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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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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17)


<15장. 그런 식으로, 히키가야 하치만은 손을 내민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린다. 나는 계속 말했다.

  “한 짓거리들에 그 어떤 변명을 해봐도, 너희가 사오토메 선배에게 한 짓이 최악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아! 그러니 이제 와서 미카도를 좋아해서 그랬다느니 하는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내 말에 여자 중 한 사람이 대꾸한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정말 히카루노키미를 ​사​랑​해​서​.​.​.​.​.​.​.​”​

  “정말 그럴까? 내가 생각하기에, 너희가 정말 미카도를 사랑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처럼 게시판을 찢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거기에 적힌 메시지는 모두 미카도를 향한 메시지였으니까! 미카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었으니까! 차마 그러지 못했겠지. 그런데도 너희는 저질렀어! 그걸로 남을 상처 입히려 했어! 그런 주제에 사랑 따위를 방패로 삼아 자기 행동에 명분을 만들지 마! 그냥, 미카도를 사랑하는 척하는 너희에게 있어 사오토메 선배가 거슬렸던 거잖아. 미카도를 사랑하기에 화가 났던 게 아니야. 사오토메 선배가 싫기에 미카도를 끌어들인 거야. 그런 식으로 너희는 온갖 짓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용납했어! 결국 ​너​희​는​.​.​.​.​.​.​!​”​

  잠시 말을 멈춘다. 여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사오토메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마지막 문장을 내뱉었다.

  “너희는 그 녀석을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소녀로 꾸미고 싶었던 거겠지!”

  짝! 내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뺨에 서서히 통증이 올라온다. 사오토메 선배가 내 뺨을 힘껏 때린 것이다. 사오토메 선배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은, 대체 왜 그런! 그런 식으로만 말하는 거죠!?”

  미카도의 말대로였다. 정말이지 이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못된 짓을 한 그녀들조차도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어찌 보면 어리석을지도 모르며 위선자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때론 너무 눈부시다. 저기서 여자들도 사오토메 선배를 눈부신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저 여자들도 알았을 것이다, 절대 사오토메 선배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분위기에 취해 화해 분위기로 갔으나 이 사건의 근본에는 저 여자들의 사오토메 선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마음이 있다. 사오토메 선배는 미카도와 가장 가까이 있었으나, 저 여자들이 보기에는 그럴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이 이렇게까지 갔다. 하지만 사오토메 선배는 결국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자신을 상처 입힌 사람마저도 감싸준 것이다.

  사오토메 선배, 당신이 올곧은 사람이라 다행입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미카도를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여자들을 보고 느낀 것은 그녀들이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딘가 모자란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누구나 그렇다.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그 모자란 것에 의해 스스로가 붕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미카도는 그런 여자들의 결핍을 충족시키고 붕괴를 늦춰주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내 지나친 상상일까.

  하지만 미카도는 그 결핍을 임시방편으로 채워주었지만 낫게 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카도는 결핍을 해결하는 법 따위는 몰랐을 테니까, 자신 또한 스스로의 결핍을 채우려고 여자들에게 다가갔을 테니까,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결핍을 해결하는 방법 따위는 모른다. 애초에 그런 거 잘 아는 게 이상하지 않나?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안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공감할 수 없는 오그라드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저 여자들의 상태를 호전시킬 말은 이것밖에 생각이 안 난다.

  사오토메 선배가 활약은 내 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다. 나는 다시 여자들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카도는 이미 죽었어! 더는 어디에도 없어!”

  미카도가 죽기 전에는 미카도에 의해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지? 그럼 너네 마음속에 다시 미카도를 처넣어주마!

  “오직 너희가 기억하는 미카도의 그림자만이 너희의 가슴 속에 남아, 너희와 하나가 되어, 너희의 일부로서 살아가겠지. 그렇다면 너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 안의 미카도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 거냐고!”

  이제야 저 여자들의 얼굴이 봐줄 만한 모습이 되었다. 나는 다시 내 앞의 사오토메 선배를 마주보고 말했다.

  “그리고, 사오토메 선배는 어떻게 하실 거지요?”

  사오토메 선배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왜 계속 그러는 거죠? 히카루에 대해 묻고, 히카루를 험담하고! 왜 자꾸만 히카루가 떠오르게 하는 거예요!”

  “전해주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내 대답에 사오토메 선배가 말했다.

  “설령 정말로 히카루가 나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해도, 무슨 소용이죠? 끝까지 히카루는 나를 여자로 대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만약 선물이 있다 해도,”

  그녀의 얼굴에 비통함이 깃든다. 계속해서 외쳤다.

  “거기에는 히카루가 나에게 남긴 마음 따위 절대 없을 거예요! 하늘에서, 별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한 절대!”

  그렇게 말하며 사오토메 선배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안색이 좋지 않다. 사오토메 선배의 몸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이런, 위험해! 미카도의 외침이 들린다.

  “아오이 누나!”

  쓰러지는 사오토메 선배의 몸을 내가 다급히 부축했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빨리 양호실로 옮겨야 할 것이다. 나는 지켜보고 있던 여자들에게 말했다.

  “사오토메 선배를 양호실로 옮겨드려라. 너희가 괴롭혔음에도 너희를 위해 일어났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녀린 여자지. 미카도였다면 절대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다.”

  여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서 사오토메 선배를 넘겨받는다. 두세 사람이 사오토메 선배를 부축하며 그 주위를 다른 여자들이 감싸고 그렇게 내 앞에서 멀어져갔다.

  아까 나는 정말로 저 여자들을 상처 입힐 듯이 반 정도의 진심을 담아 막말을 내뱉었다. 그것을 사오토메 선배가 막았다. 그래서 저 여자들은 결정적으로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리고 결핍된 것은 억지로 채워 넣었다. 더 이상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고마워, 하치만.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된 것 같아.”

  미카도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아직 나는 아무도 상처 입지 않은 세계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상처 입은 채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때까지 말없이 있던 오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야~! 덕분에 참 재미있는 걸 봤네요! 감사해요!”

  내가 코웃음을 치는데도 오미가 계속 말했다.

  “이거 그대로 기사에 내도 되나요?”

  내가 대답했다.

  “일단 저 여자들 익명 보장하고, 내가 나선 부분을 적절히 편집해준다면.”

  “에이~. 그럼 ‘그대로’가 아니잖아요!”

  오미가 불평을 내뱉었다. 그러다 잠시 아무 말도 없던 오미가 나에게 말했다.

  “혹시 우리 신문부에 들어오실 생각은 없나요? 알고 보니 엄청난 인재이신 것 같은데요.”

  “거절한다. 동아리 활동 따위 절대 하고 싶지 않아.”

  “그럼 가끔 저를 도와주시는 걸로는 어때요? 보답은 할게요.”

  “됐다니까.”

  “쳇, 지금 아주 재미있는 소문이 돌아서 일손이 필요했는데, 아쉽게 됐네요.”

  “헛소문은 조사 안 한다며?”

  “딱 들어도 헛소문인 줄 알겠는 소문은 조사를 안 하죠.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만약 사실이면 엄청난 특종이고요.”

  그런 말을 들으니 어떤 소문인지 정도는 알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가 물었다.

  “대체 어떤 소문인데 그래?”

  “미카도 히카루의 죽음에 대한 진실! 미카도 히카루는 살해당했다는 소문이죠.”

  오미의 대답을 듣고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카도를 바라본다. 하지만 미카도는 태연한 안색으로 사오토메 선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카도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하지만 입가가 곡선을 그렸는데도 눈만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오미에게 말했다.

  “나는 이만 가보마.”

  그리고 오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나는 달렸다. 뒤에서 뭐라 외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장소까지 오고 나서야 나는 멈췄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카도에게 말했다.

  “사실이냐?”

  “뭐가 말이야?”

  미카도의 되물음에 열이 뻗치는 것을 느끼며 내가 말했다.

  “네가 살해당했다는 소문 말이야! 지금까지는 사고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굳이 묻지 않았어. 죽은 사람에게 그걸 물어보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했고 말이지. 하지만 만약 네가 살해당했다면, 널 죽인 사람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어디엔가 숨어있다는 말이잖아! 그런 애기를 듣고 안 물어볼 수가 있겠냐고!”

  만약 미카도가 살해당한 거라면, 나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에 얽힌 것일지도 모른다. 미카도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고 나에게 말했다.

  “죽을 때 주변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만약 기억이 뚜렷하다고 해도, 하치만, 그건 내 ‘비밀’ 중 하나야. 아직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어. 부탁이야. 지금은, 적어도 지금만큼은 내 죽음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묻지 말아줘.”

  그 말에 나는 미카도를 더 이상 추궁할 수가 없었다. 머리는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에서 나를 제지하는 것이다. 이번에 나는 마음의 목소리를 따르기로 하였다. 아니 내가 그렇게 하였다기보다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알기 쉬우리라.

  나는 화제를 돌려 사오토메 선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사오토메 선배에게 선물을 주는 것 ​말​인​데​.​.​.​.​.​.​.​”​

  “이제, 됐어.”

  “뭐?”

  미카도는 체념한 듯한 말에 내가 되물었다. 미카도가 말했다.

  “처음에 하치만이 희망이 있다고 했을 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 보니까, 내가 있어서 아오이 누나에게 폐를 끼쳤을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아오이 누나를 사랑했어. 하지만 아오이 누나는 내가 아오이 누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울었어. 그러니까 이제 됐어. 내 마음 따윈 전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내뱉었다.

  “모든 꽃을 사랑한다고? 말은 좋지. 하지만 그 때문에 분명 상처 입었던 사람이 있을 거야. 봐, 저기 저 사람만 해도 지금 울고 있잖아. 그건 네가 주었다는 ‘사랑’이 그녀에게는 거짓으로 보였다는 소리라고.”

  미카도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했다.

  “아까 나는 너한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왜인지 아냐? 그건 네가 사오토메 선배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로 보여서였다. 네가 자신의 ‘사랑’에 대해 무책임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포기하겠다고?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은 줄 아냐? 그런데 제멋대로 포기하겠다는 거냐고! 그래, 차라리 네가 정말 포기한 걸로 보이면 너에게만 화가 나고 끝이겠지. 그런데 그런 표정으로 정말 포기하고 싶기는 한 거냐?!”

  미카도, 포기한다고 말할 때의 네 표정은 고통이 가득했다고.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냐? 내 말이 이어졌다.

  “말해! 진짜 바라는 게 뭔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네 투정 따위 얼마든지 들어 주지! 그리고 내 내킬 대로 해주겠어!”

  미카도가 입술을 깨물었다. 몇 번이고 입을 열려다 말고 열려다 만다. 그러다 마침내 말했다.

  “아오이 누나한테 전하고 싶어!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내가 아오이 누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

  이제야 제대로 말하는군. 내가 대꾸했다.

  “마음 따위 어떻게 전하는지 몰라. 하지만, 네 선물은 전해주지. 그걸로 네 마음이란 게 전달될지는 나도 몰라. 알겠지?”

  “응!”

  미카도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나는 미카도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왔다고 생각했다.”

  미카도가 말했다.

  “응. 정말 그럴지도 몰라.”

  미카도가 동의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읽은 적 있지.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라고 하더군. 어쩌면 네 길도 알고 보면 가장 곧은 길이었을지도 모르지. 물론 이제 와서 알 수는 없어. 하지만 만약 이번에 네 마음이 전해진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 길은 생각보다는 덜 굽은 길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

**

  우리는 양호실 앞에 서있었다. 방과 후지만 동아리 활동 도중 다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양호실은 교문 폐쇄 시간까지는 열려 있다. 사오토메 선배는 여기에서 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쉼 호흡을 하고 그 문을 열었다. 커튼이 걷혀진 양호실 침대 위에 사오토메 선배가 누워 있었다. 의식은 돌아온 모양이군. 그녀의 옆에는 사이가 선배가 지키듯이 앉아 있었다. 아까는 대체 뭐하고 있었던 겁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야유를 보냈다. 아까 그 여자들은 한 명도 안 보이는군. 아마도 사이가 선배에 의해 쫓겨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 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지?”

  사이가 선배가 나를 경계하며 물어왔다. 내가 대답했다.

  “사오토메 선배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아오이는 너 따위와는 할 말 없어.”

  “그건 사오토메 선배가 정할 일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사오토메 선배를 쳐다봤다. 사오토메 선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사이가 선배에게 말했다.

  “아사, 잠시만 이야기를 들어볼게. 일단 아까 도와줬으니까.”

  ​“​하​지​만​.​.​.​.​.​.​.​”​

  사이가 선배는 역시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녀는 사오토메 선배한테서 눈을 돌려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오이한테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어.”

  거참 무섭구만. 나는 사오토메 선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캔 음료수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내가 말했다.

  “문병 선물입니다.”

  미카도가 여자를 문병 가는데 선물 정도는 꼭 챙겨야 한다고 말해서 말이지. 꼭 허니 밀크를 가져가야 한다나 뭐래나. 그래서 굳이 자판기에서 뽑아가지고 왔다.

  “아, ​이​건​.​.​.​.​.​.​.​”​

  사오토메 선배의 반응이 뭔가 미묘하다. 혹시 미카도가 지뢰를 밟도록 유도한 건가? 내가 물었다.

  “혹시 허니 밀크 싫어하세요?”

  “아, 아뇨. 싫지는, 않아요.”

  사오토메 선배의 대답에 미카도가 해설한다.

  “저렇게 살짝 볼을 붉히고 눈을 피하면서 그 대답! 엄청 좋아한다는 뜻이야.”

  그러냐. 통역해줘서 고맙다, 미카도.

  옆에서는 사이가 선배가 계속 노려보고 있다. 빨리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군. 내가 말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내 물음에 사오토메 선배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계속 말했다.

  “산 사람의 마음도 알기 어렵지만 죽은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아는 것은 더 어렵겠죠.”

  사오토메 선배는 내 이야기를 종잡을 수 없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내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저는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더럽게 어렵다고 생각되어서 도전하지 않을 뿐이다. 정말이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지요?”

  사오토메 선배가 물어왔다. 나는 본론을 꺼냈다.

  “사오토메 선배는 분명, 미카도가 사오토메 선배에게 애정을 품지 않았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듯이 사람의 마음은 알기 어렵습니다. 사오토메 선배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히카루는 많은 여자들과 놀아났어. 그것 때문에 아오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몰라. 그런데도 아오이 앞에서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옆에서 사이가 선배가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사오토메 선배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두 번째’ 선물입니다. 이제 다섯 가지 남았네요.”

  그것은 디스티니 랜드 패스포트다. 저걸 뽑으려고 내 돈이 얼마나 깨졌는지 모른다. 사오토메 선배가 패스포트를 응시하는 것을 보며 나는 계속 말했다.

  “죽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남긴 다양한 것들을 봐야 알 수 있겠지요. 그것은 미카도가 남긴 다양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 다섯도 마찬가지죠. 미카도가 사오토메 선배를 사랑했는지 사랑하지 않았는지 그런 것은 제가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미카도가 준비했던 선물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요. 보고, 스스로 느끼고, 그 다음에 결론을 내리세요! 사오토메 선배는 아직 결론을 내릴 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사오토메 선배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만약, 그랬는데, ​아​무​것​도​.​.​.​.​.​.​바​뀌​지​ 않으면요? 히카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라면요?”

  “그렇다면, 사오토메 선배도 이제 어중간한 상태를 벗어나 진실로 미카도를 미워할 수 있겠지요. 그때는 제가 미카도를 같이 욕해드리겠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어느 정도 화풀이도 받아드리죠.”

  내가 대답했다. 사오토메 선배의 눈을 마주보며 나는 도발했다.

  “물론 사오토메 선배에게 그것을 확인할 용기가 있다면 말이지만요.”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이가 선배가 쏘아보는 가운데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토요일 오후 1시 디스티니 랜드 정문 앞입니다.”

  나는 그런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전해야 할 것은 다섯 가지 남았다.

  나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을 보여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직 상처 입은 채로 남은 여자가 한 명 있다. 그녀를 도울 가능성이 있는 것은 미카도가 남긴 선물뿐이다. 그 선물이 그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른다. 그건 그녀와 그녀를 알고 그 선물을 준비한 미카도에게 달려 있다. 알겠어, 미카도? 너와 사오토메 선배가 아무도 상처 입지 않은 세계를 완성시키는 거다. 설령 상처 입었다 하더라도 다시 나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만들어내는 거야. 이제 나는 믿고 같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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