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0 - 집 나오면 개고생 Part 2


  3
  오후 6시. 우리는 전부 불을 끄고 등화관제를 시작한다. 소등의 이유는 잘 알고 있겠지? 적의 야습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적 지상군의 움직임은 관측되지는 않았지만, 후소 제국 해군이 문제였다. 제해권과 제공권을 빼았긴 우리는 후소 제국 해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단이 없는거다.
  밤이 되면 시작되는 후소 제국의 공격은 두 종류가 있다. 첫번째 방법은 바로 산발적인 폭격. 순양함에서 출격시킨 수상기 한두기가 우리 머리위로 날아다니면서 우리에게 산발적으로 폭탄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속으로 접근한 순양함들과 구축함들의 8인치와 5인치 함포로 우리의 교두보를 포격하는 것이고.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가 위험하다. 정찰용 수상기 – 수상기인건 어떻게 아냐하면, 엔진 소리가 다르다 – 에 탑재할 수 있는 폭탄의 양을 끽해봐야 작은 75kg 고폭탄 4발에 불과하다. 그정도 폭탄으로 폭격해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의 섬을 정확하게 폭격한다는건 불가능하다. 그것도 정확하게 참호와 분산배치한 물자 집적소들을 노린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지. 우리 세계에서 독일 제국에 대한 야간 폭격 작전을 실시했던 영국 공군이 폭격의 부정확도를 만회하기 위해 폭장량을 늘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 세계의 영국도 못했는데, 후소 제국이 핀포인트 야간 폭격을 해낸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가 이 수상기 폭격으로 입은 피해는 심해봐야 밤에 잠을 설치는 것 밖에 없다. 간간히 들려오는 폭발음이 신경을 긁고 잠에서 깨나게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만 한다. 하지만, 포격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최소 5인치, 재수 없으면 8인치급 포탄들이 말 그대로 강철의 비처럼 우리의 머리위로 쏟아지는거다. 포탄의 비가 과나카날섬을 열심히 두들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고작해봐야 머리를 참호속에 처박고 철모를 쓴 채 저 눈먼 폭탄들 중 하나가 우리 머리위로 떨어지지 않기를 비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 6월 28일 밤에는 안그래도 얼마 남아있지 않던 재수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쏘지마! 우리 위치를 확인하는거니까!”
  어두컴컴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수개의 탐조등이 강렬한 빛을 우리쪽으로 쏟아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해병대원 몇명이 기관총구를 그쪽으로 돌렸지만, 장교들이 그들을 재빨리 제지했다. 실루엣 크기로 봐야 구축함 정도가 분명한 작은 함선 수척이 해안가에서 우리쪽으로 탐조등을 비추고 있었으니까. 잘못쏴서 총구 화염이라도 발생했다간, 바로 후소 제국의 집중 포격에 노출될 판이었다. 절대 안되지. 나는 사냐 공주에게 주변 해병대원들의 동요를 잠재우게 시킨 다음, 후소 제국 함선의 실루엣을 잘 아는 에리카 소령과 함께 적 함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구축함정도 밖에 안보입니다.”
  “구축함이 끝이야?”
  “하지만 소령님, 어제와 그저깨도 구축함만 왔었으니까, 오늘은 중순양함이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에리카 소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와 나탈리가 말했다. 구축함의 5인치 고폭탄이야, 참호속에 머리를 처박도 벌벌 떨고 있으면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5인치가 아닌, 8인치라면? 8인치 고폭탄에 꽉꽉 우겨넣은 고폭탄 장약의 폭발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심과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글쎄요. 아마 구축함 정도로는 화력이 부족한걸 알고 보냈을수도…….”
  에리카 소령이 말을 흐리면서 쌍안경에 눈을 갖다대었다. 하지만 달빛도 없는 밤에 수백미터 밖에 있는 물체의 특징을 판독한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뭐 보여?”
  “……아니요.”
  나도 에리카 소령을 따라서 쌍안경에 눈을 갖다대었다. 역시, 칙칙한 검은색만 보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끽해봐야 구축함들의 실루엣과 그 뒤에 보이는 거뭇거뭇한 거대한 물체 두개 뿐이다.
  …
  …..
  ………
  응?
  “소령?”
  “예, 부단장님?”
  “저 세번째 구축함 뒤로 보이는 검은색 물체, 뭔지 알겠어?”
  우리를 향해 탐조등을 비추고 있는 적 구축함의 숫자는 4척. 그 중 세번째 구축함 뒤쪽에 무엇인가 조금 커보이는 실루엣 둘이 보였다.
  “중순양함……”
  “확실해?”
  에리카 대위가 답했지만 나는 조금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중순양함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큰 것 같았거든.
  “워낙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확언을 드리기는 어렵지만요, 저건 중순양함일 것 같습니다. 구축함과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모르지만, 그에 비에서 최소한 2~3배는 길어보이니까요.”
  쳇, 하고 혀를 차는 에리카 소령. 사실 나도 동감이다. 중순양함 2척의 8인치 포탄들이 머리 위로 떨어져내리는 상상을 해보라고! 소름끼친다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저것들은 제대로 된 관측을 수반한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쏴대는거니까 어디로 맞을지도 모르고. 사실은 그게 가장 무서운거지만.
  “그런데…… 중순양함치고는 조금 커보이지 않아?”
  내 지적에 에리카 소령은 한번더 쌍안경을 두 눈에 갖다 대었다.
  “조금 그런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마 후소 제국군이 전함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후소 제국군은 전함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니까요.”
  그래. 전함은 아끼겠지. 전함이란 그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이동하는 해상요새와 마찬가지인 것이니까. 그래, 설마 전함이 여기에 왔겠어? 고작 비행장 포격에?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응?”
  “전부 엄폐해애애애애!”
  에리카 소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평선 근처에서 붉은 화염이 뿜어져나왔다. 그를 신호로 우리는 재빨리 고개를 숙인 채 참호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참호에 내가 들어가는 순간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을 때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안그래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자욱이 일어나고,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처럼 진동이 지각을 흔들었다. 포탄의 충격에 우리는 참호 속에서 나자빠진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었고, 그런 우리의 위로 아까 공기중으로 튀어올랐던 흙먼지들이 내려왔다.
  쾅
  콰쾅
  콰과쾅
  수십발의 포탄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쏙 빼놓았고, 잠깐 사격이 멈춘 틈을 타서 고개만 살짝 내밀어보려던 나는 두번째 일제사격의 충격파에 그대로 참호 안으로 나자빠져버렸다. 뭔가 부드럽고 뭉클한게 등 뒤에 닿는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차…창민경? ​무​…​무​거​…​.​.​꺄​아​악​!​”​
  또 한번 터졌다.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내 고막을 때릴 때마다 청각 신경들은 뇌와의 접속을 끊어버렸고, 그럴 때마다 나는 순식간에 눈을 뜬 귀머거리 상태가 되어버리고는 했다. 귀 속에서 삐- 소리가 울리면서 사방이 마치 끊기는 필름처럼 끊어진 움직임으로 천천히 흘러갔다. 솟아오르는 흙먼지 기둥. 고폭탄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공간을 가르는 충격파. 그 가운데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화염기둥. 그 모든건이 천천히 조각난 채 흘러갔다.
 
  그렇게 5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새벽 5시까지 계속된 후소 제국 해군의 함포 사격은 우리들에게 잠을 잘 시간을 전혀 허락해주지 않았다. 더불어, 우리를 밤새 괴롭힌 것으로 모자라 우리에게 할 일을 더 떠넘기기도 했고 말이다. 포격 받은 피해는 복구를 해줘야겠지. 그게 어디가 되었든 말이다. 음, 일단은 일어나기부터 해야겠지. 왜냐하면, 어젯밤새 내 등에서 느껴지던 부드럽고, 뭉클하고, 코를 간질이는 기분 좋은 냄새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창민경, 이제 그만 일어나주실래요?”
  ……그래서 일단 빨리 일어나야만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사냐 공주의 작은 몸을 짓누르고 있던 것이었다. 절대 의도하지는 않은 것이지만, 그런건 나탈리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지.
  “창민아?”
  “나탈리, 언제나 얘기하는거지만, 이런 상황은 절대 내가 의도한게 아니야.”
  그러니까 좀 봐주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나탈리에게 나의 필사적인 변명이 먹혔는지 나탈리는 내 얼굴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러니까, 숨결이 닿을 정도로 말이야.
  “창민아.”
  ……내 이름을 부를 뿐인데 왜 이렇게 식은땀이 나는거지?
  “그..그렇게 만지고 싶으면 그냥 내것을 만져. 그렇게 상황을 봐서 음흉한 짓 하지 말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말하는 나탈리. 그러니까 나는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니까, 나탈리. 나 생각해주는건 고맙지만, 나는 그런 변태가 아니라고.
  “……”
  그러니까 반데그라프 소장님, 그만 노려보셔도 됩니다. 공주님 성희롱한거 아니에요.
 
  대충 우리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예로 6월 28일, 그러니까 어제의 일을 들기는 했지만, 지난 6월 25일부터 거의 비슷하게 일어났으니까, 큰 상관은 없다. 음, 다만 포격의 경우 어제는 지난 3일간의 포격과 달랐지. 중순양함이라고 생각했던 후소 제국 함선들은 사실 전함들이었다. 그걸 파악했던건 우리가 아침 햇살에 비치는 후소 제국의 함선들의 실루엣을 좀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을 때였고. 뭐, 이미 늦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포격을 받아버린건 이미 받아버린 것이고, 활주로의 100m 정도의 구간이 박살이 나버린 것 또한 이미 일어난 일이다.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갖고 왈가왈부 해봤자 우리가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지금은 피해 복구에 주력하는 수 밖에.
  “부상자들은 야전병원으로, 전사자들은 시신을 수습해 양지바른 평지에 뉘어놓고, 나머지 모든 병력들은…….”
  반데그라프 소장이 해병대원들에게 수습 명령을 내리는 동안, 나는 우리 기사단원들을 소집해서 포격 받은 우리 전투기 쉘터로 달려갔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우리 기사단에 배속된 정비대 같은건 없다. 그래서 우리 전투기는 우리가 챙겨야만 한다. 포탄이 떨어진 위치가 어째 영 좋지 않았거든. 그리고 그 예상은 역시나 적중해버렸다.
 
  쉘터의 상태를 보자마자 우리는 그 앞에서 걸음을 우뚝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몇몇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고, 몇몇은 머리를 쥐어 뜯었다. 유나 중위와 나탈리는 화가 난 채 방방 날뛰고 있고, 에리카 대위는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버렸고, 사냐 공주는……… 다 타버려 검게 그을린 금속 조각을 줍고 있군…… 난장판이 따로 없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전투기는 6기다. 원래라면 8기겠지만 2기는 착륙 중 손상으로 스크랩, 부품 공급을 위해 해체되었다. 나머지 6기의 전투기는 자기 동생들의 부품을 받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쉘터 안에서 연료를 공급받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말이다. 그 귀중한 6기의 블랙캣 전투기는 2기씩 나뉘어 3곳에 분산배치되었다. 바로 어제 같은 포격에 대기하기 위해서 말이다. 누란, 계란을 한 곳에 쌓아놓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귀중한 자원을 집중배치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분명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보유하고 있던 전투기 6기가 어제 포격으로 한번에 날아갔을테지. 분산배치가 되어 있었떤 덕분에 우리는 단 2기의 전투기를 상실하는 것으로 그칠 수 ​있​었​다​.​.​.​.​.​.​.​ 한번에 전력의 3분의 1이 날아간 것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잖아. 아직 우리에게는 4기의 전투기가 남아있잖아!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각오는 했었지만 직접 당하고 나니까 김이 빠지기는 한다. 포탄이 쉘터를 직격한 덕분에 쉘터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흙더미와 크레이터, 그리고 어젯밤까지만 해도 쉘터의 일부였던 나무 조각과 23기의 후소 전투기를 격추시켰던 블랙캣 전투기 2기였던 금속 파편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블랙캣의 푸른색 도장의 알루미늄 외피와 조종타 케이블, 전선과 볼트, 리벳과 캐노피 조각들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수리는 커녕 재생도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2기의 블랙캣 전투기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완파 판정을 내리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6월 29일 아침, 우리 기사단의 가용 전력은 정규 편제의 33% 수준인 4기로 줄어들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