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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눈송이


외전. 봄의 성 (5)


 "Могу ли я сказать, что вы настолько ​о​с​л​е​п​и​т​е​л​ь​н​о​ красивы, и этот жалкий человек влюбился в вас(눈부시게 아름다우신 탓에, 이 가엾은 사내는 그만 당신께 반하고 말았답니다)."

"풋."

입을 가렸지만 늦었다.

"시, 실례, 푸후훗."

금 간 항아리에서 물이 쏟아지듯 웃음이 터졌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멈출 턱이 없었다.

"시, 시, 시, 하, 하하하핫, 실례를, 으흑."

"그냥 웃어요. 숨넘어가겠군요."

"아하하하하핫."

아롈은 한참 후에야 진정했다. 눈꼬리에는 눈물이 맺히고 졸라맨 배가 아파왔다. 헐떡이며 몸을 바로 세우자, 눈앞에 손수건이 튀어나왔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보니 모양내어 부풀린 크라바트가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처음 만난 행세 따윈 포기하고 옷깃을 붙잡은 채 흐느낀 탓이었다.

"다 웃었나요?"

"흑, 예. 아윽, 아윽."

너무 웃어 딸꾹질까지 났다. 세시안은 등을 두드려주다가, 아롈이 간신히 멈추자마자 눈을 가늘게 떴다. 힐난하는 빛이 역력했다.

"너무하는군요. 열심히 연습했는데요."

그제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모자란 시간을 쪼개어 어마어마하게 공들였을 텐데 다 망쳐버린 것이다. 아무리 우스워도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화나셨습니까?"

"아뇨. 토라졌어요.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아롈은 시선을 내리곤 발끝으로 흙을 짓이겼다. 귀까지 붉어졌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쉽사리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 웃어서 미안하다, 되뇌며 연습하는데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세시안이 아롈의 미간을 문지르며 웃었다.

"괜찮으니까 찡그리지 말고 웃어요."

"하지만."

"이미 웃어버렸는데 무를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지요."

정말 웃어도 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우물쭈물 눈치를 보는데 뺨에 입술이 와닿았다.

"한 번 더 해주면 웃을래요? Могу ли я ​с​к​а​.​.​.​.​.​.​"​

"풋."

정말이지 웃고 싶지 않았으나 다시 웃음이 터졌다.

"웃으니까 보기 좋네요. 아렐르가 듣기에는 많이 서툴렀나보군요."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리 상처받은 기색이 아니었다.

"발음이 서투르셔서 웃은 건 아닙니다."

"조금 더 연습해서 오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요. 일 년 더 미루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오늘이 정확히 그 날이었던가. 전혀 몰랐다. 그저 어느 봄날 중 하루일 뿐인 줄 알았는데. 탄일이나 기일 같은 날이라면 몰라도, 처음 만난 날 오늘이 며칠인지 달력을 보고 확인하는 취미는 없었다. 괜스레 목까지 붉게 달아올라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정말입니다. 발음 때문에 웃은 게 아닙니다."

"우습긴 했다는 이야기로군요."

"그야, 내용이 ​내​용​이​었​잖​습​니​까​.​"​

세상에 다짜고짜 아름다워서 반했다고 늘어놓는 남자가 어딨단 말인가? 그것도 통성명을 하자마자!

"대체 그 대사는 누구에게 자문을 받아 정하신 겁니까? 미셸?"

"그 녀석이야 지금 신혼 재미에 정신없지요. 제가 뭘하든 관심도 없을걸요?"

낯간지러운 대사에 통달한 오를레앙의 외동아들은 지금 리젤로트와 결혼하여 본성으로 내려갔다. 첫 아기를 임신 중이니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전통에 따라 그곳에 머무를 것이다.

"하긴, 미셸이라면 조금 더 나은 문장을 골랐을 겁니다."

"과대평가로군요. 더 이상했을 텐데요."

딱히 입씨름을 할 생각이 없었던 아롈은 바로 다음 후보로 넘어갔다.

"그럼 누굽니까? 설마 벨망 경?"

"아렐르가 말했듯이, 설마요."

하긴 그 과묵한 시종은 남쪽 남자치고는 정말 숫기가 없었다. 정말 시키는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세시안이 자주 어울리는 시종이나 친구 몇 명을 떠올려보았지만 좀처럼 후보를 찾을 수 없었다. 지난 겨울 세시안은 술자리를 거의 가질 수 없을 만큼 바빴던 것이다.

"그럼 직접 생각하신 겁니까?"

"혼자 생각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렇게까지 어설펐나요?"

"내용이 이상했단 말입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어요. 캬트 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서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아주 큰 상관이 있지요."

세시안은 무척이나 억울했는지 그간 그가 겪은 고초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그는 조금 더 그럴듯한 고백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남부 갈리아 어와 북부 캬트 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었다. 로렌에서 그 두 언어를 동시에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은 아롈일 테지만 당사자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보았으나 대부분은 상인이었고 물망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배를 타고 바다로 포르르 나가버렸다.

다음 후보자는 코시카에서 파견된 외교관인데, 외교관을 이블린에 초대하면 너무 눈에 띄일 뿐더러, 공적인 이유도 없이 남의 나라 귀족을 불러다가 자국의 고귀한 여대공에게 수작질을 할 말을 번역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캬트 어를 적당히 할 줄 알면서 그를 도와줄 만한 사람은 한 명 뿐이었는데, 그도 캬트 어가 아주 능숙한 것은 아니어서 적당한 시문을 골라 번역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전을 썼지요. 아렐르는 알고 있었나요? 갈리아 어를 캬트 어로 번역해주는 사전이 나오지 않은 거."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사전 편찬에는 많은 공이 들어가고, 대륙의 끝과 끝에 있는 로렌과 코시카는 그리 잦은 교류를 하는 국가도 아니었으므로. 아롈은 갈리아 어와 페란토 어를 비교해가면서 갈리아 어를 공부했다.

"다행히 페란토 - 캬트 어 사전은 있더군요."

"페란토로 쓰셔서 캬트 어로 번역하셨습니까?"

"어려운 단어만요. 기본적인 문법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다보니 도저히 그럴 듯한 문장은 쓸 수가 없었더군요."

문장이며 어휘 선택이 어설픈 이유가 있었다.

"저라고 걱정을 안 한 건 아니거든요, 제가 생각해도 불안하긴 했어요. 하지만 적당한 어휘를 찾으면 문법이 너무 어렵고, 문법을 쉬운 걸 하자니 단어가 안 나오고, 둘 다 쉬운 걸 하자니 방금 같은 수준의 문장밖에 안 남고."

세시안은 몹시 억울한 투로 읊조렸다. 아롈은 시무룩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뺨에 입술을 댔다.

​"​고​생​하​셨​습​니​다​.​"​

"이런다고 억울함이 풀리지는 않는데요."

말과는 달리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입맞춤을 되돌려주었다. 이마에 한 번, 양쪽 눈꺼풀에 한 번씩.

"그럼 그냥 갈리아 어로 말씀하셔도 됐잖습니까. 굳이 처음 만난다는 설정이시라면 페란토 어로 하셔도 되고."

정식으로 임무를 받아 코시카로 찾아온 미셸도 캬트 어를 공부해오지는 않았다.

"그러게요. 제가 그 생각을 못 했군요."

그럴 리가. 아롈은 세시안이 어물쩍 넘기려는 기색을 날카롭게 잡아챘다.

"정말 생각을 못하신 겁니까?"

"그럼요."

"웃음으로 얼버무릴 생각은 마십시오."

그 바쁜 와중에 그런 고생을 해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만난 지 이제 겨우 일 년이지만 아롈은 연인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무언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빠르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우선순위가 명확한'. 굳이 캬트 어를 쓰는 의미가 없었다면 아무리 공을 들였다 해도 폐기처분하고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다.

"정말인데요. 생각도 못 했어요."

"자꾸 거짓말 하실 겁니까?"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그럼 준비해오신 말을 마저 들려주십시오."

평온하게 웃던 그는 순식간에 궁지에 몰린 듯 말문이 막혔다. 아롈은 몹시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입맞추려는 그를 밀어냈다.

"안 통합니다."

"부끄러운데요."

이제는 동정심을 사려는 작전으로 변경한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들으면 웃을 거잖아요."

"안 웃겠습니다."

"거짓말."

"맹세라도 필요하십니까?"

물론 방금 전 수준의 문장이라면 저도 모르게 웃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입 안의 살점이 너덜너덜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참아보겠다고 결심을 다졌다.

"맹세는 필요 없어요."

"그럼 들려주십시오."

"아무 대가도 없이요?"

"장사하실 셈으로 준비하신 거였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냥 들려주면 억울하잖아요."

"어차피 저한테 들려주시려고 ​준​비​하​셨​잖​습​니​까​.​"​

"맞아요. 밤새워서 열심히 외웠죠."

"그러니까."

"아렐르가 웃었잖아요. 그러니까 무효예요."

참으려는 노력도 없이 눈물나게 웃어버렸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안 웃겠습니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요."

"원하시는 게 뭡니까?"

"딱히 거창한 건 아니에요. 질문 하나에만 대답해주면 돼요."

아롈은 한숨을 삼켰다. 또 말려들었다. 눈에 생기가 넘치는 것을 보아하니 부끄럽다는 건 핑계고 이게 본론이다.

"말씀하십시오."

"대체 저는 전하께 언제까지 '전하'인 건가요, 사랑하는 여대공 전하?"

난데없는 곳에서 공격당한 아롈은 말문이 막힌 채 연인을 올려다보았다. '전하'. 분명 직접 부를 때에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지칭할 때에도 그 말을 썼다.

"신경쓰고 계셨습니까?"

"신경을 썼다기보다는, 기다리고 있었지요. 대체 언제 이름을 불러주는 걸까 하고."

역으로 궁지에 몰린 아롈은 반격을 시도했다.

"그럼 진작 이야기를!"

"하려고 해봤지요. 그런데 점점 오기가 생겨서요. 크리스도, 오거스트도, 리젤로트도, 미네트도, 심지어는 미셸 그 녀석까지 이름으로 부르면서 왜 저는 '전하'인 건가요?"

"......."

물론 호칭은 중요하다. 서운한 것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었고, 그의 요구는 그야말로 정당했다. 거꾸로 생각하자. 세시안이 아롈을 아렐르가 아니라 '부인'이라거나 '비' 정도로만 불렀어도 사이가 지금 같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보들보들한 목소리로 아렐르, 하고 부를 때마다 심리적 거리감이 턱 좁아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일 년이나 기다리게 한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닌가. 세시안, 세시안, 세시안. 너무 흐르는 발음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렇게 어려운 발음도 아니었다. 아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했다.

"응?"

하지만 괜스레 부끄러웠다. 밤마다 품에 안고 해가 뜨면 손을 잡으면서도 이름 하나 부르는 게 부끄럽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아롈로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뱃속에서부터 용기를 끌어모으고 있는데 세시안이 마치 도와주겠다는 듯 아롈을 툭 건드렸다.

"언제부터 저를 이름으로 부를지 알려줄래요? 참을성이 없어서 미안하지만, 기한을 알면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수월할 것 같군요."

"......."

"설마 그냥 준비한 말을 안 듣겠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지금 불러드리면 되잖습니까!"

"정말요?"

아롈은 끙 소리를 내며 눈을 피했다. 쓸데없이 화려한 조끼가 보였다. 괜히 수놓은 깃털이 C 모양으로 보여서 움찔하곤 고개를 들었다. 더없이 사랑하는 웃음이었지만 지금은 죽도록 얄미웠다. 정확히 일 년 전 이 날 필리프 앞에서 똑같이 폭발했던 기억이 났다. 로렌 남자들이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세시안은 그 날의 필리프와 달리 아롈에게 발을 뺄 기회를 주지 않을 기세였다.

승하하신 선황께서는 왜 '인내심'의 미덕을 가르쳐주지 않으신 걸까. 아롈은 애꿎은 조부를 탓하며 주먹을 쥐었다. 조부는 약 이 년 간 아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발끈하는 버릇은 고쳐주지 않았다. 아롈이 조부 앞에서는 끊임없이 인내하기도 했거니와, 조부는 간혹 드러나는 그 폭발을 단호한 자기주장으로 여겨 기특하게 보았으므로.

단호한 것은 물론 군주의 미덕이다. 하지만 상황을 살피지 않은 단호함 뒤에는 고난이 뒤따르는 법이다.

"혹여 잊어버렸을까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Меня зовут(제 ​이​름​은​)​.​.​.​.​.​.​"​

"Я ​з​н​а​ю​(​압​니​다​)​!​ 세시안!"

입술이 덮였다.

원래 이 외전을 끝내면서 연참을 하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일단 끊어 올립니다. 올려놔야 수정병이 저를 침범하지 못할 것 같네요. 벌써 몇 번째 고치는 건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밤 내로 다음편 들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P.S. 그냥 모래 사장에 촛불로 하트 만들고 꽃다발 주게 할 걸 그랬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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