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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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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16)


<14장. 처음으로, 히키가야 하치만과 미카도 히카루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소문이라는 건 왜 이렇게 빨리 퍼지는지 모르겠다. 사오토메 선배의 돌발 행동은 학교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거의 모든 학생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히키가야 범인설’ 대신에 ‘아오이노우에 범인설’이 학생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아오이노우에는 황태자님을 바람둥이라고 매도했었어.”

  “황태자님이 죽은 뒤에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망치면서 화풀이를 했어.”

  “역시 그 사람이 범인이야.”

  그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혈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어이, 너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범인이라며? 손바닥 뒤집는 게 너무 빠른 거 아니냐?

  사오토메 선배 덕분에 나를 향한 악의적인 시선도 조금은 가셨다. 문제는 그게 모조리 사오토메 선배한테 가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인적이 없는 학교 건물 근처 산책로를 하릴없이 걷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몸이라도 조금 움직이고 싶어서였다. 나는 미카도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가 아까 내뱉은 사오토메 선배를 향한 응원(?)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의미를 모르겠다. 내가 아까전부터 설명을 요구했지만 미카도는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품 안의 폰이 진동한다. 보나마나 시키부겠지. 나는 내용을 확인했다.

  {네가 우려하던 일이 이거야? 혹시 진짜 아오이노우에 짓이야? 아니지?}

  “.......”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답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다​.​.​.​.​.​.​.​}​

  여기까지 썼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아주 드라마틱한 과정으로 혐의를 벗으셨네요~.”

  앳된 여자애 목소리였다. 나는 메일을 쓰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 어깨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키가 작은 여자애가 서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숏컷으로, 장난기 있어 보이는 얼굴과 더해져 활동적인 인상을 준다. 넥타이 색을 보니 나와 같은 1학년이다. 하지만 얼굴만으로 보면 코마치와 동갑이라고 해도 그렇게 무리 없을 정도의 동안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코마치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크다. 아주 크다. 이게 고등학교 1학년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크다. 가슴에 달려 있는 두 개의 큰 봉우리! 순간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이크! 안 된다. 이러면 내가 완전히 변태잖아. 나는 애써 시선을 위로 올려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고 물었다.

  “넌 누구야?”

  “1학년 신문부원 오미 히이나입니다!”

  그렇게 이름을 밝힌 그녀는 내가 알아봤자 아무런 쓸 데가 없는 자신의 프로필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그냥 흘려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폰을 꺼내 들어 내 사진을 찍었다.

  “......무슨 짓이지?”

  내 항의를 오미는 천연덕스럽게 받아넘겼다.

  “일단 사진이 하나 필요했지요. 신문에 낼 거니까요. 저는 화제의 인물, 히키가야 하치만 씨를 인터뷰하려 왔답니다!”

  내가 품 안으로 집어넣은 폰에서 다시 진동이 시작된다. 시키부가 전화한 건가? 일단 여기 이 여자와 얘기가 끝나고 나서 연락하도록 하자. 내가 오미에게 다시 물었다.

  “인터뷰라고?”

  오미가 신이 나서 말했다.

  “네! 히키가야 씨는 입학식 날부터 자해 공갈 스캔들, 그 후로 미카도 히카루 고인 모독 스캔들, 그리고 오늘 일까지 해서 입학한 지 한 달 좀 넘어서 몇 건의 스캔들에 휘말린 사람이니까요! 이런 사람을 독점취재하면 특종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 만나 뵈러 온 거지요! 좀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나는 뉴스메이커였단 말인가. 내가 생각해도 내 학교생활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나는 또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러다 만성 두통이 될까 두렵다.

  잠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러주던 중, 머리를 스치는 의문이 있었다. 내가 오미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화제를 낳고 다녔는데 왜 이제야 나를 취재할 마음이 들었던 거냐?”

  “아, 그거요? 당연하죠. 원래 우리 신문부는 딱 들어도 근거 없는 헛소리인 소문이라든가 그런 것은 취재하지 않아요. 이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많이 돌거든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고 ‘특종이 될 만한’ ‘진실’만을 싣는다! 그것이 우리 부의 이념입니다. 그래서 히키가야 씨의 자해 공갈 스캔들은 다룰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죠. 왜냐 하면 그게 거짓이라는 기사를 실어도 특종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고인 모욕의 경우에는 미카도 히카루에 대한 남학생들의 태도를 보면 그리 특이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고요.”

  오미가 말했다. 호오, 그 말인즉슨 나에 대한 소문이 헛소문임을 알면서도 그냥 방치했다 이거냐. 원래 언론이란 헛소문 같은 것을 차단해야 되는 거 아니었어? 만약 오미가 여자애만 아니었으면 얼굴을 한 대 갈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툭 내뱉었다.

  “그래서 오늘은 나를 통해 특종이 될 만한 진실을 캐낼 수 있을까 싶어 온 거냐?”

  “네! 그런 셈이지요.”

  오미의 말은 왠지 모를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내가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 물음에 오미가 답했다.

  “사실 저는 오늘 일의 범인이 히키가야 씨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당신이 교감실에 끌려갔을 때, 그 근처에 숨어 잠입취재를 하고 있었어요.”

  야, 너도 학생이잖아. 신문부 활동 때문에 수업 시간을 빼먹은 거냐. 오미의 말이 이어졌다.

  “왠지 모르게 교감실 앞에 있던 학생회장까지 안에 들어가자 저는 문 앞에서 이야기를 훔쳐들었죠. 그러니 이게 웬걸? 히키가야 씨가 자신의 결백을 완벽하게 증명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들으니 여자의 직감이란 게 발동하더란 말이지요. 이 사람이 지금 사건의 진상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겁니다.”

  “잘됐다, 하치만! 저런 귀여운 아이의 관심을 얻었잖아!”

  미카도가 나를 보고 말했다. 입 닥쳐 좋기는 뭐가 좋냐. 딱 봐도 사람을 기삿거리로만 보고 있잖아. 내가 오미를 보고 말했다.

  “야, 너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네 인터뷰에 응할 거라고 생각한 거냐?”

  오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물론, 그냥 받아들이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학교 신문의 소식에 대해서는 상당한 신뢰를 보입니다. 만약 이 일의 진상을 제게 알려주신다면, 제가 그 동안의 헛소문을 일축하는 기사를 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히키가야 씨는 자해 공갈범도, 고인 모독범도 아니게 되는 거지요. 어때요?”

  ......좋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헛소문에 대한 부분이야 둘째 치더라도, 이 사건의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는 나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나는 옆의 미카도를 흘깃 쳐다보았다. 미카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입을 열었다.

  ​“​좋​.​.​.​.​.​.​.​”​

  내가 승낙하려는 그때, 누군가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히키가야!”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시키부다. 시키부는 멀리서부터 뛰어온 듯 숨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평소의 나를 모르는 척하던 태도를 버리고 이렇게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른 것을 봐서 무언가 급한 일이 있는 것이리라. 내가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를 보고 물었다.

  “시키부? 여긴 또 왜......?”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키부가 내 말을 끊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았어?! 큰일이야! 히카루노키미의 팬들이 아오이노우에를 끌고 갔어!”

  미카도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순간 오한을 느꼈다. 너무 빠르다. 정말이지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나는 시키부를 보고 물었다.

  “어디야?”

  시키부가 가쁜 숨을 참으며 더듬더듬 사오토메 선배가 끌려간 곳을 알려주었다. 그것을 들으며 나는 오미에게 말했다.

  “진상을 알려줄 테니 따라와! 잘 하면 네 생각보다 훨씬 특종이 될 수도 있으니까 놓치지 말라고!”

  그렇게 외치며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을까 걱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산책 따위를 하고 있었던 거라고! 제기랄! 어이, 정신 나간 여자들! 너네 말이야, 안 좋은 일 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 너희들의 피는 대체 무슨 색이냐? 빨간 색이냐? 빨개서 내 예상보다 세 배는 빠른 거냐?

  이렇게 빨리 달려보는 게 얼마 만일까.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 학교는 쓸데없이 부지가 넓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인적이 드문 장소 따위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 여자들은 사오토메 선배를 그런 곳으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간다 해도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경우 그 주변을 뒤지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금방 찾았다.

  “너 같은 건 부모가 정해준 약혼자일 뿐이잖아!”

  “히카루노키미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곳을 난도질하다니 너무하잖아!”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오토메 선배는 험악한 분위기의 여자애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 그 얼굴은 모든 감정이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 얼굴로 그녀는 자신을 매도하는 여자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아오이 누나!”

  미카도가 외친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결코 닿지 않는다. 만약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이의 목소리일 것이다.

  “이 멍청이들아! 그만 둬!”

  그래, 바로 내 목소리다.

  사오토메 선배를 둘러 싼 여자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이건 또 뭐야, 갑자기 왜 이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뭐야, 넌 또 왜 말리는 거야? 너도 히카루노키미를 싫어했다고, 저 여자를 감싸주는 거야?”

  여자 중 한 명이 나에게 이렇게 지껄여댄다. 다른 여자가 동조하며 말했다.

  “이 여자가 한 짓을 알면서도 그걸 변호하려는 거야?”

  여러 여자의 목소리가 겹쳤다.

  ​“​“​“​“​“​“​쓰​레​기​!​”​”​”​”​”​”​

  봤냐, 미카도? 이게 네 앞에서 내숭이나 떨던 여자들의 실체라고. 꽃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치명적이지 않아?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응수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이 쓰레기 같은 X들아!”

  말이 거칠게 나온다. 나도 많이 화가 난 모양이다. 이 여자들이 하는 짓은 정말 악질이다. 외톨이 생활 10년이 넘는 내가 봐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악질이다.

  오늘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와 미카도는 이 사건은 누군가가 사오토메 선배에게 누명을 씌울 목적으로 일으킨 것이라는 점을 눈치 챘다.

  사오토메 선배는 미카도 사후 미카도에 대해 안 좋은 말들을 계속 해댔다. 그리고 미술부에서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X자를 그리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에 찢어진 게시판을 보았을 때, 연상한 것은 사오토메 선배의 X자였다. 만약 사오토메 선배가 미술부에서 한 일이 이미 어느 정도 소문이 나 있다면, 사오토메 선배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술부에서 X자 그었다고 게시판을 X자로 찢은 범인이라니 택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대중은 종종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한 순간의 인상만으로 사람을 죄인으로 낙인찍는다. 일명 ‘유죄추정’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무죄인 사람이 자기가 무죄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그리고 증명해내지 못하면 범인이라고 확신해버린다.

  아마 사이가 선배는 사오토메 선배가 미술부에서 한 일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이 사건을 이용해 눈에 거슬리는 나를 혼내주려고 했겠지. 어떻게인지는 모르지만 손을 써서 내가 범인인 듯한 분위기로 몰아갔다. 내가 스스로의 무죄를 증명한 이후에도 그것을 알리지 않고 내 입장이 나빠진 상태로 있도록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오토메 선배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원래 범인이 뿌려놓은 소문에다 마치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듯한 괴로운 태도. 사람들은 금세 사오토메 선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나는 분노를 담아 여자들에게 말했다.

  “사오토메 선배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미카도가 내 말에 수긍했다.

  “맞아, 아오이 누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둘의 목소리가 겹치며,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범인은 네 ​녀​석​이​다​(​너​야​)​!​”​”​

  우리가 가리킨 방향에 있는 여자아이는 내가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지만 본 적은 있는 얼굴이었다. 내가 사오토메 선배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도, 사오토메 선배가 그림에 X자를 그을 때도, 미카도를 험담하다 물감을 뒤집어썼을 때도 그것을 목격한 사람, 미술부원이다.

  나는 그녀가 그 어떤 말을 내뱉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사오토메 선배가 의심받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미술부에서 그림에다 X자를 그어댄 것 때문이지. 하지만 종이가 찢어진 형태를 보면, 그걸 오른손잡이가 찢었는지 왼손잡이가 찢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어. 그리고 그 찢어진 형태는 왼손잡이가 찢은 형태였다.”

  만약 오른손잡이가 벽에 붙은 종이를 X자로 찢는다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먼저 그을 가능성이 크고, 왼손잡이가 한다면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종이가 찢어진 형태를 보면 어느 쪽이 먼저 그였는지는 알 수 있다.

  “그러니 아무래도 범인은 왼손잡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지. 사오토메 선배는 오른손잡이야. 그림을 그릴 때, 오른손으로 붓을 들고 있었지. 그렇다면 사오토메 선배는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누군가 사오토메 선배에게 누명을 씌우려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 있군. 그럴 경우 범인의 조건은 두 가지다. 왼손잡이에다 사오토메 선배가 미술부에서 한 일을 알고 있는 사람. 그건 바로 너다. 나는 네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분명 봤어!”

  사실을 말하겠다. 내가 무슨 코난이나 긴다이치 소년도 아니니, 내 추리에는 허점이 엄청 많다. 사실 내가 저 여자를 의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악의에 민감한 내가 사오토메 선배를 향한 저 여자의 악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즉, 심증을 중심으로 범인을 지정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되 결정적이지는 않은 근거만 당당하게 내뱉은 것이다. 그게 내 추리의 실체다.

  그러니만큼, 만약 여기서 저 여자가 아니라고 잡아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저 여자를 가리켰을 때부터 저 여자의 표정은 불안감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자신만만한 태도에 겁먹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 저 여자는 분명 부정하지 못한다.

  “용서할 수 없었어! 나는, 나는, 히카루노키미만 보면 가슴이 떨려서 가까이 다가가보지도 ​못​하​고​.​.​.​.​.​.​그​래​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는데! 저 사람이 그분을 한심하고, 꼴사납다고 하는 걸 보고 화가 나서......! 내가, 만약 그분의 정혼자였다면, 그분을 더 아껴줄 수 있었을 텐데!”

  범인인 여자가 지껄였다. 참나, 코난의 범인 같은 소릴 하는구만. 울먹울먹거리며 계속 이야기를 하지만 한 짓이 한 짓인 만큼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미술부원은 계획적으로 사오토메 선배에게 누명을 씌웠다.

  나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 중에서 시키부와 복도에서 부딪쳐 치한으로 오인 받은 것이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일단 복도에서 나를 목격한 사람들 중 시키부를 제외하고는 나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내 얼굴은 물감으로 엉망이었다.

  내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은 미술부원뿐이었다. 그녀들은 내가 치한이라는 소문도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 혼자만 이미지가 나빠지므로, 사오토메 선배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사건을 일으켜도 사람들이 내 짓이라고 여길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카도의 팬들에게 있어 내 이미지가 사오토메 선배보다 더 나빠질 만한 소문은 내지 않았다. 물론, 나도 미카도를 모욕했다는 소문으로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그건 미카도의 팬으로서 나에게 하는 최소한의 복수였다. 그래도, 그녀의 주된 목적은 오로지 사오토메 선배를 상처 입히는 데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따라온 오미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오미에게 말했다.

  “이게 사건의 진상이다. 범인은 저 여자지.”

  그리고 나는 다시 여자들을 보고 말했다.

  “그럼, 이제 저 여자들 중 그 사실을 알고 동조한 게 몇 명인지만 알아내면 되겠군.”

  그 말에 여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겁먹고 있지? 그 태도를 보니 너희가 모두 다 공범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녀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참고로, 너네가 그렇게도 못되게 대한 사오토메 선배 말인데, 아마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아무 상관없는 내가 누명을 쓰자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외친 거지. 아마 너희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겠지? 그래도, 사오토메 선배는 자신이 누명을 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희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그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몰라. 하지만 그런 사오토메 선배에 비하면 너희가 얼마나 쓰레기인지는 알 것 같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사오토메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만​.​.​.​.​.​.​두​세​요​.​”​

  나는 사오토메 선배를 바라보았다. 미카도가 사오토메 선배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했다.

  “아오이 누나는 참 올바르고 다정한 사람이야. 올바르기 때문에 하치만이 누명을 쓰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고, 다정하기 때문에 저 애가 범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어. 그리고 자기 혼자 꾹 참으며 입을 다물었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러워서 그 모습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게 내가 아는 아오이 누나를 사랑했던 이유 중 하나야.”

  사오토메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그걸 찢은 것은 내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나는 계속 그걸 찢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찢긴 것을 봤을 때 내가 찢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히카루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내게는 애정을 품지 않았어요.”

  그 말에 미카도의 표정에 괴로움이 깃든다. 사오토메 선배의 말이 이어졌다.

  “히카루가 죽은 뒤에도 히카루가 남긴 흔적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모두 다 지워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오토메 선배의 목소리가 젖어든다. 미카도가 괴로움이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결국 나는 아오이 누나한테도, 저 아이들한테도 상처만 주고 말았네.”

  사오토메 아오이는 미카도 히카루와 가장 가까운 여자였다. 그리고 미카도 히카루가 가장 마지막에 선택하려 했던 여자이기도 했다. 미카도 히카루는 너무 먼 길을 돌아갔고 결국 도달하지 못했다.

  저 여자들도 사오토메 선배만큼은 아니지만 미카도 히카루가 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미카도가 죽은 뒤 망가지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질​투​심​에​ 눈이 ​멀​었​어​요​.​.​.​.​.​.​.​”​

  오열하는 사오토메 선배를 보며 여자들이 하나둘씩 사과하기 시작한다. 점차 또 다른 울음소리가 더해져 간다. 사오토메 선배와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껴안으며 울었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그 광경은 극적인 화해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사오토메 선배와 저 여자들 사이의 감정의 골이 메워진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건 단지 순간의 분위기에 취한 것일 뿐이다. 방금 전까지 그녀들의 마음을 차지하던 미움이, 악의가 사오토메 선배의 눈물에 의해 잠시 흐려진 것일 뿐이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카도는 어떤 심정으로 저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미카도를 바라보았다. 미카도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분명 그 눈에는 슬픔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미카도가 말했다.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어. 내 삶은 결과적으로 남을 괴롭히기만 했던 걸까?”

  나는 미카도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을 뿐이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더라도 웬만하면 선택지는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기 저 꼴도 보기 싫은 광경을 부숴버리자고 생각하니 답이 보인다. 그럴 수 있는 선택지가 내 앞에 있다.

  미카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을 보여주마.

  나는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뭘 잘했다고 울고 있어? 정말 꼴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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