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바라마지 않는 (9)
“저는 아렐르를 사랑해요.”
시간이 잠시 멈추는 듯했다. 만류하는 말을 내뱉던 입술이 망연하게 벌어졌다.
드물게도 예상이 엇나갔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정확히는 이 자리에서 나올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화해하자고, 그러나 그 여자한테는 사과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귀가 잘못된 건가, 머리가 잘못된 건가, 저 사람이 미친 건가. 아롈은 세 가지 가정 중 하나를 소거하기 위해 물었다. 그리고 세시안은 아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 감미로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아렐르를 사랑해요."
누군가 내장을 움켜쥐고 아래로 잡아당기는 듯했다. 멍하게 생각했다. 귀가 잘못된 건 아닌 것 같다. 아롈의 부족한 갈리아 어 실력 때문에 비슷한 다른 문장을 잘못 이해한 것도 아닌 듯했다. 둘 중 하나다. 저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거나, 아롈이 미쳤거나.
세시안이 쓰게 웃었다.
"제가 듣기에도 뜬금없게 들리는군요. 하지만 결국 이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사랑해요."
세 번째 철퇴가 떨어졌다.
"저를.“
꼭 한 마디만 뗐는데 울컥 뭔가가 쏟아질 것 같았다. 아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입을 막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도 움츠러들어 제 할 말도 똑바로 꼴이 얼마나 가엾고 하찮아 보일까.
말을 할 때는 허리를 똑바로 펴고, 턱을 당기고, 배에 힘을 주고,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의상을 입고, 또박또박한 발음을 사용해서 말하고.
지금 지키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눈물까지 질질 흘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벌써 눈물이 차올라 광대뼈까지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발이 시렸다. 모피로 안을 덧댄 실내화를 신었는데도.
"대체얼마나바보취급…….“
와르르 무너질 뻔 했다.
아롈은 간신히 버텼다. 눈물이 솟아 아슬아슬하게 찰랑거렸다.
“아렐르…….”
세시안이 놀라서 아롈의 팔을 잡으려고 했지만 뿌리쳤다. 그 반동으로 맺혀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롈은 손을 올려 뺨을 만져보았다. 손가락에 축축한 물기가 묻어 나왔다. 눈앞에 cS가 수놓인 손수건이 튀어나왔지만 아롈은 무시하고 서랍으로 걸어가서 서랍을 뒤졌다.
손수건이 없었다.
첫 번째 서랍을 닫고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그 와중에 눈물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 서랍을 뒤지는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이내 비 오듯 쏟아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롈은 급기야 손끝 감각에 의지해서 더듬거렸다. 그러다 종이 모서리에 손끝을 스쳤다.
따끔한 검지를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온몸이 떨리는 통에 스스로의 손도 제대로 쥘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눈물은 뚝뚝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아, 내일 얼굴이 엉망일 텐데. 도저히 화장으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어쩌지.
“아렐르. 손수건에는 죄가 없어요. 받아요.”
남편이 손을 잡아서 억지로 천을 쥐어주었다. 눈물을 훔쳐내자 간신히 앞이 보였다.
수없이 실수를 하고, 눈물을 보이고, 그 와중에 손수건까지 받아쓰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엘레나 파블로브나. 수치도 모르고, 긍지도 모르고, 그냥 죽어버렸으면.
숨을 몇 번 들이키자 간신히 떨림이 잦아들었다. 아롈은 빙글빙글 도는 중에 손가락으로 눌러 회전을 멈춘 날달걀이나 다름없었다. 겉은 멈춘 듯했으나 감정은 아직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떼는 순간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끝내야 한다.
“아까 하신 말씀은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못 보신 걸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흐느끼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누르다가 목이 뒤집혔다. 침을 삼켰지만 목이 너무 아팠다.
아롈은 행복한 미래에 대한 상상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의 다정함과 관대함에 의지하여 가끔은 기대하곤 했다. 그의 마음에 최소한 애정의 씨앗 정도는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고. 일말의 애정도 없는 예의만으로 하는 행동은 절대 아닐 거라고.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은 아롈을 깨부쉈다. 그 말이야말로, 아롈이 남편에게 듣기를 간절히 원했던 말이자, 바라는 자체를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남몰래 평생토록 원해왔던 말이었다.
딱 이 주, 아니 열하루만 먼저 저 말을 들었더라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아롈이었을 터였다. 밤에 가슴이 뛰어 눈도 감지 못하고, 숨 한 번 쉴 때마다 화들짝 놀라 덴 듯이 부끄러워졌겠지. 아니면 너무 따스하고 좋아서 서러웠을까. 생각보다 특별한 기분은 아니라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무려 세 번이나 들은 지금, 아롈은 당장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비참했다. 아랫배부터 모욕감으로 떨려왔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피가 빠져나가도 이것보단 덜 차가울 것 같았다.
“전하께서는 지금 제게 어마어마하게 무례하셨습니다. 무리한 요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발 그만했으면. 더 우스운 꼴을 보이기 전에.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어마어마하게 아프지만 하룻밤 자면 잊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제가 아렐르를 사랑해서 미안해요.”
행동해라, 다만 ‘냉정해라’.
아롈은 어둠 속에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속으로 몇 번이나 냉정하라고 되뇌었다. 대화하면 말려든다. 상처를 쑤셔버리면 안 된다. 그래봐야 잃을 것이 많은 것은 자신이었다.
며칠 전 이 비슷한 상황을 한 번 겪었다. 휘몰아치는 비참함. 저 사람을 내 앞에 끌어내리고 싶다는 충동. 똑같은 실수 두 번은 싫다.
“미안해요. 정말로.”
하지만 저 걱정 서린 목소리가 아롈의 멍청한 부분에게 고깃덩이를 던져주었다. 아롈의 기대감은 그 고깃덩이를 향해 침을 질질 흘렸다. 아롈은 기대감의 목에 다시 한 번 칼을 박으며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못 들은 걸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들을 때까지 얘기하지요.”
귀를 막고 싶었다. 열흘만 먼저 들었더라면, 하다못해 아롈이 자살한 여자의 대용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들었더라면, 아롈은 저 말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절절하고 진심처럼 들렸다.
아롈은 실제로 결심했었다. 유모에게 맞았다는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키예프에서 무척이나 외로웠다는 이야기나, 아버지가 아롈을 옐리자베타라고 잘못 부른 게 자존심이 상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고.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제가 아렐르를 사랑해서 미안해요.
다시 곱씹어도 지독하게 달았다. 깜빡 속아 넘어가 평생 다른 여자를 향해 속삭이는 말을 아롈 자신에게 하는 말인 듯 생각하며 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두근거리는 자신에게.
“혼자 있고 싶습니다. 나가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비켜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아니면 제 말이 이번에도 분명치 않았습니까?”
아롈의 선명한 비난에도 세시안은 흔들리지 않고 아롈을 내려다보았다.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제가 나가면 아렐르는 절 영영 안 볼 생각이지요.”
리젤로트의 결혼식에서 볼 것이다 따위의 말은 의미가 없었다. 지기 싫어서 하는 대답은 오히려 빌미를 줄 뿐이었다. 아롈은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아롈의 의견은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 그가 자신을 괴롭히려는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뭐라도 얘기를 해요. 화를 내든, 소리를 지르든. 그렇게 입만 다물고 쌓아두지 말아요, 제발.”
“저는 지쳤습니다. 쉬고 싶으니 나가주십시오.”
아롈은 통첩을 한 뒤 그대로 돌아섰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해 따라온 남편에게 가로막혔다.
“비켜주십시오.”
“싫어요.”
그를 밀치고 가려 했지만 몇 번 실패했다. 아롈은 쓰러질 듯 지친 채 핏발 선 눈으로 세시안을 노려보았다.
“차라리 쇠사슬로 묶어놓고 인두로 지지지 그러십니까? 남의 속을 털어보기에는 그 편이 나을 것입니다.”
참지 못한 빈정거림이 터져 나왔다.
“나가달라고 말하면 나갔을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장을 걸고도 약속을 어기시더니, 지금은 아무 것도 걸지 않으셔서 그리 쉽게 자기 말을 어기시는 겁니까?”
높은 목소리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치솟아 미간을 울리고 그대로 무릎이 꺾였다. 짧은 사이 손을 짚을 곳을 찾았으나 지탱할 만한 곳이라곤 눈앞의 사람 뿐. 아롈은 매달리느니 그대로 쓰러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무릎이 땅에 닿기 전에 몸이 멈추었다. 남편이 양팔을 잡은 것이다. 아롈은 여전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거의 들리다시피 떠있었다. 팔이 아팠다.
“괜찮아요?”
“놔주십시오.”
“아렐르가 일어나야…….”
“당장 쓰러져도 좋으니 놓아주십시오.”
그는 천천히 아롈을 내려놓았다. 꺾인 무릎이 바닥에 닿고 아롈은 상체를 지탱하려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아롈은 일어나려 했으나 팔에도 다리에도 도통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чёрт(젠장).”
어이가 없었다. 스스로 지른 소리를 감당 못해 쓰러진다고? 고작 며칠 잠에 못 들고 며칠 식사를 못 하고 며칠 속상했을 뿐인데. 어지러워 눈이 가물거렸다. 먹은 오믈렛을 토해내고 싶었다.
남편이 눈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지러운가요? 의사를 불러서…….”
“왜 아직 여기 계십니까?”
아롈은 뱃속에서부터 강단을 끌어올리다시피 내뱉었다.
“나가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못 들으셨습니까?”
“의사를 불러서 괜찮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갈게요. 안아 올려도 괜찮을까요?”
“제 방에서 나가달라는 말조차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대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시 목소리가 높아지자마자 머리를 둘로 쪼개버리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아롈은 평소 습관대로 목소리를 내리깔아 낮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도 말하라고 하셨습니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마음대로 하실 것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전하께서도 제게 잔인하기론 두 분 폐하와 매한가지십니다.”
무거운 침묵이었다. 어두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롈은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뜬 채로 남편을 노려보았다.
답변은 정말이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아롈이 반쯤 기절했을 즈음에야 어둠을 뚫고 울려 퍼졌다.
“미안해요.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세시안은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유는 명확할 테지. 아롈은 허탈하게 웃었다.
“전하, 저는 죽지 않습니다. 진심입니다. 나가셔서 절 내버려두셔도 전 내일도 모레도 살아있을 겁니다. 저는 제 계승권을 빼앗긴 그 날에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고 인정하고 취소하신 다음, 나가주십시오.”
“나갈게요.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에요. 전 아렐르를 사랑해요. 미안해요.”
그 목소리는 한없이 진심에 가깝게 들렸다. 그 순간 아롈의 자제력이 끊어졌다.
“제가 그렇게 우스우십니까? 제가 전하를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한단 말 한 마디만 들으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고 개새끼처럼 꼬리라도 흔들 줄 아셨……, 아…….”
아롈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심장이 요동쳤다. 어둠 속에서도 명확히 알 수 있을 만큼 남편의 표정이 흔들렸다. 천치 같은 옐레나 파블로브나. 자신을 마음대로 난도질 할 수 있는 약점을 상대에게 쥐어주다니.
하지만.
항상 생각만 할 뿐 입 밖으로 내 본 적 없던 말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굳어져 가슴을 찔렀다. 새기는 듯했다. 아롈의 애정은 그 수 일 사이 전혀 마모되거나 흐려지지 않고 단단한 그대로 심장을 후려갈겼다. 둔탁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있지, 그래봐야 너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야.
이 때 왜 하필 그 빌어먹을 짐승의 말이 생각나는 걸까.
-네 남편에게 했던 것처럼, 성질을 죽이고,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짜증도 억누르고, 꼬리치는 강아지처럼 애교라도 떨면 쓰다듬어주었을지 누가 아니?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좋아하지 않는 녹색 옷을 입고, 앙증맞은 장신구를 달고, 날카로운 말을 죽이고, 빈정거리지 않았다. 계속 그랬어야 했을까. 그랬으면 지금 이러는 대신 생글생글 웃으며 죽었다는 여자를 대신해 남편의 손을 잡고 렌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을까. 물건을 사고, 교외를 산책하고, 무도회에 나가 춤을 추고?
문득 눈물이 솟았다. 아까 그리 울었는데도 몸에 수분이 남았는지 눈물은 흐른다기보다는 쏟아지는 것에 가까웠다. 고개를 숙였다. 허벅지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정신없이 눈물을 닦아도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울지 말아요.”
“나가겠다고, 윽, 하셨, 흑, 잖습니까. 왜.”
그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가 나가면 계속 울 거면서.”
차마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아렐르. 제가 어떻게 하든 울 거라면 제 맘대로 하고 싶어져요. 그러니 눈물 그쳐요. 보이기 싫은 거라면 뒤돌아 있을게요.”
정말로 뒤도는 듯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치자마자 나갈 테니, 제발 울지 말아요.”
아롈은 입술을 누더기가 되도록 깨물며 울음을 그칠 방도를 강구했다. 저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생각을 돌리려면 무엇이 좋을까. 단순암기다.
아롈은 눈을 감고 가문의 첫 시조인 표트르부터, 아버지인 파블 1세에 이르기까지 키옌 가문의 수장의 이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기 시작했다. 삼십 대에 이르자 가까스로 눈물이 멈추었다.
조심스레 손바닥을 떼자 찬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아롈은 오목한 손바닥에 고인 눈물을 잠시 바라보다가 바닥에 놓여있는 손수건을 발견했다. 곱게 접혀있는 것을 보아 아까 쓰고 팽개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등을 잠시 쏘아보다가 손수건을 집어 들고 얼굴과 손을 닦았다. 눈이 퉁퉁 부어서 천을 문지르니 쓰렸다.
“이제 그쳤습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롈은 거짓말을 했다.
“예.”
그러나 그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굳이 지적하지도 않고 다음 말로 넘어갔다.
“침대까지만 데려다 주어도 될까요? 아니면 레르헨펠트 양을 부르고요.”
아롈은 혼자 할 수 있다는 말을 이 남자가 믿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앤에게 이런 엉망인 꼴을 보이기도 싫었다. 아롈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남편이 돌아서서 아롈을 안아 올렸다. 뿌리치지 않았다. 몸이 타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는 침대에 아롈을 내려주고는 실내화를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만 갈게요. 부디 좋은 꿈 꿔요.”
그는 지금까지 구질구질하게 붙어있던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쩍 일어나서는 곁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전하.”
그가 멈추었다.
“예.”
“방금 드린 말씀은 아무것도 아닌 실수입니다. 오해 않으셨으면 합니다.”
“예. 하지만 제 말은 거짓도 실수도 아니었어요. 사랑해요. 잘 자요.”
아롈이 잠시 숨을 멈춘 사이 문이 열리고, 닫혔다.
당연히도 잘 잠들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