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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0 - 집 나오면 개고생 Part 3


  4
  “…….”
  나와 사냐 공주가 기사단 상황 보고서를 가져갔을 때 가장 먼저 반데그라프 소장이 보인 반응이 이거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보고서를 간단하게 훑어본 다음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 그거 뿐이었다. 하긴,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전투기 전력이 6기에서 4기로 줄어들었는데, 당연한 반응이겠지. 뭐, 기름도 없어서 2기 밖에 못날린다고 지적하면 나도 할말은 없다. 사실이니까. 하지만 기름만 있으면 출격 가능한 항공기 2기가 그대로 사라졌다는 것은 그것대로 심각한 전력 손실이다. 순간 전력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전력의 손실일테니까. 물론, 우리에게 항공유가 제대로 보급된다는 전제 하에서나 말이지. 된다면.
  “하아……”
  반데그라프 소장이 한숨을 내쉬자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니까. 전투기 2기가 완파당한게 내 잘못은 아니다. 내가 전투기들의 위장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고, 지속적인 엄폐를 위해 활주로 주변의 숲에 속에서 지속적으로 주기 위치를 바꾸었다. 적의 정찰기가 지나간 다음이라면 더더욱 빨리. 이정도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투기 2기를 잃었다. 단순하게 운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반데그라프 소장의 문책을 걱정하는게 아니다.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겠지. 일단 현장을 감독한 사람은 나고, 내가 싫다고 빠져버리면 사냐 공주가 책임지게 되어버리니까, 그걸 피하려는 생각은 없다. 내 걱정은, 반데그라프 소장의 결정이었다. 인원수는 고작 8명에, 해병 1사단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정비대나 헌병대, 기지 경계 부대조차 없다. 말 그대로 몸뚱이만 달랑 있는, 그것도 완편 상태의 3분의 1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고 그중에서 보급 문제로 고작 2기만이 딱 1번 출격할 수 있는게 우리 기사단의 실정이었다. 사실상 이정도면 부대는 전투 수행 능력을 잃고 해체, 해병 1사단에게 흡수당할 수도 있는 실정이었으니까. 우리 기사단원들 중 절반 이상이 귀족 계급 출신이라는 것도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몇일째 아무런 보급을 받지 못한 해병 1사단에게 보병 8명이라는 것은 그것대로 중요한 전력이 될테니까. 지금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건 제공권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공습조차 막아내지 못하는 완편조차 되지 않은 항공 기사단이 아니라, 조직적인 참호 방어전을 수행해낼 수 있는 1개 분대급의 수비병력이겠지. 그리고 내 생각은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공주 전하께는 죄송하지만, 역시 부대의 해체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반데그라프 소장의 말에 사냐 공주는 고개를 푹 숙였고, 나도 살짝 고개를 떨구었다. 그동안 100% 좋은 일들과 좋은 추억만이 있던건 아니었다. 사파이어만 기지에 있는 수백명의 정비대원들과 경계병력들은 페룸 독트린이 발표된 이후 유나 중위와 함께 우리를 죽이려고 했고, 에리카 소령은 처음에 나와 나탈리를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고 부르면서 하대하고 멸시했었다. 사냐 공주는…… 사냐 공주하고는 아예 첫만남부터 이상했고. 그때는 전부 좋지 않은 기억들이었다. 지금은? 그냥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추억의 하나일 뿐이지. 내 목숨이 날아가려고 한걸 두고 ‘추억의 하나’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간에. 나에게 있어서, 이 황실 근위대 직속의 44 기사단이라는 곳은 필그림 홈아일랜드에서 퇴출당한 나에게 남은 마지막 장소다. 필그림에게는 동족을 배신한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에르데 제국 귀족들에게는 적색의 평민 기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내가 안전하고 마음을 놓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게 44 기사단이다.
 
  그리고 지금 그게 없어지려고 하고 있다.
 
  “불만인가, 소령?”
  나는 포커 페이스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감정이 그대로 표정에 다 드러나지. 그런 내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었는지 반데그라프 소장이 책상 위에 놓은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귀 기사단이 보유한 인원은 항공기사 8명, 정비대 전무, 부대 경계부대 전무, 수송대 전무.”
  그거야 그렇지. 다들 사파이어만에 남아있으니까.
  “귀 기사단이 보유한 전력은? 현재 보유중인 블랙캣 전투기 4기 중 작전 가능한 전투기는 고작 2기. 그것도 갖고 있는 유류의 총량은 전투기 2기가 통상 출격 1회 하고 나면 바닥날 정도 밖에 없고, 기총탄도 부족하지.”
  “…….”
  “자네 기사단의 확장 편제인 타격대에 대한 보고는 읽지도 않았네. 지금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니까. 귀중한 항공모함을 1척 상실하고, 아군 함대가 두들겨 맞고 있는데도 미적거리다가 중순양함 4척이나 격침당하지 않았나!”
  그게 100% 우리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반데그라프 소장에게는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누군가에게 짜증내고 싶다는 거겠지. 뭐, 어차피 여기서 가장 두들겨 맞기 좋은 사람은 나니까. 일단 제국의 일원도 아니고, 같은 병과도 아니고, 소속도 타군이니까.
  “……소장, 말이 조금 심한거 아닌가요?”
  사냐 공주는 다르게 생각하는거 같긴 하지만 말이야.
  “공주 전하께도 드리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
  하지만 반데그라프 소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공주 전하께서는 44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십니다! 도데체 언제까지……”
  “저기, 소장님? 그냥 혼내실거면 제가 대신 받으면 안될까요…….”
  쩝. 아무리 사냐 공주가 총 책임자고 기사단장이라지만 내가 한 결정때문에 혼이 난다는 것은 싫다. 자신의 말이 잘렸다는 것에서 불쾌감을 드러내던 소장은 한숨을 푹 쉬더니 내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좋았어. 맞아도 내가 대신 맞고, 혼나도 내가 대신 혼나는거야. 뭐, 어때? 한두번 당해보는 것도 아닌데.
  “어쨌건, 내가 하는 말의 의미 정도는 알아들은 것 같으니 질책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의논해보지.”
  아, 그러니까 기사단의 해체건 말이군.
  “명목상으론 이게 월권이라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네. 나는 지금 군복 벗을 각오하고 자네에게 말하는거야.”
  황실 근위대 직속의 부대를 해병대의 소장이 해체해버린다라. 분명 작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각오한채 이 일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말이기도 하지.
  “보급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고작 1번 출격 가능한 연료를 가진 기사단을 유지하기 위해 병력을 할애할 수는 없네.”
  “……”
  “우리의 임무가 비행장을 지키는 것이라지만, 당장 그곳에서 운용할 전투기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44 기사단이 보유한 모든 장비의 무장을 탈거해서 육상 운용하는게 더욱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
  ……100% 틀린 말은 아니니 뭐라고 답하기도 껄끄럽군.
  “기름 없는 기사단은, 존재가치가 없네. 그건 귀관도 잘 알고 있겠지.”
  출격을 하지 못하는 전투기는 그저 고가치 지상 표적에 불과하다. 물론 잘 알 수 있지. 하지만 언제라도 보급이 되면 우리는 당장에라도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놈의 보급만 잘 된다면.
 
  빌어먹을 해군 놈들은 왜 경계를 그따위로 해서 우리를 고생시키는거야?
 
  응? 잠깐만. 그말인 즉슨, 우리가 존재해도 될 가치를 증명한다면 된다는 말이지?
  “저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면 되는 것입니까?”
  “응? 그…그렇지?”
  반데그라프 소장이 떫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틈을 나는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저희가, 저희 44 기사단이 항공 기사단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면 되는거지요?”
  “그렇다니까.”
  반데그라프 소장의 대답에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기울였던 몸을 앞을 숙였다. 이렇게 된 이상 답은 간단하다. 출격 해야지.
  “이봐, 자네! 지금 아직 다 안끝났어! 어딜 가는건가?”
  “저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러요. 가자,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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