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꽃무더기와 수수께끼 (가제) (6)
루이즈 안은 다시 한 번 미셸의 뺨을 갈겼다. 이번에는 정말로 아팠다.
"안타깝게도."
짝!
"폐하께서 약혼을 깨고 결혼하신 상대는."
짝!
입술이 완전히 터져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미셸은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니었지만요."
루이즈 안은 미셸의 스카프를 잡아 당겼다. 그녀의 눈이 이글거렸다.
"닥치지 못해?"
"어머니께서 지금의 제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와 결혼을 하지 않고 기다리신 이유가 그것 아닙니까?"
"너는 후계자야."
"어머니께서는 상속녀셨죠."
"내게는 여형제가 있었어."
"시골에 숨겨놓아 없는 거나 다름없었던 여형제 말이죠."
루이즈 안은 스카프를 콱 당겼다. 얇은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미셸의 허리를 거의 꺾다시피 해 그의 얼굴을 바로 코앞에 갖다 두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말렴. 내가 널 파혼시키기 위해서 마르그리트 따위에게 얼마나 알랑거렸는지, 그게 얼마나 굴욕적이었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니?"
"저는 분명히 싫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전 오를레앙 대공이자 미셸의 외조부인 프랑수아는 딸만 둘을 낳았다. 프랑수아의 남동생의 아들이 바로 미셸의 아버지인 쟝이었다. 전 오를레앙 대공작은 딸 루이즈 안을 쟝과 결혼시키고 오를레앙을 물려주었다.
그 일을, 이모인 마르그리트 안은 두고두고 분해 했다. 그녀가 세르와 결혼하여 마담 라 세르가 되었다고 해도, 로렌에서는 황족인 남성이 대공가를 승계할 수 없다고 해도 그녀는 엄연히 장녀였다. 그래서 잡음을 없애기 위해 미셸과 리젤로트와의 약혼이 성사되었다.
"그럼, 오를레앙의 대를 끊어놓을 거니?"
하지만 그 많은 마담 중 하필 리젤로트를 고른 건 미셸이었다. 미셸은 사실 장녀인 크리스틴과 결혼해야 마땅했다.
"어머니, 폭언을 한 건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저는 리젤로트를 사랑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뺨이 조금씩 부어올랐다. 이제는 말을 할 때마다 뺨 안쪽의 점막이 치아와 부딪쳐 아팠다.
"네 아버지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두고 보자꾸나. 뭐? 사랑? 하!"
오를레앙 대공비는 미셸의 면전에서 문을 부서져라 닫았다. 미셸은 그 문에 이마를 기댔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아롈은 꽃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그래, 알았네."
하지만 벨망 경이 나가자마자 그 웃음은 단숨에 시들어버렸다. 앤은 놓던 수틀을 내려놓고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몇 달 동안 아롈을 모시면서, 앤은 아롈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서 꼭 기분이 언짢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녀는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에도 지극히 오만하고 무뚝뚝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뜯어봐도 기분이 나빠 보였다.
몇 번 미간을 문지른 아롈은 수틀을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훌륭하다고는 못 해도 나쁘지 않은 솜씨로 독수리의 머리와 발이 수놓아져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은 왕홀을 움켜잡고 있었다.
앤은 재빨리 따뜻한 차에 과일잼을 풀어 내놓았다. 하지만 아롈은 손끝으로 찻잔을 밀어버렸다.
"전하, 무언가 언짢으시옵니까?"
"아니다. 옷이나 갈아입겠다. 저녁은 거르련다."
아롈은 몸을 일으켰다. 다른 시녀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앤에게 모든 시중을 다 들라는 뜻이었다. 앤으로서도 그 편이 마음 편했다. 앤 다음의 지위를 가진 시녀는 다름 아닌 노아이유 부인이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앤을 보면 잡아먹으려 들었다. 아롈이 고집을 부려 앤에게 수석시녀 지위를 내려준 탓이었다.
앤은 홀로 파닥파닥 뛰어다니며 겹겹이 쌓여있는 옷과 속옷과 파니에를 다 벗겼다. 가벼운 침의를 걸친 아롈은 머리를 풀어 내리고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그녀는 발이 시리다며 이 더운 남쪽에서도 잘 때에는 항상 모피로 안을 덧댄 신발을 신었다.
옷을 치우고 곁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오자 아롈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었다. 앤은 옷자락이 바스락거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스레 옆자리에 앉았다. 생각을 할 때 말을 걸면 아롈은 듣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래서 앤은 얌전히 자기 생각을 하며 명령을 기다리는 데에 점점 익숙해졌다.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전혀 떫거나 쓰지 않았다. 은은한 단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코끝에서 희한한 향이 올라왔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도 마셔본 적 없는 차였다.
녹봉을 받아 생활하는 귀족의 삶이란 다 고만고만한 법이었다. 부모님은 가끔 싸웠고, 거의 항상 웃었고, 종종 앤을 혼내기도 했다. 그림으로 그려 액자에 끼워놓은 듯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런 부모님이 생전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가셨을 때, 앤은 시름시름 앓아누워 굶어죽기만을 기다렸다. 앤은 영지도, 작위도, 재산도, 약혼자도 없는 그냥 끈 떨어진 두레박에 불과했다.
할머니가 앤을 데려간 다음에도 이런 차를 마음껏 먹을 만한 형편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불평을 했다. 연금이 모자라면 먼저 빚을 내고 연금을 타면 갚았다. 전당포에 보석을 맡겼다가 찾아오기도 했다.
앤이 배가 고프다고 할머니를 조르면 그녀는 턱을 치켜 올리고 앤을 훈계했다.
-앤 마리아 폰 레르헨펠트. 배가 고프다고 해서 그걸 티내는 건 고상하지 않다고 항상 말하지 않았니?
덕분에 앤은 교육을 잘 받은 처녀로 자랐다. 아말리에 왕비가 간혹 앤을 불러들일 때마다 그녀는 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열일곱 살이 되면 앤을 시녀로 들여서 좋은 곳에 시집보내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자랑했더니, 할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앤."
-잘 들어라. 사람의 행복은 돈이나 지위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란다.
-하지만 배가 고픈 걸요, 할머니.
앤은 미소를 머금었다.
"예, 전하."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