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0 - 집 나오면 개고생 Par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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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적기 하나를 격추시킨 나는 바로 엔진 스로틀을 올리고 꽁무니를 보이며 도망가고 있는 베티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추격 하고 싶었고, 추격 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거지. 남은 연료 잔량은 어느새 15% 이내. 아까 이륙할 때 연료 잔량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꽉차있던건 아니었을거다. 격렬한 공중전 기동을 하고 나면 꼭 일어나는 일이라서 별로 놀라지도 않았지만…… 사실 놀랐다기보다는 아쉬운거겠지. 오랜만에 하늘로 올라왔는데 별로 날지도 못하고 다시 내려가야 하다니…… 쳇. 뭐, 별수 있나? 이렇게 된 이상 5% 남을 때까지 섬이나 한바퀴 돌고 와야지.
[아니, 창민경.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산책이라니?]
[빨리 들어와! 치사하게 너만 혼자서 날…….]
교신을 껐다. 시끄러우니까. 나도 가끔은 속세에서 벗어나서 고독을 즐기고 싶다고…….는 개뿔. 그냥 오랜만에 나온 김에 조금 오래 있고 싶을 뿐이다. 일방적인 교신 이후 프로펠러 피치와 엔진 회전수를 조절해 속도를 실속 바로 직전까지 낮춘 나는 기수를 돌려 섬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왕복 엔진의 실린더가 돌아가는 은은한 진동소리를 들으며, 섬의 서쪽 끝의 잔디밭 너머로 천천히 해가 져가는 저녁 바다를 바라보았다. 노란색과 붉은색, 주황색과 보라색이 서로서로 어루어진 저녁 바다와 하늘의 풍경은, 어느때처럼 아름다웠다. 초록빛 잔디밭 너머로 펼쳐진 수면 아래로 천천히 잠기며 내려가는 햇살에 비친 일렁이는 보랏빛의 바닷물결이 천천히 과나카날섬과 사보섬을 휘감으로 흘렀고, 주황색 하늘에는 회색 물감을 얼룩덜룩 칠한 것처럼 군데군데 조각 구름들이 떠있었다. 그리고 수면 위로 머리만 빼꼼 내밀은 붉은 태양은 자신이 떠있는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잡하고 추악한 일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그저 인자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차갑고도 따듯한 모습에, 나도 순간적으로 모든걸 잠시 잊을 수 밖에 없었다. 황제와의 대화, 사냐 공주와의 기억, 그리고 나탈리와의 추억까지 전부 잊고, 지금 내 발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희망이라고는 찾아봐도 눈꼽 만큼도 없는, 광기로 가득찬 살육의 현장에 대해서 잠시 잊고 그저 넋을 놓고 노을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내 귀로 들려오는건 엔진 실린더에서 전해져오는 부드러운 진동소리 뿐.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하는 무전도, 지원을 요청하는 무전도, 적을 저주하며 정찰 결과를 보고하는 무전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동안 겪어왔던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된 듯한 해방감이 내 몸을 감싸 내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세계에서 혼자서 도려내어진 것 같은, 편안하지만 불편하고, 안심되지만 불안하고, 진정되지만 긴장되는 고독감이었다. 그리고 그 고독감은 20분이 넘는 내 비행 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보랏빛 바다에 그어진 새하얀 항적 몇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전기의 전원을 켜고 후두 마이크의 송신버튼을 누른 나는 저 항적들을 유심하게 살피며 조용히 무전을 날렸다.
“여기는 스카이 01. 함종을 알 수 없는 함선 8척으로 이루어진 신원 미상의 함대가 섬의 동쪽 곶으로 접근 중. 다시 한번 반복한다. 8척의 적 함대가 우리 교두보 동쪽으로 접근 중. 본기는 연료 부족으로 귀환하겠다. 스카이 01, 아웃.”
“부르셨습니까?”
“……빨리도 왔군, 소령.”
“죄송합니다. 부대 내에서 사소한 문제가 있어서요.”
사소한 문제…… 뭐, 문제는 문제지. 나는 블랙캣 전투기가 땅에 닿기가 무섭게 바로 전투기에서 끌려나왔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사냐 공주와 나탈리에게. 두사람다 웬지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있더라고. 뭐, 내가 혼자서 출격했다가 격추라도 당하면 어쩔거냐, 꼬리라도 잡히면 누가 구해줄거냐, 전투가 끝났으면 냉큼 자기 품으로 돌아와야지 어딜 쏘다니냐는 등 온간 잔소리가 이어졌다. 왜 내 엄마도 아닌 사람들이 내가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지 걱정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이들의 잔소리가 5분도 넘게 이어진 덕분에 나는 반데그라프 소장의 호출에 늦어버렸다. 소령이 소장이 부르는데 늦다니,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이냐, 응?
“공주님과 프로필라이넨 중위와 노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하게. 지금은 전시고 여기는 최전선이니까.”
제가 논게 아니라 잔소리 듣고 온건데요, 라고 말대꾸 하고 싶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반데그라프 소장의 눈에서 느껴지는 웬지모르게 느껴지는 살기 때문에 나는 그냥 참을 인자를 마음에 새기며 참기로 했다. 참을 인자 세개면 사람도 살린다잖아.
“일단은 자네에게 아까 했던 말은 보류해두기로 하지.”
아까 했던……말?
“자네 기사단 해체건 말일세.”
아, 그거. 역시, 사람은 행동을 해서 입증해야 한다니까. 그리고 그거 내 기사단 아닌데?
“귀관이 오늘 보여준 행동은 충분히 용기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네. 특히 우리 해병대원들은 그동안 못보던 아군 비행기가 나타났다며 좋아하더군.”
흠. 하긴, 우리가 날아본게 오랜만이기는 하지. 그동안 먹어던 눈치밥을 한동안 먹지 앟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웬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건 그렇고,”
나를 바라보던 반데그라프 소장이 두 손의 깍지를 끼며 내게 물었다.
“적 함대를 보았다고?”
정확하게는 신원 미상의 함대이지만, 적임이 틀림 없었다. 먼저 가장 큰 이유는, 제해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호위 함대도 없이 이 위험한 해역에 나올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엔터프라이즈를 위시한 주력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저 멀리 빅토리아 시티나 사파이어만에서 함재기와 연료를 재보급 받고 있을텐데, 그들도 없이 여기에 나올만한 간덩이 부은 함장은 없겠지. 나라도 안그러겠는걸. 두번째 이유는 이들의 상륙 지점이었다. 신원 미상의 함대가 상륙한 곳은 바로 우리 비행장에서 동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곶. 아군이라면, 바로 우리에게 달려왔을테니까.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웬 초인의 등장이었다.
“제이콥 보우자요?”
“그래.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민지인 빅토리아 대륙에서 온 해안 감시원이다.”
해안 감시원들이란 훈련받은 민병대원 정도라고나 할까? 과나카날에 상륙한 1만여명의 해병대원들은 대부분 비행장을 중심으로 구축함 타원형의 방어선에 붙박혀 있었고, 정찰조들은 해안에 상주시키는 대신 현지인들과 식민지인들의 자원을 받아 이 해안 감시원들로 훈련시켜 섬의 해안선을 감시하게 했다. 보우자 상사는 그중 한사람이었고.
“적의 상륙지점을 발견한건가요?”
“발견….이라고 해야하나? 그가 담당하고 있던 구역이 마침 적의 상륙 장소였다. 적의 상륙을 목격한 상사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이동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그때 재수없이 후소 제국 해군 육전대원들에게 걸려버렸다. 그리고 도데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포로의 옷을 벗기던 그들이 그의 요의 속에서 나온 에르데 제국기를 발견한 직후, 그들은 보우자 상사를 고문하며 해병대의 방어선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우자 상사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그의 용기와 충성심, 그리고 인내심을 높이 산 후소 놈들은 보우자 상사의 얼굴과 가슴을 총검으로 찌른 다음 나무에 묶어두고 가버렸다고 한다. 분명 모두가 곧 죽을거라고 생각 했겠지. 일반적으로 얼굴과 목, 가슴을 총검으로 찌르면 죽는다. 문제는 보우자 상사가 후소 제국군이 생각했던 것 보다 초인이라는 사실이었지만. 보우자 상사는 자신을 묶었던 줄을 풀고 피투성이인 몰골 그대로 정글 속을 달려 해병대의 교두보에 다달았고, 반데그라프 소장 앞에서 직접 보고를 마친 다음에야 의무대로 갔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 초인이 2m가 넘는 장신의 커다란 녹색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많은 않은가보지.
“여하튼 지금 보우자 상사는 의무대에서 치료를 하긴 했네. 하지만 아무래도 살아남는건 힘들것 같다고 군의관이 그러더군.”
자상을 입은 곳이 얼굴과 목, 가슴 같은 급소라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건 여기는 열대지방이다. 그것도 보급이 끊긴 전투 지역이고. 부족한 보급품 목록 내에서는 필요한 의약품도 없을 뿐더러, 열대지방이라는 환경 덕분에 상처가 덧날수도 있다. 위생적인 환경? 그런건 없고. 제국의 공주가 진흙바닥의 참호에서 포격에 덜덜 떨면서 자는 상황에서 일개 병사에게, 그것도 제국민도 아닌 식민지 주민을 위해 위생적인 환경이 조성될리가 없지. 애시당초 이런 상황에서는 불가능하기도 하고. 빨리 후송해서 제대로 된 의료시설로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게 반데그라프 소장의 말이었다. 아, 물론 그놈의 보급이 된다면 말이지.
보우자 상사의 보고가 들어온지 30분도 되지 않아, 반데그라프 소장의 명령으로 급파되었던 해병 수색대가 방어선 안으로 귀환했다. 분명 나갈 때는 10명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9명이네. 정찰대는 테나 강이 흐르는 엘리게이터 크릭을 넘어 후소 제국의 선발대를 찾다가 적의 정찰대와 조우해버렸다. 적의 기습 공격에 이쪽 해병대원 하나가 쓰러지기는 했지만, 수색대의 소대 지원 경기관총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은 교전 시작 5분만에 전멸해버렸다. 아군 전사자를 처리하고 적의 서류 한장을 노획한 수색대는 적의 본대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냅다 방어선 안쪽으로 들어왔고, 노획한 서류는 바로 정보과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생각보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자, 다들 잘 들어. 오늘 밤에서 내일 아침 새벽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적의 공격에 대비해 반데그라프 소장이 내린 명령을 전파하도록 할테니까.”
우리 44 기사단은 기본적으로 항공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항공 기사라는 말은 말 그대로 ‘기사처럼 우아하게 전투를 해라’라는 뜻에서 부르는 것이지만, 기사라는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항공 기사들은 기사에게 꼭 필요하다는 근접전과 육전 훈련도 받는다. 주 이유는 전투중 항공기에서 탈출한 다음 적을 피해서 생존하는 것이지만. 아, 도데체 언제부터 기사들이 우아하고 정당하게 전투를 치뤘다는지 물어보면 지는거다.
간이 움막 안의 나무상자 위에 받아온 지도를 펼쳐놓은 뒤, 나는 손가락으로 테나 강을 짚으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 해병대원들의 방어선이 전개되어 있는 곳은 테나 강이야.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구축함 8척을 통해 후소 제국군이 상륙했어. 인원 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못잡아도 1개 연대급일거야.”
노획한 문서는 28연대라고 나와 있었다. 구축함 8척에 1개 연대가 분승할 수 없으니까 실제로는 그 선발대겠지만, 어쨌든 단대호는 연대급이다. 충분히 경계할만한 일이다.
“그러면 저희가 할 일은 방어선 증강인가요?”
에리카 소령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우리가 아무리 육상 전투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가장 잘하는건 공중에서 적기를 격추하는거다. 더군다나 항공 기사 하나를 양성하려면 몇년의 시간과 예산이 드는 일인데, 그런 사람들을 알보병으로 운용할 멍청한 지휘관은 세상에 별로 없다. 거기다 항공 기사들은 귀족 계급의 사람들인데, 자기를 일반 보병으로 사용하면 기분이 좋을리도 없다.
“우리는 그쪽에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론, 우리는 사단 본부의 경비 병력들과 함께 H 중대를 구성, 사단 최후의 예비대로 남을테지만, 이건 말 그대로 ‘최후’니까 방어선이 조금 위태위태하다고 바로 투입되지는 않을거야. 그리고 그 방어선도 이미 굉장히 증강되었고.”
반데그라프 소장은 적이 연대급이라는 보고를 받자마자 사단에게 남은 모든 가용 중장비들을 테나 강의 해병 11연대 2대대 병력쪽으로 밀어주었다. 덕분에 해병 11연대 2대대에는 임시나마 37mm 대전차포 8문, 75mm 야포 4문, 105mm 야포 3문, 5인치 대공포 5문, M3 스튜어트 경전차 5대가 배치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포구를 동쪽으로 돌린 채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들을 노리고 준비하고 있었다. 즉, 우리카 투입될 만한 일은 그렇게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만약에라도 적이 방어선을 뚫고 쇄도할 경우 헌병대와 합세해 서쪽 방어선으로 부터 지원부대가 올 때까지 적을 붇을어 놓는 역할이었다. 말 그대로 최후의 예비대니까.
“우리는 비행장 외곽에 각자 개인호를 파고 그 안에서 대기할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암구호 확실하게 외우고, 무장은 제대로 점검해둬. 여자들 부터 갈아입고 여기로 30분 이내로 모이는거야. 알았지?”
여성진들이 나가기가 무섭게 나는 남은 기사단원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근접전을 치뤄야 한다면, 가벼운 복장이 좋겠지. 지난번 특공 작전때 워낙 안좋은 경험을 많이 한 덕분에 어떻게 해야지 근접전을 최대한 유리하게 치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나는 무기를 집어들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무기들은 몇개 안된다. 하지만 얼마 없는 무기들 중에서도 나는 레이피어 만큼은 제외했다. 근접전을 할 때는 냉병기가 좋기는 하지만 말이야, 나는 검술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굳이 근접전을 해야 한다변 반자동소총이나 기관단총, 아니면 하다못해 권총이 훨씬 유리하고. 그러니까 패스. 내가 선택한건 스프링필드 소총과 관급 권총으로 나온 .45 구경의 M1911 권총 1정, 그리고 대검이 전부였다. 스프링필드 소총이 볼트 액션이라서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빨리 자동 권총으로 대응한다면 어떻게든 막아볼 수는 있겠지.
아, 반데그라프 소장이 우리에게 구식 무기를 떠넘긴게 아니다. 정말 우리에게 당장 갖고 있는 물건들을 그대로 내어준 것 뿐이다. 에르데 제국 해병대는 제작된지 30년도 더 지난 스프링필드 볼트 액션 소총과 수냉식 기관총을 운용한다. 왜냐고? 신품 무기들은 아직 이쪽에 보급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신발끈 작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급하게 빨리빨리 진행된 작전이다보니 당장 보유하고 있었던 구식 무기 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거다. 그나마 희소식인건 기관총이 수냉식이라서 장시간동안 사격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살이지만…….. 뭐, 일단은 두고 보자. 수냉식 중기관총은 최소한 수량만큼은 충분하니까.
“준비 됐어?”
내가 막 채비를 마쳤을 때 나탈리의 고개가 텐트 안으로 빼꼼 비집고 들어왔다. 애냐?
“뭐야, 보통은 여자애가 그렇게 하면 귀엽다고 한다고.”
……나탈리. 내가 너를 여자로 볼리가 없잖니. 내게 있어 너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인데, 그런 마음이 들리가 없잖아?
“……준비 끝났으면 나오기나 해, 이 바보야.”
갑자기 차가워진 말투로 내게 쏘아붙인 나탈리가 휙 등을 돌린채 찬바람을 씽씽 풍기면서 가버렸다…….내가 뭘 잘못했나?
“부단장님, 나중에 뒤처리 어쩌시려고……”
펠츠 소위, 잡담 그만하고 준비나 하지.
준비가 끝난 우리가 텐트를 나왔을 때 이미 여성진들은 준비가 끝나 있었다. 에르데 제국 기사들은 레이피어와 스프링필드를 들고 나왔고, 나와 나탈리만 레이피어 대신 대검과 권총을 부무장으로 선택했다. 나탈리도 아마 나와 같은 이유겠지.
“부단장님?”
“응?”
“레이피어는 어디에 있습니까?”
“안챙겨왔는데.”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불편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사냐 공주는 동의하지는 않는가보다.
“아니, 기사가 기사의 상징인 레이피어를 들고 나오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무슨 소리라니? 나는 백병전 훈련을 대검과 소총으로 받았거든요?!”
“아니, 왜 멀쩡한 레이피어를 놔두고 대검을 쓰는건데요?!”
사냐 공주가 충격을 받았는지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에리카 소령의 부축(…)을 받아 공주의 개인호로 들어갔다. 나는 나머지 기사들을 각자의 개인호로 돌려보낸 다음 아직도 토라진채 흥흥 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나탈리의 손을 잡은 채 내 개인호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웬지 동쪽 하늘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