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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왕따는 뱀파이어 입니다.


0.프롤로그


어두운 새벽길, 신호등의 파란 불이 깜빡거렸다. 지나가는 차는 물론, 사람도 없었다. 칠흑같이 어둡고 조용한 길, 불현듯 나의 옆에서 침묵을 지키던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왔다.


갑자기 환해졌다. 불빛이 깜박거리더니 이내 제대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빛은, 가로등은 나의 눈에 보이지 않던 진실을 점차적으로 깊고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나의 발치 아래, 붉고 차갑게 식어버린, 끈적한 피가 고여 있었다. 피는 땅의 굴곡을 따라 아주 천천히 흐르더니 도로가 옆의 작은 하수구로 흘러들어갔다.


손에 들린 소주병을 들고 파르르 떨던 나는 바닥에 고정돼있던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가로등 아래에, 한 낯선 남자가 실 끊긴 인형처럼 축 늘어져있었다. 눈까지 덮어버리는 긴 머리카락 때문에 그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의 하얀 손목 위에는 가늘고 붉은 선이 그어져있고, 거기로부터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에 들려있던 소주병이 떨어져 어딘가로 굴러갔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흔히 말하는 자살. 사고가 멈추고 숨을 쉬는 방법까지 잊어버렸다.


다친 사람을 보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거나 냉정하게 판단해서 구급차나 경찰부터 부른다고 했던가. 그런 거 모두 거짓말이었다.


아니, 다친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상대는 죽은 사람. ‘상대’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죽었으면서 상대라고 말하니 마치 좀비 같았다.


그때,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에 나의 횡격막 또한 함께 움직였다.


살아있다.

 아직 살아있다.


그 작은 희망이 나의 심장을 움켜잡았다. 피 웅덩이 속에서 뒹구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음이 이렇게도 반가울까.



냉정을 되찾은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우선은 지혈이었다. 상대가 아직 살아있다면 더 이상 출혈이 계속되지 않도록 막아야만 했다.



뒤진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고작해야 머리끈과 양말 한 짝. 우선 이걸로도 괜찮다. 사람을 살리고 봐야하니깐.



손목의 상처를 지혈할 수 있도록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의 손목은 차가웠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듯한 촉감이었지만 그의 숨소리는 옅게 들려왔다. 손에 피가 묻어가면서까지 양말로 그의 손목을 묶는 나는 흘리듯이 말을 내뱉었다.



​“​전​에​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묶은 양말이 풀리지 않게 머리끈으로 질끈 감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나의 긴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끈까지 사용했다. 응급처치는 다 끝났으니 이제는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집 앞 편의점에 잠깐 나온 것이라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간도 새벽 2시를 달리고 있어서 인적도 드문 이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화를 빌릴 수도 없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없는 게 낫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주변을 둘러보던 도중, 저 멀리서 공중전화가 보였다. 바닥에 쓰러진 그를 잠시 내려다본 나는 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나의 발걸음이 멎었다.



뒤에서 불현듯 들려오는 작은 파문소리. 결코 작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호수에 울리는 파문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허​”​



뒤를 돌아본 나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곳에 분명히 있어야 할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환영이라도 본 것 같았지만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는 혈흔은 방금 전까지의 사건이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순간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뭐지,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른 봄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빗줄기는 조금씩 세지더니 이내 바닥의 피를 모두 씻길 정도로 몰아붙였다.



비를 맞으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는데, 무언가가 반짝였다.


반지다.



황금으로 도금된 반지 가운데는 큰 루비가 박혀있고 링의 안쪽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분명 그의 반지일 것이다. 반지를 꼭 쥔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바닥에서 구르던 소주병을 들었다. 오늘 아침 9시부터 시작될 고등학교 첫 입학식을 축하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샀는데 다른 용도로 쓰일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젖은 옷과 속옷들을 화장실에다 던져놓고 소주를 열었다. 쓰고 톡 쏘는 향이 머리를 흔들었고, 그 많은 양의 소수를 한 번에 마신 나는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자취를 해서 다행이다. 만약 엄마나 아빠가 지금 나의 모습을 본다면 분명 실망하시겠지. 이미 2차 성장도 끝마친 여자가 실올아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술에 취에 엎어져있다니, 하하 진짜 웃기잖아.


​“​맞​아​.​.​.​.​.​.​.​이​모​도​ 보면 안 ​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의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





“그러니깐, 그런 이유로 늦었다?”


 “응 말 그대로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미친년아. 이게 술이 아직 덜 깼나.”


유란이가 입학식 때 받은 통신문을 돌돌 말아 나의 머리를 때렸다. 가뜩이나 머리아파 죽겠는데 그 충격 때문에 머리가 웅웅 울렸다.



너 말이야, 친구가 아픈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때리냐? 의리 없는 기지배.



책상에 엎드려 끙끙 앓고 있는 나를 향해 유란이가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어딜 감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학교에 기어들어와. 박혜정, 정신 나갔어?”


​“​그​만​.​.​.​.​.​.​.​나​ 지금 네 욕을 받아줄 만한 상황이 ​아​니​여​.​.​.​.​.​.​.​”​

“아주 제대로 달렸구만? 이건 욕이 아니야, 잔소리지.”

“알았으니깐, 조용히 있어봐, 쫌.”


나의 투정에 유란이가 한숨을 내쉬며 나의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유란이를 힐끔 보다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사람이 엎드려있는데 거기에다 엉덩이를 들이밀고 싶을까. 곱상하게 생긴 외모랑은 다르게 인성이 개판이다. 쳇.



사실 내가 어제 밤에, 아니, 오늘 새벽에 겪었던 일이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 어딘가에 홀린 것일 수도 있고, 꿈자리가 사나웠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 차라리 꿈자리가 사나웠던 것이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절대로 꿈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내게 그 반지가 있느냔 말이다.



순간, 나의 옆으로 누군가가 지나간다.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카락은 눈을 덮어버릴 정도였고 걸을 때마다 아찔하게 찰랑거린다. 창백한 피부와 그에 대조되는 새빨간 입술. 무엇보다도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



그래 저 반지, 내가 주웠던 반지와 똑같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어... 저기, 무슨 일 이라도..."

"봐봐! 딱 이렇게 생긴 녀석이었다고!"

"잠깐, 너 뭐라는-!"


질색하는 유란이의 얼굴에 그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쿡쿡 찔렀다.



"내가 말한 녀석, 이 녀석이랑 꼭 닮았어! 봐봐"


"저기 이것 좀 ​놔​줬​으​면​.​.​.​.​.​.​.​"​

"이래도 안 믿을 거야?"

"작작해 이년아! 주정 쫌 그만 부려, 짜증을 넘어서 경멸수준이다."


말하는 ​싸​가​지​가​.​.​.​.​.​.​.​



단박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자 유란이가 괘씸하다는 듯이 나의 머리를 콱 쥐어박았다.



그러니깐, 머리 아프다고!



"얘가 그 사람이랑 닮았다는 게 무슨 상관이야? 얘가 그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과연!"


나는 곧장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눈동자가 덥수룩한 앞머리에 가려져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반의 아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런 보지도 못할 진풍경에 감탄하고 있었다. 내 친구, 호성이가 애들을 말려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수라장 안에서 나는 그의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너 정말 그 애야? 응응?"


"아니, 이것 좀 ​놔​달​라​고​.​.​.​.​.​.​.​"​

"말해보라고오- 오늘 새벽에 그 녀석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응응??"

"아 진짜, 이것 쫌 놓으라고!"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손을 확 뿌리쳤다. 그러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 손은 불의의 타격을 주게 되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나의 코를 정통으로 쳤다. 단숨에 나의 고개가 뒤로 훼까닥 젖혀졌다.



동시에 교실도 정적. 별안간 나는 입술을 씰룩이며 그대로 교실바닥에 엄청난 효과음과 함께 쓰러졌다.



"우아아아아! 살인사건이다!"


"피! 피! 저 여자애 쌍코피나!"

"뭣, 무슨, 누가 잘못한 거야?"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머리가 돌고 세상이 돌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동자가 휭그르르 돌더니 이내 필름이 끊어졌다. 


반갑습니다, Ladon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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