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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3 - 한밤중의 불청객 Part 4


  5
  불편했던 하룻밤이 지나고 또 다시 날이 밝았지만…… 전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날짜만 달라졌지 하는 일은 똑같은걸. 푹푹찌는 날씨에, 도저히 사그러들 것 같지 않은 짜증나는 더위. 거기에 매일매일 놀려와서 신경을 긁어대는 후소 제국의 폭격기들, 플러스 밤마다 와서는 몰래몰래 포격하고 도망쳐버리는 후소 전함들까지. 매일 똑같은 일이라니까…… 이제 폭격은 하도 당해서 폭격 당해도 그 피해는 활주로에 국한되지 인명피해는 파편상 2~3명 정도로 줄었고, 더이상 장비 손실도 없다. 너무 당했거든. 조금은 다른 레퍼토리로 와도 괜찮은데 말이지.
  ……아니,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오라는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아군 해안 감시원들에 따르면 대략 적기는 대략 20여기이다. 지난번과 같은 대규모 편대는 아니지만 긴장을 늦추지는 말도록]
  우리 기사단 전투기들의 정비와 무장 상태를 점검하며 오전시간을 보낸 우리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바로 긴급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 자체는 불만이 없는데, 조금 그렇다는거지. 밥 먹자마자 바로…….라니. 뭐야, 그게? 물론 우리가 스크램블 대기 차례이기는 했지만….. 하아, 일개 소령 따위에게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그냥 까라면 까는거지!
  “전원, 각자 편대대로 자유 행동한다. 장기하고 요기가 딱 달라 붙어서 상호 엄호 해주는 것, 잊지 말고.”
  수평선 너머에 나타난 반짝이는 점들을 보면서 내가 말했고, 간단한 대답들이 들어왔다. 탐지를 피하기 위해 편대에게 산개 명령을 내린 나는 기수를 들며 왼쪽으로 꺾었고, 그 뒤를 나탈리가 따라왔다. 총 9기의 전투기가 각자의 편대로 흩어진 채 부채꼴 모양을 그리며 흩어졌고.
  음, 다르게 말하면 망치와 모루 전술, 이라고 해야 하나?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의 편대와 나와 나탈리의 편대, 도합 내기는 각각 극우익과 극좌익으로 기동했고, 나머지 유나 중위 소대와 지경이, 그리고 경화는 약간 산개했지만 그래도 정 중앙에서 머물고 있었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계획은 이렇다. 중앙에 위치한 5명이 호위기들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사이, 측면에서 접근한 나와 사냐 공주의 편대가 폭격기들을 최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것.
  “처음 해보는거라 손발이 잘 맞을까, 모르겠네?”
  [응? 우리? 우리 많이 해봤잖아.]
  “아니, 우리 말고…… 사냐 공주네랑 우리랑. 이런 측면 타격은 상호 협동이 중요한거, 너도 알잖아, 나탈리.”
  [음…..걱정 없지 않을까? 우리는 무전기도 잘 되는데.]
  그…그건 그렇지. 공중전에서 가장 중요한 무전기도 있는데. 그리고 교신도 꽤나 깨끗하게 잘 되는데. 그래, 문제 없을거야. 예상 외의 방해꾼만 없으면 분명 잘 될거라고! 속으로 뇌까리며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이미 교전이 시작되었는지 새하얀 비행운들이 서로 겹치고, 중간중간 검은 연기가 피어난다. 설마 우리쪽이 격추된건 아니겠….지?
  [피탄, 피탄! 피탄당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좀 후방 경계 잘 하라고 했잖아!]
  ​[​헤​헤​헤​…​.​.​까​먹​었​어​요​.​]​
  ……유나 중위가 불쌍해지는 순간. 아, 미야 중위 또 덜렁대다가 맞아버렸구나. 유나 중위가 투덜거리면서 미야 중위에게 전열에서 이탈하라고 말하고, 그와 동시에 검은 연기를 꼬리처럼 질질 끌며 푸른 점 하나가 수면 가까이 내려갔다. 아니, 이제는 확실히 실루엣이 보이는구나.
  [부단장님?]
  “응? 아, 응. 소령, 공격 위치야?”
  [대기 완료에요, 창민경. 언제라도 뛰어들 준비 되어있다구요.]
  [나도나도! 준비완~료!]
  “……소풍가냐, 무슨 목소리가 그렇게 상큼 발랄해?!”
  [하지만 오랜만에 창민이와 함께하는 전투인걸!]
  …는 개뿔, 어제도 같이 갔잖아! 헤헤, 하고 얼버무리는 나탈리. 긍정적인건 좋지만 매사에 그런건 좀…… 그렇지 않나? 아, 몰라, 이제는. 너무 익숙해졌어.
  “좋아, 그러면 치고 들어가자. 우리가 조금 먼저 들어가서 호위기들 교란시킬테니까, 호위기들 말고 폭격기들을 노리라고.”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뭔가 촐싹이는 대답과 든든한 대답이 돌아온다. 아…. 믿을 수 있을…..까? 있겠지. 에리카 소령이 같이 있는데 말이야.
  “나탈리!”
  [응!]
  속력을 높이며 적진 한복판으로 급강하한다. 한 40도의 완만한 각도로. 하지만 적기와 1000피트가 넘게 차이를 두고 있던 고도가 그대로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나와 나탈리는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새떼가 이리저리 엮인 곳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러운 우리의 등장에 당황한 후소 제국 조종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놈들의 꼬리를 잡으며 뒤로 따라붙었다. 8 대 4라는 숫적 우세를 활용해 유나 중위의 편대를 몰아붙이던 놈들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응원군의 등장에 놀란 모양이었다. 조준기의 동심원 한가운데에 하얀 실루엣이 보일 때마다 가볍게 방아쇠를 당겨준다. 음…… 아무래도 날개를 접을 수 있다보니 강도가 약해졌나? 약간 탄도가 어그러지네….? 덕분에 제대로 취약점을 저격한 것이 아니라 동체 주변만 슬쩍 건드린 정도가 되었다. 기관총탄 몇발 맞았다고 다 격추되는 것도 아니고,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퍼부어야 하는데 이렇게 탄도가 엉망이면…… 어째 우리가 전에 쓰던 F4F-3가 나에게는 더 맞는 것 같다. 나중에 얘기해서 좀 바꾸든지, 아니면 아직도 억류되어 있는 우리 PK 73을 가져오든지….. 해야겠지.
  “나탈리!”
  [오케이!]
  내가 확실하게 끝내지 못한 적기에 나탈리의 전투기가 앞서 나가며 달려들었고, 나는 그대로 고도를 살짝 높히고 속도를 살짝 줄이며 나탈리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이게 바로 로테의 장점이지. 장기가 놓친 적기를 요기가 추격하고, 또다시 요기가 놓치면 장기가 다시 추격하는, 상호 의존적인 전술. 그런 면에서 나탈리는 최고의 요기이자 동료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의 부탁이라면 앞뒤 살피지 않고 달려드니까. 아니, 그건 조금 걱정이기는 하지. 최소한 자기 목숨 정도는 아까워하라고!
  ……전투 중에 잡생각 하지 말고 집중하자.
  이미 내 사격에 조금 피해를 입은 적기를 나탈리가 끝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2초분량의 기관총탄을 쏴버리기는 했지만, 나탈리의 화망에 걸려든 적기는 동체고 날개고 엔진이고 가릴 것 없이 벌집이 된 채 불덩이가 된 채로 수면과 격돌, 불길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오, 나탈리. 오랜만에 격추네. 그건 그렇고, 나나 나탈리의 사격 방식은 한군데에 집중하는건데…… 어째서 그렇게 골고루 뿌렸대?
  [이…이거….. 이상해! 탄도가, 탄도가 이상해!]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지금 당장 어쩔 수 없으니까 지금은 그만 징징대고, 폭격기나 사냥하자고!”
  [응? 으응……]
  날렵하고 작은 전투기 보다는 거대한 폭격기는 탄도가 조금 빗나가도 괜찮겠지. 대충 그 근처를 때리면 되는 거니까. 얼룩덕룩, 녹색과 갈색으로 칠해진 폭격기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나와 나탈리는 기체를 돌렸다. 이미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의 합동 공격에 1기의 베티 폭격기가 불타는 관으로 변한채 고도를 잃으며 추락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점점 핸더슨 비행장으로 다가오는 폭격기들은 아직도 11기. 잘못하면 놈들이 숫적 우세를 살려 그냥 강행돌파 하겠어……!
  [포….폭격기들이 점점 접근하는데요?!]
  “알아!”
  [알면 빨리 좀 격추해봐요, 창민경!]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거냐?!”
  격추해라, 얍! 한다고 멀쩡하게 날던 폭격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겠어? 절대 그럴리 없지. 나는 최대한 놈들의 엔진이나 날개에 총탄을 박아넣으면서 최대한 격추, 아니면 하다못해 기수를 돌리게 하려고 했지만 이놈들은 뭐가 그렇게 끈질긴지, 동료기들이 당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대공포화를 몸으로 받아내며 비행장으로 접근했다. 해병대의 5인치 대공포도, 우리 44 기사단의 저항도, 긴급하게 이륙한 37 기사단의 블랙캣들의 몸부림도 뚫고, 끝끝내 핸더슨 비행장 위에 도착한 살아남은 베티 6기의 폭탄창이 열리고 폭탄들이 쏟아져내렸다. 흙먼지가 일어나며 비행장 상공을 자욱이 뒤덮었고, 항공 탄약의 유폭이라도 있었는지 엄청난 대폭발이 먼지구름을 뚫고 그 붉은 화염의 혀를 낼름거린다.
  퍼펑!
  화가 난 채 하늘로 대공포탄을 쏟아내는 5인치 대공포에 직격당한 베티가 허공에 화구를 만들며 대폭발. 살아남은 나머지 5기는 살아남은 제로기 2기의 엄호를 받으며 해처리 섬을 향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당해보는 패배였다.
  ​“​…​…​죄​송​합​니​다​.​”​
  얼굴이 벌개진 채로 대노해있는 반데그라프 소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나고 있는 나. 뭔가 처량해보이지만, 어쩔 수 없지. 임무를 실패한게 죄니까. 그래, 내탓이요, 내탓이, 내 탓입니다……. 근데 사실이잖아? 우리가 노력을 했던 안했던, 우리가 최선을 다했던 다하지 않았던간에 결론적으로 비행장은 폭격을 맞았고 130m나 달하는 구간이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그것도 활주로 중간에. 거기다 가까이 있던 탄약 집적소에 재수없게 폭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기관총탄 3만 4천여발, 로켓탄 300여발, 폭탄 100여발, 그리고 연료 2000L 가까이가 그대로 사라졌다. 급하게나마 드럼통과 박스에 연료와 탄약을 담아 이리저리 과나카날 군데군데에 숨겨두기 시작했지만, 이미 우리가 보급받았던 전체 연료의 5분의 1에 달하는 양이 날아가버린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비행장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신나게 혼나는 수 밖에. 그래서 7월 5일, 우리 기사단과 37 기사단은 그나마 정상 작동이 가능한 2번 활주로로 우리 전투기들을 옮겨놓았고, 빠른 대응을 위해 우리의 숙소도 그쪽으로 옮겼다…….. 어차피 숙소라고 해봤자 제대로 된 목조 건물도 아닌 4인용 간이 텐트에 불과하지만.
  “창민경, 주무세요?”
  “응? 아, 아니.”
  텐트 안에 깔아놓은 간이 침상 위에 뉘여있던 몸을 강제로 일으킨다. 사실 아까 혼난 것도 있고, 몸이 피곤한 것도 있어서 그냥 누워서 한숨 자고는 싶지만 무려 공주 전하께서 몸소 납셔주셨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피….. 그게 뭐에요?”
  “공주는 공주잖아, 너.”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공주인걸요. 창민경도 절 공주 취급 안해주고……”
  뭐, 존댓말 쓰는거? 그거 내가 하려고 하니까 지난번에 하지 말라며? 다시 쓸까?
  “흐흥! 됐어요. 그…그냥 그렇다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하라고……”
  “따..딱히 뭘 바라는건 아니에요.”
  그럼 왜온건데? 내 물음에 잠깐 부끄러운듯 고개를 살짝 붉히는 사냐 공주. 잠깐의 정적이 흐른 사냐 공주가 내게 다가왔다.
  “잠깐 산책이라도 할래요?”
  “……좋아.”
  사냐 공주의 부탁에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고, 우리 둘은 텐트 밖으로 나와 해변가를 걷기 시작했다. 점점 져가는 저녁 노을의 찬란한 금빛이 사냐 공주의 푸른 머리카락과 하얀 살결에 부딛혀 산산히 깨지고,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이 우리를 감싼다. 편안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느낌. 이 전선의 가장 혈전이 일어나는 과나카날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하게 걸으며 평화를 만끽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한번 말하지만, 편안하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이곳에 휴가를 즐기러 온 것 같기 때문에. 그건 분명, 내 옆에서 말 없이 노을만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사냐 공주 때문일거다.
  “창민경?”
  “응?”
  “잘하고 있는걸까요?”
  사냐 공주의 물음.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질문의 뜻을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공주로서 잘하고 있냐는 물음. 군인으로서 살 하고 있냐는 물음. 에르데 제국의 황족으로서 제국민을 지키는 것을 잘하고 있냐는 물음…..이겠지. 여기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줘야 하나?
  “오늘….. 21명이 죽었대요.”
  “아까 폭격에?”
  “예…….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들이닥쳐서 미처 방공호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네요. 설마 우리가 뚫릴줄은 몰랐다면서…….”
  “……”
  과도한 믿음에 희생된거……지. 그건 분명.
  “제 잘못 때문에……. 제가 부족해서…… 그래서 그런건가요? 지금까지 이 손에 그렇게 피를 묻히면서 살아왔지만……. 도데체 언제까지 이 피칠갑이 된 손을…….”
  자신의 두손을 바라보며 벌벌 떠는 사냐 공주의 모습에, 나는 거리낌 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차…창민경?”
  따뜻하다. 그리고 부드럽다. 그녀의 눈에는 이 손에 흐르는 피가 보일지 몰라도, 나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도 그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거다.
  그녀의 손에 묻은 피는 전부 내가 닦아낼테니까.
  사냐 공주의 손을 내게 가져와 셔츠에 문질렀다. 사냐 공주가 뭐하는 거냐고 놀라서 물어보았지만, 나는 무시하고 계속해서 문지르기만 할 뿐이었다.
  “창민경?”
  “자, 이제 없지?”
  “예?”
  “네 손에 묻은 피 말이야. 이제 없는거지? 내가 다 닦아냈잖아.”
  “…….”
  “지금은…… 네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말자. 누가 죽었고 누가 살았는지도 생각하지 말자. 그냥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해. 지금은. 그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되지만, 지금은,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고.”
  그런거 일일이 생각하다가는…… 먼저 마음이 부서져버릴테니까.
  “……하지만……”
  “네 손에 묻는 피는, 지금처럼 내게 닦으면 되니까.”
  “…….”
  그래, ​지​금​은​.​.​.​.​.​.​.​ 눈 앞의 것만 생각하며 살아가자. 거기까지 생각한 우리는 져가는 저녁 바다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보랏빛과 주황색이 어지러이 섞인 하늘. 그것에 비친 남색의 바다. 하지만 이제 곧 있으면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겠지.
  “들어갈까?”
  “……네.”
  5인치 대공포들의 포신이 바다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도 방공호로 향했다. 오늘 밤에도 찾아올지 모르는 불청객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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