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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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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15)


<13장. 히키가야 하치만은 누명을 쓴다.>

  미카도의 집에서 나올 때 또 다시 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열어보니 또 시키부이다. 전화를 안 받으니, 메일을 계속 보내고 있다. 이 정도로 계속 메일을 보내는데 무시하는 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라 나는 답장을 보냈다.

  {미안하다. 네가 말한 그 ‘아사노미야’랑 마주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답장을 할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보내자 곧 답장이 왔다.

  {괜찮아?}

  {멀쩡하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줘!}

  그 메일을 읽고는 곧바로 폰을 꺼버렸다. 내 폰은 배터리가 다 돼서 꺼진 거다. 그렇게 자기 암시를 걸어본다.

  나는 곧바로 자전거를 세워둔 곳에 가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빨리 출발하자. 지금도 사이가 선배가 밖으로 나와서 다시 마주칠까 엄청 불안하다. 나는 페달을 밟았다.

**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미카도가 나에게 말했다.

  “어째서, 아사한테 그런 소리를 한 거야?”

  당연한 걸 물어보고 있다. 내가 말했다.

  “그 두 사람이 평소에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사이가 선배의 태도를 보니 위화감이 느껴져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데?”

  “사이가 선배는 사오토메 선배를 걱정하는 듯했지. 그런데 그것이 다르게 보면 사오토메 선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도 느껴졌다. 마치 사오토메 선배의 한계를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것 같은 느낌이지. 사오토메 선배에 대해 ‘어차피 얘는 뭘 해도 안 돼’라고 하는 것 같았어.”

  “.......”

  “나는 그런 느낌을 한 번 확인해봤다. 만약, 그것이 내 괜한 걱정이라면 사이가 선배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내 느낌이 맞는다면 네 선물을 전하는 데 사이가 선배는 방해물이 될 거다.”

  대체 네 주변 인간 관계는 어떻게 된 거냐 하고 따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본인도 심란할 테니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집에 도착했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코마치가 맞아준다.

  “어서 와, 오빠!”

  “그래 다녀왔다, 코마치.”

  아, 역시 코마치와 있는 게 마음이 제일 편하다. 요즘 내 인생의 더없는 위안이라 할 만하다. 그렇게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 있는데 코마치가 입을 열었다.

  “오빠, 폰이 꺼져 있었지?”

  내가 대답했다.

  “충전하는 걸 까먹고 가서 배터리가 다 됐지.”

  코마치가 말했다.

  “아까 전화했는데 꺼져 있다고 해서 말이야~. 오빠! 오늘 저녁은 ​카​레​라​이​스​입​니​다​!​”​

  “어, 그러냐? 그러고 보니 카레 냄새가 나는 듯도 하네.”

  “그런데, 감자, 양파, 당근, 고기가 부족합니다!”

  코마치가 이렇게 말했다. 뭐냐, 그거. 재료가 카레가루밖에 없는 거냐. 코마치의 말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오빠는 지금 당장 장을 보러 갔다 와주면 됩니다!”

  “저기, 나 오늘 좀 멀리까지 갔다 와서 좀 ​피​곤​.​.​.​.​.​.​.​”​

  “카레가루로만 만든 카레에다 밥 말아먹고 싶어, 오빠?”

  “......갔다 온다.”

  제기랄, 내 여동생이 이렇게 안 귀여울 리가 없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곧바로 다시 밖으로 나섰다.

**

  <내일 아침 일찍 그 장소에 와줘!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나중에 폰을 다시 켰을 때 확인한 시키부가 보낸 메일 내용이다. 시키부, 제발 부탁이다. 내 예정 좀 멋대로 잡지 마.

  옆에서 미카도가 나를 놀려댄다.

  “하치만,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겠네?”

**

  나는 평소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학교로 갔다. 교실에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비밀 장소로 향했다. 거기에는 시키부가 조금은 열 받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다.”

  “그래, 안녕.”

  이봐, 나는 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동급생에게 처음으로 인사말을 건넨 거라고. 좀 따뜻한 대응을 해달란 말이다!

  내 이런 속마음을 모르는 시키부는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어제 아사노미야랑 마주쳤다며? 무슨 일이 있었어?”

  나는 시키부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 먼저, 네가 어떻게 아사노미야가 나를 신경 쓴다는 정보를 얻었는지가 궁금하다만. 그것부터 이야기해줄 수 없겠냐?”

  그 말에 시키부가 잠시 불만스러운 듯 표정을 찡그렸으나, 납득했는지 먼저 설명을 시작했다.

  “어제 너는 수업이 끝나고 바로 교실에서 나갔잖아. 그 이후에 아사노미야가 찾아왔었어. 그리고 ‘히키가야 하치만이라는 사람이 있니?’ 하고 말했지. 넌 이미 없었으니까 없다고 말했더니 그냥 가버리더라고.”

  “......그게 끝?”

  내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시키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이게 다야.”

  내가 힘이 쫙 빠져서 말했다.

  “고작 그런 일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던 거냐.”

  그러자 시키부가 발끈한 듯 나에게 쏘아붙였다.

  “고작 그런 일~? 아냐!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이가 아사이라고 하면 우리 학교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의 아가씨로 교사들까지 벌벌 떠는 학교 최고의 권력자라고! 그 눈 밖에 나서 강제 전학 당한 학생들도 있고, 심지어는 교사까지 쫓겨난 적이 있단 말이야!”

  시키부의 이야기에는 솔직히 좀 놀랐다. 보통 학생회장이 그런 권력을 갖고 있던가? 이 학교 너무 이상하잖아. 하지만 사실 내가 겁낼 만한 일은 아니다. 나는 여유롭게 말했다.

  “그래준다면 고맙지.”

  ““뭐?””

  시키부와, 옆에서 듣고만 있던 미카도의 목소리가 겹쳤다. 내가 설명했다.

  “어차피 전학 갈 생각이니까 강제 전학이 뭐 대수겠어.”

  “아하하,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네.”

  미카도가 나에게 말했다.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 설명한 시키부가 따가운 눈빛으로 나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아주 간략히 설명했다.

  “어제 사이가 선배와 마주쳐서 말다툼을 했지. 그게 다다.”

  시키부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녀가 말했다.

  “제정신이야? 아사노미야는 아오이노우에와 가장 친한 친구란 말이야! 아오이노우에한테 히카루노키미의 선물을 전할 거라면서? 그런데 그런 사람한테까지 미움을 사면 어떡해!?”

  미카도도 그런 별칭이 있는 거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내가 말했다.

  “이미 사오토메 선배 본인한테도 미움을 샀는데 사이가 선배한테 잘 보일 이유가 뭐가 있겠어? ​게​다​가​.​.​.​.​.​.​.​”​

  “게다가?”

  사이가 선배에게 느꼈던 위화감을 떠올리는 나에게 시키부가 물어온다. 여기에 대해서는 시키부한테 말할 게 못 된다. 얼버무려야겠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나도 돕겠다고 했으니까,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그렇게 말하며 시키부는 먼저 가버렸다. 같이 갔다가 눈에 띄면 곤란하다. 좀 기다렸다가 교실로 들어가자. 자리에 걸터앉았다. 내가 미카도를 노려보고 말했다.

  “네 부탁이 생각한 것보다 실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미카도가 태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하치만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지나친 믿음이다. 너 카지노 같은 데 가면 <올 인>을 했다가 왕창 뜯어 먹힐 타입이라고.”

  “아니야, 나는 절대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대체 무슨 근거로 저러는 걸까.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잠시 딴 데로 돌려볼까. 나는 미카도를 보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사이가 선배랑 마주친 거 말이지, 사이가 선배가 내가 거기 있는 줄 알고 찾아 온 걸까? 아니면 단지 우연이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우연이지만 만약 사이가 선배의 정보력에 의한 결과라면 그건 너무 무섭다. 미카도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으음, 아마 아저씨가 이야기한 게 아닐까? 아사라면 분명 내 뒷정리를 계속 돕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아저씨는 내 집을 찾아온 사람들을 아사한테 보고했을 거야. 더욱이, 너는 내 ‘친구’로 생각되었으니까 누구한테라도 이야기하고 싶었겠지. 나한테 친구가 생겼었고 지금 찾아왔다고 말이야.”

  호오, 그러니까 사이가 선배는 내가 허락 받고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단 말인가. 처음부터 나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군.

  그때 품 안의 폰이 진동한다. 꺼내보니 또 시키부다.

  “또냐. 대체 이번에는 뭐냐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고는 메일을 확인한다. 제목은 ‘큰일 났어!’인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누가 히카루노키미를 추모하는 게시판을 찢어버렸어!}

**

  나는 교실의 내 자리에 앉아 있다. 시키부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주변에서는 수군수군대고 있다. 대충 들리는 내용만으로 보면 ‘저 사람이 그분을 모욕했다는 사람이지?’, ‘그렇담 쟤가 범인인가?’ 정도이다. 과연 의심받고 있구만. 나는 아까 교실로 들어오면서 흘깃 본 게시판의 모습을 떠올렸다. 글씨로 빼곡하던 큰 종이를 누군가 X자 모양으로 난도질을 해놓았다.

  ......정말 취미가 나쁘다.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범인은 엄청난 악질이다.

  서술 트릭 같은 게 아니다. 나는 정말 범인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유력한 용의자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곧 교무실에서 나를 부르러 오겠군.

  “히키가야 하치만 군, 있나?”

  역시 이렇게 된단 말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서 ‘역시 쟤가 범인이네.’라는 소리가 나온다. 어이, 멍청이들아. 내가 끌려가는 것은 네놈들이 나를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걸 다시 자기 의심의 근거로 삼다니, 논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엉켰단 말이다!

  나는 나를 부르러 온 선생을 따라 복도를 걸어간다. 이거, 내가 범인이라는 소문 또한 널리 퍼지겠군. 미카도가 나에게 붙은 뒤로 점점 헤이안 고교의 뉴스메이커가 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도착한 것은 교감실이었다. 교감은 나를 보더니 안색을 굳혔다. 내가 앉도록 자리를 내준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교감과 마주앉게 되었다. 교감은 내가 앉자마자 바로 나에게 물어왔다.

  “학생들이 네가 범인일 거라고 그러더구나. 네가 그랬느냐?”

  그렇게 나도 널 의심한다는 표정을 짓고 직설적으로 물어오니 좀 기분 나쁜데, 좀 돌려서 말해주시면 안 되나요? 내가 대답했다.

  “저는 아닙니다. 제가 안 그랬어요.”

  “하지만 자네가 미카도 군을 험담하는 걸 들었다는 사람이 많다.”

  어이가 없군. 나는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제가 험담하는 게 소문으로 퍼져서 그렇지, 다른 남자들도 꽤 미카도를 싫어했습니다. 미카도의 험담을 했다는 것이 동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면, 딱히 저만이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죠.”

  “하치만, 왜 가만히 있는 나한테 그런 심한 소리를 하는 거야!?”

  미카도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교감에게 물었다.

  “그 게시판은 언제 찢어진 거죠?”

  “어제 오후 5시 반까지는 멀쩡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새벽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발견했다. 아마 오후 5시 반에서 학교가 폐쇄되는 6시 사이에 사건이 일어난 거겠지.”

  내가 교감의 말을 듣고 말했다.

  “그 시간대라면 저는 이미 하교한 상태였습니다. 학교 밖에서 우연히 학생회장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했으니까 회장한테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교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사이가 양도 밖에서 너를 만났다고 말하더구나. 하지만 사이가 양은 네가 이후에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지.”

  ​.​.​.​.​.​.​정​말​이​냐​.​ 이 사건이 일어난 김에 나를 같이 보내버리려고 하는 의지가 보이는군. ......그 사람 은근히 바보 아냐? 그렇게 해봐야 좋을 일도 없을 텐데.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교감에게 요청했다.

  “그렇다면 학생회장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교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문 밖을 향해 말했다.

  “사이가 양, 들어오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까. 사이가 선배가 들어와 내 맞은편, 교감의 옆에 앉았다. 나는 인사 같은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사이가 선배, 어제 저와 언제 어디서 마주쳤는지 기억하십니까?”

  사이가 선배는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5시 반을 좀 넘어서, 히카루가 생전에 살던 집 근처에서였지.”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군. 나는 마침 앞의 탁자에 있던 치바현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카도가 살던 집의 위치는 한 여기쯤이지요?”

  사이가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른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 학교입니다.”

  나는 또 다시 다른 부분을 가리키고 말했다.

  “여기는 제가 사는 동네입니다.”

  내가 가리킨 세 점은 일직선 위에 있지 않다. 그 형태는 오히려 예각삼각형(모든 각이 각도 90도 미만인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내 손은 그 세 점을 오가며 삼각형을 그려댔다. 교감과 사이가 선배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다. 내가 말했다.

  “사이가 선배가 생각하기에, 제가 미카도가 살던 집에서 출발해 우리 학교에 들렀다가 우리 동네까지 삼십 분 안에 갈 수 있을까요?”

  사이가 선배가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불가능하겠지. 아마 한 시간 가까이 걸릴 거야.”

  거리상으로 보면 미카도네 집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것이 훨씬 더 가깝다. 만약 내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면 대략 20분 정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실제로 어제도 그랬다.

  “전철을 이용하면 돌아서 가게 되므로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대는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기 때문에 자동차로도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거기에서 곧바로 집에 갔다면, 저는 30분 안에 우리 동네에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제가 6시 전후에 우리 동네 근처에 있었다면 저는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다는 말이 되지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지갑에서 영수증을 하나 꺼냈다. 코마치, 고맙다! 너는 역시 내 수호천사였어! 오늘 집에 갈 때 코마치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라도 좀 사가야겠다. 내가 계속 말했다.

  “저는 어제 6시 경에 우리 동네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봤습니다. 여기 적힌 시간은 6시 4분이로군요. 저는 그때 거기에 있었던 겁니다. 요즘 마트는 모두 CCTV를 설치해둡니다. 그걸 확인하면 제가 그 시간에 거기 있었다는 것이 증명될 겁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교감과 사이가 선배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만면의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그러므로,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나왔음에도 그 사실은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복도를 걸어가는 나를 향한 눈빛이 여전히 따가웠다. 지금 점심시간에 혼자만의 장소에 있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입맛이 없어서 빵도 사지 않고 곧바로 여기로 왔다.

  “누명을 벗어도 헛소문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구나.”

  미카도가 내 옆에서 말했다. 그 말에는 나도 동감이다. 아무리 누명을 벗어도 대중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미카도가 나에게 사과한다.

  “하치만, 미안해. 설마 아사가 하치만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할 줄은 정말 몰랐어! 으음, 아사라면 그런 짓을 할 수는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하치만에게 화가 났을 줄이야.”

  내가 미카도를 힐난했다.

  “대체 네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뭐냐?”

  그러자 미카도가 으음 하고 고민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사건의 범인이라면 알 것 ​같​은​데​.​.​.​.​.​.​.​”​

  내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건 그리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군. 나도 범인은 대강 예상이 간다.”

  그 말을 듣고 미카도가 감탄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굉장해, 하치만! 정말 머리가 좋구나!”

  “너도 범인을 알았다며? 자화자찬이냐? 나는 그저 악의에 민감한 것뿐이야.”

  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사​이​가​ 선배는 몰랐겠지?”

  미카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만약 아사가 ‘알았다면’ 이 사건을 무조건 덮으려고 했을 거야.”

  미카도의 말이 맞다. 사이가 선배는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아마 아직도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닫지 못했겠지. 그리고 그건 곧 엄청난 문제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각오를 했다.

  “어차피 사이가 선배는 나를 범인으로 몰고 싶은 모양인데, 내가 결백을 증명했다고 해도 그걸 널리 알리지는 않을 거다. 내가 나는 범인이 아니라고 일일이 설명하고 다니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내 말에 다시 미카도가 나에게 사과한다.

  “미안해.”

  “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다 하나같이 나한테 폐를 끼치는 거냐? 너 정말 악령 아닌 거 맞지?”

  미카도는 그냥 웃고 말았다.

  미카도가 나에게 물었다.

  “범인을 잡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 그 문제는 내가 끼어들 만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아직은 나를 빼고 실질적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어. 이대로 모르는 척하고 나중에 해결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알아. 하지만 이런 일에 제삼자가 잘못 끼어들면 오히려 더 문제가 발생한다.”

  “하치만은 헛소문 때문에 괴롭지 않아?”

  “나는 멀쩡하다. 원래 내 이미지는 시궁창이었으니 별 달라질 것도 없어.”

  “그렇구나.”

  “별 문제가 없다면 이대로 넘어가자. 나로서는 이대로 별 문제 없이 이번 주 토요일이 되면 ​좋​겠​지​만​.​.​.​.​.​.​.​”​

  이번 주 토요일이 바로 사오토메 선배의 생일이다. 즉 그날까지 미카도의 부탁을 이루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범인에 대해서는 그 뒤에 내가 사오토메 선배나 사이가 선배한테 귀띔해놓을 테니 안심해라.”

  “알았어, 그렇게 할게. 어? 아, 하지만! 저기 시키부가 오고 있어!”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 시키부가 있었다. 시키부는 내 쪽으로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히키가야! 너 괜찮아? 선생님한테 끌려갔었잖아!?”

  어이, 얼굴 너무 가까워, 가깝다고! 나는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일단, 누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는 ​했​는​데​.​.​.​.​.​.​.​”​

  시키부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정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교감도, 사이가 선배도 그걸로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을 거다. 하지만 사이가 선배한테 미움을 샀기 때문인지 그것을 공개적으로 알리지는 않더군.”

  그 말을 듣고 시키부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나를 걱정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사노미야가 좀 너무한 거 아니야? 넌 그걸로 괜찮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석연치 않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시키부가 아, 하고 뭔가를 좋은 생각이 난 표정을 보이고는 나에게 제안했다.

  “내가 사람들한테 네 누명이 증명되었다고 이야기하고 다닐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시키부를 말렸다.

  “그런 짓은 하지 마. 그렇게 되면 더 심한 문제가 발생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결백하다는 게 증명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예 안 퍼지는 게 나아. 부디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내 굳은 태도에 시키부는 납득하지 못한 듯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점심시간이 다 끝난다. 내가 시키부를 보고 말했다.

  “먼저 가봐.”

  시키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녀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나에게 닿는다.

  “나중에 보자.”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시키부와 간격을 두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는 나를 보고 계속 사람들이 수군수군거린다. 역시 아직 나를 범인이라 생각하고 있군. 그 사실에 오히려 안심이 될 지경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저 사람은 범인이 아니에요!”

  나는 목소리가 난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사오토메 선배가 서 있었다. 사오토메 선배는 계속 외쳤다.

  “모두들 착각하고 있어요! 저 사람은 범인이 아니에요! 저 사람이 그런 게 아니란 말이예요!”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내 옆의 미카도는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겠지만, 기운 내, 아오이 누나!”

  미카도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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