전에 저 사진 속과 같은 여자애를 만났더라면 홀딱 반해버렸을지도 모르겠군.”

  미카도가 싱긋 웃었다. 너무 기뻐하잖아. 누가 보면 널 칭찬한 줄 알겠다.

  나는 말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미카도의 유년시절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은근히 재밌구만. 집에 가면 우리집 앨범도 한 번 꺼내볼까. 아냐, 미카도가 있으니까 그만두자.

  그러고 있을 때,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의 집에 침입해서 뭘 하는 거지?”

  고개를 돌려 보니 검은색 긴 생머리에 차분해 보이는 인상의 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다. 넥타이의 색깔로 봐서는 2학년인 것 같다.

  응?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장례식에서 사오토메 선배를 말리던 사람이다! 어? 그리고……방금 그 사진 속의 나머지 한 명! 혹시 그게 저 사람인가?

  옆에서 미카도가 나에게 그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사이가 아사이야. 나는 아사라고 불러. 내 사촌이고 아오이 누나랑도 어린 시절부터 제일 친한 친구지. 아까 그 사진에 나온 나머지 한 명이 바로 아사야. 우리 학교 학생회장을 맡고 있고 학생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아사노미야’라고 해.”

  과연, 시키부가 메일은 학생회장을 조심하라는 뜻이었나? 그럼 그냥 학생회장을 조심하라고 하면 되잖아. 나는 마음속으로 시키부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히키가야 하치만 군이지? 기사 아저씨가 히카루가 죽고 나서 실수를 많이 하나 보네. 너 같은 사람이 여기에 들어오는 것을 놓치다니 말이야.”

  “뎌, 저기, 일단 그 아저씨께 말씀드리고 나서 허락 받고 들어 온 겁니다만.”

  나는 대답을 하려다 혀를 씹고 말았다. 와, 저 사람 엄청 무서워. 처음의 시키부와도 비교할 바가 아니잖아! 과연 조심하라고 할 만하군.

  내 대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이가 선배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오이한테 들었어. 너, 히카루와 아오이 사이의 약속을 알고 있었다며? 뭐, 히카루니까 또 잠자리에서 어떤 여자에게 말했을 테고, 그걸 다시 네가 주워들었겠지. 누구한테 들었어?”

  “우와, 아사, 너무해! 난 하치만한테밖에 말 안 했어!”

  미카도는 또 다시 자기가 그다지 신용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는 외쳤다. 야, 너 때문에 정신 사나워. 좀 조용히 해.

  내가 사이가 선배의 말에 대답했다.

  “미카도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 말에 사이가 선배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웃기지 마. 너는 입학식 날 교통사고를 당해 골든위크 직전까지 학교에 나오지 못했지? 네가 미카도와 실제로 만난 것은 단 한 번밖에 없다는 건 다 알고 있어. 그 한 번, 1, 2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역시 이렇게 나오시는군. 거짓말을 미리 준비하기를 잘 했다. 내가 말했다.

  “물론 그 말씀이 맞지요. 그 시간 동안 그런 얘기를 주고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메일 주소’라면 주고받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나는 미리 들어둔 미카도의 메일 주소를 읊었다. 미카도는 메일 주소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데 이 주소는 일부 가까운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순간 사이가 선배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미카도는 여자한테는 인기가 많았지만 또래 남자 중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들 그를 질투하고 피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래도 동성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것을 위해, 그는 고등학교 편입생 중에 남학생들한테 적극적으로 말을 걸려고 했습니다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렘 황태자의 소문을 듣고 모두들 그를 피했으니까요.”

  여기까지는 진실이다. 미카도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나는 계속 말했다.

  “그러다 미카도는 아직 단 한 명, 학교에 등교조차 하지 못한 편입생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지요. 그게 저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등교했을 때, 미카도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미카도에 대한 소문을 몰랐고 그래서 그를 큰 편견 없이 대했습니다. 그러자 미카도는 저에게 다짜고짜 메일 주소를 알려 주더군요. 나중에 물어보니 원래, 친구 사이에는 곧바로 메일 주소를 교환하는 거라고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웃기지도 않는 환상을 갖고 있었던 거죠.”

  미카도의 얼굴이 붉어진다. 실제로 자기가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너무 당당히 얘기하니 착각이 드는 것이겠지.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저는 그날 저녁 여러 통의 불행의 편지를 받으면서, 미카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 주소를 버리려고 했습니다. 다만 말없이 그러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당신과 메일을 주고받을 수는 없을 것 같군요.} 하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바로 답장이 왔지요. {부탁이야. 제발 내 대화상대가 되어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 또한 친구는커녕 대화상대조차 없는 학교생활을 보냈었기 때문에 그런 부탁에는 약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주고받은 메일은 읽고 나서 무조건 지운다.’라는 조건으로 메일 대화상대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미카도의 폰을 보고 저에 대해 물으면 제가 곤란해지니까요. 몇 번의 교류를 해보니 서로 가치관이 아주 달라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심심함을 달래는 상대로 서로 몇 번 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히카루가 메일로 너에게 아오이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거야?”

  사이가 선배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서도 대답은 준비해뒀다. 내가 말했다.

  “미카도는 사오토메 선배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고는 아주 들뜬 마음이었습니다. 그 성격에 분명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겠죠. 마치 어떤 꽃이 어떻게 아름답다고 설파할 때처럼요. 하지만 사오토메 선배만을 위한 선물을 여자들한테 이야기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일단 그 사실이 들통 나면 사오토메 선배에게 미움 받을 게 뻔한 데다 이야기를 들은 여자도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니까요. ……사이가 선배한테는 뭐, 이야기하면 사오토메 선배 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겠죠.”

  준비한 이야기에 애드립도 더한다. 아마 사이가 선배는 사오토메 선배와 아주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 애드립은 먹히겠지. 옆에서 미카도가 감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만만한 저한테 자랑하더란 말입니다! ‘저기저기 어떻게 생각해? 낭만적이지 않아? 아오이 누나가 기뻐할까?’ 이딴 질문이나 하면서 자기 아이디어를 자랑하더라고요! 저는 닭살이 돋는 것을 무릅쓰고 ‘뭐, 괜찮네.’라고, 이딴 소리나 했단 말입니다!”

  우와, 위험해. 처음에 선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의 감정이 조금 섞이고 말았잖아. 미카도가 쓰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가 선배는……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끝맺었다.

  “크흠! 그, 그런 이유로 제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을 알게 된 겁니다. 미카도가 죽은 뒤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수 있으면 선물을 전해줄까 하고 이야기를 꺼내본 거죠. 사오토메 선배가 불같이 화를 내서 일이 꼬였지만요.”

  내 말을 들은 사이가 선배가 말했다.

  “확실히 네 얘기는 그럴듯하기는 해. 하지만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솔직히 메일을 주고받은 흔적은 다 없애서 하나도 안 남겼거든요. 아, 미카도의 폰에 혹시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그 녀석이 약속을 안 지켰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여기에는 대응하기보다는 유연한 대처를 하자. 어차피 거짓말이니 증거는 댈 수 없다. 괜히 증거를 날조하다 들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댈 만한 증거가 없어서 죄송합니다.’가 낫다.

  사이가 선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곧 입을 열었다.

  “히카루의 휴대 전화는 히카루가 물에 빠졌을 때 완전히 망가져버렸어. 그 내용물은 절대 알 수 없어. 그러니 여전히 증거는 없는 셈이네.”

  사이가 선배가 나를 노려보며 이어 말했다.

  “만약, 네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히카루의 선물을 왜 아오이한테 전하려는 거지? 히카루의 그저 대화상대였을 뿐인 너한테 그럴 의무는 없을 텐데?”

  “이제 와서 생각해봐도, 솔직히 저는 미카도 히카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녀석이 그렇게나 자랑해대던 것이 그저 사라져버리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해서요.”

  이렇게 말해주자. 내가 생각해도 애매하고 어설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의 스스로도 알기 어려운 마음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사이가 선배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반대야.”

  “네?”

  내 반문에 사이가 선배의 말이 이어졌다.

  “설령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고, 정말 히카루가 남긴 선물이 있다 해도 그것을 받은 아오이가 과연 행복해질까? 결국 히카루가 없는 현실에 절망할 뿐이겠지. 그러니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아오이에게 그 선물이라는 걸 전해주는 데 찬성할 수 없어.”

  내가 대꾸했다.

  “그건 사오토메 선배가 결정할 문제가 아닐까요?”

  내 지극히 정당한 물음에 사이가 선배가 말했다.

  “아오이는 항상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어. 지금 히카루가 죽은 것 때문에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주변에서는 계속 걱정하고 있지. 그러니 아오이를 심하게 자극할 만한 일은 절대 찬성할 수 없어.”

  “아사…….”

  그 완고함에 미카도가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이 사람 사오토메 선배랑 친구 아니었나? 무슨 부모라도 되는 양 구는 거지? 내가 물었다.

  “친구라면서 꽤나 과보호하시네요.”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보호하려고 하는 거야.”

  흐음. 뭔가 위화감이 드는 관계로군. 원래라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학생회장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헤이안 고 학생의 대표다. 한 방 먹이고 싶다.

  따, 딱히 미카도의 부탁을 더 잘 들어주기 위해 이러는 건 아니야!

  나는 사이가 선배에게 질문했다.

  “사이가 선배는 진실은 달콤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잔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이가 선배는 내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으나 곧 대답했다.

  “진실이란 언제나 잔혹하고, 사람을 상처 입히는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진실이 잔혹하다면, 거짓은 달콤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시죠?”

  사이가 선배는 사오토메 선배를 지키려고 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보면 다정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라면 사오토메 선배는 잔혹한 세계와는 담을 쌓은 채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러니까 당신의 다정함은 분명,”

  하지만 그렇다면 결코 사오토메 선배는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다.

  “거짓일 겁니다.”

  내 말에 사이가 선배가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본다. 미카도도 놀란 듯이 바라보고 있다. 나는 사이가 선배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치만…….”

  내 이름을 부르는 미카도를 보며 물었다.

  “저 사람, 분명 나한테 엄청 화났겠지?”

  “으, 응. 아마도.”

  미카도의 대답에 나는 한탄했다.

  “이거, 일이 점점 더 귀찮게 되는데,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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