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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0 - 집 나오면 개고생 Part 1


  1
  5월 17일, 에르데 제국의 지나가던 정찰기 하나가 우연히도 후소 제국군이 과나카날에서 건설중이던 활주로를 발견했다. 이 작은 활주로가 빅토리아 대륙의 보급선을 차단할 여지가 있다고 계산한 에르데 제국은 6월 23일, 대규모 함대로 과나카날을 침공했고, 에르데 제국 해병 제 1사단 1만 6천여명의 병력이 과나카날 섬에 상륙, 해안 교두보와 활주로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수척의 항공모함들에서 발진한 수백기의 전투기와 폭격기들, 그리고 빅토리아 대륙에서 발진한 육군 항공대의 폭격기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나게 과나카날의 후소 제국군을 두드렸다. 부족한 물자와 화력으로 급격하게 계획되고 진행된, 술술 풀린다는 뜻의 이른바 ‘신발끈 ​작​(​O​p​e​r​a​t​i​o​n​ Shoe String)’은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 했다. 그렇게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어제 밤에 그대로 산산이 깨져버렸다.
  6월 25일 새벽의 전투 이후, 과나카날 해역에서 에르데 제국군이 갖고있던 제해권과 제공권을 상실해버렸다.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주력 함대는 ‘비열한 핑계’를 대고 도망간지가 오래고, 그들을 대신하기 위해 도착한 우리 44 타격대도 보유기체 8기 중 2기를 상실하는 피해를 어젯밤 해전에 입었으니까. 아, 누가 죽었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우리가 착륙한다는 말에 해병대원들은 정말 열광적으로 환영해주었다. 그들의 유도를 받아 조금 짧은 활주로에 우리가 착륙했고,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아쉽게도 유나 중위의 전투기와 경화의 블랙캣이 활주로의 끝에서 제동에 실패해서 손상을 입었다. 예산과 시간, 아니, 부품만 있어도 고칠 수 있는 사소한 고장이었지만, 해병대에게는 아무런 지원이 없었다. 지원은 커녕 당장 사용 할 수 있는 연료도 얼마 없어서 그나마 남아있는 6기 전부를 투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말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던건 이 둘의 스크랩을 지시해서 나머지 6기의 정비 부품을 구하는 것 밖에 없었다.
  “……이게 단가?”
  상황을 설명하고 부임 신고를 하는 내게 사단장 반데그라프 해병 소장이 한 말이었다. 뭐, 기껏 온다는 ‘항공 지원’이 전투기 8기, 그것도 2기는 스크랩처리 되어버린 반쪽짜리 기사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굉장히 실망스러웠겠지.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 ESS 주디케이터는 박살났고, 페이지 대령이 지휘하는 44 타격대는 지난 밤의 생존자들을 구조하자마자 잠수함의 추가적인 공격을 피해 남쪽으로 함수를 돌렸으며, 어젯밤 부터 보급품을 양륙하고 있던 수송선들은 모두 보급품을 바다에 내던진채 빅토리아 대륙으로 나몰라라 도망가버렸으니까. 덕분에 60일치 식량 중 해병들이 건진건 노획한 후소 제국 식량까지 합쳐서 고작 30일치에 불과했고, 중장비는 M3 리틀 경전차 5대, 그리고 후소 제국에게서 노획한 불도저 하나가 전부였다.
  그렇게 부족한 보급품과 식량으로 허리띠를 졸라가며, 우리 44 기사단과 해군 공병대대 SeaBees 600명, 그리고 해병 1사단의 1만 6천명의 집단 야외 노숙이 시작되었다.
 
  2
  과나카날 섬에서의 생활은 매우 단순했다. 오죽하면 우리가 딱 타임 테이블에 맞춰서 생활을 하겠는가. 전쟁이란, 언제나 변하는 격변의 지옥과도 같은 것이지만, 지금 만큼은 달랐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정을 준수하며 살 수 있었다. 적에게 포위당한 채 보급품이 끊긴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하게 정리해주자면, 우리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7시
  우리는 일어난다. 해병대원들은 야간 경계조와 교대해서 활주로를 중심으로 구축한 반원형 방어선에 배치된다. 그동안 나는 우리 기사단원들을 지휘해 해병대원들과 함께 참호를 파거나 대공포를 설치하는 등 간단한 잡일을 한다. 나나 나탈리는 워낙에 인력이 부족한 홈 아일랜드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이정도의 간단한 노동은 일도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손에 흙을 묻혀본 적이 없는 고귀하신 사냐 공주나 에리카 소령은 조금 힘들어했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우리의 일손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인걸. 아마 우리가 항공 기사들이 아닌 ​정​비​대​원​들​이​었​다​면​,​ 분명 반데그라프 소장은 우리를 해병대원들과 같이 방어선 방어 임무에 투입했을거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반데그라프 소장은 전차 소대의 정비대원들에게 사령부와 우리 전투기 쉘터 주변의 경계를 맡겼으니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 반데그라프 소장 앞에서, 내가 두사람이 황족과 귀족이라고 빼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사람이 내가 말하자 힘들어하면서도 열심히 해준다는 것이지만.
  “창민경이 말하는건데, 제가 거부할 수 있나요?”
  사냐 공주가 이렇게 말하면서 내게 대꾸했다. 뭐야, 너는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거냐? 뭐, 어떻게 되었든간에 내 말을 아무 군소리 없이 따라준다는건 고마웠기 때문에 나는 사냐 공주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그걸 본 나탈리가 살짝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해병대원들을 도와 참호를 파면서 아침 3시간을 보낸다. 어떻게 이걸 매일 하냐고? 여기는 열대지방이다. 비가 자주, 그리고 많이 오는 덕분에 툭하면 참호는 물웅덩이로 변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빗물에 토사가 휩슬려 기껏 파놓은 참호선을 붕괴시켜버리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참호를 보수해줘야만 했다. 또한, 우리가 방어해야 하는 면적이 넓다는 것도 한몫 했다. 활주로 동쪽의 테나강으로 부터, 레이나 곶에 달하는, 20km나 되는 방어선은 우리에게 충분한 부담이 되었다. 전문 공병들인 ​시​비​즈​(​S​e​a​B​e​e​s​,​ 해군 공병 대대)가 도와준다면 빨리 마무리 되겠지만, 그들은 폭격과 포격의 피해를 복구하고 활주로를 확장하는 것도 바쁘다. 결국, 우리는 남아나는 인력으로 이 모든 것을 때워야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삽질을 열심히 하다보면, 3시간이라는 시간은 후딱 지나가고 식사시간이 찾아온다.
  오전 10시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시간. 한정된 식량 사정 덕분에 우리는 하루에 두끼, 그것도 평소 배급량의 3분의 2수준의 식량을 배급받으면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식량들이 후소 제국의 식량을 노획한 것이라는 사실. 해병대에서 보급받은 식량들은 대부분 통조림이나 비스킷 같은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식량들이라, 반데그라프 소장은 노획한 후소 제국의 식량을 먼저 해치우기로 결심했다. 적은 식량과 많은 입. 양을 늘리려면 후소 제국의 식량인 쌀로 할 수 있는건 몇 되지 않는다. 그래, 우리는 거의 미음에 가까운 묽은 죽을 먹어야만 했다. 그중에는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지. 아니, 차라리 아침 메뉴가 ‘카세움(우리 세계의 치즈 같은 것) 안 곁들인 죽’이라던가, ‘빠따따 없는 죽’이라던가, ‘볼레툼(우리 세계의 버섯 같은 식용 균류) 안 곁들인 죽’이라면 차라리 웃기지도 않아. 그정도는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문제는 이거다. 하필이면 사냐 공주가 먹는 식판에 덜은 죽에서 구더기가 나올건 또 뭐냐고?
  ​“​꺄​.​.​꺄​아​악​?​!​”​
  꿈틀꿈틀, 죽 한가운데서 수영하는 구더기를 보고 사냐 공주는 놀라 자빠지고, 나는 취사병의 멱살을 붙잡고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따질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사냐 공주가 아무리 후궁의 딸이라지만, 공주는 공주잖아? 반은 황제의 피잖아? 최소한 황족으로서의 대우는 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아니, 그런걸 모두 떠나서, 먹을거에 장난치지 말라고! 차라리 할거면 나한테 하던가! 하지만 이렇게 내가 따져도, 그 취사병의 대답은 참으로…… 뭐랄까, 걸작이었다.
  “좋은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그냥 드십시오.”
  ……취사병, 내가 당신 이름이 베어 그릴레인거, 기억하고 있겠어.
 
  이런 쓸데없는 에피소드들 말고도, 우리에게는 조금 큰 문제가 있었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에르데 제국민들이군. 홈 아일랜드에서는 한정적인 경작지 크기 때문에 농지 대비 수확량이 높은 쌀을 많이 먹었고, 덕분에 우리는 후소 제국의 쌀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애벌레가 나온건 논외로 치고). 문제는 에르데 제국의 리히트들. 이들은 빠따따로 만든 빵을 먹는다. 당연히 후소 제국의 쌀은 입에 안맞을 수 밖에. 더군다나 사냐 공주의 경우, 황족이라서 평소에 먹던 음식들과는 다른 거친 음식이라는 점 때문인지 중간에 병에 걸릴 정도였다. 가벼운 복통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 한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고. 뭐, 사냐 공주가 아픈 덕분에 나는 일을 빠지고 사냐 공주를 간호했다. 사실 의무병은 따로 있고, 사단이 상륙했다보니 의무관도 있지만, 사냐 공주는 도통 내가 아니면 말을 하려고 들지를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남게 되었다. 뭐, 덕분에 나는 일도 빠지고 좋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냐 공주의 복통은 꽤나 빨리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소 제국 음식이 입에 안맞아 잠깐 비실비실 해졌던 것 같지만, 내가 간호하면서 먹여주자 평소에는 한그릇도 못비우던 사냐 공주가 무려 세그릇이나 비웠다. 오래사는 리히트들이라도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받는 60세의 사냐 공주가 나한테 칭얼대면서 빨리 죽 달라고, 현기증 난다고 떼를 쓰는 모습, 상상할 수 있겠는가? 뭐, 일단 잘 먹었고, 덕분에 빨리 나았으니까 그걸로 된거겠지. 중간중간 내가 먹여줄 때마다 사냐 공주의 얼굴이 조금 빨개지는 것 같았지만, 그건 죽이 뜨거워서 그랬을거야, 분명. 그게 틀림 없어, 응.
 
  식사시간이 끝나는 시간은 오전 11시. 그 직후 우리는 단체 휴식에 들어간다. 물론 방어선 경계를 맡은 해병대원들은 이쯤에서 다른 대원들과 교대하고 돌아와서 식사를 시작하지만. 우리가 해 쨍쨍한 11시에 집단으루 휴식을 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우니까. 섭씨 40도를 넘어가는 엄청난 폭염에, 바다에서 빠져나온 수증기로 인한 높은 습도 아래서는 아무리 해병대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작업을 제대로 전개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반데그라프 소장도 투입을 시도했지만, 그중 몇몇이 일사병으로 비전투 손실을 내자, 결국 가장 더운 11시 부터 1시까지는 휴식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휴식이라고 해서 우리가 놀 수 있는건 아니지만. 이런 지옥과도 같은 세상에 아무런 겁대가리 없이 찾아온 우리를 환영하듯, 우리가 휴식을 취한지 30분이 조금 지나면 후소 제국의 폭격기들이 나타난다.
  애애애앵
  “공습이다! 각자 위치로 들어가!”
  귀를 찢는 날카로운 공습 경보가 대기를 흔들면서 울려퍼졌다. 하지만 자신들의 방공호와 참호에 들어가는 해병대원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후소 제국의 폭격은, 해병대원들이 긴장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적의 공격에 살 의지를 찾는 상황이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최소한 ‘살아남을 의지’를 찾는다는 점에서 그게 어디야?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아무런 방해 없이 활주로를 폭격하고 돌아가는 후소 제국 폭격기들에 대해 복수심과 증오를 불태우는 우리 기사단과 이들의 눈먼 폭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공호로 기어들어가는 해병대원들에게나 한정된 이야기다. 자신들이 힘들여 만들어놓은 활주로를 박살내는 후소 제국에 대한 공병대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로 높았으니까.
 
  공기를 가르는 프로펠러의 비행음이 들려오면 해병들은 딱 4문 설치한 5인치 대공포의 고각을 최대로 올린 뒤 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깨끗할 정도로 맑은 한여름의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느때와 다름없이 북쪽에서 접근한 후소 제국 폭격기들은 아군 대공포화를 무시한 채 우유자적 날아다니며 잘 만들어지고 있는 활주로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500파운드 고폭탄이 활주로 주변에 작렬할 때마다 사방으로 흙먼지가 날렸다. 수십미터, 아니, 수백미터 높이로 불기둥과 흙기둥이 솟아오를 때마다 내 주변에서는 시끄러운 고함과 비명이 이어졌다. 누가 맞은건 아니다.
  “이 빌어먹을 후소 제국 놈들이!”
  “기름만 있었어도 네놈들을 요절냈을 것이거늘!”
  “으아아악! 쳐죽일 놈들! 당장 엔진 끄고 내려와!”
  사냐 공주, 에리카 소령, 유나 중위는 조금 감정이 격해졌는지 폭탄을 투하하고 날아가는 후소 제국 전투기들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면서 난리를 치고 있다. 이들을 말리는 것도 내 책임이지만…… 첫날 말리려다가 오히려 유나 중위에게 얻어맞고 그만두기로 했다. 이렇게 후소 제국군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자유롭게 우리를 폭격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우리가 보유한 전투기 8기 중에서 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건 6기 뿐. 2기의 전투기가 비상 착륙시 제동을 못해서 망가져버렸다. 그리고 2기는 즉시 내 명령으로 스크랩 처리 되어 부품 동류 전환을 위해 해체되어버렸고,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건 고작 6기의 전투기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있는 전투기 6기가 모두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애시당초 우리가 이렇게 멍하니 땅에 붙어있지 않겠지. 우리에게 부족한건 에리카 소령이 소리쳤듯 기름이었다. 총탄이야 해병대의 중기관총 탄약과 호환이 되니 아직 조금 넉넉하지만, 당장 우리 수중에 있는 기름은 전투기 2기의 1회 출격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아는건지 우리를 폭격해대는 후소 제국은 폭격기 3~4기, 호위기 2~4기의 소수 폭격대를 보내서 우리를 괴롭혔고, 고작 10기의 전투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귀중한 기름을 낭비할 수 없었던 반데그라프 소장은 우리의 출격을 금지시켰다. 기사단 내에서도 반발은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점심 폭격이 끝나면, 우리는 인력을 동원해서 부서진 활주로와 참호선의 보수를 시작했다. 활주로의 보수는 간단하다. 파여진 흙구덩이 안으로 흙을 집어넣고 고르게 다지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해병대원들과 함께 활주로를 보수한 뒤, 우리 기사단은 우리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바로 전투기 정비. 언제 출격할지는 모르지만, 전투기라는건 언제나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가장 상태가 좋은 사냐 공주의 전투기와 에리카 소령의 전투기의 보수를 명령했고, 나머지 전투기들은 엔진에 보호 피막을 입히고 숲속에 몰래 지어놓은 전투기 쉘터에 넣어놓았다. 나중에 쓸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진채, 탄약까지 장전해 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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