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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눈송이


6. 가시 장신구 (3)


 생(saint) 아델라 성당은 이블린에 있는 다섯 개의 성당 중 가장 작은 곳으로서, 평범한 주일의 미사에는 개방되지 않는 황실 전용의 성당이었다. 하지만 세르의 결혼식은 도도한 성당의 문턱을 낮추기에 충분할 정도로 중요했다.

앤은 얌전히 손을 모으고 앉아 성스러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주 오래된 양식의 건물이었지만 세월은 이 건물에 남루함이나 추레함을 덧칠하는 데 실패한 듯 보였다.

아롈을 따라 로렌에 온 뒤 호화로움에 감탄하지 않은 적이 드물었지만, 다시금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미남왕 앙리가 계시를 받아 성검을 내미는 천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천사를 우러러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었다. 값비싼 색유리로 덧창도 대지 않고 저런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건 일 년 내내 날씨가 온화한 이블린에서나 가능한 사치였다.

앤은 몰랐지만, 그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로렌을 이루는 일곱 가문, 황실과 여섯 대공가의 상징색이 정확히 같은 면적으로 사용되었다. 발루아의 연청색, 보르디의 녹색, 오를레앙의 황색, 칼레의 흑색, 부르고뉴의 주황색, 오베르뉴의 적색, 나바르의 진청색이 조화를 이룬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로렌의 화합과 영원이 신의 가호 아래 이루어졌음을 상징했다.

성당은 생각보다 훨씬 아담했다. 여섯 대공가과 황실, 그리고 외국의 중요한 귀족들이 앉자 남는 좌석이 전혀 없을 지경이었다. 겨우 백 명 남짓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었으므로, 격이 떨어지는 귀족들은 본궁의 정의관으로부터 성당까지 오는 길에 일렬로 늘어서야 겨우 신랑과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재수 없게 행렬을 지키고 있는 근위대의 어깨에 가리면 치맛자락도 안 보일 가능성이 있었다.

앤은 침을 삼켰다. 이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 자신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천연두에 걸려 죽었다. 아말리에 왕비가 그녀를 불쌍히 여겨 간간이 불러들이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앤은 스무살이 넘어서야 자신의 증외조부가 코시카 황제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라루에트 양?"

앤은 눈을 깜빡였다. ​L​'​a​l​o​u​e​t​t​e​은​ 갈리아 어로 종달새를 가리켰다. 그리고 자신의 성인 레르헨펠트는 빌헬름이 붙여준 것으로서, 종달새의 들판이라는 의미였다. 자신을 부르는 게 맞다는 판단이 서자 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예, 대공비 전하."

보르디 대공비는 바싹 마른 몸을 버드나무처럼 우아하게 세우고 아들의 옆에 앉아있었다.

"아니에요. 일어나지 말아요. 앉아요."

"어찌 그러겠사옵니까."

"부디, 앉아요."

그 말에는 부드러운 위엄이 스며있었다. 앤은 얌전히 다시 앉아 상체만을 뒤로 돌렸다. 대공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내어 웃었다. 얇은 가죽 너머로 손등의 뼈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이가 어떻게 된다 하였지요?"

​"​열​아​홉​이​옵​니​다​.​"​

"어머나, 어린 아가씨들이란 그 나이 자체로도 꽃봉오리처럼 어여쁜 법이지요. 물론 라루에트 양이 나이 말고는 내세울 점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요."

대공비는 주름이 가득한데도 소녀처럼 활기찬 어투로 말했다.

​"​과​찬​이​시​옵​니​다​.​"​

"특히 그 목걸이가 아주 곱군요. 라루에트 양의 검은 머리와 아주 잘 어울려요."

앤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목걸이 줄을 감아쥐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칭찬에 감사드리옵니다. 모두 전하, 마담-라-세르의 은덕이옵니다."

​"​마​담​-​라​-​세​르​께​서​ 라루에트 양을 참 아끼시는 게 보일 정도이니, 흐뭇하군요."

앤이 걸치고 있는 옷은 아롈이 물려준 것이었다. 재단사가 몸에 꼭 맞게 뜯어고쳐준 물빛 옷을 입고 은실로 붓꽃이 수놓은 스토마커를 달았다. 긴 곱슬머리를 처녀답게 늘어뜨리고 머리띠를 썼는데, 그 머리띠가 앤이 중부 출신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롈을 만나기 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아롈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주었다.

절로 어깨를 움츠러 들었다. 대공비가 이 목걸이의 출처를 알 리가 없었다. 당당하게만 행동한다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일개 시녀가 무슨 목걸이를 하고 다녔는지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딱 하루만 해보고, 아롈의 보석함에 다시 넣어두면 된다.

"전하께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 지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신의, 그보다 더한 보답이 있을까요."

앤은 당장이라도 이 목걸이를 뜯어내서 방 서랍에 쑤셔박고 싶어졌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소녀는."

"쉿. 시작하는군요."

앤은 화들짝 놀라 문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문이 열려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희한할 정도로 조용했다. 누가 들어오신다, 식이 시작한다, 알리는 말도 없었다. 음악도, 예포도 없었다. 그냥 문이 열리고, 신랑신부가 들어왔다.

앤은 결혼식에 처음 초대받았지만 중부의 결혼식이 이렇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보통 결혼식은 떠나갈 듯 소란스러운 행사가 아니었던가. 꽃잎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고요를 거느리고 아롈이 발걸음을 뗐다. 그 때부터 웅장한 오르간이 울려 퍼졌다.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거대한 파이프가 깊은 숨결을 뿜어냈다.

아롈은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성당 안에서 오직 그녀만이 지니고 있는 옅은 백금발은 머리카락만으로 틀어올려 고정했다. 보송보송한 귓불과 목덜미도 태어나면서 얻은 그대로였다. 입고 있는 흰 가운에도 보석은 한 점도 달려있지 않았다. 흰색은 일곱 가문에 속하지 않는 색으로서, 황실의 일원과 결혼하는 여인이 결혼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색 중 하나였다.

앤은 저 수수해보이는 옷이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 수십 벌 가격이라는 걸 상기했다. 소매와 치맛단에 각각 달린 일곱 겹의 레이스나, 아롈의 문장을 수놓은 스토마커도 말할 것도 없이 고급이었지만, 가장 비싼 것은 옷감이었다. 평범한 흰 옷으로 보이지만 저 옷감에는 은실로 축복이 담긴 성경 구절이 빽빽하게 수놓여 있었다. 적어도 삼십 년 이상 신앙에 귀의한 수녀들만이 저 옷감에 수를 놓을 자격이 있다고 들었다.

저 옷을 걸쳐본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쿵쾅대는 앤과는 달리 아롈은 무심해보였다. 그저 차분하게 걷고 있었다. 손끝 한 점 떨리는 기색이 없었다. 어젯밤에 구토를 하고 잠들지 못 하던 소녀라고 누가 생각할까. 고귀한 코시카 여대공, 로렌의 태자비는 주변 어디도 둘러보지 않고 똑바로 앞만을 보고 걷고 있었다. 제발, 이쪽을 보면 안 돼. 아롈이 앤을 돌아보지도 않고 스쳐지나갈 때까지 앤은 숨도 쉬지 못했다.

신랑과 신부는 천천히 기도대의 앞에 도달했다. 세 명의 여인과 세 명의 남자가 따라 들어와 신랑 신부의 양 옆에 섰다. 앤은 그 여섯 명 중 오를레앙의 미셸과, 샤를루아 공작녀 소피, 포의 아가씨라 불리는 쥬스티느를 알아보았다. 붉은 법복의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세르, 마담 라 세르. 신의 광휘 앞에 경의를 표하십시오."

남녀가 무릎을 꿇었다.



약 삼십오 년 전, 온 세계의 궁정은 파블 이바노비치 대공과 그 '아름다운' 보르디의 엘리엔 대공녀의 결혼으로 들끓었다. 그 둘의 결합은 호사가들이 떠들어댈만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원래 세르의 약혼녀였던 여자, 전 약혼자의 부인의 뺨을 연회에서 후려갈긴 여자가 북쪽 제국의 대공을 잡아채 올린 결혼식은 정말이지 전 세계에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

궁정의 시녀는 물론이요 잔디를 다듬는 정원사의 조수까지 제 궁의 주인의 이름은 못 외워도 엘리엔 소피 아델라이드라는 세 단어는 유창하게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말이 허공에 떠다녔다. 그 '여성답지 못 함'에 혀를 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나라의 후계자를 두고 저울질 한 여자라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었다. 그 들끓는 소문 중에 파블 대공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귀한 남자가 정부를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 전에 정부에게서 아들까지 둔 것이 조금 흠일까. 원래 젊을 때에는 정부에게 푹 빠져 결혼하겠다고 날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세상은 완벽하기만 하던 여자의 일탈에 수군거렸다.

그리고 황후가 된 옐레나가 남편의 목을 벤 다음 아직 어린 딸과 아들을 제치고 옥좌에 앉아 옐레나 1세로 즉위했을 때 세상을 받치는 화덕에는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그래서 그녀의 딸이 이 나라로 시집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은 재미있는 일이 있을 줄 알았다. 최소한 모후가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들고, 또 떠드는 뺨을 맞은 연회 이야기보단 흥미로울 줄 알았지.

닭장의 닭처럼 호들갑스러운 귀부인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그녀가 어마마마의 뺨을 갈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미네트는 지루하게 성가대의 노래에 맞춰 발을 까닥였다. 손가락을 까닥였다간 대번에 미혼의 처녀가 천박하다는 지적이 나올 게 뻔했다. 조그마한 소리가 났다. 뒤의 쪽문이 열리고,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이 살금살금 기어들어와 옆에 앉았다. 기분 나쁘지 않은 땀냄새가 풍겼다.

"늦었구나."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가대의 목소리에 묻혔다. 리젤로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리젤로트도 속삭였다.

"지금 어디야?"

"방금 봉헌 묵상이 끝났어. 화답의 노래야."

"아직 서약은 시작 안 했어?"

"쥐새끼 같이 숨어든 지각생에게는 정말 다행히도 말이지."

리젤로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듯했으나, 미네트는 신경쓰지 않고 단상을 내려다보았다. 신랑과 신부는 그림처럼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러면 다리가 저릴 텐데.

성가대의 노래는 짧았다. 여운이 성당 내에 흩어지기도 전에, 오랑 추기경이 말했다.

"신성한 주님의 가호 아래, 남쪽과 북쪽의 고귀한 두 분이 결혼 성사를 통해서 한 몸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두 분은 주님의 거룩한 손길 아래 엄숙한 혼인의 매듭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카스티야의 카타리나가 남긴 전례 때문에, 이번 혼사는 강박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신부의 계승권을 포기시키고, 대리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야 데려왔다. 그 때문에 추기경의 기도문은 카타리나나 루이즈 마리 때와는 다소 달랐다.

"두 분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오롯한 자유의사에 따라 결혼을 결정하였습니까?"

한 편의 희극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정황을 모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신랑과 신부는 조용히 대답했다.

"예."

"두 분은 주님께서 은총으로 맡기실 자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교회의 법과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겠습니까?"

이 또한 우스웠다. 신부가 세례를 받은 것은 고작 이틀 전의 일로, 그 전까지 그녀는 교황이 그야말로 잡아먹으려 드는 코시카 정교회 신자였다. 역시 신랑과 신부는 대답했다. 미네트는 속으로 속삭였다. 재미 없어.

"두 분은 거룩하신 결혼의 계약을 맺으셨고, 주님 앞에서 확인하려 하시니, 서로 오른손을 잡고 주님의 어전과 교회의 앞에서 두 분의 합의를 고백하십시오.

로렌의 루이 세바스티앙 조제프 자비에. 주님의 눈 앞에서 맹세하십시오. 신랑은 코시카의 엘리엔 필리피느 소피 아델라이드를 신부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겠습니까?"

"맹세합니다.

"코시카의 엘리엔 필리피느 소피 아델라이드. 주님의 눈 앞에서 다시금 맹세하십시오. 신부는 로렌의 루이 세바스티앙 조제프 자비에를 신랑으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겠습니까?"

"예."

친애하는 쌍둥이 동생은 눈물이라도 흘릴 듯했다. 미네트는 핀잔을 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성당 안은 정말로 조용했고 그녀의 바로 앞에는 부황과 모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미네트는 아침에 어머니를 이 성당으로 끌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했다.

"두 분의 고백을 친히 주님께서 들으시고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주고 받을 이 표식에, 주님께서 친히 축복하소서."

로렌의 신부는 이 절차를 위해 식장에 들어설 때 아무 장신구도 할 수 없었다. 신랑이 받는 것은 약혼반지와 결혼반지 뿐이었지만 신부는 관, 귀걸이, 목걸이, 팔찌, 약혼반지, 결혼반지를 받았다. 이 일곱 개의 보석은 로렌에서 당연하게 주고받는 예물로,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나무로 깎은 일곱 조각의 장신구는 빠트리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관은 가문 대대로 물려받아 그 의미가 각별했다. 어머니는 '그년의 딸년에게 소중한 마담 라 세르의 관을 씌우게 할 수는 없다'며 관을 새로 만들라고 난리를 피웠다. 부황도 결국 이 고집만은 꺾지 못 해서, 오늘 준비된 예물들은 전부 새로 만들고 성도에 보내 교황에게 직접 축성받아온 성물들이었다.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의 신의를 고백하십시오."

세시안은 보르디의 소피가 가져온 관을 신부의 머리 위에 씌웠다.

"나 루이 세바스티앙 조제프 자비에는 명예로서 약속합니다."

나바르의 쥬스티느가 가져온 귀걸이를 양 귀에 걸었다.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여."

칼레의 오데트가 가져온 목걸이를 채우는 데도 능숙했다. 하긴, 한두 번 해보셨어야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오베르뉴의 샤를이 가져온 팔찌를 오른손에 채우는 건 금방이었다.

"성하거나 병들거나."

부르고뉴의 카트르가 시중을 들었다. 왼손 넷째 손가락에 진주로 된 약혼반지가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킬 것입니다."

마지막은 오를레앙의 미셸의 몫이었다. 약혼반지 위로 결혼반지가 올라앉았다. 이는 약혼 기간이 깨지지 않도록 보였던 성의를 결혼기간 내내 이어나갈 것임을 나타내는 맹세였다. 로렌에서 여자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두 겹으로 끼고 있는 건 그 여자의 남편이 살아있음을 의미했다.

세시안의 목소리가 낮고 명확하게 들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리는 이 반지를 나의 약속의 표지로서 받아주십시오."

어머니가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떠는 게 뒤에서도 다 보였다. 황제가 그 주먹 위에 손을 얹어 감쌌다. 리젤로트의 뺨에선 기어코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큰언니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미네트는 신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핮만 얼굴이 보일 리가 없었다. 정교하게 얽어놓은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신부는 천천히 미셸이 내민 상자에서 남은 반지를 집어들었다. 헛손질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는 그 뒤에 터졌다.

"나 옐레나 파블로브나는."

세시안의 얼굴이 난감하게 굳었다. 리젤로트가 헉, 숨을 들이켰다. 미네트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옐레나 파블로브나는 정교회식 이름이었으므로, 생 아델라 성당에서 꺼낼 만한 이름은 아니었다. 신부는 천천히 셋을 셀 시간이 흐른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이었다.

"엘리엔 필리피느 소피 아델라이드라는 세례명을 받아 교회에 귀의하여, 주님의 이름 아래 명예로서 약속합니다. 당신을 신랑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킬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리는 이 반지를 나의 약속의 표지로서 받아주십시오."

반지 두 개가 무사히 손가락으로 굴러들어갔다. 억양이 조금 어눌했고, 발음이 약간 뭉개졌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추기경이 손을 들어올려 선언했다.

"이로써 두 분의 결혼이 주님의 어전에서 맺어졌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뒤로 쭉 이어진 결혼 서약서 서명의 재확인과, 기도, 성체 조배 등의 행사에서는 미네트의 흥미를 끌 만큼 재미있는 일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랑은 말끔하고 신부는 예뻤다. 다만 그 뿐이었으므로, 마담 미네트는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황후를 부축해 자비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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