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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13 - 운명의 5분


  1
  [급강하 폭격 기사단장, 맥스 레슬리 중령이다. 뇌격기 편대의 장렬한 희생은 전해 들었다. 놈들의 복수는 우리에게 맡기도록!]
  [그...급강하 기사단!]
  후소 제국 항공모함 기동전단의 위에, 급강하 기사단이 나타났다. 우리에게 무전을 보낸 비행대는 다름 아닌, 이륙한 뒤에 헤어져버려 아예 찾지 못한 우리 호넷의 급강하 기사단 소속의 돈틀리스 34기였다. 뇌격기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저공에서 대기하던 제로 전투기들과 대공포들은 아직도 바다를 감시하거나 비교적 저공에서 움직이는 우리 기사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급강하 폭격 기사단의 접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정말, 이건, 행운이다, 행운.
  [창민경]
  제대로 된 대함 공격력을 갖춘 급강하 기사단이 도착했으니,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다.
  “급강하 기사단이 급강하를 시작할 때 까지 최대한 적의 시선을 분산시켜야 한다! 각자 페어로 흩어져서 최대한 저공에서 적의 대공포화를 유도해! 몸으로라도 길을 열라고!”
  내 명령과 함께 우리 기사단의 잔존 기체 8기는 2기씩 느슨한 편대를 형성한 채 부채꼴 모양으로 4갈래로 흩어졌다. 나와 나탈리, 사냐 공주와 에리카 대위가 왼쪽의 카가 쪽으로, 유나 중위와 펠츠 소위, 경화와 지경이는 오른쪽의 아카기를 향해서 말이다. 갑작스러운 반전에 당황하는 제로 전투기들의 요격을 간단하게 지나친 우리는 수면 가까이 날면서 적의 대공포화를 최대한 우리쪽으로 유도했다. 아까와는, 그리고 지금까지 받아봤던 모든 대공포화보다 더욱 치밀한 대공포화가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분명, 오늘 매치 포인트 근처 해역의 하늘은 무척 맑을거라고 했는데, 지금 내게 보이는건 전부 회색 구름들 뿐이니까. 지근탄이 근처에서 폭발했는지 기체가 살짝 흔들렸지만, 아까처럼 피탄당한건 아닌지 기체에는 별다른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급강하에 들어간다. 전원 출력 내리고 플랩 전개해.]
  시간을 끈 보람이 있는지 급강하 기사단의 편대간 무전이 이어폰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날개를 흔들어 모두에게 신호를 보낸 다음 기체를 왼쪽으로 뒤집은 다음 조종간을 당겼다. 수평선이 수직선이 되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방풍창에 반사되어 움직였다. 대공포를 발사하면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구축함을 가볍게 스쳐지나간 우리가 카가와의 거리를 100m 정도 벌렸을 때, 레슬리 중령의 급강하 신호가 들어왔다.
  [전기, 급강하! 탤리 호!]
  돈틀리스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급강하 플랩을 활짝 펼친채, 70도라는 정신 나간 각도로 항공모함을 향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34기라는 가공할 만한 숫자의 ​돈​틀​리​스​…​…​.​아​니​,​ 3기는 급강하를 아직 안했군. 어쨌든간에 31기의 돈틀리스가 카가를 향해 급강하를 시작했다. 게임 끝났다. 급강하 하는 돈틀리스들을 막을 수 있는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1초에 수십미터를 내려오는 돈틀리스들을 무슨 수로 맞춰? 31기라는 가공할 숫자의 과도한 집중 덕분에 몇몇은 급강하 도중 너무 가깝게 다가가서 충돌할 뻔 했지만, 다행히 그런 불행한 사고는 나지 않았다. 선두의 레슬리 중령의 돈틀리스가 가장 먼저 2000피트라는 고도에 도착했다. 급강하 플랩에 찢겨지는 바람의 비명소리와 함께 1000파운드 고폭탄이 동체에서 분리 되었고, 200피트라는 고도에서 수평비행을 회복한 레슬리 중령은 고도를 천천히 높이면서 이탈했다. 항공모함에서 고작 15m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일어났다. 젠장, 빗맞았군. 레슬리 중령의 뒤에 이어 카가에게 폭탄을 전달한 2기의 요기의 고폭탄 2발도 허무하게 바다에서 떨어졌다. 이건 절대 폭격 기사단의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게 아니다. 카가가 무려 32노트나 되는 고속으로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어서 그런거다. 네가 해봐라. 시속 60km로 움직이는, 250m 수준의 작은 표적을 맞추는게 쉬운 일인가. 이게 만약 한두기의 돈틀리스였다면 분명 카가는 쉽게 피해갈 수 있었겠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죽음의 사신은 하나나 둘이 아닌, 열도 아닌, 무려 31기다. 각각의 무장은 약간 차이가 있지만 45kg급 철갑탄부터 시작해서 1000파운드급, 그러니까 450kg급 고폭탄까지, 무려 50여발의 폭탄이 카가의 머리위로, 그것도 폭탄 낭비인 수평 폭격이 아닌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급강하 폭격으로 말이다.
  첫번째 명중탄은 제 6 정찰 폭격 기사단의 기사단장 갈라허 대위가 투하한 500파운드 고폭탄이었다. 나무 비행갑판이 들썩이면서 사방으로 나무 파편을 날렸고, 뒤이어 검은 연기와 함께 시뻘건 화염이 혀를 낼름거리기 시작했다. 갈라허 대위와 그의 요기 2기는 바로 이탈했지만, 그중 하나가 재수 없게 대공포에 맞아버려 격추당해버렸다. 하지만 카가의 행운 아닌 행운은 그 돈틀리스의 격추가 끝이었다. 돈틀리스 하나가 동체에 불이 붙은 채 수면에 격돌한 순간, 7번째로 돌입한 돈틀리스의 500파운드 고폭탄이 전방 엘레베이터를 직격했다. 대폭발과 함께 목재 엘레베이터가 수직으로 떠올라버렸고, 그게 바다로 떨어지기도 전에 또다른 500파운드 폭탄이 함교를 직격했다. 뭐, 그걸로 카가는 끝이군. 함교 인원은 분명 몰살당했을테니, 제대로 된 데미지 컨트롤로 되지 않을거다. 마지막으로 카가의 주변을 돈 나는 아카기의 대공포화를 끌어들이고 있는 미야 중위의 분견대를 지원하기 위해 사냐와 에리카 대위, 나탈리를 돈틀리스들의 호위로 남겨두고 아카기로 향했다. 사냐 공주는 나와 같이 가고 싶은 생각이지만, 나탈리나 사냐 공주는 나를 따라오고 싶은 모양이지만…….. 이탈한 다음 속도를 잃어버린 돈틀리스를 호위하려면 우리 편대에서 최고의 에이스들이 맡아야 한다는 말을 해주자 바로 의욕에 불을 붙이고 천천히 편대를 이루고 있는 돈틀리스의 대열에 합류했다. 탄약이 유폭되는지 등 뒤의 카가에서 연속적인 폭음이 들려왔고,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함대 상공을 덮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게 끝난건 아니었다.
 
  2
  카가에 비하면 아카기는 조금 재수가 없는 경우라고 하겠다. 레슬리 중령 휘하의 31기의 돈틀리스가 카가가 돈틀리스를 노리고 달려든 덕분에 베타샤 소령과 요기 2기, 총합 3기만이 아카기를 공격해야만 했다. 덕분에 미끼, 그러니까 우리들은 시선을 최대한 상공으로부터 돌리기 위해 로켓탄을 쏘는 듯한 기동을 하면서 최대한 적들의 시선을 속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항공모함 주변을 계속해서 돌아다니면서 기총을 쏘고, 폭격을 가하는 척 블러핑을 하고, 적 대공포에게 접근했다가 물러나면서 적 포화를 유도한다거나 말이다. 우리 기사단원들의 이런 자살과도 같은 기동에 적 대공포 사수들과 견시들은 수면 위 400피트 이상으로 눈을 전혀 떼지 못했고, 견시가 카가를 공격하는 돈틀리스들을 보고 시선을 위로 올렸을 때는, 이미 베타샤 소령과 2기의 요기는 이미 급강하에 돌입, 900피트 상공에서 초속 수십미터의 속도로 강하하고 있었다. 이때, 베타샤 대위는 항공모함의 진행방향의 직각으로 폭격에 돌입했는데, 카가를 공격하는 것을 본 아카기가 회피 운동을 시작할까봐 일반적인 급강하 폭격 방법인 수평 방향으로 비행하면서 급강하할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3기의 돈틀리스는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급강하를 시작했고, 베타샤 소령의 500파운드 고폭탄 후부 엘레베이터에, 그리고 요기 켈리 중위의 1000파운드 폭탄이 함체에서 5m 떨어진 곳에서 지근탄을 냈다. 고작 500파운드급 폭탄만이 명중했지만, 그 아래에 대기하던 항공기라도 있었는지 피격 직후 1분도 되지 않아 아카기는 대규모 유폭을 일으키면서 폭발, 함체의 중앙이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캘러한 중령이 이끄는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기사단도 남서쪽에서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양을 소류였다. 아카기에서 유폭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카기보다 남서쪽에 있던 소류에서 3개의 연기 기둥이 피어 올랐고, 뒤이어 9개의 점이 꾸물거리면서 우리를 향해서 다가왔다.
  [엔터프라이즈의 제 18 급강하 폭격 기사단의 갤러한 중령이다. 적 전투기의 추격을 받고 있으니 지원 부탁바란다.]
  “수신! 수고했습니다. 지금 즉시 북쪽으로 빠져나가서 호넷의 급강하 기사단과 합류하세요. 뒤처리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뒤처리 할 수 있는 연료 잔량이 그다지 않지는 않지만, 일단 적 항공모함을 3척이나 격파한 우리 급강하 기사단의 영웅들을 귀환하는 과정에서 허무하게 잃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아직 연료 잔량이 25%를 조금 상회하니까, 운이 좋다면 도착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말이지. 다시 합류한 미야 중위의 핑거 포 대형을 변형해서 나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짠 우리를 본 후소 제국의 제로 전투기들은 일시적으로 물러났고, 우리는 적의 약해진 대공포화를 뚫고 다시 돈틀리스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상실한 돈틀리스는 급강하에서 회복 직후 격추당해버린 갈라허 대위의 요기 1기가 전부였고, 합류한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기사단의 기체 9기와 우리 기사단의 잔존 기체 8기, 호넷의 급강하 기사단 33기를 합쳐 무려 50기라는 대규모 항공기의 군집이 이루어졌다. 비교적 연료 잔량이 많고 기동성이 좋은 우리 기사단은 돈틀리스보다 약간 낮은 고도에서 흩어져서 대기하면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적기들을 견제했고, 돈틀리스들은 4기씩 묶인 핑거포들이 거대한 V 자 대형을 이루어 후방의 7.7mm 대공기총으로 후상방을 감시했다.
  [후상방, 이상 무. 아래쪽만 감시 잘하게, 대위.]
  [걱정 마세요, 중령. 창민경이 잘 지켜줄테니까요.]
  그런말을 하면 조금 낮간지러운데 말이지. 일단 우리 기사단의 기동성이 좋기는 하지만, 모함으로 귀환하는 동안 우리는 4차례에 걸친 적기의 공격을 받았고, 덕분에 우리 기사단의 기체는 적 함대 상공에서 머무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데미지를 받아야만 했다. 제공권 장악이라는 임무였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만, 우리의 임무는 지금 호위고, 호위라는 임무 특성상 적기의 자유 추적이 불가능해 능동적인 전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대신 돈틀리스들의 십자포화에 제로센 3기가 걸레조각이 된 채 간신히 달아났고, 2기가 주익에 불꽃을 달고 격추되었다. 대신 사냐 공주의 전투기에서 유압이 흘러나오고, 에리카 대위의 러더가 날아가버렸고. 정말, 보잘것 없는 피해라면 보잘것 없는 피해지만, 우리는 아직 탄환이 4초분이나 남아있는 2기의 전투기의 작전 수행능력을 잃었다.
  [상태는 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착륙할 때 고생 좀 하겠습니다.]
  러더가 너덜너덜해진 채 힘없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에리카 대위의 기체는 보고만 있어도 안쓰러웠지만, 정작 기체를 점검해본 당사자는 별 상관 쓰지 않는다는 듯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조준할 때 정밀 조정이 힘들겠습니다.]
  조준은 무슨 조준이야. 상태가 그정도로 됬으면 조종이 안되는데 전투 불능이지.
  "대위와 사냐 공주는 전투 금지야. 두사람 다 기체를 돈틀리스 대형 가운데로 옮기라고."
  [에? 저는 아직 조종성이 잘 살아 있는데요?]
  "유압이 언제 다 빠져나갈지도 모르잖아. 그냥 시키는대로 해."
  [에에에~]
  후소 제국의 전투기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냥 조용히 하고 올라 가라고! 확실히,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라고, 돈틀리스 후방 사수 하나가 우리 편대의 8시 방향 위쪽에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제로 전투기를 한기 발견했다. 젠장, 연료도 얼마 없는데!
  [적기 8시 방향, 상방! 단기 입니다.]
  "연료상태는 내가 가장 나으니까 다들 호위 대형에서 벗어나지 말고 대기할 것. 지금 시간부로 사냐 공주가 남은 편대를 인솔해서 모함으로 귀환할거니까, 다들 말 잘 듣고."
  지금 당장 연료 잔여량은 내가 21%로 가장 많다.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귀환할 것을 명령하고 혼자서 단신으로 날아오는 후소 제국의 제로 전투기와 맞붙기로 했다. 탄약이야 조금 모자라지만, 그거야 아껴서 쓰면 될거다.
  [걱정 마세요! 창민경이나 무사히 돌아오시라고요.]
  [맞아. 너나 빨리 돌아오기나 해.]
  어째 다들 인사들이 조금 가시가 ​돋​혔​는​데​.​.​.​.​.​.​?​
 
  3
  대오에서 이탈한 나는 1000피트를 더 상승한 다음 고도 2000피트에서 수평 비행으로 전환했다. 적기보다 대략 200~300피트 정도 더 높은 고도를 속도를 조금 늦추면서까지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선회전에 매우 유리한 제로 전투기와 대적하려면 속도를 올려야 하고, 속도를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 보다 높은 곳에서 먼저 치고 내려가는, 이른바 붐 앤 줌 전술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공랭식 엔진의 회전 피치가 더더욱 올라가면서 줄어들었던 속도도 다시 붙었을 때, 나는 적기와 헤드온 상황을 만들면서 일직선으로 비행했다. 거듭 얘기한 사실이지만, 헤드온은 공중전에서 절대 금기인 상황중 하나다. 일단 발사를 해봤자 엔진에 맞기 때문에 파일럿이 맞을 가능성이 적고, 제로나 블랙캣이나 둘다 공랭식이라서 수냉식 엔진들보다 안정성이 좋기 때문에 별로 효과도 없다. 거기다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충돌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기피해왔던 헤드온을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안그래도 적은 탄환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다. 헤드온 상황에서는 서로를 향해 총질을 잘 하지 않으니까, 굳이 내가 반격을 하지 않고 탄약을 아껴도 저쪽은 내게 남은 탄약의 정확한 양을 알 수는 없겠지. 푸른 하늘의 회색빛 반점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뒤이어 2개의 선이 양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원으로 변했고, 뒤이어 제로센의 전체적인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녀석은 조금 다른 녀석인가 보다. 다른 제로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니,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무려 은색 여우의 노즈 아트가 그려져 있는 제로 전투기다. 최소한 일반적인 파일럿은 아닌가보군. 서로를 향해 마주보고 다가가던 우리 둘은 100m 전방에서 오른쪽으로 선회, 충돌을 피한 다음 서로의 꼬리를 잡기 위한 선회를 시작했다. 어떻게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로 전투기는 무지하게 날카로운 선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차피 이번 선회전에서는 내가 질 수 밖에 없다. 아마 곧 꼬리를 잡히겠지. 내가 노리는건 그게 아니다.
  제로 전투기가 곧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조종간을 약간 당겼고,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예광탄 줄기가 스쳐지나갔다. 좋아. 제대로 내 꼬리를 잡은거지? 그러면 따라와 보라고! 기체를 좌우로 흔들면서 예광탄 궤적을 피한 나는 기체를 그대로 반전시켜 2000피트를 가리키던 고도계가 600피트를 가리킬 때 까지 수직으로 강하했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찰싹, 좌석의 쿠션에 달라 붙었고, 속도계의 바늘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시속 500km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600피트에서 조종간을 잡아당긴 나는 400피트를 더 하강한 다음, 그동안 축적 된 속도로 다시 수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른, 붕 뜨는 느낌이 아닌 보이지 않는 무거운 힘이 나를 조종석에 짓눌렀지만, 나는 이를 악 물고 두 눈을 부릅 뜬 채 스로틀 레버를 최대로 밀었다. 뒤에 적기가 붙었나 안붙었나 확인할 수도, 필요도 없다. 내 직감이 맞다면, 저녀석은 내 기체에 그려진 노즈아트를 보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하나 다행인게 있다면, 블랙캣 전투기가 제로기보다 엔진 추력이 우수하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제원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체감상으로는 그렇다. 봐. 고작 6000피트 올라왔는데 나가 떨어져버리잖아. 추력이 부족했는지 제로기는 새하얀 배면을 보인 채 거꾸로 뒤집어서 바다를 향해 하강하고 있었고, 나는 이 최고의 기회를 잡기 위해 조종간을 더욱 당겨서 적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적기보다 고작 500피트 뒤쪽에 왔을 때, 나는 신중하게 러더를 조작해 조준간의 한가운데 놓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뒤이어, 익숙한 진…….동이 아니라, 어라? 탄약의 잔여량은 분명히 있는데 탄이 나가지 않는다! 어라? 어떻게 된거야? 아무래도 탄이 걸린 것 같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때에 말이다! 내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제로기는 그대로 수평비행으로 전환하면서 급선회를 시작했다. 나도 따라가면서 선회를 시작했지만, 내가 말했던대로 선회전은 제로랑 할게 못된다. 나는 고도를 조금 높이면서 큰 원호를 그린 다음 다시 강하하면서 속도를 회복하는 하이 요요를 사용하면서 까지 최대한 적기의 후방에 붙어있으려고 했지만, 제로의 선회전 능력은 이걸 능가해버렸다. 나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제로기의 기수에서 불꽃이 반짝였고, 뒤이어 깡깡, 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쇳소리가 났다. 괜찮아. 최소한 제로기보다 장갑 만큼은 두터울테니까. 괜찮아, 튕겨냈다. 주익의 20mm가 아니면 괜찮아. 아까 대신 20mm를 맞아준 뇌격 기사단원들에게 감사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뒤쪽의 적을 떼어내기 위해 기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최소한 캐노피에라도 맞지 않는 이상은 괜찮겠……..
  파팍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나고, 순식간에 조종석 안쪽은 밖에서 들어오는 거친 바람이 휩쓸었다. 어디에서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비릿한 피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 냄새의 원인이 내 어깨라는 것을 깨닿는데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야야야……… 더럽게 아프네, 이거. 군청색 제복 위가 곧 붉게 물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탈해서 도망처야만 한다. 물론 그럴리가 없겠지만, 과다 출혈로 죽기 전에 말이다. 다행이 아까의 기동으로 고도를 높혀 놓으게 지금 도움이 되었다. 나는 조종간을 옆으로 눞혀 빙글빙글 공중재비를 그리며, 바로 아래쪽에 있던 구름 속으로 숨었다.
  “나탈리? 나탈리?”
  […….민아? 지금 어디야?]
  “미안…….. 좀 걸릴거 같은데. 도착했어?”
  [함대의 실루엣이 보이는데 까지 도착했어.]
  “미안한데 위치 좀만 알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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