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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눈송이


2. 바다의 용과 여해적과 마법사 (2)


 쾅, 쾅, 쾅.

"오라버니!"

노크와 함께 들리는 경쾌한 목소리의 이면에는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삐치겠다는 협박이 숨어있었다. 세시안은 읽고 있던 서류를 서류철에 끼워 구석으로 치웠다.

"들어오려무나."

이내 문이 열리고 곱슬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소녀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귀한 신분답게 뽀얀 피부에는 홍조가 가득 어려 있었다. 가벼운 실내용 옷을 걸친 그녀의 팔에는 장미가 한 아름 안겨있었다.

"복도에서 경망스레 뛰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니, 리즈."

"어머나, 저는 뛰지 않았어요!"

"그럼 네 이마에 맺혀 있는 땀방울은 뭐지?"

"오라버니께서는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세요? 너무하세요! 리젤로트는 정말로 우아하고 숙녀답게 걸었는걸요. 신께 맹세할 수도 있어요. 다만 오늘 날이 너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다가 제가 오라버니를 빨리 뵙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빨라져서 그랬나 봐요. 굳이 꾸중하고 싶다면 오라버니에 대한 제 마음을 탓해주세요."

세시안은 훤히 보이는 거짓말을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젤로트가 안고 있는 장미를 받아들었다.

"정원에서 가져왔니?"

"네, 예쁘지요? 벌써 장미가 피어서 오라버니도 가져다 드리려고 왔어요. 집무실에 꽂아두시면 한결 분위기가 화사해질 거예요."

"신경 써 주어 고맙구나. 잠시 앉았다 가려무나."

"좋지요, 그러려고 왔는걸요. 베티! 가서 차 가져와!"

리젤로트를 따라온 시녀가 허리를 숙이더니 총총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세시안은 부러 목소리를 엄하게 해서 꾸중했다.

"리즈. 내가 시녀들을 그렇게 다루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뭐 어때서요? 저는 '마담'인 걸요. 베티는 겨우 백작의 딸에 불과하고요."

"황제의 딸이라면 그에 맞는 품위를 보여야지. 이제 네 새언니도 들어올 텐데 그 앞에서 두 분 폐하의 욕을 먹이면 좋겠니?"

세시안은 꽃을 대충 빈 꽃병에 꽂고 리젤로트가 앉을 의자를 빼주었다. 떡갈나무 머리칼의 소녀는 새침 떨며 자리에 앉아선 고개를 뒤로 젖혀 오라비를 쳐다보았다.

"벌써 이번이 여섯 번째인걸요. 일곱 번째, 여덟 번째는 없으리라 누가 장담하겠어요?"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맹세코 저도 처음에는 잘 하려고 했어요. 마리안느 때에는 제가 너무 어렸지만요, 마리 제피린느 때에는 정말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고요."

세시안은 자리에 앉으며 누이동생의 재잘거림을 한 귀로 흘렸다. 이 누이는 황제의 딸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사교계에서 대단한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딸이라면 끔뻑 죽을 듯이 구는 어머니와 딸자식에게는 관대한 아버지, 그리고 철철이 선물을 보내주는 시집간 언니까지 다들 아끼고 사랑해주니 그런 것이다. 아무리 어리다 핑계를 대보려 해도 벌써 스물한 살이었다. 약혼까지 한 여자가 이래서야.

"어머, 그러고 보니 수녀원에 들어간다고 파혼한 여자가 먼저였나요, 그 씹어 먹을 년이 먼저였나요?"

"리즈, 험한 말 쓰지 말거라. 아스투리아스 여공이라고 칭호를 제대로 붙여. 그녀는 이제 한 나라의 왕위 계승자다. 그리고 프랑수아즈 다음이 카타리나다."

"아, 그랬었죠. 마리안느 빅투아르, 마리 제피린느, 프랑수아즈 아테나이스, 카타리나, 루이즈 마리 순이었나요? 불쌍하신 오라버니. 처복도 없으시지."

베아트리스가 차를 가져오자 둘의 대화가 끊겼다. 세시안은 시녀에게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고맙구나. 이만 물러가 있어라."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쟁반을 끌어안고 문을 나갔다. 리젤로트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그를 흘겨보았다.

"제 시녀가 마음에 드시나요?"

"무슨 소리니. 그럼 굳이 저 아이에게만 쌀쌀맞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니?"

"상냥하신 것도 정도가 있지요. 정말이지, 정부라도 좋다는 계집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여지를 흘리고 다니세요? 제 시녀들이 입만 열면 오라버니 칭찬에 침이 마를 지경이랍니다."

"적의 가득해서 내게 해코지를 하는 것보다는 낫지 그러니."

"하긴, 하나 뿐인 세르의 잔에 독이라도 들어있으면 큰일 나겠네요."

세시안은 황후가 낳은 수많은 아이들 중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금방 약혼해야 했다. 문제라면 여동생이 말한 대로 그가 처복이 지독히도 없다는 데에 있었다.

세시안 바로 위의 형이자 장자였던 루이 페르디낭이 성홍열로 죽은 다음 그의 약혼녀였던 칼레의 마리안느 빅투아르와 약혼한 것이 그가 네 살 때였던가.

그보다 세 살 많았던 마리안느가 말을 타다가 낙마해서 목이 부러지자 세시안은 오베르뉴 대공가의 마리 제피린느와 열네 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황제는 빨리 손자를 봐야겠다며 어린 세시안에게 다섯 살이나 나이 많은 여자를 갖다 붙였다. 어찌어찌 입회인을 두고 첫날밤을 치렀고 마리 제피린느는 금세 아이를 가졌다. 황실의 경사라고 기뻐한 것도 잠시, 그녀는 임신 칠 개월에 아이를 조산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일 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기는 아주 작은 여자아이로 채 사흘을 넘기기도 전에 세례만 간신히 받고 숨을 멈추었다.

그 다음에는 모르트마르 공작녀 프랑수아즈 아테나이스와 약혼했다. 아니스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녀는 선대 오베르뉴 대공의 손녀였다. 마리 제피린느를 잃은 오베르뉴 대공가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그녀와 약혼했는데,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 꿈에서 천사를 만났다며 평생을 신께 바치겠다고 서원하고 수녀원에 들어가 버렸다.

나라 간의 민감한 관계를 좀 완화시키기 위해서 네 번째로 선택한 것이 카스티야의 인판타 카타리나였다. 인판테 카를로스와 나바르의 카트린느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당시 세시안과 동갑인 스물한 살이었다. 인판테 카를로스는 '인판테'라는 칭호에서 알 수 있듯이 카스티야 국왕의 아들로, 다섯 번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카타리나의 계승권은 없다시피 했다.

카타리나는 검은 머리와 갈색 눈을 지닌 청순한 미녀였고, 세시안과 그녀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둘은 약혼 기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고 결혼식을 위해 카타리나가 로렌에 왔을 때는 이미 꽤 깊은 얘기까지 나누던 사이였다.

그런데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을 하고 있을 때, 전령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카스티야의 궁전에 불이 나 아스투리아스 공과 아스투리아스 공비, 이하 카를로스의 형과 동생들이 죄 타죽은데다 그 충격으로 국왕까지 승하했다는 비보였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회장의 술에 수면제가 들어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아주 허황된 주장은 아니었다. 아무리 순식간에 불이 났다곤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이 죄 죽어버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카스티야의 왕비 마리아는 갓난아기로서 살아남은 몇몇 손자들보다는 장성해서 자식도 있는 카를로스가 차기 왕으로서 더 낫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때 카타리나가 문제가 되었다.

카타리나는 카를로스의 유일한 적녀였고 카스티야는 붉은장미 법(法)의 영향을 받지 않아 여성이 스스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나라였다. 카타리나는 교황에게 항의했다. 결혼식은 마쳤지만 아직 카타리나와 세시안은 결혼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신성한 결혼이 주님의 이름 아래 매듭지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교황은 매해 카스티야가 점령한 신대륙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금을 받아서 주머니에 챙기고 있었다. 게다가 마리아 왕비는 교황의 종조카였다. 정치적으로 로렌과 카스티야를 저울질해본 교황은 카스티야의 손을 들어주었다. 카타리나와 세시안은 공식적으로 '약혼을 파기한' 관계가 되었고 그들이 치른 결혼식은 화려한 약혼식이 되었다.

카를로스는 카스티야로 돌아가 카를로스 3세로 즉위했으며 카타리나는 후계자로서 아스투리아스 여공의 지위를 받았다.

리젤로트는 손을 뒤로 올려 긴 머리카락을 배배 꼬아서 둥그렇게 말아 올렸다.

"그래도 화가 난단 말이에요. 이번에 카타리나가, 아니 아스투리아스 여공이 선물하고 편지를 보내온 거 보셨어요? 혼인 선물이랍시고 번쩍번쩍하게도 보냈던데요. 사촌도 보내고. 아이,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카타리나의 머리는 리젤로트의 것보다 훨씬 검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한 가닥으로 땋아 내리고 다니곤 했는데 그에게 이별 통보를 하던 날도 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 당신과 살아가는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기회가 왔어. 당신은 내게 황후의 관을 쥐어줄 수는 있을지언정 여왕의 관을 줄 수는 없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그녀는 비웃듯이 로렌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오겠느냐 물었고 당연히 세시안은 거절했다. 카타리나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다. 깔끔한 끝이었다.

마지막은 부르고뉴 대공의 외손녀, 루이즈 마리와의 결혼이었다. 루이즈 마리의 아버지는 중부의 아주 작은 후국 출신의 후작으로 그녀의 부모는 진즉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친가 쪽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정신병력까지 있어 외모로 보나 신분으로 보나 마담 라 세르가 될 만한 소녀는 아니었다. 그러나 적당한 나이의 대공녀들이 불운하다 알려진 세시안을 피해 죄다 재빨리 혼인을 해버린 탓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루이즈 마리는 궁정에서의 시기와 질투로 한참 정신적으로 앓았다. 원래부터 소심한 소녀인데다 뒷배가 되어줄 친정도 없어 '어디어디의 아가씨', '마담'으로 둘러싸인 사교계에서 버틸 주제가 못 되었다.

결국 미쳐버린 아버지의 병력이 이어졌는지 루이즈는 방 밖에 나오기를 거부하고 매일 울기만 했다. 황후에게 불려갔다가 오면 기절까지 했다가 몇날 며칠을 축 늘어져 있었다. 어떤 위로도 보석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그러다 새장에 갇힌 작은 새처럼 죽어버렸다. 정식으로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자살이었다. 그녀는 땅콩을 먹으면 몸이 부어 숨을 잘 쉬지 못하는 병이 있었는데 죽은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땅콩을 가득 넣어둔 작은 병이 나왔다. 세시안과 황제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누이동생들도 몰랐다. 부검을 요구할 친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조용히 황실의 장묘에 묻혔다.

"으, 으? 아 됐다."

리젤로트는 머리를 고정시키고는 뿌듯하게 웃어보였다. 부드러운 목선이 도드라졌다.

"어쨌거나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열여섯 살이라니! 완전 아기잖아요! 오라버니한테 들러붙어서 매일 징징거리는 여자일는지 누가 알겠어요?"

"네가 열여섯 때만 하겠니?"

"오라버니!"

리젤로트는 벌떡 일어났지만 세시안은 리젤로트가 아닌 그 뒤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니, 미네트?"

상아색 옷의 소녀가 소리도 없이 들어와 문을 닫고 있었다. 리젤로트는 대번에 뒤를 돌아보더니 도끼눈을 떴다.

"왜 노크도 안 하고 들어와?"

"노크는 무슨. 문을 그렇게 활짝 열어두고서는. 실례했어요, 세르. 제가 몇 번씩 인기척을 내도 못 들으시기에."

마담 미네트는 우아하게 무릎을 굽혔다 폈다. 황제의 적녀는 미혼이라 해도 마담에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이 상례였다. 그는 또 다른 여동생을 향해 웃었다.

"아니다. 앉겠니?"

"아뇨, 일어나실 것 없어요. 어차피 제 잔도 없는데 앉아서 뭘 하겠어요?"

"가져오라 하면 되지. 앉아라."

세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네트를 이끌어 리젤로트의 옆에 앉혔다. 리젤로트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쌍둥이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대체 왜 온 거야? 평소처럼 방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난 네 언니란다. 예의를 지켜."

"쌍둥이잖아!"

"그리고 내가 먼저 황후 폐하의 태에 들어섰지. 네가 나중이었기 때문에 먼저 태어난 거고. 내가 엄연히 언니란다.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붉은 장미 법만 아니었더라면 엄연히 내 계승권이 네 것보다 높았겠지. 어머나, 죄송해요"

세시안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는 종을 울려 잔을 하나 더 가져오라고 시킨 다음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리젤로트와 미네트는 얼굴은 꼭 닮았지만 성품은 영 딴판이었다. 활발하고 발랄하고 다소 제멋대로인 리젤로트에 비해 미네트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애교 없는 성품이라 사교계에서는 물론이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사교 활동에도 큰 관심이 없어 수녀원에 들어갈 거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미네트는 황후의 바로 옆방에서 그녀의 수발을 들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구나. 간혹 얼굴을 보여주려무나."

"제 얼굴을 보는 걸 불편해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제가 무서워서 함부로 밖에 나오기나 하겠어요?"

그래. 다들 이런 점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황제의 딸이니만큼 다들 대놓고 지적하지는 않지만 미네트를 슬슬 피하곤 했다. 친 오라비인 세시안조차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고, 부황은 미네트가 그의 공식 정부를 대놓고 '창녀'라고 모욕 준 다음부터 아예 딸을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리젤로트가 입을 삐죽거렸다.

"'언니'는 입놀림부터 고쳐야 해."

"네 천박한 말투를 보니 내 흠은 흠으로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야!"

"그만 하렴! 둘 다!"

결국 큰 소리가 나왔다. 세시안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 반응조차 둘이 대조적이었다. 리젤로트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반면에 미네트는 눈썹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자매끼리 사이가 이렇게 험악해서야. 내가 여동생들과 차 한 잔 마시는 자리에서도 이렇게 불편해야 하겠니?"

"오라버니! 하지만 미네트가!"

"죄송합니다, 세르.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천박하다고 지적한 건 미안하구나,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리젤로트. 이제 너도 사과하렴. 리즈?"

리젤로트의 둥근 뺨에 눈물이 한 줄기 떨어져 내렸다.

"오라버니가 미워요!"

"리즈!"

그녀는 소리를 빽 지르더니 인사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대리석 바닥에 구두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하아."

저래서야 어디 시집이나 제대로 갈까. 미셸은 저런 말괄량이가 대체 뭐가 좋다고. 한동안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기만 했다. 세시안은 리젤로트에 대한 것을 일단 머릿속에서 지우고 미네트를 쳐다보았다.

"그래, 무슨 일로 정의관까지 네가 직접 왔니?"

"황후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무슨 용건으로? 내가 지금 바쁘구나."

미네트는 대놓고 비웃음을 띠었다.

"여동생과 찻잔을 펼쳐놓고 옛 아내들 얘기나 하고 계셨다니. 정말 바빠 보이시네요."

"그렇게 비웃지 말려무나. 잠깐 쉬고 있던 중이야."

"아하. 다른 나라 후계자를 씹어 먹을 년이라고 부르면서요?"

"제발, 미니. 너는 꼭 상대방이 너를 안 좋게 생각하도록 말을 하는데 고치렴."

"이렇게 타고난 걸 어쩌겠어요? 그럼 제가 리젤로트나 되는 것처럼 멍청하게 눈물을 글썽이고 헤프게 웃음을 흘려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그런 뜻이, 아니다, 되었다. 네가 깨닫지 못하는데 내가 계속 말해 무엇 하겠니. 용건이나 전해주려무나."

아주 어렸을 때는 이런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황후하고만 붙어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성격이 다 망가졌다. 미네트는 쥘부채를 펴 살살 부채질을 했다. 아주 한가로워보였다. 재촉을 하려는 참에 미네트는 툭 하고 내뱉었다.

"용이 나타났다는데요?"

"뭐?"

"말씀 그대로예요. 샤를루아 공작이 전하기를 바다에 용이 나타났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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