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04 - 스카이 나이츠
1
일단 날아오르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풀릴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뭐, 일단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나에게 아까부터 계속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면서 용서를 비는 – 그것도 왜인지 모르겠는 이유로 – 사냐 공주와 후방 사수 자리에 앉아 30구경 기관총 2정에 탄환을 장전하고 조준 영점을 잡고 있는 에리카 대위, 기체 하단의 사진자 자리에 앉아서 우리의 후방, 특히 홈 아일랜드 주변을 살피면서 추격해오는 전투기가 없는지 살피는 유나 중위. 그리고 졸린지 무전망을 통해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 나탈리.
[그러니까, 왜 내가 중위로 진급되었냐 하면……..]
[내탓이오, 내탓이오, 모두 내 탓이오, 창민경. 40명이 넘는 목숨이 사라지고, 그대에게 조국을 배신하게 만든 것도……..]
[야! 창민이는 나랑 얘기하고 있거든! 끼어들지 좀 말아줄래?]
[경이야 말로 아까부터 나한테 왜 그렇게 험하게 대하는 것이오? 내가 아무리 잘못한게 많다지만, 그건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니오?]
거기다 나탈리와 사냐 공주는 무전망으로 싸우고 있었다. 나탈리가 사냐 공주에게 조금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도 그렇고, 조금 신경이 쓰이는군.
[아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이 바보 공주야! 좀 정신 좀 차려!]
[지…지금 나더러 바보라고 한 것이오?! 창민경, 뭐라고 한마디 해주시오!]
[뭐? 창민아, 이 바보에게 뭐라고 좀 해봐!]
미치겠다. 벌써 1시간째 저러고 있으니 정말 미치겠군. PR 110은 PK 73과는 달리 고속 제공 전투기가 아니다. 덕분에 최고 속도도 쌍발 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PK 73 보다 느린 시속 520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뭐, 이 속도로 3시간만 더 가면 되니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창민아, 뭐라고 좀 해봐!]
[창민경, 뭐라고 좀 해봐요!]
그냥 둘다 조용히좀 하지.
[쳇, 오늘은 운수 좋은 줄 알어.]
[창민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하지만 내 사과는 받아주었으면 좋겠네요.]
“무슨 사과?”
[지금까시 말하고 있었는데, 못들은 거에요?]
알게 뭐냐. 지금까지 조종하고 있었던 것은 난데. 거기다 어째 사냐 공주의 말투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기는 하지만……. 상관 없나.
“미안. 쌍발기 조종이 쉬운게 아니라서.”
거기다가 난 단발기 조종사라고.
[알았어요. 한번 더 말하도록 할게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사냐 공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요. 나 때문에 피만 흘리고…….]
“사냐”
나는 사냐 공주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원래 대로라면 사냐 공주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한번 이름을 불러 보았다. 에리카 대위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뭐, 대충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자.
“네가 딱히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해 싸우는게 아니니까. 최소한 나는 정의를 위해 싸울거야. 그리고 이번 사건도 그 싸움의 일부일 뿐이고.”
[와, 창민아. 언제 그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말은 외운거야?]
나탈리의 딴죽이 들어왔다. 뭐, 목소리를 봐서는 정말 딴지를 거는게 아니라 그냥 그걸 표현하기 싫어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하는 것 같지만.
[…….고마워요.]
사냐 공주가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참, 무슨 공주가 이렇게 많이 울어?
“고마…….”
[경보! 방위 2-6-0에서 보기(Bogie) 1기!]
[소위 이창민! 지금 뭐하는 짓이냐?]
이런 젠장. 스토왈트 소령님이다.
스토왈트 소령님의 전투기는 나탈리가 타고 있는 PK 73-N형이었다. 다행이 뒤쪽에 다른 전투기는 없는 것 같지만, 문제는 상대가 스토왈트 소령님이라는 것이다. 필그림 공군 에이스 탑 5에 드는 조종사인 스토왈트 소령님이라면 이런 느리고 구식의 쌍발 전투기는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격추도 식은 죽 먹기겠지.
“소령님, 그냥 가게 놔주세요.”
나는 물론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했다. 도데체 왜 스토왈트 소령님이 이제야 우리를 쫒아왔는지 궁금했으니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탈출 도중 발각될만한 상황은 꽤나 많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제야 쫒아왔다는 말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미쳤나, 소위? 나탈리는 버려 둔 채 아예 적국 공주에게 넘어갔구나. 네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냐? 응?]
“저는 제 신념을 따라가는 것 뿐입니다, 소령님.”
누가 누구한테 넘어갸요? 그리고 나탈리가 거기에서 왜 나와?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필그림의 정책과 과거 지구에서 우리 인간들이 했던 제국주의 정책이 도데체 뭐가 다르다는 말이입니까?저쪽을 말아 먹은 것도 모라라서 이쪽도 말아 먹을 생각입니까?”
[창민경!!]
사냐 공주가 감격 했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지만 나는 지금 그런거에 신경 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무전기 너머의 스토왈트 소령님의 목소리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마치, 만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목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창민 소위! 네가 정말로 정신이 나갔구나! 네가 인간의, 필그림 군인이지, 여기 에르데 제국 군인이냐? 리히트 군인이냐? 지금 인간의 군인이라는 녀석이 뭐하는거야?]
“그래도 아닌건 아닌겁니다, 소령님. 모든 정의가 죽어도, 저는 정의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적기와의 거리, 1500m.]
스토왈트 소령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뒤쪽에서 철컥, 하고 기관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났다. 에리카 대위가 후방 기총을 준비하는 것 같다.
[창민 소위,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어. 오히려 가면 우리 손에 죽을거다. 당장 기수를 돌려.]
협박이다. 그리고 필그림이 얼마나 중립을 유지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려준다. 필그림의 우수한 무기 기술이 테라로 퍼져 나간다면, 이 세상은 지구처럼 멸망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기수를 돌리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소령님.”
짧게 대답한 나는 고도를 조금씩 높히면서 대답했다. 중력이 강하게 나를 조종석으로 압박했지만, 나는 짧게 숨을 내쉬면서 하고 싶었던 말을 마저 끝냈다.
“운명이 어떻든, 저는 저항은, 해보겠, 습니다.”
[적기, 거리 800m!]
[에르데 제국 영공에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격추당하지나 말고 그런 얘기나 해라. 당장 기수를 돌려. 나를 죽이지 않으면 방공권 못넘어간다.]
주황색 빛줄기 수십개가 캐노피 유리 바로 위로 날아갔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는 빛줄기들이 멀어져 갔을때야 나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스토왈트 소령님, 방금 우리에게 예광탄으로 위협사격을 한 것이다.
2
위협사격을 받은 나는 바로 조종간을 왼쪽으로 틀었다. 에리카 대위가 조종하는 후방 기총좌에게 좀더 좋은 사각을 주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동체와 날개 전체를 드러내는 조금 위험한 턴을 해야 했다. 기수에 300발씩 들어있는 13mm 기총 4기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기체를 돌리기 위해 선회전에 들어가면 익면 하중이 작은 우리가 불리하다. 결국 지금 당장은 후방 총좌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기대에 부응하듯, 에리카 대위는 짧은 점사로 스토왈트 소령을 견제했다. 물론 뛰어난 조종사인 스토왈트 소령님의 회피기동에 전부 빗나갔지만, 최소한 우리의 6시를 정조준 할 시간을 3초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하자.
내가 예상한대로, 스토왈트 소령님은 선회 반경이 작은 PK 73의 특성을 이용해 크게 선회하는 우리의 안쪽으로 파고 들고 있었다. 젠장, 저 고개를 드니까 바로 선회하고 있는 스토왈트 소령의 전투기가 보이는군. 내가 아무리 작게 선회하려고 해도, 쌍발기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크게 한바퀴 돌았고, 그러던 와중에 스토왈트 소령에게 위쪽을 무방비하게 노출 시켰다. 기수에서 불꽃이 몇번 반짝이는게 보이자, 주황색 빛줄기가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예광탄 궤적들이 사이로 PR 110의 날개가 지나갔다. 우르릉, 하고 기체가 떨렸다.
[피탄! 피탄! 우측 엔진에 피탄!]
재수 없게도 우리가 맞은 곳은 바로 오른쪽 엔진이었다.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맞은 것은 아닌지 불이 붙거나 연기가 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엔진에 맞았다는 사실이었다. 수냉식 엔진을 쓰는 PR 110의 특성상, 냉각 파이프에 맞기라도 했다간…….. 과열 되는 것은 시간문제지.
“꽉 잡아!”
[꺄악!]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조종간 부터 틀었다. PK 73이 우리보다 빨랐고, 나의 갑작스러운 롤은 스토왈트 소령의 조준 사격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나를 오버슛해서 지나쳐버린 스토왈트 소령의 전투기가 나를 따라 회전을 시작했지만, 벌써 배럴롤로 한바퀴 돌고 뒤쪽으로 접근하는 나를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데드 식스, 잡혔습니다, 소령님. 이제 그만 놔 주세요.”
[나를 죽이기 전에는 못지나간다고 말했지!]
역시 소령님이다. 소령님은 자신이 옳았든 틀렸든 그것을 끝까지 믿고 따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쩌면 좋은 군인일지도 모르겠다. 상부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고, 그것이 정의라고 믿는게 스토왈트 소령이니까.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소령님을 넘어서 전진하는 수 밖에.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더이상 망설이고 말고 할것도 없었다. 나를 가르친 스승님을 쓰려뜨리고 전진해야지, 뭐 별수 있나?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자, 기수에서 묵직한 진동과 함께 13mm 예광탄 줄기가 앞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스토왈트 소령은 그대로 롤 기동으로 간단하게 피한 다음 기수를 앞으로 들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기수를 위쪽으로 쳐든채 수직으로 상승해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쫒아 기수를 들어 올린 채 수직 상승을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 그리고 누구의 전투기가 더 높히 상승할 수 있느냐다. 중력이 강하게 나를 조종석 안으로 짓눌렀고,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질 수 없다. 이건 단순하게 나와 스토왈트 소령간의 싸움이 아닌, 각자의 신념이 걸려있는 전투니까.
하지만 말이야 쉽지, 수직 상승, 그러니까 줌 상승은 매우 힘들었다. 행성의 핵이 우리를 잡아당기는 중력에 의해 우리는 점점 그 속도를 잃었다. 속도계의 바늘이 빠른 속도로 반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했고, 결국 속도가 실속속도에 다다르기 직전, 먼저 떨어져나간 것은 나였다. ㅁ너저 아까 맞은 우측 엔진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실속이 걸리면 부담이 큰 것은 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 사냐 공주와 에리카 대위, 그리고 유나 중위가 타고 있는 이 PR 110이니까. 때문에 바로 스토왈토 소령도 기수를 숙여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우웅하지만 급강하로 인한 속력이 너무 붙었는지, 내 PR 110은 스토왈트 소령의 PK 73과 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어지럽게 서로의 6시 방향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롤과 뱅크와 요 기동을 반복하면서 중력에 의해 이리저리 부딛히면서 기동하는, 시저스 기동을 시작했다. 내가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스토왈트 소령은 왼쪽으로 롤을 했고, 그렇게 서로를 스쳐 지나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꼬리를 물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역시, 쌍발기가 단발기를 이길 수는 없다. 수직과 수평으로 기동하던 우리들 중 먼저 나가 떨어진건 나였다. 정확하게는 아까 피탄당한 PR 110의 우측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확하게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인가 우측 엔진에는 불이 붙어 버렸고, 결국 수직으로 상승하던 나는 실속에 빠져버렸다. 힘 없이 양력을 잃은 채 떨어지는 나의 뒤를 스토왈트 소령이 잡자, 에리카 대위의 후방 기총이 맹렬하게 탄피를 뿜어댔지만, 허무하게도 단 한발도 맞추지 못한 채 모두 소진해버렸다.
"사냐."
[예?]
"미안해."
무전으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도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은 채 조종간을 가만히 쥐고만 있었다. 고도 1만 피트에서 멈춰있던 바늘이 순식간에 8천, 6천으로 떨어졌고, 스토왈트 소령은 우리의 6시, 공중전에서 가장 위험한 데드 식스를 잡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라?
[창민 소위]
스토왈트 소령이 나를 불렀다.
[나는 군인이다.]
"예?"
[우리 집안은 군인 집안이다. 따라서 나는 인류를 위해 싸운다는 기본 전제를 버릴 수가 없어. 그것이 내게 있어서, 인류 그 자체가 곧 정의다.]
어이가 없군. 지금까지 정의롭지 못한 전쟁으로, 우리가 죽인 생명이 몇이나 되는건지 잘 아시는 분이, 왜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소령님, 인류가 언제부터 정의였습니까? 왜 우리 세계였던 지구가 박살났습니까? 전부 우리 때문 아닙니까?"
스토왈트 소령은 잠깐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스토왈트 소령은 살짝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정의롭든 말든, 그것이 정당하든 말든, 나에게는 인류의 이익이 기준이다. 그걸 어길수는 없어. 절대로. 이미 죽은 정의라면, 나는 그걸 희생해서라도 인류를 위해 싸워야 해.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이제는 적자 생존, 힘센 자만이 살아남는거야.]
하지만, 하지만. 약한자에게도 희망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있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 너인 것도,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너 만큼은, 제발 너 만큼은 정의의 편에서 싸워라. 그것만이 우리의 자멸을 막는 길이니까. 아까 들어보니까 신념 하나는 확실한 내 수제자니까, 너라면 해낼 수 있을거야.]
뭐?
[이 모든게 계획이었다. 창민 소위, 아니, 창민아. 앞으로는 너의 행동이 정의의 기준이다.]
지금까지 이 모든게, 전부 계획이었다고? 나를 시험하기 위해?
[너의 신념을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미안해. 내가 인정하지. 하지만 이제 너의 진심을 확인 했으니까, 나는 막지 않겠다. 가라. 제국으로.]
"미안하면 다에요? 죽을 뻔 했잖아요? 진짜로 제가 발포해서 소령님을 죽였으면 어쩔 뻔 했어요?"
나는 살짝 화가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시험했다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소령님을 죽일뻔 했단 말이다. 물론 맞지는 않았지만.
[미안하다니까. 그리고 설사 네가 나를 죽였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았을거다.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겠지. 스승을 꺾은 제자라고. 그러니까 빨리 조종간을 당겨! 고도 회복하란 말이야!]
스토왈트 소령의 호통에 나는 반사적으로 조종간을 당겼다. 고도계 바늘이 2천 조금 아래에서 멈췄고, 그리고 다시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쫒기는 와중에 나탈리는 어디갔지?
"잠깐, 그럼 나탈리 너, 이걸 벌써 알고......."
[에헤헤. 미안. 하지만 소령님께서 부탁하셔서 어쩔 수 없었어.]
나탈리의 전투기가 오른쪽에서 합류하며 내 PR 110을 중심으로 트라이앵글을 만들었다. 나탈리........ 너를 믿었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거야?
[나탈리를 탓하지 마라. 모든게 내가 계획한 일이니까. 빨리 가라. 필그림 쪽에서 진짜 추적대를 보내기 전에.]
"소령님은요?"
[나는 늦었다. 말했잖아. 나는 인류가 정의라고.]
그 말의 속뜻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 안 늦었습니다, 소령님. 아직 소령님도 저희랑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사냐 공주도 용서 했을 겁니다. 에르데 제국과 우리 필그림들과의 동맹은 아직 안끝났습니다."
[창민경 말이 맞습니다, 소령.]
사냐 공주도 거들었다.
[용서 했습니다. 이해 합니다. 그대들과 우리 제국이라면 명예를 지키고 수십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겁니다.]
[미안. 이미 늦은걸 어떻해. 추적 부대가 5km 후방에 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조금 채념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라. 가서 정의를 위해 싸워라. 나는 네가 싸울 수 있도록 해줄테니까.]
그말과 함께, 스토왈트 소령은 그대로 반전해서 기수를 꺾었다. 멀어져 가는 스토왈트 소령의 PK 73-N이 달빛에 비쳐 은색으로 반짝였다. 마치, 눈물처럼.
[아참, 나탈리를 부탁한다. 이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스토왈트 소령이 떨어져 나가자 나도 기수를 돌려 소령님을 쫒았다. 나를 시험한 것은 조금 기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스승은 스승, 내가 도와드려야 한다. 만약 진짜로 필그림 긴급 출격 편대와 교전하실 생각이라면 말이다.
[이창민! 지금 뭐하나? 방위 안바꿔? 이건 명령이다.]
"죄송합니다만, 항명 해야겠습니다. 군인은 절대 죽으러 가지 않습니다."
[이건 죽으러 가는게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기수를 돌려! 나탈리!]
"우왁"
스토왈트 소령이 나탈리의 이름을 부르자, 나탈리의 기체가 순간적으로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반사 작용으로 나는 기수를 오른쪽으로 꺾어 피했고.
[지금은 아직 아니야. 일단은 가자.]
"소령님을 죽게 놔두라고?"
[누가 죽는데? 소령님께서 알아서 추격대는 막아 주실거야. 우리는 빨리 가야 한다고!]
"하지만........"
[소령님의 희생을 헛되이 할거야? 너는?]
물론 그럴 마음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인류와 에르데 제국의 운명을 바꿀 공주를 살려야 하나? 아니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를 살려야 하나?
[창민경, 기사로서의 명예와 대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창민아, 지금은 아니야. 제발, 제국으로 가자.]
조종간을 손에 쥔 채,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도데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까.
[나탈리를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스토왈트 소령의 목소리가 무전망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직 거리는 잡음만이 들려왔다.
결국 나는 끝끝내, 기수를 돌리지 못했다.
3
황제가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거대한 홀에서, 나와 나탈리는 숨을 죽인채 가만히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흰색 대리석 바닥에 깔린 붉은 융단 카펫이 우리의 몸무게를 받아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사냐 공주가 그녀의 보검으로 우리의 양 어깨를 가볍게 누를 때 까지, 그다지 아프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알고 있다. 보검 수여식과 기사단 임명식은 지난번에 이미 했다. 그런데 왜 또 하냐고?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는 정식 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다. 나도 혼란스럽다. 그런데 어쩌라고? 저쪽에서 하라는데. 특히, 이 기사 작위 수여식은 에르데 제국에게 있어서 상대의 '귀족'을 자국민으로 받아들이는 뜻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에르데 제국에서 무시받았던 이유중 하나가 '자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침탈한 야만적인 평민'이었으니까, 그런 불공평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 꼭 받아야 한다고 사냐 공주가 하도 설득하길래 넘어가버렸다. 나는 사냐 공주의 제 1기사, 그리고 나탈리는 제 2기사로, 우리는 황실 직속의 기사단, 제 44 항공 기사단에 소속되었다.
"창민경."
사냐 공주의 말과 함께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뒤이어 새하얀 드레스 위에 붉은 망토를 걸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파이어 티아라를 머리에 쓴 사냐 공주가 내게 다가왔다. 불빛에 비쳐 번쩍이는 보석들은 새하얀 피부의 사냐 공주를 더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마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에게 다가온 사냐 공주는 허리에 차고 있던 기사도를 빼어 칼날을 수평으로 눞혔다. 가볍게 내 어깨 위로 기병도가 얹혀지고, 사냐 공주의 백옥 같은 목소리가 마치 한편의 시처럼, 기사의 서약서를 읊기 시작했다.
"Be without fear in the face of your enemies.
적 앞에서 두려워 하지 말아라.
Be brave and upright that God may love thee.
언제나 용감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라. 신은 그대의 편이리.
Speak the truth always, even if it leads to your death.
언제나 진실 만을 고해라. 만약 그것이 그대의 죽음이 될지라도
Safeguard the helpless and do no wrong – that is your oath
힘없는 사람들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해라. 그것이 그대의 서약이다."
나는 고개를 숙인채 가만히 있었다. 사냐 공주의 기병도가 내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친 다음, 내 옆에 있는 나탈리에게로 다가가 똑같은 서약을 반복했다. 500년전부터 내려져 오는, 미치 한편의 시 같은 에르데 제국의 기사 서약이 한번 더 황궁의 연회실에 울려 퍼진 뒤에야, 나와 나탈리는 꿇었던 무릎을 펼 수 있었다.
"기사들이여, 일어나세요."
사냐 공주의 말과 함께, 나와 나탈리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섰다.
"기쁜 일이도다! 이렇게 용감하고 정의로운 두명의 기사가 우리 에르데 제국의 기사라는 것은!"
황제의 축사가 시작되었다. 짧게 줄이자면, 앞으로 잘해 보자는 말을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길게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황제의 축하 연설은 장장 30분이나 계속 되었다. 내가 그 긴 연설을 다 제정신으로 들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당연히 나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연회에 참석해있는 다른 기사들도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나 하나가 안듣는다고 별일 생기겠어?
축사는 얼마 있다가 끝났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좀 쉬고 싶다. 사실 우리가 이 기사작위를 받는 이 수여식은 우리가 스토왈트 소령과 한바탕 공중전을 펼친 다음, 막 도착하자마자 황궁으로 끌려가서 하게 된 것이니까. 생각해보면 조금 우습다. 한쪽 엔진이 완전히 전소되어 버린 채 위태위태하게 착륙하자마자, 에르데 제국 헌병대가 달려와서 우리를 체포했으니까. 그들의 앞을 막아선 사냐 공주와 에리카 대위, 그리고 유나 중위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자리에서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황제가 기사 수여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제국 영토내의 모든 필그림들을 사면하고, 제국군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한 덕분에 더이상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말은 ‘비공식적으로는’ 적대적이라는 말이라는거, 굳이 설명 안해도 되겠지?
이번 연회에 처음으로 알게 된거지만, 에르데 기사들은 의외로, 사냐 공주를 경계하고 무시하는 것 같았다. 나도 정말 우연히 엿듣게 된 거라서 자세하게는 못들었지만, 기둥 뒤에서 쑥덕거리고 있던 두명의 기사의 이야기는 분명 그랬다. 후궁의 딸 주제에 영웅 행세를 한다고. 스파이일지도 모르는 야만인들에게 기사 작위나 준다고. 기사도 아닌, 용병들 주제에 명문 황실 기사단에 그들을 편입시켰다고. 뭔가 굉장히 기분이 나쁘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지나갔다. 저들의 말이 그렇게 틀린건 아니다. 나는 확실히, 기사는 아닌 것 같으니까. 그냥, 내 스스로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기사가 되었으니까, 한번 제대로 싸워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창민경.”
시끌벅적한 연회장의 한 구석에서 맥주나 한잔 마시면서 쉬고 있던 나에게 사냐 공주가 다가왔다. 차가운 대리석 기둥에 기대고 있던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복장을 단정히 하고 사냐 공주를 바라보았다. 지난 몇주간 같이 있으면서 알게된 것이지만, 이녀석은 아직 어린애다. 최소한 겉모습은 그렇다. 하지만 그 속이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만큼은, 어른 대접을 받고도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기사 작위를 받으면서 사냐 공주에 대한 나의 태도를 조금 고치기로 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그냥 조금 쉬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사냐 공주를 존대하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나는 웬만하면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사적인 자리에서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사냐 공주는 그 대접을 받을만 하다. 최소한 마음 만큼은 어른이니까. 나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는지 사냐 공주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창민경? 어디 아픈가요?”
“아니요. 그냥 좀 피곤한거 뿐인데요.”
“그런데 왜 저한테 존댓말을…….”
아, 그거였냐.
“아니, 뭐. 이제는 정식으로 기사가 됬으니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해 사냐 공주가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반대로, 사냐 공주는 조금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니, 조금 이상하고 기뻐서요.”
“뭐가요?”
그렇게 어린애 취급 하지 말라고 해서 안하는건데, 뭔가 문제라도 있나?
“그게, 창민경이 나에게 존댓말을 쓸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때 처음 만났을 때 그랬잖아요. 창민경은 신분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어린애에겐 어린애 취급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요?”
“그런데 창민경이 저에게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저를 어른으로 인정했다는 뜻이잖아요. 생각보다 빨리 인정받았지만, 그래도 기쁘네요.”
사냐 공주가 밝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소를 본 순간, 나는 머리가 띵 해지며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나 왜이러지? 많이 피곤한가 보군. 그건 그렇고, 겨우 그정도로 기뻐하다니, 역시 애라니까.
“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고마워요. 후훗.”
……….. 웃을 때도 왜 그렇게 귀엽게 웃어야 하는거냐, 응?
“하지만 앞으로도 저에게 존댓말 대신 지금처럼 편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네요.”
엥? 왜? 나는 순간 벙찐 표정을 지으며 사냐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냐 공주는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대답했다.
“그냥, 창민경은 제 신하로 보다 제 옆에서 저와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나을 것 같아서……..”
……….. 정말 이상한 감상이군. 뭐, 그게 편하다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존댓말을 쓰는게 조금 어색하니까…….. 확실히 조금 어색하군. 이런 분위기. 사냐 공주도 조금 어색했는지 어느새 쪼르르 저쪽으로 달려가버렸다. 역시. 애는 애다.
“재미있군요.”
언제 왔는지 에리카 대위가 내 옆에서 조용히 중얼댔다.
“뭐가?”
에리카 대위한테는 지금까지 반말하는게 조금 꺼림칙했지만, 이제는 계급으로도, 직책으로도 내가 상관이다. 상관 없겠지. 잠깐, 그런데 에리카 대위, 연상이잖아?
“공주마마께서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건 처음 봅니다. 어렸을 때 부터 쭉 같이 지내왔지만, 네, 저런 표정은 60년만에 처음이군요.”
“하하하하하……..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별말 아닙니다. 단지, 부기사단장님이 공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런게 왜 궁금한데? 물론 말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도 몰라, 모른다고!
“그렇게 시치미를 떼시면……...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에리카 대위는 몸을 돌려 사냐 공주를 향해 다가가려다가 나에게 고개만 돌려 말했다.
“앞으로도, 공주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뭔소리야.
“헤에. 둘이 분위기 좋은데.”
그리고 갑자기 끼어들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나탈리라는거, 이제는 굳이 설명 안해도 알고들 있겠지?
“그런거 아니야. 그냥 조금 친한 것 뿐이라고.”
“난 분위기 좋다고만 했는데. 찔리는거 있나보지?”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달라. 그러니까 이럴때는 제발 친구로서 그냥 옆에 가만히 있어주면 안되냐?”
나탈리는 웃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싫네요. 사람의 마음도 모르는 바보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몰라. 피곤한데 그냥 자고 싶어.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는 편히 쉴 수 없었다. 사실상 오늘의 주빈이자 에르데 제국의 기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나는 황제에게 또 한번 붙들려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것도 주로 사냐 공주를 잘 부탁한다는, 굉장히 난감한 이야기들을 위주로.
“그러니까 우리 딸을 잘 부탁하네. 나이가 어려서 좀 어리버리하니까 자네가 옆에서 잘 보필해주게나.”
그러니까 그런말은 사위한테나 하세요. 나한테 말해서 난감하게 하지좀 말고. 물론 이런 말을 황제에게 직접 대놓고 말할 정도로 나는 정신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 뿐이었다.
“예. 폐하.”
4
그렇게 나와 나탈리는 정식으로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둘다 에르제 제국 계급을 수여 받았다. 기사단장인 사냐 공주가 중령으로 진급했고, 부기사단장인 나는 소령으로, 그리고 나탈리도 중위로 진급했다. 이제 계급으로도, 직책으로도, 나는 44 항공 기사단의 2인자가 되었다.
44 항공 기사단은 일단 재편에 들어간 채 병력들을 모으고 있다. 사파이어 섬에 본부를 둔 우리 44 항공 기사단은 일반적인 항공 기사단과는 달리 항공모함 기동 기사단으로 재편되어 사파이어만 공습에서 살아남은 정규 항공모함 1척과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6척으로 확장되었다. 사실상 살아남은 함대의 3분의 1이 우리 앞으로 돌려진 셈이다. 그것도 남아있는 전력을 후소 제국을 상대하는 대양 전선과 에우로파 대륙의 브리타니아와 루소 제국을 도와 싸워야 하는 대륙 전선의 양면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든든한 동맹자였던 필그림들마져 떨어져나갔다. 상황은 전혀 좋지 않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 있는가? 일이 이렇게 까지 됐으면,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봐야 하지 않겠어?
정의를 지키기위한 길은 정말 멀다. 내가 봐도 정말 멀게 느껴진다. 정의의 정의 조차 내리지 못한 채,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피도 많이 흘릴 것이다. 지금까지 흘린 피의 10배는 더욱 흘려야 될거다. 하지만, 절대 이곳을 우리의 지구 처럼 망쳐버릴 수는 없다. 절대로. 충분히 가능하다. 내가 지켜낼 것이니까.
아무리 직책이 부기사단장이라도, 현재 당장 가용 가능한 44 항공 기사단의 전력은 사냐 공주와 나, 나탈리, 유나 중위, 다섯이 끝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나누어 훈련을 하거나 초계 비행을 하는 등,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의 전투 초계는 내 차례다.
[Sky 03, you are clear to take off.]
아, 그리고 우리 기사단은 콜사인을 바꿨다. 조금 의외지만, 우리는 다른 에르데 제국군 부대에게서 질투와 시샘을 받고 있다. 왠지는 모르지만, 다른 항공 기사들은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나와 나탈리는 증오의 대상이다. 우리의 별명이 ‘하늘의 “기사”’인 스카이 나이츠라고 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것도 그날 연회에서 들은건데, 솔직히 듣다가 웃겨서 피식 웃었다. 왠지 멋있잖아. 스카이 나이츠. 창공의 기사. 그리고 나는 그걸로 콜사인을 바꾸자고 건의했고, 사냐 공주는 흔쾌히 허락했다. 내 직책은 말이 부기사단장이지 사냐 공주의 ‘실전 경험 부족’으로 사실 기사단장의 권한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냐 공주를 무시하고 권한 남용을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Roger. Sky 03, taking off.”
관제탑의 이륙 지시에 나는 플랩을 최대로 내린 다음 스로틀 레버를 앞으로 쭉 밀었다. 익숙한 진동소리와 함께 기수의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브레이크가 풀리자 마자 그르렁 거리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충분한 속도가 붙고 나서 몇초 뒤,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하는 하늘로 떠올랐다.
나는 하늘의 기사, 스카이 나이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