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쐐기풀 장신구 - (3)
미네트는 지루하게 결혼식을 지켜보다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뒤의 쪽문이 열렸고,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이 살금살금 기어들어와 옆에 앉았다. 기분 나쁘지 않은 땀냄새가 풍겼다.
"늦었구나."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가대의 목소리에 묻혔다. 리젤로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리젤로트도 속삭였다.
"지금 어디야?"
"방금 봉헌 묵상이 끝났어. 화답의 노래야."
"아직 서약은 시작 안 했어?"
"네게는 다행히도."
리젤로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듯했으나, 미네트는 신경쓰지 않고 단상을 내려다보았다. 신랑과 신부는 그림처럼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러면 다리가 저릴 텐데.
성가대의 노래는 짧았다. 여운이 성당 내에 흩어지기도 전에, 오랑 추기경이 말했다.
"신성한 주님의 가호 아래, 남쪽과 북쪽의 고귀한 두 분이 결혼 성사를 통해서 한 몸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두 분은 주님의 거룩한 손길 아래 엄숙한 혼인의 매듭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카스티야의 카타리나가 남긴 전례 때문에, 이번 혼사는 강박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신부가 대리 결혼을 이미 치렀기 때문에 추기경의 기도문은 카타리나나 루이즈 마리 때와는 다소 달랐다.
"두 분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오롯한 자유의사에 따라 결혼을 결정하였습니까?"
한 편의 희극이었다. 모두가 정황을 알고 있건만. 신랑과 신부는 조용히 대답했다.
"예."
"두 분은 주님께서 은총으로 맡기실 자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교회의 법과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겠습니까?"
이 또한 우스웠다. 신부가 세례를 받은 것은 고작 삼 일 전의 일로, 그 전까지 그녀는 교황이 그야말로 잡아먹으려 드는 코시카 정교회 신자였다. 역시 신랑과 신부는 대답했다. 미네트는 속으로 속삭였다. 재미 없어.
"두 분은 거룩하신 결혼의 계약을 맺으셨고, 주님 앞에서 확인하려 하시니, 서로 오른손을 잡고 주님의 어전과 교회의 앞에서 두 분의 합의를 고백하십시오.
로렌의 루이 세바스티앙 조제프 자비에. 주님의 눈 앞에서 맹세하십시오. 신랑은 코시카의 엘리엔 필리피느 소피 아델라이드를 신부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겠습니까?"
"맹세합니다.
"코시카의 엘리엔 필리피느 소피 아델라이드. 주님의 눈 앞에서 다시금 맹세하십시오. 신부는 로렌의 루이 세바스티앙 조제프 자비에를 신랑으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겠습니까?"
"예."
신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무난한 대답이었다. 미네트는 점점 더 지루해졌다. 그러나 친애하는 쌍둥이 동생은 눈물이라도 흘릴 듯했다. 미네트는 핀잔을 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성당 안은 정말로 조용했고 그녀의 바로 앞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미네트는 아침에 어머니를 이 성당으로 끌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해내고 꾹 참았다.
"두 분의 고백을 친히 주님께서 들으시고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주고 받을 이 표식에, 주님께서 친히 축복하소서."
로렌의 신부는 이 절차를 위해 식장에 들어설 때 아무 장신구도 할 수 없었다. 신랑이 받는 것은 약혼반지와 결혼반지 뿐이었지만 신부는 관, 귀걸이, 목걸이, 팔찌, 약혼반지, 결혼반지를 받았다. 이 일곱 개의 보석은 로렌에서 당연하게 주고받는 예물로,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나무로 깎은 일곱 조각의 장신구는 빠트리지 않았다.
오늘 준비된 예물들은 대부분 성도에 보내 교황에게 직접 축성받아온 성물들이었다.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의 신의를 고백하십시오."
세시안은 들러리가 가져온 관을 신부의 머리 위에 씌웠다.
"나 루이 세바스티앙 조제프 자비에는 명예로서 약속합니다."
귀걸이를 양 귀에 걸었다.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여."
목걸이를 채우는 데도 능숙했다. 하긴, 한두 번 해보셨어야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오른손에 팔찌를 채우는 건 금방이었다.
"성하거나 병들거나."
왼손 넷째 손가락에 약혼반지가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킬 것입니다."
약혼반지 위로 결혼반지가 올라앉았다. 이는 약혼 기간이 깨지지 않도록 보였던 성의를 결혼기간 내내 이어나갈 것임을 나타내는 맹세였다. 로렌에서 여자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두 겹으로 끼고 있는 건 그 여자의 남편이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세시안의 목소리가 낮고 명확하게 들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리는 이 반지를 나의 약속의 표지로서 받아주십시오."
어머니가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떠는 게 뒤에서도 다 보였다. 황제가 그 주먹 위에 손을 얹어 감쌌다. 리젤로트의 뺨에선 기어코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미네트는 신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신부는 천천히 옆에서 보르디의 소피가 내민 상자에서 반지를 집어들었다. 헛손질 한 번 하지 않았다.
"나 옐레나 파블로브나는."
세시안의 얼굴이 난감하게 굳었다. 리젤로트가 헉, 숨을 들이켰다. 미네트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옐레나 파블로브나는 정교회식 이름이었으므로, 생 아델라 성당에서 꺼낼 만한 이름은 아니었다. 신부는 천천히 셋을 셀 시간이 흐른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이었다.
"엘리엔 필리피느 소피 아델라이드라는 세례명을 받아 교회에 귀의하여, 주님의 이름 아래 명예로서 약속합니다. 당신을 신랑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킬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리는 이 반지를 나의 약속의 표지로서 받아주십시오."
반지 두 개가 무사히 손가락으로 굴러들어갔다. 억양이 조금 어눌했고, 발음이 약간 뭉개졌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단어가 몇 개 바뀌긴 했지만 뜻은 그런대로 통했다. 추기경이 손을 들어올려 선언했다.
"이로써 두 분의 결혼이 주님의 어전에서 맺어졌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뒤로 쭉 이어진 결혼 서약서 서명의 재확인과, 기도, 성체 조배 등의 행사에서는 미네트의 흥미를 끌 만큼 재미있는 일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랑은 말끔하고 신부는 예뻤다. 다만 그 뿐이었으므로, 마담 미네트는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황후를 부축해 자비관으로 돌아갔다.
이른 저녁 만찬은 초여름의 정원에서 벌어졌다. 이 만찬을 위해 후원의 풀을 뽑고 판판한 반석을 까는 거대한 공사를 치렀다. 커다란 원탁이 몇 개나 놓였다. 탁자에 깔린 식탁보는 가는 실로 손뜨개를 한 것이었다. 가운데에는 흰 실로 황실 문장을 짜넣었고, 가장자리에는 파란 실로 발루아의 푸른 장미 도안을 넣었다. 탁자 한가운데에 꽂힌 꽃은 연분홍의 작약이었다. 한 사람 당 열 개도 넘게 배정된 식기는 당연히도 은이었다. 가장 말석의 귀족에게까지 주석잔이 아닌 유리잔을 돌렸다는 것만 봐도 이 결혼식에 황실이 얼마나 굉장한 액수를 지불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황후와 마담 미네트가 건강을 핑계로 자리를 비웠으므로, 크리스틴의 양 옆은 텅텅 비어있었다. 건너편에는 세르와 마담-라-세르가, 한 자리 건넌 옆 자리에는 리젤로트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요히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참석하는 자리에서는 황제가 입을 열기 전에 아무도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이블린의 불문율이었다. 황제가 마지막으로 자리에 착석하자, 모두들 일어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외국의 사신들을 제외한 로렌의 모든 귀족이 충성의 표시로 무릎을 꿇었다. 크리스틴도 마찬가지였다.
"자, 자. 모두 앉으시오."
작은 소란이 일었다.
"내 아들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먼길을 와 이 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로렌의 이름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요."
황제의 목소리는 묵직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부디 오늘 밤은 이 이블린을 들어먹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즐기시오."
크리스틴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가장 신실하신 폐하, 경애하는 아버지. 부디 제게 미숙하게나마 오라버니와 새 올케언니를 위해 건배를 외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어요?"
"물론이다."
크리스틴은 마담-라-세르, 아롈과 눈이 마주쳤다. 아롈은 흰 옷 위로 붉은 어깨띠를 두르고 가슴에 훈장을 단 것만 빼면 성당에서 걸어나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아롈은 그녀가 정면으로 쳐다보는데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항상 사람을 깔보는 듯한 저 눈빛은, 크리스틴의 눈높이가 더 높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가장 신실하신 황후 폐하를 대신하여 제가 잔을 들 수 있다는 사실이 황송해서 견딜 수가 없네요"
죽 정원을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부르고뉴 대공의 옆에 앉아 있는 여동생이라든가, 대공가의 일원들은 대부분 크리스틴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얼굴은 낯설지만 누구인지 짐작이 가는 사람도 꽤 많았다. 그녀는 한 눈에 찾는 사람을 확인했다. 그녀는 마치 하녀인 것처럼 자연스레 정원에 섞여들어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올케 언니께서 이블린에 오신 것이 진심으로 기뻐요. 귀한 따님의 출가를 허락해주신 코시카의 옐레나 여제 폐하께도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어라? 분명히 도끼눈을 뜨고 달려들리라고 했는데. 아롈은 표정 한 번 흔들리지 않고 그림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크리스틴은 당황스레 호박색 눈의 여자를 찾았다.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야가 흔들렸다. 크리스틴은 굴러떨어질 것처럼 준비해놓은 나머지 말들을 읊었다.
"부디 남쪽과 북쪽의 결합이 영원하기를. 주님 앞에서 맺은 약속이 빛바래는 일 없기를. 자, 모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알자스 공작을 위해서 건배할까요? 알자스 공작(로렌의 제 2 왕위계승권자. 흔히 세르의 장자에게 주어지는 작위)의 탄생을 위하여!"
"알자스 공작의 탄생을 위하여!"
크리스틴은 잔을 완전히 비우고 앉았다. 건배사를 시작으로 악사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본궁에서부터 수백접시의 음식을 날라야 하는 시종들은 그야말로 다리가 부서질 듯 달려왔다. 그래도 상석부터 음식이 서빙되기 때문에, 말석의 귀족들은 차게 식은 음식을 먹는 걸 피할 수 없었다. 물론 크리스틴의 앞에 놓인 해산물 수프는 얕은 김이 올라올 정도로 따스했다.
이블린은 내륙에 있기 때문에 해산물은 비싼 음식이었다. 깊은 감칠맛이 입 안을 채웠다. 크리스틴은 만족해서 스푼을 내려놓았다. 금욕 수도원에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어머나, 새언니. 포도주가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아롈의 술은 입술만 적시고 내려놓은 모양새로 조금도 줄지 않았다.
"나바르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술을 즐기지 않습니다. 마담 르와이얄."
"모처럼 좋은 술인데 취향에 맞지 않는다 하시니 아쉽네요. 오라버니께서는 마음에 드시나요?"
세시안은 스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그래. 미묘한 단맛이 좋구나. 크리스."
"오라버니께서 분명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오라버니는 원래 술을 즐기시잖아요. 물론 방종하지 않은 선에서요."
리젤로트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어머나, 큰언니도 오라버니도 이 술이 마음에 드신다니 기뻐요. 제가 이 술을 얻어내기 위해 보르디 대공비에게 몇 통의 편지를 써야 했는지 상상도 못 하실 걸요."
크리스틴은 눈을 흘겼다. 황제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조금 흔들었다. 공기방울이 보글보글 솟아올랐다.
"이번에 리젤로트가 공을 많이 들였지."
"미네트와 어마마마, 이모님께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걸요. 저 혼자 한 일이라고 치하하시면 민망해요. 다만 가장 고생하신 어마마마께서 건강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 하신 게 아쉽지요. 새언니가 너무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어마마마께서는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셔서요."
"물론입니다. 마담 리젤로트."
"그나저나 얼굴이 많이 좋아졌구나, 크리스틴."
"예, 아바마마. 포의 아가씨가 추천해준 의사의 솜씨가 실로 놀라웠답니다."
"여인이란 모름지기 아름다움을 갈고 닦아야 하는 법이다. 이리 다 컸으니 급히 네 혼처를 찾아봐야겠구나. 네 동생도 이미 결혼한 마당이니. 내 그간 수도원에 있는 네 소식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바마마께 심려를 끼쳐 송구할 따름이에요. 어찌 순명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크리스틴은 속으로 웃었다. 크리스틴의 혼사가 치러진다면 리젤로트의 혼사는 자연히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 세르의 혼사가 있었으니 다음 결혼식은 아무리 빨라도 내년, 그 다음은 내후년이었다. 대가문에서는 일 년에 두 번의 혼사를 치르는 것을 엄격하게 지양하고 있었다. 리젤로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마담 르와이얄은 저와 같이 이블린의 땅을 밟았습니다. 신앙에 기대어 청빈한 삶을 살다가 세속에 나오니 이 모든 것이 낯설 터인데 너무 이른 결정이 아닐는지요."
억양도 다 틀린 말로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아롈은 말을 할 때 가끔 머뭇거렸고, 억양도 지나치게 딱딱했다.
"아바마마. 친애하는 올케가 보기에는 제 자질이 부족한가봐요."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셨다면 유감입니다만, 다만 걱정될 뿐입니다."
"크리스틴. 나도 오랜만에 본 네가 더 이블린에 있는 게 좋구나."
"비둘기 껍질이 바삭하게 잘 구워졌어. 요리사를 치하해야겠다."
황제는 입맛을 다셨다.
"식기 전에 어서 들거라. 주님께서 주신 신체가 강건해야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법이다.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크리스틴도 그렇고, 새아가는 그리 가냘파서야 어디 춤이라도 한 곡 출 수 있겠느냐. 크리스틴의 혼사는 황후와 이야기해보고 결정하도록 하겠다."
"예, 폐하."
크리스틴이 보기에 아롈은 가냘프기는 커녕 키만 멀대같이 큰 데다 어깨가 무슨 들판처럼 드넓어서 거의 거인처럼 보였다. 아롈이 급한 대로 입으라고 빌려줬던 옷은 어깨며 치맛단이 한참 남아돌아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금 입고 있는 저 옷도 내 옷에 든 옷감의 두 배는 썼을 텐데.
"예. 아바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