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4 - 지니아 Part 1
1
“유압”
“체크”
“엔진 오일”
“체크”
“연료”
“체크”
“어그질러리 Auxiliary”
“체크”
과나카날의 아침이란 무료하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이니까. 이틀전의 폭격을 맞아버린 핸더슨 비행장의 활주로는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커다란 구멍으로 뒤덮혀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시비즈 애들이 열심히 복구할 동안 제 2 활주로에서 이륙 및 착륙을 해왔다. 내 짐작대로 200미터라는 길이는 블랙캣 정도의 소형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말이야. 애시당초 갑판 짧은 항공모함에서도 뜨고 내리라고 만든게 블랙캣인데, 항공모함 갑판보다도 긴 제 2 활주로에서 뜨고 내리지 못한다는게 어불성설이지, 안그래? 뭐, 그래도 언제나 사고라는건 터지는 모양인지 몇일 전에는 진입 각도를 잘못 잡은 37 기사단의 기사단원 하나가 그대로 활주로를 오버런, 멋지게 과나카날의 정글 안에 기체를 처박았다. 아, 그래서 그 기체는 지금 어떻게 되었냐고? 어떻게 되기는. 쓸만한 부품들만 골라내서 앙상한 철골만 남아있지.
그걸 제외하고는 딱히 별다른 일도 없었다. 뭐, 매일매일 놀러오는 적 폭격기, 뇌격기들이나, 밤마다 마실나오는 구축함들, 아니면 간간히 놀러오는 적 전함과 순양함들이 포격을 열심히 해주신 것……. 정도? 덕분에 핸더슨 비행장의 복구작업 자체는 별다른 큰 진전이 없지만, 어차피 우리쪽의 인명 피해나 장비 손실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뭐, 상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투기 띄울 활주로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덕분에 나는 오전 6시라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혼자서 내 전투기를 정비하며 오전 초계를 준비하고 있다. 혼자서 유압, 체크, 계기, 체크, 고도계 체크, 무전기, 체크 같은 말을 하려니까 무진장 이상하지만, 알게 뭐야? 큰 상관도 없잖아?
“…….”
아니구나. 저쪽에서 경비하는 헌병들이 나를 조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만하자. 나를 욕하는거야 상관 없어도, 괜히 사냐 공주까지 휘말려들테니까.
“흐아암~”
아침이라 나른해서그런지 기지개를 켤 때마다 몸 곳곳에서 두두둑, 하는 소리가 난다. 아아, 1시간이나 걸렸던 엔진 정비가 끝났다. 어제의 전투에서 엔진을 피탄당했던터라 더더욱 의심이 가는 놈이기는 하지만 한번 예열 정도는 시켜봐야겠지. 엔진 점검창을 닫은 나는 바로 일어나서 조종석으로 기어들어갈……
“안녕히주무셨어요?”
“으아악?!
조종석에 사냐 공주가 앉아있었다. 언제 일어난거야, 도데체? 아니, 왜 네가거기에 있는건데, 애시당초!
“헤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창민경이 보고 싶어서요.”
“……그냥 다음에는 평범하게 인사하라고, 이렇게 놀래키지 말고.”
“네~”
나참.
“그런데 뭐하세요?”
“뭐하긴, 엔진 점검했지.”
“왜요? 그냥 새 엔진 달지.”
어이…… 어제 분명 내가 새 엔진 수배하려고 하니까 없다고 말하면서 수리해서 쓰라고 한게 사냐 공주 당신이잖아! 뭐야, 기억 하고 있구먼, 알고 있었구먼! 왜 눈은 돌리는 건데?
“헤헷.”
……너, 나 미워하는거지?
“아니에요. 설마 제가 창민경을 미워할리가. 저는 단순히 창민경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인걸요.”
“매일 보잖아.”
“그것보다, 시동이나 켜볼까요?”
……말돌리는게 뻔히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주자.
“근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새 엔진 쓰는게…..”
“시동 걸게요~”
야, 야, 야! 그렇게 멋대로 하지 말라니까! 이미 늦었다. 사냐 공주의 손에 의해 돌아간 스파크 플러그가 엔진에 시동을 걸었고, 블랙캣 전투기의 육중한 공랭식 엔진이 펌프질을 시작했다.
푸르륵
푸르륵
푸륵
푸륵……
음? 소리가 이상하다?
“머…멈춰!”
장비를 정지합니다.
“아…알았어요!”
정지하겠습니다.
안 되잖아?
어? 저, 정지가 안 돼. 정지시킬 수가 없어, 안-돼!
그래,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사냐 공주가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이런 걸 전에 본 적이 있나?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안 되잖아? ANG돼자나으아아아아아아아
퍼펑!!
“으아악! 깜짝이야!”
깜짝 놀랐네. 갑자기 엔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펑’소리와 함께. 이거……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급하게 걸리던 시동을 끈 나는 바로 내려 연료탱크 도관을 잠궈 더이상의 연료 유입을 막았다. 뒤이어 힘차게 프로펠러를 돌리면서 검은 연기를 내뿜던 엔진이 힘이 없어서 멈추어버렸고. 후아…….. 깜짝 놀랬잖아.
……아무래도 어제 피탄받은데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하아…… 어떻게 해야 하나? 37 기사단의 정비대로 가는게 가장 좋겠지만, 그쪽은 우리 기사단이랑 워낙 사이가 좋지 않으니 도와줄리는 만무하고…… 그렇다고 우리 기사단에 전속 정비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좋냐?
“미…..미안해요, 창민경.”
“……왜 네가 미안해 해? 정비 똑바로 못한건 난데.”
“어떻게 하려요?”
“하아…… 별수 있나? 내가 엔진 구해보는 수 밖에.”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잔디밭에 주기되어 있던 전투기를 다시 밀어 엄폐호 안에 집어넣은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통신 텐트로 향했다. 사냐 공주에게는 다른 기사단원들 깨워서 각자의 전투초계 준비하라고 했고. 나 하나때문에 기사단 전체가 발을 묶일 수는 없잖아. 통신 텐트에서 알아올 내용은 단 하나 - 언제 수송선단이 올건지. 올때 새 엔진들 좀 갖다 달라고 해야 한다. 아마도 내일이나 모래쯤 오지 않을까? 지난 이틀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게 에르데 제국의 해군 함정들이니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내가 들은 대답은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수송선단 말씀입니까, 소령님?”
“응. 언제쯤 오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오늘 오전 7시 반 쯤에 소형 수송전단이 올 예정입니다. 당장 급한게 무장과 연료라 그것만 싣고 있고요.”
……그래. 지난 이틀동안은 오지도 않던 수송선단이 오늘 기어코 온다는 말이다. 이런 머피의 법칙 같으니라고! 왜 꼭 되지 않은 일은 되냔 말이야?!
“또….언제와?”
“한동안 안 올겁니다. 이번에 2주분의 보급품을 한번에 전달할 예정이니까요.”
젠장, 망했다. 아까 대충 확인해봤을 때 실린더랑 스피너 날아간거 보면 대대적인 정비를 통한 교체, 아니면 엔진 자체의 교환이 불가피해보이는데 말이지……
“뭐 딱히 요청하실 물품으라도 있으십니까?”
“응? 아, 혹시 엔진 부품들을 좀 보급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상황이 상황이라서 계속 굴리다 보니까 다들 상태들이 그리 좋지 않네.”
내가 당장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게 가장 컸다. 나야, 뭐, 조금 위험하게 타고 다녀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우리 기사단원들이 타고 다니는 블랙캣 만큼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 해주고 싶다. 그냥 그 뿐인데…… 그것 조차 쉽지 않다, 젠장.
“어떻게 안될까?”
“죄송합니다, 소령님. 빅토리아 대륙에도 워낙 많이 물량이 밀려 있어서요. 당장 사용 가능한 엔진은 그쪽에도 없어서 지금 본토에서 실어 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건 못해도 앞으로 2주간은 아무것도 못받는다는 말이잖아?
“죄송합니다만, 저희로도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건 사실이지. 지금 여기에 있는 행정병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고 해도 별달리 달라질 이유는 없을테니까. 결국 나는 실망만을 안고 통신 텐트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전 7시 30분쯔음해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던 수송함대가 도착해 물자들을 양륙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냥 우리 기사단원들을 시켜서 우리 물품만 찾아오게 했다. 평소라면 같이 갔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따로 만나야할 사람이 있으니까.