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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린

俺、りん


Translator | 김성래

투고 | V노블






1. 프롤로그
2. 린
3. 만남
4. 마법의 포니테일
5. Baseball Queen
작가 후기
역자 후기



7. 린 (6)


버스는 전철역 근처에 있는 종착 버스 터미널에서 멈췄다. 이 버스 터미널은 시내를 달리는 버스 대부분의 발착 지점이기도 하다. 시간대에 따라서는 전철이나 버스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다수 오가는 장소지만, 이미 아침의 러시아워가 지났기 때문인지 호메이 고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은 없었다. 가즈히로는 통행이 한산해진 연결 통로를 지나 역으로 향했다.

개찰구 옆에는 전철표 자동판매기가 몇 대쯤 늘어서 있었는데 역시 텅텅 빈 상태였다. 가즈히로는 그중 한 군데 앞으로 가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정말 써도 되는 걸까…….’

어제 코토미에게 받은 돈도 원래는 ‘가야사카 린’이 써야 하는 돈이다. 그런 돈을 가즈히로가 써 버리자니 조금 찔렸지만 어쨌든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별수 없지. 가즈히로는 살짝 죄책감을 느끼면서 표를 샀다.

개찰구를 지나 도착한 플랫폼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철이 도착했다. 차내는 그다지 혼잡하지 않았다. 가즈히로는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전철은 곧 출발했다. 조금씩 흔들리는 차창을 별생각 없이 바라본다. 학교라면 이미 홈룸을 시작했을 시간. 수업을 빼먹는 데 익숙지 않은 가즈히로는 이런 시간에 이러고 있는 자신에게서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전철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을 때, 가즈히로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자 몇몇 남자가 어색한 동작으로 눈길을 피한다. 역시 이상하게 보이는구나. 무리도 아니지. 평일 이런 시간에 교복 차림으로 전철을 탔으니까.

‘역시 교복은 좀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학교에 가는 시늉을 하려면 교복이 필수였다. 갈아입을 사복을 따로 챙겼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만 사후 약방문이지. 가즈히로는 하는 수 없이 주변의 시선을 꾹 참고 눈을 감았다.

도중에 전철을 갈아타면서 조금씩 목적지로 향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이 점점 익숙해진다. 이렇게 되고 나서 아직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드디어 돌아왔다……’는 감동마저 솟구친다.

도착한 역은 별로 크지 않았다. 내린 사람은 가즈히로를 포함해서 세 명뿐이었다.

개찰구를 지나 역 바깥으로 나와서 보니 택시 승강장에서 세 대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사는 한가롭게 신문을 보거나 졸고 있었는데 그것 또한 여느 때의 일상과 다르지 않은 광경이었다.

손바닥만 한 역 앞 광장을 지나 훤히 꿰고 있는 길을 걸어 나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즈히로는 어떤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라? 여기 건물 있지 않았던가……?’

사람의 기억이란 의외로 불확실한 법이다. 원래 건물이 있었던 장소가 공터로 바뀌었어도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어야 했다.

가즈히로는 멈춰 선 채로 눈앞의 공터를 바라봤다. 흙이 훤히 드러난 매각 예정지. 관계자 외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듯 쇠사슬을 둘러치고 이곳을 관리하는 부동산 업자의 연락처를 걸어 놓았다.

주변 풍경과 눈싸움을 하던 가즈히로는 간신히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기억났다! 찻집이었어!’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자주 다닌, 굉장히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낡아 빠진 찻집이 있었던 장소다. 최근에는 갈 기회가 없었지만, 어제까지는 확실하게 영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공터일 뿐. 벌써 몇 년쯤 전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곳처럼.

가즈히로는 꺼림칙한 예감에 휩싸여 발길을 서둘렀다. 도중, 여기저기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소와 맞닥뜨렸다.

‘가야사카 린’과 뒤바뀌기 전―― 다시 말해 어제까지는 분명히 무언가 건물이 있었던 장소. 그곳이 조금 전의 찻집과 마찬가지로 공터가 되어 있거나 본 적도 없는 맨션이 지어져 있거나 했다. 만약 어제까지 뭐라도 건물이 있었더라면 겨우 하루 만에 공터가 되거나 맨션이 지어질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모양새를 보면 분명히 가즈히로가 살고 있었던 마을이다. 그것만은 정말 확실했다. 하지만 뭔가가 다르다. 어딘가가 다르다.

‘이상한데…… 이래선 마치…….’



길을 잃고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잖아――.



바보 같은 소리……, 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즈히로는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알지도 못하는 소녀의 몸을 한 채, 비상식적인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있으니까.

넓은 국도에서 주택가로 이어지는 좁은 길에 들어선다. 이제 가즈히로의 집이 멀지 않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이불을 말리는 집이 많았다. 그중 마침 베란다에 나오는 한 주부가 있다.

저 여성은 세들어 사는 가즈히로네 집주인이다. 가즈히로에게는 근처에 살면서 언제나 말을 걸어 주는 상냥한 아주머니. 가즈히로는 ‘말을 걸어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같은 고민을 하면서 바로 근처를 지나쳤다. 하지만 집주인은 조금 아리송한 얼굴로 가즈히로를 힐끗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시간대에 학교도 가지 않고 돌아다니는 여고생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아니면 근방에서 본 적 없는 특이한 색의 교복이 신기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녀의 정체가 가즈히로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로부터 백 미터 정도 걷자 익숙한 ‘우리 집’이 보였다. 빈말이라도 멋들어진 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초라한 2층 건물이다. 그 집의 문 앞에 서고 나서야 가즈히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집으로 들어가지…….’

잘 생각해 보니 지금은 집 열쇠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애당초 ‘가야사카 린’의 모습인 채로는 불법 침입으로 오해를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버진 없나……?’

가즈히로의 아버지는 경비 회사에서 일한다. 그 때문에 평소 이래저래 야근이 잦다. 분명히 어제도 야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야근을 마치고 잠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외모가 달라졌다 해도 부자지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분명히 알아주실 거야……. 그렇게 생각한 가즈히로는 초인종을 누르려 했다. 그때였다.

‘며, 명패가…… 다르잖아……!’

초인종 바로 위에 걸려 있는 명패는 ‘세노에’가 아니었다. 게다가 잘 살펴보니 비슷한 위화감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간이 차고에 주차된 차종도 다르고 번호판도 다르다. 마당 가장자리의 화단에는 각자 생활에 바빠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두 부자의 집과는 달리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다. 이러한 위화감을 종합해 보면 답은 뻔했다.

마치 다른 사람 집 같네…….

가즈히로는 만일을 위해 집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집의 뒤편에 있는 골목길로 돌아들어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을 올려다본다. 다행히 창문도 커튼도 열려 있었다.

꿀꺽 숨을 삼키고 방 안을 살펴본다. 그때 갑자기 백발의 노파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가즈히로는 허둥지둥 전봇대 뒤로 숨어서 상황을 살폈다.

느릿느릿 이불을 널기 시작한 노파는 곧 볼일을 마치고 방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누구지 저 사람……?’

가즈히로가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방금 목격한 백발의 노파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명패가 걸린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이 집은 가즈히로가 태어나 자란 집이니까.

결국, 가즈히로는 집 주변을 한 바퀴는커녕 두 바퀴나 돌고 말았다. 새로 발견한 사실도 없이 그저 막막함만 늘었을 뿐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건 직접 묻는 방법밖에 없겠군…….’

더 머뭇거려 봤자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가즈히로가 다시금 현관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려 한 순간이었다.

“무슨 용건이신가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가즈히로는 펄쩍 뛸 듯이 놀랐다. 흠칫흠칫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조금 전 마주쳤었던 집주인이 서 있었다.

“거기, 방금 외출해서 아무도 없어요.”

바로 조금 전까지 집 안에 있었던 노파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외출한 모양이다. 가즈히로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혀를 찼지만, 그보다도 집주인의 말투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가즈히로와 평소 스스럼없는 말투로 대화를 나눴던 집주인이 지금은 초대면인 사람을 대하듯 딱딱한 태도를 보인다. 더구나 어쩐지 수상한 인물을 쳐다보는 눈초리로.

하지만 가즈히로는 오히려 기회라고 판단했다. 집주인이라면 직접 진실을 알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핵심이다. 가즈히로는 고양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여기가 ‘세노에’ 씨네 집…… 아닌가요?”

“네? 아닌데요?”

가즈히로가 느끼고 있었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가즈히로를 보다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주인은 조금 수상쩍어하면서도 가즈히로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집에서는 벌써 20년 전부터 다른 분이 살고 계셨어요.”

“…….”

“근처에서 ‘세노에’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고요.”

다소 잠긴 목소리였지만 적어도 착각이나 허투루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 주는 단호한 말투였다.

“이제 됐나요?”라는 물음이 들려올 때까지 가즈히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집주인은 온 길로 되돌아갔다. 집 앞에는 멍하니 선 가즈히로만이 홀로 남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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