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2 - 라이벌 Part 1
1
투투투투퉁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하얀색 그림자 안으로 기관총탄을 쏘았다. 쳇. 늦었나?
“나탈리!”
[오케이!]
짧은 선회를 마친 나탈리가 내가 놓친 적기를 향해 달려들었고, 큰 원을 그리며 기수를 돌린 내가 나탈리의 6시를 엄호했다. 제로기의 후방을 장악한 나탈리의 블랙캣이 주저없이 기총탄을 사방에 흩뿌렸고, 날개가 아작나버린 적기는 별다른 회피기동조차 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불덩어리가 되어서 떨어져버렸다.
[아싸~ 하나 격추!]
“아싸가 아니야! 지금 우리의 목표는 폭격기지 제로기가 아니라고!”
핸더슨 비행장으로 접근해오고 있는 베티들을 몸으로 호위하고 있는 제로기들. 이틀 전이었다면 우리가 숫적 열세로 접근해보지도 못하고 기수를 돌려야 했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보급도 어느정도 되고 있고, 전력도 증강되었으니까. 우리 기사단 소속 전투기 4기와 37 기사단 소속 긴급 대응 편대 6기의 합동 공격은 베티 5기를 호위하는 제로 8기에게는 악몽이나 다름 없었다. 당장 도움되는 전투기들만 세어봐도 10 대 8. 란체스터 법칙을 적용하면 100대 64의 비율이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뭐, 란체스터 법칙은 양쪽이 같은 조건이라는 것을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그런 조건까지 세세히 따지고 들어가자면 우리 기사단의 잔존 항공 기사 넷 전부 못해도 10기는 넘게 격추시킨 베테랑들이다. 저쪽도 뛰어난 훈련을 받은 정예들이겠지만 우리 만큼은 아니라고!
“사냐?”
[따라 붙고 있어요. 폭격기에 돌입할게요.]
나와 나탈리의 편대보다 조금 높게 날고 있던 사냐 공주의 편대가 기수를 쳐들고 고도를 높힌다음, 그대로 폭격기들을 향해 내리 꽂혔다. 베티 폭격기의 후방 방어 총좌가 열심히 저항을 했지만……. 느리다. 저거, 웬지 기관총이 아닌 것 같아. 뭐, 대응과 연사 속도가 느리다면 우리에게는 훨씬 감사할 일이지. 먼저 돌입한 사냐 공주가 후방 기총 터렛을 깨버림과 동시에, 에리카 소령의 예광탄 빛줄기들이 오른쪽 엔진을 꿰뚫었다. 사방으로 흩날리며 퍼지는 금속 조각들이 햇빛을 반짝이며 흩어지고, 원 샷 라이터라는 별명 답게 한방에 불이 붙어버린 베티 폭격기는 시뻘건 화염에 휩싸이면서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다른 2기의 베티가 커다란 폭발과 함께 허공에서 폭발해버렸다. 펑! 소리를 내면서. 그 밑으로 지나가며 환호성을 질러대는 37 기사단의 블랙캣들이 지나갔고 말이야.
[우리도 질 수 없어!]
“나…나탈리?”
갑자기 무슨 승부욕에 불타는 것인지 나탈리의 전투기가 베티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나탈리의 양쪽 주익에서 연기가 남과 동시에 나탈리 앞의 베티의 날개에서도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펑! 그 위를 지나가던 사냐 공주가 날린 일격에 그 베티 폭격기도 대폭발을 일으키며 박살나버렸다.
[아자! 2 대 2!]
……누구랑 경쟁하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베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위기들도 대부분 떨어졌고, 동료들도 격추당한 판국에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기수를 돌렸지만……. 늦었다. 나를 필두로한 블랙캣 전투기 3기가 달려들었으니까. 기체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엔진에서 연기가 나고, 꼬리날개의 절반이 날아간 그 베티는 우리의 집중 공격을 받아 결국 과나카날 섬 앞의 푸른 바다에 퐁당 빠져버렸다. 음…. 그런데 이거 격추는 누구 킬마크로 들어가는거지?
[오! 창민경!]
[잘했어! 또 킬마크 추가네?]
음….. 좀 애매한데 말이야….. 뭐, 내려가면 알아서 해결 되겠지.
2
…….는 개뿔. 해결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분위기만 더 심각해졌다. 논쟁의 요지는 마지막 베티. 그걸 우리 44 기사단, 정확하게는 내가 격추했느냐, 아니면 37 기사단, 정확하게는 기사단장 켈더프 중령이 격추했냐가 오늘의 문제, 되시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일일히 전과 따지는건 딱 질색인데 말이야. 누가 격추하면 어떠냐, 격추만 되면 그만이지.
물론 사냐 공주나 다른 사람들은 정반대의 생각인가보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마지막 베티를 격추한건 창민경이라니까요? 여기 켈더프 중령도 물론 명중탄을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유효타를 날린건 창민경이었다고요!”
“맞아요, 소장님. 창민이가 격추한게 맞다니까요!”
“…….”
골치 아픈 듯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반데그라프 소장님. 죄송합니다…….라고 하기에도 조금 뭣한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뭐, 내게 왜 자기 기사단원들 간수 못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기는 하…..가 아니라, 나는 기사단장도 아니잖아!
“…….”
알겠어요, 소장님. 말려볼게요.
“저기…. 사냐?”
“잠깐만요, 창민경. 이 파렴치한 작자들을 가만히 둘 수가 없네요.”
파…파렴치한……
“아니, 그러니까…… 그만 좀 하라고.”
“왜요?”
“왜요라니.”
저기 반데그라프 소장님의 얼굴을 좀 보라고.
“경, 경은 화나지도 않나요?”
“내가 왜?”
“창민경의 공을 뺐으려고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전하, 전하께서 착가하고 계시다고 몇번을 말씀드립니까! 그건 우리 기사단장님의 공이지 저런 필그림 떨거지의 공은 아니라고요!”
…….떠…..떨거지? 이봐요, 마울러 대위. 아무리 같은 부기사단장이라고 해도 내가 계급은 높거든? 말 좀 가리지?
“떨거지? 이봐요, 마울러 대위! 지금 창민경을 떨거지라고 한건가요? 나, 에르데의 제 6 황녀 사냐의 제 1 기사인 창민경을?”
“예. 틀리ㄴ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전하께서도 저희 기사단장님의 공을 뺏으려고 하는데다가 이런 전시에 여자들에 둘러싸여서 지내는 필그림 떨거지 초 절정 호…….”
마울러 대위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캘더프 중령이 얼굴을 때려서 뒤로 날아가버렸으니까. 음, 솔직하게 말해서 조금 아파보이지만 쌤통이다. 자업자득이니까.
“쓸데없는 인신 공격은 하지 말도록, 대위.”
“죄…..죄송합니다.”
코피를 주르륵 흘리면서 대답하는 대위가 안 안쓰러워 보인다. 아, 글쎄 자업 자득이라니까.
사냐 공주의 화는 그정도로 풀리지는 않은 것 같지만서도.
“대위, 군법 회의에 회수하도록 할거에요. 상관 모독 및 황실 모독죄로 말이에요!”
“저…..공주 전하. 황실 모독죄는 이미 처벌하지 않은지 100년이 넘었습니다만….?”
“쳇”
에리카 소령이 아니었다면 정말 군법회의까지 갈 모양이군. 슬슬 이쯤에서 정리하는게 좋겠다. 전시에 적전을 눈 앞에 두고 우리끼리 싸우는 것도 모양새 빠지니까 말이야.
“좋아요. 군법 회의까지 가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그만.”
“에? 창민경?”
사냐 공주를 저지하고 나선 내가 켈더프 중령 앞에 섰다. 손에는 격추 보고서를 들고 말이다.
“소장님?”
“…..뭔가?”
“이번건 중령님의 격추 기록으로 인정해주십시오.”
“괜찮겠나, 소령? 공주 전하께서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인데말이야.”
“그건 제쪽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중령님게서는 마울러 대위의 언행만 신경써 주십시오.”
잠깐 고민하던 표정을 짓던 켈더프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잠깐만요, 창민경! 그런게 어디있어요?”
여기 있다. 나는 반데그라프 소장과 켈더프 중령에게 가볍게 목례를 올린 다음 뒤에서 시끄럽게 앵앵거리는 사냐 공주의 팔을 잡고 본부 천막을 빠져나왔다.
“……창민경! 이거 놓으세요!”
기지 뒤쪽의, 조금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을 때야 나는 사냐 공주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사냐 공주는 굉장히 불편하고 불만이 많은 눈치. 딱 얼굴에 써있구만. ‘나 화났소~’하고 말이야.
……그래봤자 이렇게 작은 애가 그러면 그냥 심술부리는 것 같아 귀엽기만 하지만.
“화났어?”
“몰라서 물어요?”
……아니.
“아니, 창민경,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뭘?”
“에르데 황녀의 제 1 기사가 어떻게 일반 장교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다는거죠? 거기다 그건 분명히 창민경이 격추한 것…….”
아아…. 그러니까 시끄럽다니까……
“차…창민경?”
슬적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위에 올려놓았다. 약간 진정이 되는건지 잠깐 말을 멈춘 사냐 공주의 머리를 나는 쓱쓱 쓰다듬기 시작했다.
“괜찮아.”
“에? 하….하지만 창민경……”
“그게 내 격추든, 저쪽 격추든, 어쨌든 격추만 되면 되는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우리랑은 달리 저쪽은 일정 전과를 올리면 후방 근무를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조금 전과 정도야, 양보해도 되잖아.”
우리 기사단, 우리 44 기사단은 절대로 전선에서 빠질 수 없다. 장비 가동률이 30%가 되어도, 20%가 되어도, 아니, 심지어 모든 장비를 잃어도 우리는 전선에서 빠질 수 없다. 제국의 제 6 황녀가 지휘한다는 그 상징성과 특수성 때문이다. 사냐 공주가 살아 있는 한, 우리 기사단은 날아올라야 한다.
하지만 일반 기사단인 37 기사단은 다르다. 이쪽은 ‘평균 격추수’를 달성하거나 일정 소티를 출격할 경우 거의 반 강제적으로 후방 근무로 돌려지게 된다. 켈더프 중령 같은 오랜 고참병이면 이제 그 후방 근무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을거고, 그렇다면 고작 한두기 더 격추했다고 우리가 딱히 손해보는건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남아 계속해서 싸울 수 있으니까. 어차피 갈 사람, 조금 양보해주는 것도 나쁜 생각만은 아니다.
……..사냐 공주는 그걸 정반대의 말로 알아 들은 것 같지만.
“호오…… 역시 창민경이네요. 제가 그 사람을 싫어하니까 빨리 격추수를 몰아줘서 후방 근무로 돌려버리자는 거죠?”
……아닌데요.
순수했던 사냐 공주가 언제부터 이렇게 삐뚤어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아니라고 말하기도 조금…..그렇군. 내가 자기 생각을 했다고 멋대로 착각해서 좋아하는데 거기에 대놓고 찬물을 끼얹기도 그렇잖아,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