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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0 - 집 나오면 개고생 Part 4


  5
  “나참….. 어떻게 우리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반데그라프 소장의 말에 사냐 공주는 깨나 화가난 모양이었다. 반황제파라서 틈만 나면 황제파와 근위대의 흠집을 잡으려든다나 뭐라나? 사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 일단 우리 기사단의 소속 자체가 군이 아닌 황실 근위대니까. 저쪽에서는 우리를 대하기 껄끄러운 면도 있을거다. 나는 없지만. 그리고 반데그라프 소장의 말도 100%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소장이 나가면서 읽어보라고 건네준 서류철에는 소장이 생각했던 대략적인 계획이 적혀 있었다. 일단, 우리 기사단은 완전히 해체되는건 아니다. 고작 해병대 소장이 황실 근위대 소속의 전투부대를 해체시킨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거지. 소장은 우리 전투기의 기관총을 탈거한 다음, 4정씩 묶어서 4개의 4연장 대공포를 만들 계획이었나보다. 그 대공포의 조작원은 우리 기사단원들이 맡고. 그의 계획 맨 마지막 단계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비고: 언제라도 보급이 이루어져 44 기사단이 4 소티분 이상의 무장과 연료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 즉시 44 방공포병소대를 해체하고 44 항공 기사단으로 복귀, 방공 요격 작전을 시작한다’
  즉, 반데그라프 소장의 계획에서 우리는 단순히 ‘항공 작전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부대가 정리’될 때까지 대공포병들로 임무를 바꾸는 것 뿐이었다. 빠른 순발력과 적기의 비행 코스를 예측하고 쏘는 예측 사격에 뛰어난게 우리 항공 기사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썩 나쁜 생각도 아니기는 하지.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 반데그라프 소장이 잘못한게 있다면, 그점을 분명히 하지 않음으로서 사냐 공주의 화를 돋우는데 일조했다는 것이지만.
  “으아아, 정말! 본국에 연락해서 지휘관을 교체해버릴까요?”
  “……전투 중에 지휘관을 교체하는 법이 어디에 있어?”
  그랬다가 130척에 달하는 함대를 말아먹은 국가도 있다고.
  “하지만! 이랬다가는 우리 44 기사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요! 절대로 그런일이 일어나서는 안돼…….”
  사냐 공주가 내게 폭포수 처럼 말을 쏟아내다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앞서서 그녀의 투정을 들어주던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우르우르거리면서 울려고 하는 사냐 공주가 있었다. 아니, 왜 우는건데?
  “서…설마….. 창민경은 우리 기사단이 사라지는게 좋은거에요? 그런거에요?”
  ……뭔소리야, 갑자기?
   
  대충 사냐 공주를 달랜 나는 우리의 ‘격납고’에 도착했다. 사실 격납고라기 보다는 지푸라기로 지은 움막에 더 가깝지만. 왜, 아기돼지 3형제에 나오는 지푸라기 움막 말이야.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꽤나 간단하다. 우리 전투기들이 여기에 있으니까.
  “오셨습니까?”
  “왔어?”
  형식적인 당직 근무를 맞고 있던 에리카 소령과 나탈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가볍게 에리카 소령에게 목례를 한 다음, 우리 전투기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지금, 출격 가능하지?”
  “예?”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건가? 그렇게 난해한 말은 없는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잘 못들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어보는 에리카 소령을 위해 나는 한번더 입을 열었다.
  “지금 출격 가능하냐고. 무장이랑 연료들, 다 채워져 있는거지?”
  “무장은 나탈리 중위가 채워놓았지만, 연료는 유폭의 위험으로 전부 빼놓았습니다.”
  “주유하는데는 얼마나 오래 걸려?”
  “글쎄요…….한 20분 정도?”
  “무슨 일이야? 출격하려고?”
  나탈리가 의아해하며 묻자 나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니까.
  “너, 우리에게 남은 연료가 저게 다라는거, 알고 있지.”
  끄덕.
  “그런데도 출격하겠다고?”
  응.
  “하아……”
  그래, 나탈리. 나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우리가 우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우리 기사단을 해체하겠다는데. 아니, 뭐, 정확하게는 해체까지는 아니지만. 뭐 어쨋건간에 말이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단장님.”
  틀린말도 아니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한정된 연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의 항공세력에게 핸더슨 비행장의 항공 세력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각인시켜줘야만 한다. 그래야지 지금처럼 폭격기들이 아무런 호위도 없이 유유자적 날아와서 우리에게 폭탄을 선물하고 가지는 않을테니까. 그러자면 적기들이 왔을 때 최대한 뜨겁게 환영 인사를 해줘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연료가 많을 때나 할 수 있는 전투 초계를 하려는 것이니까, 나탈리의 대답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반드시 해야만한다. 그래야지 우리의 존재 이유, 적의 항공 세력의 억제라는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테니까. 내 말이 끝났을 때, 나탈리는 아직도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고, 에리카 소령과 사냐 공주도 조금 찌뿌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예상했던 반응이니까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소령, 급유 시작해줘.”
  ​“​…​…​알​았​습​니​다​.​”​
  에리카 소령과 나탈리가 급유기를 갖고 급유를 하는 동안, 나는 그동안 먼지만 싸인 채 놀고만 있었떤 블랙캣 전투기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조종석의 하단과 조종석 방탄판 후방에 있는 2개의 연료통에 두사람이 쉬지않고 연료를 퍼넣었지만, 최대 144 갤런, 545리터의 항공유가 들어가는 거대한 연료탱크는 좀처럼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꽉꽉 채워넣으려면 20분이 아니라 30분도 더 걸리겠는데?
  “……나름 열심히 채워넣고 있거든?! 너도 돕던가!”
  으흠….. 그냥 조용히 있자. 나탈리가 화나면 그것대로 무서워지니까. 최종 체크리스트를 점검하면서 기체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던 내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대기를 찢으며 울려퍼지는 날카로운 고성의 사이렌. 소리만으로도 근육을 굳게 만들고 심장 박동을 뛰게 만들고 몸에 전율을 흐르게 만드는 마성의 BGM.
  “고…공습 경보?!”
  당황한 에리카 소령이 소리쳤을때야 나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6개의 하얀 비행운. 초록색 동체에 칠해진 빨간색 원이 뜻하는 사실은 간단했다. 적기의 공습이다!
  “이…이런! 아직 1기도 다 채우지 못했는데?!”
  “자…잘못하다가 유폭되는거 아니야, 이거?”
  당황해하는 에리카 소령과 나탈리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바로 조종석의 안전벨트를 매기 시작했다. 동시에 연료를 주유하고 있던 사냐 공주와 나탈리, 그리고 에리카 소령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고 말이다.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군인을 진정시키려면 명령이 최고다.
  “소령! 급유기 치우고 들어있는 연료 제거해! 나탈리! 전투기 앞에 받혀둔 받침목 좀 치워줘!”
  “예….예! 알겠습니다.”
  “알았어!”
  나탈리야 워낙 덤벙대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에리카 소령까지 당황할 정도라니, 그동안 우리가 너무 군기 빠지게 지냈나보군.
  “출격할꺼야! 다들 비켜!”
  엔진 스로틀을 올리면서 나는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 나탈리에게 소리쳤다. 셋은 내게 뭐라고 고함을 ​질​렀​지​만​…​.​.​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들릴리가 있나. 나는 그냥 알았다는 뜻으로 수신호를 보낸 다음 헬멧을 쓰고 무전기를 연결했다. 음. 오랜만에 써보는 헬멧이군.
  “여기는 스카이 1. 적 폭격기 요격을 위해 긴급 발진하겠다.”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지른 나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밟고 있던 브레이크를 풀었다. 어차피 허가 안내줘도 날아갈거니까. 참나, 그동안 땅에만 처박혀있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했다고. 오늘 이 기회에 제대로 풀어버리지 않으면 언제 또 비행할지 모르니까, 하고 싶은 만큼 실컷 해보자!
  ……연료는 30분 분량밖에 없지만.
   
  덜컹거리며 흙길 활주로를 활주하던 내 블랙캣 전투기는 속도가 어느정도 붙자 기수를 하늘로 쳐들고 날아올랐다. 하지만 예전처럼 속도가 팍팍 붙으면서 고도를 올릴 수 없었다. 막 이륙한데다가 예열도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엔진에 물도 오르지 않은 상태니까. 하지만 적기가 눈 앞에 있는 상태에서 엔진 물오르기를 기다린다고 마냥 한가하게 있을 수는 없잖아? 나는 블랙캣 전투기의 엔진을 살살 구슬려가며 적 폭격기들이 접근하고 있는 고도인 5000피트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급강하와 상승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속도를 쌓은 내가 적기를 공격하기 위한 위치로 진입했을 때, 적 폭격기들은 벌써 활주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적기의 수는 여섯. 기종은 G4M 베티.  선도기는 벌써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군. 풋바를 차면서 조심스럽게 크로스헤어를 적 폭격기의 엔진에 맞춘 나는 적 폭격기의 실루엣이 조준경 안에 한가득 참과 동시에 조종간의 트리거를 가볍게 눌렀다. 투투퉁, 경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50구경 기관총 4정의 발사음이 조종석을 가득채웠다. 노란색 예광탄 줄기들이 베티의 엔진을 향해 날아갔고, 가장 후미에서 막 폭탄을 투하하려던 베티의 엔진에 마법처럼 빨려들어갔다. 베티의 꿰뚫린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오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는지 마지막 6번째 베티는 폭탄을 투하하지 못한채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나머지 5기는 전부 왼쪽으로 선회했는데 말이다. 후방 기총이 있어도 이렇게 혼자서 뚝 떨어져 있으면 그건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찰나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는 공중전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려버리면 그건 바로 죽음을 뜻하는거지. 십자 조준간에 베티를 둔 채 선회하는 나를 향해 상처입은 여섯번째 베티가 기총탄을 쏘기 시작했다. 예광탄 줄기가 베티의 후방 포탑을 떠나 나를 향해 다가왔지만…… 포구 속도가 느린건지 방어총좌를 떠난 예광탄들은 얼마 날아가지 않고 지면을 향해 휘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쏴대니까 놀라서 순간적으로 피한 내가 멍청해지잖아. 적의 방어총좌가 쓸모 없다는 것을 알아낸 나는 살짝 고도를 낮추어 블랙캣을 가속시킨다음 다시 기수를 들고 베티의 새하얀 배면을 향해 날아갔다. 베티의 후방기총좌가 보지 못하는 사각.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배면이 조준기 한가득 찼을 때 나는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50구경 철갑탄이 베티의 새하얀 배를 찢어버렸고, 내 기총탄이 명중한지 1초도 지나지 않았을 때 상처입은 베티는 후방 동체가 끊어진 채 균형을 잃고 과나카날 섬 앞의 푸르른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격추, 격추다! 이번이 몇번째 격추인지 잘은 기억 안나지만.
  [43번째! 43번째 격추에요, 창민경!]
  [창민아! 너 이제 제국 9위야! 대단해!]
  ……제국 9위 에이스의 격추 스코어가 ​4​2​.​5​였​지​…​…​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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